은혜 위에 은혜Grace Upon Grace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요한복음 1:14-18 2025.05.25. 主日禮拜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4-18)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은혜 위에 은혜 Grace Upon Grace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
“은혜 위에 은혜”. 다같이 따라 해주시겠어요. “은혜 위에 은혜”. 오늘 설교의 제하입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 깊이 담겨지는 말씀이죠. “은혜 위에 은혜”. 은혜 위에 은혜란 은혜 위에 또 다른 은혜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다”,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은혜를 받고 또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는 다함이 없습니다. 또 받고 또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컫는데요. 이 세상을 누가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어떤 물질의 재료를 갖고,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은 곧 하나님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도, 성경을 통해 글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즉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에게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뜻이 ‘말씀이 육신’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성령님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곧 에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토끼가 새끼를 낳으면 무엇이에요. 토끼에요.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고양이에요. 개가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에요. 사람의 아들은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고요(요6:46).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고 하였으며(요8:42). ,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고 하였고(요8:54),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께 받았노라’고 하시면서(요10:18),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30).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과 동등’이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격이세요(빌2:6).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은 그의 아들이세요. 하나님은 곧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하나인 예수님도 말씀이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천년 전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한 것입니다(요1:18).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0:22).
충만하심
여러분 하늘의 별의 숫자를 아세요. 몰라요. 아무도 하늘의 별이 몇 개인지 몰라요. 혹자는 말합니다. 구만 두 개라고요. 밤하늘 에 별들을 세 다가 세 다가 다 못 세니 “구만 두 개”라고 해서, 구만 두 개라고 말한 답니다. 어떤 분들은 별의 수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별들에게 불어봐”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넷째 날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14). 이 때 두 큰 광명체를 만드셨는데요.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해’를 말합니다. 그리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셨습니다. ‘달’을 말합니다. 그리고 ‘별들’을 만드셨습니다(창1:16). ‘큰 광명체’ 해와, ‘작은 광명체’ 달은 단수로 각 각 하나이지만, ‘별들’이라고 칭하신 별의 수는, 몇 개인지 그 수를 알 수 없어요. 이것은 무엇을 알게 합니까?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그 수가 있겠죠.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그 수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충만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다섯째 날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창1:20). 하나님은 ‘그 종류대로’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창1:21). 여러분 바다와 강에 물고기 수를 셀 수 있습니까? 몇 마리인지 알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그 이유도 무한하신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수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까?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가 현재는 인도입니다. 얼마전까지는 중국이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자기 나라 국민이 몇 명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인구조사를 하면 거의 5년 이 걸리는데요. 그 사이에 낳고 죽고를 계속하니 알 수가 없어요. 세계 인구는 추측이지, 정확한 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무한하심입니다.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는 인간과 ‘땅’에서 함께 살아갈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창1:24-25). 셋째 날에는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셨습니다(창1:11-1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동식물들을 종류를 다 알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미발견된 동식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학계에서 매년 새로운 종을 발견하여 보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밀림, 심해, 산악 지역 등 탐사가 어려운 곳에 이미 발견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생물이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하고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후, 운행하시는 섭리는 지금도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헤아릴 수가 없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충만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무한하심은 누구에게도 그대로 위임되었습니까? 예수님께도 그대로 위임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고 하셨습니다(요13:3).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위임받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본문은 충만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천년 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봅니다. 어떤 영광입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그의 독생자 예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뭐하더라, ‘충만하더라’고 하십니다.
이 충만은 어떤 충만 입니까? 하나님의 무한하심입니다. 인간의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입니다.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기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영광에는 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받은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또 받고 또 받아도 다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아멘!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모든 사람에게 임한 충만한 은혜
그렇다면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는 어떤 은혜입니까?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섬기러 이 세상에 오셨는데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에 있습니다. 지난 역사 오늘 역사 장차 역사의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이 대속은 십자가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한 두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 즉 전 인류를 위한 대속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충만하심입니다. 그렇기에 그 분의 십자가의 은혜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딤전1:15).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9).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라고 하셨습니다(히9: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롬1:13).
우리가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은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딤전2:4). 그러나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십니다(롬1:16). 우리가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은 모든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 십자가의 대속이 열려 있는 충만함이지만, 그러나 ‘믿는 자’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믿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시시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그런 시시한게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불신자들도 있는 듯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져 손에 쥐어주는 것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 만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산소酸素입니다. 우리가 흔히 공기로 부르는 것입니다. 산소는 공기의 주성분입니다. 맛과 빛깔과 냄새가 없는 물질로서, 사람의 호흡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체입니다. 산소 없이 얼마나 살 수 있을 까요. 아마도 수분도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귀중한 공기를 돈을 주고 얻나요? 그냥 얻나요. 공짜입니다.
성도 여러분 창으로 무엇이 쏟아지고 있습니까? 햇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장렬하는 태양에서 뿜어오는 그 열기는 무려 6천도가 넘습니다. 이 햇살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작물을 자라가하고, 자연을 가꾸어 가고,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태양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며칠만 없으면, 추위에 상태계는 파괴되고, 유해한 세균들이 인간의 피부에 자라 독종 같은 피부병을 앓게 됩니다. 이 고마운 햇살을 돈을 주고 얻나요? 그냥 얻나요. 공짜입니다.
사람의 몸이 70%가 수분이듯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해도, 동네 우물물이나, 집에서 직접 땅을 파서, 수도 파이프를 직접 연결해서 물을 먹었습니다. 산과 들에 가서도 옹달샘과 개울물을 그냥 마셨습니다. 지금은 물을 돈 주고 사먹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집에 까지 끌어다 주는 상수도 요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이 삶과 직결되는 물의 가치를 볼 때, 어떻게 한 달에 몇 만원 밖에 안 되겠어요. 그러므로 물도 사실상 대가가 없이 마시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공기와 햇살과 물을 말씀드렸는데요. 이렇게 세 가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은 공짜로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가 없어서 공짜인가요. 아닙니다.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에 돈으로는 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가장 귀한 것들은 거져 얻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무엇으로도 지불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 다는 말은, 예수님이 시시해서 아무 값없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귀한 것, 세상에서 귀한 공기와 햇빛과 물 보다 더 귀한 것이기에 돈을 차마 메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예수님을 통해 다 이루어 놓이시고, 우리는 믿기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받고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인 충만한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을 받는 모든 사람 가운데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충만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불쌍한 영혼입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소원을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저와 여러분들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그래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전해야 합니다. 믿게 해야 합니다. 받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예 첫 번째는 모든 사람 가운데 믿는 자에게 임하는 충만한 은혜입니다.
영권 인권 물권의 은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두번째는 땅에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첫 번째 조상 아담이 범죄 후, 두 번째 인간의 조상을 택하셨습니다. 중시조中始祖로 불리는 노아입니다.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9:1-3).
이 말씀을 보면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자손을 번성하여 온 세상에 가득차게 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모든 생물을 ‘너희의 손에 붙였다’고 하였습니다.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누구의 것으로 저와 여러분의 것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17:21),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죄악의 도성이지만, 이 땅에 주의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하여야 하기에, 이 세상에 주의 복음이 증거된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라를 맡기신 것과 같이 그의 제자들, 바로 우리에게 맡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를 맡기셨다는 것이 앞서 합독한 ‘땅에 충만하라’이며, ‘너희 손에 붙였다’이고,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신 것과 일맥의 말씀입니다(창9:1,2,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곧 이 세상을 우리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다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적 목양을 통해서, 선지자적 예언을 통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각 각의 은사와 생업에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직장에 근무하는 성도이면, 그 회사의 동료들을 전도해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성도이면, 그 회사의 직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세워가도록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그와 같이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맡은 직분에 따라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는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하늘에서 상급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충만하라, ‘너희 손에 붙였다’, ‘다 너희에게 주었다’고 하셨습니다(창9:1,2,3). 이와 동일한 말씀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나라를 나에게 맡기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나라를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맡기셨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이 나라가 되도록 각 각의 부름에 따라 전도를 하고, 빛과 소금이 되고, 분량에 따른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명을 우리가 실행한다면, ‘땅에 충만하라’, 즉 ‘나라를 맡긴’ 우리에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에 필요한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더하여 주시 줄로 믿습니다.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어찌 영적인 말씀만 이겠습니까? 나라를 맡겼다는 말이 어찌 영적인 말씀만 이겠습니까?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 만들기 위해 전도를 하고, 빛과 소금이 되고, 직분을 감당하는데, 영권과 함께 인권과 물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소속된 노회를 하기 전 각 부서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때입니다. 저도 임원이고, 한 부서장으로 참석을 했는데요. 제 부서에 회계가 장로님이십니다. 서울에 있는 우리 노회에서 가장 큰 교회 가운데, 한 교회를 섬기시는 분인데요. 건설업 면허를 갖고 있고, 중소규모의 건설회사 사장을 하신 분입니다. 이 분과 말씀을 나누는 중 그런 말을 하시더군요. 교회에서 장로 같은 중진을 감당하려면, 작은 규모라고 하더라도, 대표를 해야 좋은 점이 많다고요. 그래야 예배는 물론 교회에 여러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사원으로 근무하면 자유로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진을 하려면, 작은 규모라도 대표를 해야 하는 이유가 그뿐이겠습니까? 교회에서 어린이주일학교 부장 등을 맡으면, 여름성경학교 때, 교회에서 재정 지원을 해도, 별도로 아이들 아이스크림도 사줘야하고, 피자도 한 번 사줘야 하고, 성경학교 마치면 교사들 회식도 해 주어야 하는데, 받은 사람은 아이스크림 하나고, 밥 한끼 이지만, 그 인원이 한 두 명이 아니고, 백 명 혹은 그 이상이면 적지 않은 물질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것도 1년에 몇 차례 씩이면, 지출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고요. 성가대장을 하면 가운도 하나 씩 맞추어 주어야 하고, 찬양단장을 맡으면 좋은 악기도 헌물 해야 하니까요. 적지 않은 물질을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장로님은 “제가 작년에 교회에서 제 1청년부장을 맡았는데 1년에 찬조한 2천 만 원이 된다”고 하더군요. 청년들 하계 동계 수련회, 그리고 비전 트립Vision Trip으로 년 2, 3회 단기 선교를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원을 하다 보니, 그런 큰 액수까지 드는 것이지요. 십일조와 일반 헌금과 별도로 그렇게 많은 돈이 쓰여지게 되는 것이지요. 두 분 장로님이 그러시면서, 때로는 벅찰 때도 있지만, 그 순간 순간마다 감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지금까지 충성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충만하라’, ‘나라를 네게 맡겼다’고 하셨을 때는,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데 필요한 영권과 이렇게 인권 물권이 함께 하는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땅에 ‘충만하라’, ‘나라를 네게 맡겼다’는 말씀을 믿고 감당할 때,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영권과 함께 인권과 물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하십니다(요16:23).
더욱 넘치는 충만한 은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첫 번째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이고요. 두 번째는 땅에 충만입니다. 나라를 내게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데 영적인 권능만 아닙니다. 인권과 물권도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충만이라는 뜻 그대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9: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 간당간당하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뜻에 합당한 자에게는 넘치게 주시는 것입니다. 별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하늘에 가득하듯이, 물고기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바다에 가득하듯이, 땅에는 셀 수 없는 동식물로 가득하듯이, 하나님은 넘치게 주시는 분이세요.
우리가 애송하는 구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하셨습니다(시25:4). 원수들 앞에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고, 그들이 벌린 입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넘치게 부신다고 하였습니다. 준비한 잔 이상으로 넘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전에 예배당 공사를 할 때, 기도한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원래 1년 전 건물주가 요구했던 인상된 보증금을 주지 못했는데, 건물주가 보증금 납부 시한을 유예해주어서, 보증금 일부만을 받고,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를 보고 긍휼히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주인이 그렇게 배려를 해 주었던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공사를 계획했는데요. 몇 몇 성도님들이 드린 예배당 헌금을 보증금으로 드리고 나니, 필요한 공사비에 절반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강력하게 기도하고,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에배당이 화려하지 않지만, 공원에서 파라솔을 치고 시작한 우리 교회로서는 소중한 곳입니다. 공사하는 과정에서 지불하여야 할 것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공사를 하는데, 임금과 자재비를 주지 못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기 어떻게 어떻게 해서 지불을 하고, 그로 인해 채무 아닌 채무를 안아야 했습니다. 또 절반 공간을 터서 전체를 사용하도록 공사를 하니, 출입문이 바뀌면서 새로 설치해야 할 간판도 달지 못했고요. 유리로 된 외벽에 빛을 가릴 썬텐지도 부착하지 못했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채워 놓아야 할 의자와 기타 성구들도 더 필요한 상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인데요. 예배당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공사비, 성구 등만 당장 필요한 물질 뿐만 아니라, 2년 유예된 보증금까지도, 그 이상까지도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과장에 크고 작은 어려움과 난관들도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넘치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제목 가운데 이러한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가르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다같이 따라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아멘? 하나님은 넘치게 주시는 분이신데요.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는 자는 먼저 남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즉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다른 이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원하시고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파루시아 아카데미”라는 명칭의 모임을 엽니다. 뜻을 함께 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 시간입니다. 공원에서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섬겼습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은 우리 교회가 공원에서부터 오늘까지 모습들을 다 보았습니다. 지금은 수가 좀 줄었습니다만, 많이 오실 때는 30여 명도 오셨습니다. 오신 분들마다 다 축복을 해 주셨어요. 청아비전교회 복이라고요. 그동안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참 수고 많으셨다고요. 교회가 안정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기 일처럼 기쁘다고요. 이런 저런 말로 격려와 치하를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기 위해 오시는 분들을 교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모십니다. 그렇다고 재정적인 지원을 교회에서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임대료가 미납되었을 때 모임에서 대납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를 장소로 사용하기에 성도님들 가운데 차량을 운행해주시고, 식사를 예약해주시고, 간식을 세팅해주시고, 여러 봉사를 해 주십니다. 이런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먼저 “주라”하셨기에 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중심을 하나님이 예쁘게 보아서일까요. 앞서 말씀 드린데로 우리교회가 임대료가 미납되었을 때, 대납을 해주기도 하고요. 처음 제가 공원에서 개척을 했을 때, 운영비를 보내오기도 하시고요. 예배당 시설물들을 헌물해주시기도 했고요. 제 저서를 출간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큰 것을 이 모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실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물론 우리가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게 주시는 분인데요. 그 하나님은 먼저 다른 이에게 “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주라”하신 말씀 앞에 어떤 것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성령께서 지금 여러분 마음을 감동하시는 것을 “주라”하신 말씀 앞에 순종하면 됩니다. 마음을 닫지 말고 열면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오늘도 하나님은 그에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렇게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많으셔서 저는 참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하였습니다(고후1:5). 성도 여러분이 넉넉하지 못한 가둔데 “주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넘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는 분 이시니까요?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고후3:9).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중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주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더욱 넘치는 영광이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 청아비전교회 성도님들은 넘치는 은혜를 받기를 축복합니다. 더욱 넘치는 은혜를 받기를 축복합니다. 목사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넘치는 복과 위로와 역사를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를 성도들이 체험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적을 목도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정리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
“은혜 위에 은혜”. Grace Upon Grace “은혜를 받고 또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다함이 없습니다. 또 받고 또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1장).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요1:1).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2천 년 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눅10:2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곧 하나님이십니다(참고/요6:46,8:42,54,10:18;빌2:6). 그렇기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영광에는 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충만하심
하늘의 별의 숫자를 아는 분이 있나요? 하나님이 ‘큰 광명체 (해)로 낮을 주관’하시고, ‘작은 광명체 (달)로 밤을 주관’하시며, 또한 창공에 가득 ‘별들’을 만드셨습니다(창1:16). 그 별들이 몇 개인지 그 수를 알 수 없어요. 그뿐만 아니죠. ‘하나님이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그 종류대로’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창1:20-21). 바다와 강에 물고기 수를 셀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땅’에서 함께 살아갈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셨습니다(창1:11-12,24-25). 아직도 지구상에는 매년 미발견된 동식물들이 존재합니다. 밀림, 심해, 산악 지역 등에 발견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생물이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하고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섭리는 지금도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헤아릴 수가 없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충만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무한하심은 누구에게도 그대로 위임되신 것입니까? 예수님께도 그대로 위임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고 하셨습니다(요13:3). 그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하더라’고 하십니다(요1:14). 이 충만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입니다. 인간의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기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영광에는 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받은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또 받고 또 받아도 다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모든 사람에게 임한 충만한 은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첫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 충만한 은혜입니다. ‘인자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우리가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에 있습니다. 전 인류를 위한 대속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충만하심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고후5: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딤전1:15).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9).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히9: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롬1:13). 십자가의 은혜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그러나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십니다(롬1:16). 예수님의 충만함은 모든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이지만, 믿는 사람만이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시시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그런 시시한게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불신자들도 있는 듯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져 손에 쥐어주는 것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 만 아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공기 중 산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태양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없으면, 추위에 상태계는 파괴되고, 유해한 세균들이 인간의 피부에 자라 독종 같은 피부병을 앓게 됩니다. 사람의 몸이 70%가 수분이듯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 세가지가 가치가 없어서 공짜인가요. 아닙니다.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에 돈으로는 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가장 귀한 것들은 거져 얻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 다는 말은, 예수님이 시시해서 아무 값없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다 이루어 놓이시고, 우리는 믿기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충만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소원을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저와 여러분들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전해야 합니다. 믿게 해야 합니다. 받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영권 인권 물권의 은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두 번째는 영권 인권 물권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첫 번째 조상 아담이 범죄 후, 중시조中始祖로 불리는 두 번째 인간의 조상 노아를 택하시고, ‘땅에 충만하라’ 모든 생물을 ‘너희의 손에 붙였다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였습니다(창9:1-3).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나라를 맡기셨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눅22:29;요17:21).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에 주의 복음이 증거된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맡기셨다는 것은 ‘땅에 충만하라’이며, ‘너희 손에 붙였다’이고,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창9:1-3).
세상을 우리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적 목양을 통해서, 선지자적 예언을 통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각 각의 은사와 생업에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맡기셨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이 나라가 되도록 각 각의 부름에 따라 전도를 하고, 빛과 소금이 되고, 분량에 따른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에게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눅22:30). 하늘에서 상급을 말합니다. 이 사명을 우리가 실행한다면, ‘땅에 충만하라’, 즉 ‘나라를 맡긴’ 우리에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에 필요한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더하여 주시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여러 성도님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드리는 간증을 듣게 됩니다. 때로는 벅찰 때도 있지만, 그 순간 순간마다 감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지금까지 충성하고 있다는 고백을 듣기도 합니다. ‘땅에 충만하라’, ‘나라를 네게 맡겼다’고 하셨을 때는,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데 필요한 영권과 이렇게 인권 물권이 함께 하는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땅에 ‘충만하라’, ‘나라를 네게 맡겼다’는 말씀을 믿고 감당할 때,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영권과 함께 인권과 물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더욱 넘치는 충만한 은혜.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세 번째는 충만이라는 뜻 그대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하나님은 그 뜻에 합당한 자에게는 넘치게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5:4). 원수들 앞에 그들이 벌린 입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넘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전에 예배당 공사를 할 때, 기도한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원래 1년 전 건물주가 요구했던 보증금을 인상을 주지 못했는데, 건물주가 보증금 납부 시한을 유예해주어서, 보증금 일부만을 받고,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를 보고 긍휼히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주인이 그렇게 배려를 해 주었던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공사를 계획했는데요. 몇 몇 성도님들이 드린 예배당 헌금을 보증금으로 드리고 나니, 필요한 공사비에 절반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강력하게 기도하면서, 공사비, 성구 등만 당장 필요한 물질 뿐만 아니라, 유예된 보증금까지도, 그 이상까지도 기도를 하였습니다. 결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입니다.
그리고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눅6:38). 우리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는 자는 먼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파루시아 아카데미”라는 명칭의 모임을 엽니다. 뜻을 함께 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 시간입니다. 공원에서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섬겼습니다. 우리 교회가 공원에서부터 오늘까지 모습들을 다 보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이 항상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렇게 저렇게 봉사를 해 주셨습니다.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먼저 “주라”하셨기에 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중심을 하나님이 예쁘게 보아서일까요. 공원에서 개척을 했을 때, 운영비를 보내오기도 하시고요. 예배당 시설물들을 헌물해주시기도 했고요. 제 저서를 출간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게 주시는 분인데요. 그 하나님은 먼저 다른 이에게 “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감동하시는 것을 “주라”하신 말씀 앞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에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렇게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많으셔서 저는 참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 여유있지 못한 가둔데 “주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예수님의 넘치는 위로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구후3:9). 소중중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주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더욱 넘치는 영광이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 청아비전교회 성도님들은 더욱 넘치는 은혜를 받기를 축복합니다.
최종 정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성경을 통해 글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이신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셨는데,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예수님도 하나님과 동격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이신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을 입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누구를 본 것과 똑같아요. 하나님을 본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신 것입니다(요1:14).
이 말씀 가운데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하다고 하셨는데요. 그 충만함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계는 인간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는 별의 수를 알 수 없으며, 바다에 가득 찬 물고기 수를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람의 수도 몰라요, 인구를 조사하는 사이 출생과 사망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새와 땅에 동식물도 그 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로 모든 사역을 마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창조와 운행과 섭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그의 아들이신 예수가 모든 위임 받으셨습니다. 그것을 본문은 예수의 충만한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은 성도입니다. 즉 우리가 받고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에 받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충만함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시시해서가 아닙니다. 공기와 햇빛과 물과 같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은 거져 얻게 하셨습니다. 어떤 가치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은 모든 사람이지만,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 일을 저와 여러분이 감당해야합니다. 우리를 통해 불신자들이 복음을 듣고 그들이 구원과 함께 충만한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땅에 충만입니다.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데 영적인 권능만 아닙니다. 인권과 물권도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충만이라는 뜻 그대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주시는데, 그냥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넘치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먼저 ‘주라‘는 말씀에 아멘하고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야 합니다. 넘치는 더욱 넘치는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중보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1:1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충만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원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할렐우야 구원을 얻으리로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크도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크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권세 내 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권세 내 권세
우리가 그 예수 이름을 부르며, 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며 그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 땅에 충만 하라, 나라를 맡겼다,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세워가는 데 필요한 영권과 인권과 물권, 그리고 먼저 “주라”는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 더욱 넘치는, 은혜 위에 은혜가, 우리 교회 공동체와 성도님들 가정과 기업 그리고 우리의 동역자들 위에 나타난 줄 믿습니다. 확신하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① “은혜 위에 은혜”는 “은혜를 받고 또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받은 은혜는 다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아들 예수에게 주셨습니다.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은혜 위에 은혜 예수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② 별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하늘에 가득하듯이, 물고기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바다에 가득하듯이, 땅에는 셀 수 없는 동식물로 가득하듯이, 하나님의 충만함입니다. 곧 예수님의 충만합니다. 이 충만함을 지금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③ 받아도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첫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 충만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십자가의 대속을 믿을 수 있도록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④ 두 번째는 영권 인권 물권의 은혜입니다.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권 인권 물권을 받게 하옵소서.
⑤ 세 번째는 충만이라는 뜻 그대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은혜를 받은 자는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는 체험을 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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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위한 기도"(요 17:6-19) 이재현목사(25.06.01) (1) | 2025.06.03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1) 가정주일 이재현목사(25.05.18) (6) | 2025.05.20 |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왕하 20:12-19) 이재현목사(25.05.11) (1) | 2025.05.12 |
"하나님의 요구는 행복이다"(신10:12-13) 어린이어버이주일 이재현목사(25.05.04) (0) | 2025.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