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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교재 21 이재현목사 "겸손하신 왕을 따라"(마21:6-9)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5. 2. 22. 18:07

겸손하신 왕을 따라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21:6-9 2025.02.16. 主日禮拜

 

1. 다음 <겸손하신 왕>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한 달 전부터 베레아와 유대에서 전도하셨습니다(19:1-2). 그리고 마지막 한 주를 보내실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는데요(참고/19:15,20). 지금 교회력으로 고난주간의 시작인 종려주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벳바게에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 풀어 끌고 오라고 명하시며,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고 하셨습니다(1-3.참고/11:1-2;19:30;12:14). 나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주님을 믿었던 주인은, 그동안 갈릴리에 계셨기에 직접 뵐 기회가 없었는데, 벳바게에 오셨고, 자기의 나귀 새끼를 쓰신다고 하니, 기꺼이 내어드렸던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싶은 갈망은,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세상의 군왕이 화려하게 장식된 말을 타고, 군대를 사열하는 것과 달리,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 왕께서는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4-5.참고/9:9). 두 가지를 알려 주십니다. 2천 년 전 이 세상 오신 예수님이 황제와 같이 오셨다면, 그분은 우리의 왕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오셨습니까? 2천 년 전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구원자요. 고난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시는데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셔야 했기에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오신 것입니다. 겸손의 왕입니다. 주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5일 후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 죽음을 향해 묵묵히 길을 가고 계신 것입니다. 겸손하신 왕입니다.

 

 

 

 

2. 다음 <겸손은 드리는 것이다>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종으로까지 낮아지라고 하시며,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21:26-28). 그러므로 겸손하게 내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황제들이 말 중에도 백마 타는 것을 즐겨하는 것은, 장차 백마를 타고 오실, 재림 예수님을 흉내내는 것입니다(19:11). 2천 년 전에는 구원자와 고난자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기에 겸손함으로 나귀 새끼를 타셨지만,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님은 승리자와 심판자, 만왕의 왕으로 백마를 타시는 것입니다. 그날이 이르기 전까지, 겸손하신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대속 은혜는 계속됩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신 겸손의 주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나귀 새끼 주인 같이 주가 쓰시겠다고 할 때, 기꺼이 내어드리는 겸손을 축복합니다. 제자들은 주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나귀 새끼 고삐를 풀었습니다(19:31). 그런데도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고 하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 하나님은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정하신 때, 종말에 백마를 타고, 승리자와 심판자, 만왕의 왕으로 임하게 하신다. 우리도 겸손으로 내어드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높여 주실 것이다.

3. 다음 <겸손은 사랑을 얻는다>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는 누구냐묻자, ‘무리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답했습니다(10-11.참고/11:1-11;19:28-38;12:12-19). 나사렛은 가지, 순으로 연약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참고/11:1;2:23). 이 동네에서 자라신 예수님을 호칭할 때 나사렛 사람 예수여라고 부르고, 본문에는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태어나신 마을도 가장 작은 베들레헴이고, 말들 먹이 통인 구유에 누이셨습니다(2:7). 위용있는 왕궁에서 태어나는 세상의 왕들과 다른 점입니다. 전혀 그런 곳에서 인류의 구원자, 만왕의 왕이 탄생하실 수 있어?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오신 겸손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대입할 때, 어떤 열등의식이 있습니까? 출신, 학벌, 이력, 외모, 능력 내세울 게 없나요. 자존감이 약하신가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나요?(참고/고전1:26-28)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내세울 게 없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12:18;3:22.참고/41:1;3:17,17:5;1:11,9:7).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빈천한 삶을 사시고, 태어나고 자란 곳도, 자랑할 만한 것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을 잃지 않으시고, 십자가까지 가신 것입니다. 겸손으로 태어나 겸손으로 마치신 분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겸손을 옷 입으라(3:12).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예수님처럼,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십자가의 길이라도 당당하다. 십자가 위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겸손한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함을 확신하는 은총을 축복한다.

 

 

 

 

4. 다음 <겸손은 거룩을 입는다>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다음 날 지금 교회력으로 고난주간 월요일 성전에 들어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율법의 규례에 따라, 멀리에서 사는 사람이나,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이 와서, 제물로 드릴 우양은 성별해야 한다며,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폭리를 취하던) ‘매매하는 모든 사람을 내쫓으시며’, (하나님은 로마 화폐를 유 화폐로 환전해야 받으신다며, 많은 수수료를 챙기던)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 둘러 엎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호통을 치시며, 물리적으로 대하셨습니다(12-13). 그 앞의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다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하신 격한 언사도 그렇고,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들의 상을 엎으신 것도 그렇고,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의 왕과 상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18-19.참고/11:12-13).

예수님이 하루 만에 달라진 것인가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무화과나무에 잎사귀만 무성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을 찾는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성전을 장삿속으로 삼는 자들로 신앙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집으로 명한 성전을 사리사욕으로 꽉 차서, 강도의 소굴이 되게 했습니다. 주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처럼,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몰아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을 쫓아 내버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을 더럽힌 것은 하나님께 겸손하지 못한, 불손不遜입니다. 오늘날 성전은 성도입니다(고전3:16). 성전인 성도를 더럽히면 안됩니다. 본문에서 성전에서 매매하고 돈 바꾸던 자들은 성전을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성전인 성도를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들은 멸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3:17). 하나님께 겸손한 성도는 성도에게도 겸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고전3:17). - 오늘날 성전인 성도에게 불손을 하지 않고, 겸손하게 대하는 것, 겸손의 거룩이다. 겸손은 거룩을 입는다.

 

 

 

 

 

5. 다음 <겸손은 용서를 이룬다>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일을 예의 주시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성전에서 소란한 행위와 떠드는 아이들을 잠잠하게하라고 하자, ‘예수께서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아이들도 알아본다는 예언이 이루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5-16.참고/8:2;11:15-19;19:45-48;2:13-22). 주님은 어린애들도 메시아의 오심을 믿고 찬양하는데 종교지도자들이 모른다는 훈계하신 것입니다.

병행 본문에는 다음날 고난주간 화요일에 제자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고 하였습니다(11:20-21). 어제 월요일 아침에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하신데로,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19.참고/11:14). 그런데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고 여쭈었습니다(20). 답은 당연한 합니다. 주님이 명한데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것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대답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시며, 믿음의 기도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21-22.참고/11:12-14,20-24).

그리고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11:25). 믿음의 기도에는 용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의 왕 주님은 십자가에서도 자신을 못 밖은 자들을 향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며 용서하셨습니다(23:34). - 지금 예배하는 성도가, 다른 사람과 막히지 않게 풀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응답이 임하는 것이다. 믿음의 기도, 능력의 기도, 역사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에게는 겸손하신 주님의 용서가 있어야 한다. 겸손은 용서를 이룬다.

 

 

 

 

 

6. 다음 <겸손은 긍휼을 구한다>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교회력 고난주간 둘째날 화요일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두 아들 비유를 하셨습니다(23-27).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28-31). 이에 둘째 아들이니이다고 답하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31.참고/11:27-33;20:1-8).

예전에도 주님이 세리와 죄인과 음식을 드신다도 종교지도자들이 힐난했을 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구약은 인용하셨습니다(9:10-13.참고/6:6). 죄 사함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얻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과 같은 유대인 명절에 성전에서, 제사를 온전히 드리라고, 백성들에게 명을 하면서, 뒤에서는 제물을 매매하는 자들과 돈을 바꾸는 자들과 결탁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죄인들과 세리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탄식하며, 긍휼을 구했습니다(18:13). 예수님은 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18:14). 본문에서도 두 아들 비유 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세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31-32). -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마음이 답답한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겸손하지 않은 것을 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소망한다. 겸손은 긍휼 구한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예수님은 2천 년 구원자와 고난자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에,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하신 왕입니다. 우리도 나귀 새끼 주인과 같이 주가 쓰시겠다고 하실 때, 겸손으로 내어드릴 수 있세 하옵소서. 재림 주는 승리자와 심판자로 만왕의 왕으로 백마를 타고 오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높여 주시옵소서.

② 예수님은 태어나고 자란 곳도, 자랑할 만한 것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십자가까지 가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예수님처럼, 겸손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십자가의 길에서도 당당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③ 예수님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장사꾼과 환전상들을 몰아냈습니다. 하나님 임재 상징인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께 겸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전인 성도를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을 물리쳐 주옵소서. 거룩한 하나님께 겸손하게 하옵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에게 겸손히 행하는 겸손의 거룩으로 대하게 하옵소서.

④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를 교훈하시며, 용서하며 구해야. 하나님도 너희 허물을 사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의 용서를 간구함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막히지 않게 풀고 기도하여, 하늘 응답의 임함을 받게 하옵소서. 우리의 중보에 겸손하신 주님의 용서가 있게 하옵소서.

⑤ 예수님은 두 아들 비유로 둘째와 같이 잘못을 뉘우친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겸손하지 않은 것을 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