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백부장의 민족사랑"(눅7:1-10) 이재현목사(25.04.27)

이재현목사 2025. 4. 27. 18:28

백부장의 민족사랑

 

이재현 목사

 

하나님말씀 : 누가복음 7:1~10 2025.04.27. 主日禮拜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7:1-10)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백부장의 사랑

 

가버나움이라는 지명이 나오고요, ‘백부장’百夫長,Centurion이 등장합니다(7:1-2) 장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보병 부대의 최소 단위인 백인대’百人隊, 병사 100명의 지휘관입니다. 가버나움이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에서도, 중심지이었던 것을 볼 때,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을 총괄하는 책임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는 이스라엘 전 지역을 구역별로 백부장을 배치하여 통치하였는데요. 백부장은 로마의 지배자로서, 피지배자인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제국의 중요한 요원Agent으로서, 착취와 억압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로마 제국은 자신의 식민지에 대한 개입과 강압, 반란과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 두 가지 중요한 권리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사법권과 경찰권입니다. 이렇게 백부장은 군대로서의 임무는 물론 제국주의의 판사, 경찰 권력을 가졌습니다. 많은 권한을 가진 것이지요.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라는 말은 나는 권세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ἐγὼ ἄνθρωπς εμι πὸ ἐξουσαν이라는 말인데요(7:8). 백부장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로마의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그 황제로부터 임명받은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BC20-AD39의 명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당시 이스라엘에 주둔해있던 로마 군대의 최소 단위인 부대를 지휘하는 백부장은 유대인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상관인 헤롯은 가문 대대로 유대인들을 핍박했던 자이었고, 그러한 헤롯의 명을 따르는 백부장을 유대인들이 좋아 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백부장은 앞서 말한 다른 백부장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요. 그를 고치고자 하였고요. 그러한 백부장의 마음을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들에게 전하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이 예수님께 직접 찾아와,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전의 설명과 비추어 볼 때, 의아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원수 헤롯 그리고 그의 명을 받는 백부장 그리고 그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다른 이도 아닌 유대인의 장로들이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당시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의 장로들이 자신들의 일도 아니고, 백부장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께 찾아와 부탁을 했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에게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소원을 예수님에게 간청하며, 예수님이 반드시 고쳐 줘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7:4-5).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의 소원인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어야 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런가에 대하여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로 이방인이었지만, 유대 민족을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백여 명의 군사들을 대동하며 주둔하면서, 군사 그리고 사법과 경찰을 겸한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을 가지고 횡포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백부장은 로마의 식미지인, 이스라엘 백성들, 피지배자의 아픔을 감싸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말씀의 전당殿堂인 회당을 세우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사랑의 진정성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감화와 존경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병들려 죽게 된 자는 백부장이 아니라, 백부장의 종입니다. 그렇다면 백부장의 종은 백부장과 같이 로마인이 아니고,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종으로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종에 대하여,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종이지만, 그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보듬어 주었음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또한 백부장이 유대민족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은 유대민족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경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보낸 유대인의 장로들과 예수님은 동행하여,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걸으셨을까요? 백부장의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자신의 집에 가까이 오셨다는 전갈을 받은 백부장은 급히 벗들을 보내어, 다음과 같은 말을 예수님께 전합니다.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7:6-7).

 

먼저 백부장은 예수님에게 주여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는 말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로 부르며,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얼마나 위엄있는 분으로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어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크신 분이어서, 자신이 직접 예수님에게 찾아가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통해 예수님에게 부탁을 한 것은 자신의 신분이 높아서가 아니라, 자기 같은 낮은 자가 감히 예수님께로 나아올 염두도 못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접 집에 오시지도 않고,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라고 아뢰고 있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7:8). 자신도 백부장으로 상관의 명을 따르기도하고,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부하에게 가라 명령하면 가고, 오라 명령하면 오고,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도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집에 오실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말씀만 하면, 종의 병이 고침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7:9). 예수님은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라는 백부장의 말을 듣고, 그를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돌이키사 지금 노중에 있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인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유대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고요. 이스라엘 중에서도 그만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의 병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10).

 

이러한 백부장의 믿음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런데요 이 본문의 핵심인 백부장의 믿음과 함께 가르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백부장의 유대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본문의 구절을 보면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고, 이를 고치고자 하는 백부장의 간절함을 백부장이 보낸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아뢰었습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의 간청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하고 하면서, 그가 유대민족을 사랑했고, 유대인을 위해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회당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의 변화

 

그러므로 이 본문의 순서를 역으로 본다면,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과 관계없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자신이 지배자로 있지만, 피지배자인 유대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도와준 것은 동족인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개같이 취급하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10:25-37). 백부장은 자기의 이웃이 조국 로마만 아니라 유대도 이웃을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심지어 자신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종까지도 존중하고, 사랑할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이러한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을 사랑한다면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당인 회당을 짓는데 앞장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조국인 로마에 배반하는 행위인가요? 로마제국으로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백부장은 피식민지인 유대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식민지를 통치하는 로마에도 합당한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주된 가르침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백부장의 믿음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믿음의 사람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요. 오늘 본문에서 백부장에게 나타난 사랑은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백부장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후, 자신의 나라인 로마만 자기의 민족이 아니라, 유대민족 또한 자기 민족과 똑같은 민족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그 유대민족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회당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족에 대한 사랑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들에게 믿음의 사람의 사랑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이 오늘 말씀에서는 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63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는 기쁨보다. 한숨과 근심과 아픔을 갖게합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전임 대통령께서 임기를 5년 가운데 3년도 채우지 못하고 탄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성일에 다시금 언급해야하는 것은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국가 없는 교회도 없습니다.

 

특별히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이 아닌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을 베이스Base로 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민족사랑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사람 사랑은 곧 민족 사랑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9051115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원명은 한일협상조약이지만, 을사년(乙巳年)에 억압에 의한 일방적 조약으로 굴레 늑묶을 약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불립니다. 당시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桂太郎가 추밀원장樞密院長 이토伊藤博文를 고종 위문 특파대사特派大使로 파견하였고, 야밤에 이토는 조약체결에 찬성하는 대신들과 회의를 열고 자필로 작성한 뒤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약을 승인 아니, 강탈당했습니다. 박제순 · 이지용 · 이근택 · 이완용 · 권중현의 5명이 조약체결에 찬성한 대신들로서, 이를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이때부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 후 60, 1945년 해방된 지로는 20년이 지난 1965622일 단절되었던 한일 외교를 박정희 대통령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한일협정韓日協定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가장 가까운 나라와 교류하지 않는 것은 실질적으로 손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측은 식민지 수탈을 공식 시인하지도 않았고, 그것과 관련한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협정 체결을 앞둔 19646·3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올해는 을사늑약 120주년이고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역사 앞에서 치루어지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1910829일 우리나라는 일본에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치욕의 날인 경술국치庚戌國恥,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45815일 광복을 맞이하고, 40여 년간 한국 근대사Modern History of Korea에서, 많은 애국애족인사들이 목숨을 버리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역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삼일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삼분의 일이 넘는 16명이 기독교인 이었을 정도로 한국교회는 민족 사랑에 앞장섰습니다.

 

고종황제의 밀사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일합방의 부당함을 알리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강점을 폭로한 분이 다름 아닌, ‘헐버트’Homer B. Hulbert,1863-1949 선교사님인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유해는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을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한국 근대사에서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민족을 사랑했는지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1945년 광복이후, 80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국 현대사Contemporary History of Korea에서 한국교회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막을 수 있었던 거부권을 쥐고 있던 소련 대표가 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던 일 등, 하나님이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없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서방국가에서 막대한 원조가 한국에 지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막대한 원조에 불구하고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아, 과부, 장애인등 전쟁의 피해자들을 위해, 많은 구호단체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컴팬션’Compassion이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한 선교사님 부부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컴팬션은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저의 신대원 은사께서도, 또 선배 목사님도, 이 컴패션에서 장학금을 받은 분들이 계십니다. 지금은 여러분에게도 낯익은 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홍보대사로 있는 한국컴팬션이 조직되어, 이제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번에 경북 일대에 대형산불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교회가 속한 총회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가 복구작업과 재원지원과 식사제공 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복지시설 중 교회와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것이 그 단체에 따라 50-80%를 차지합니다. 성금 후원도 수재의연금의 68.8%, 북한 인도적 지원금의 51.1%, 해외 구호금의 64.9%를 기독교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타 종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이에 대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다양한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민족 사랑임을 알려주는 통계로 볼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한국교회는 5만여 교회가 있고, 8만 여 목회자와 선교사가 있고, 600여만 명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와 성도들은 각 각의 형편과 사정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가 국가를 위해서 이렇게 하였기에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해야 한다. 또는 어떤 성도는 이런 지역 봉사를 하는데, 우리 성도들도 이런 봉사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떤 형편과 사정이 되었던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크리스천이면,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진로에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성도라면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 말씀이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왕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도, 집에 귀가하면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6:10). 한 날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읽는 중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자기와 함께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유대 민족이 유수가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9:2). 이 말씀을 통해 유대민족이 포로로 잡혀온 년 수를 헤아려보니,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이 마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즉각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면 간구하기를 결심하고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9:3). 성경에 그가 올려드린 간절한 기도 내용이 다니엘 94-20절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 도입과 결말만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먼저 다니엘 기도의 시작부분입니다. 다니엘 94-7절입니다. “4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회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잃고, 성전이 불타고, 이국에 포로로 잡혀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라고 자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마지막입니다. 17-19절을 읽습니다. “17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회개의 기도로 시작한 다니엘은 마지막에 간절한 도고를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무너진 성소, 성전을 일으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어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라고,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짖는 주여 삼창을 처음으로 사용한 이가 다니엘입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서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즉 지금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은 유대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주의 것이니, 주를 위하여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참 바르고 지혜롭게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유대민족을 위한 기도에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9:20-23).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 하나님은 네 백성유대 민족, ‘네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정한 기한이 차고 나면, 네 백성 유대민족과 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회복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민족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오랜 후에 메시아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신 후, 장차 다시 오셔서, 유대민족을 완전히 회복할 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때가 차고 나면,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유대인들의 민족적인 구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죄가 완전히 사함 받게 됩니다(참고/11:27).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율법의 의를 좇던 그들에게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피가 의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환상과 예언이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다스리실 천년왕국에서, 왕이 되시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한 왕으로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데에는 다니엘이 민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간절한 기도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족을 위해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민족을 위한 기도의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첫째는 회개입니다. 다니엘의 회개에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유대민족이 나라를 잃고 성전이 불타고 이국에 포로로 잡혀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라고 자복했습니다(9:4-7). 개인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비극은 다른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닫히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신자에게도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강단에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백성들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것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세상적인 말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사람들을 통해서도 전하실 때가 있습니다.

 

통일왕국의 3대 왕에게 즉위한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이 건의를 했습니다. 전 왕인 솔로몬 통치하에서, 성전과 왕궁을 건설하고, 도시를 정비하면서, 많은 세금과 노역에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세금도 적게 거두고, 노역에도 차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자기 새끼 손가락이 아버지 허리보다 굵고, 아버지는 채찍으로 다스렸지만, 나는 전갈 채찍으로 징치하겠다며, 더 강압적으로 국가를 다스릴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르호보암 왕이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12:15). 즉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르호보암 왕 때에 나라가 두 나라로 나뉘었습니다.

 

이렇게 백성의 요구를 하나님이 듣지 못하게 하면, 들을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민심을 알지 못하면, 국가적인 비극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대통령부터 모든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기도의 둘째-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다니엘의 민족을 위한 기도를 통해 알아야 할, 민족을 위한 기도의 둘째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옵소서!”입니다. 다니엘은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무너진 성소, 성전을 일으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9:17-18). 이 말씀은 무엇을 알게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도 들어주세요.”라는 것은 기도자의 바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크거나 작거나 아니면 한 가지 혹은 열 가지 공의를 행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공의를 행한 것이 왜! 없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공의를 행했어도,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3:22). 의라고 할 때. 이것이 의입니다. 우리도 공의를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좋아하는 사람 내게 유익이 되는 일이 될 때 할 경우가 없습니다. 차별 없이 행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차별이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의입니다. 이러한 의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어떤 공의가 이러한 하나님의 의에 비견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 바싹 낮아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의 앞에 우리의 공의는 내세울 것도 보잘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이 기도도 마찬가지고, 민족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공의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되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면, 허술한 것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녀 우리의 교회 그리고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12·3 비상계엄이 후 국가의 안보 경제 외교와 교회의 복음, 진리, 선교 등의 문제들을 이기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족을 위한 기도의 셋째-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

다니엘의 민족을 위한 기도를 통해 알아야 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이고요. 둘째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옵소서!”이고요. 셋째는 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입니다. 다니엘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고 아뢰었습니다. 지금 다니엘은 유대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9).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주의 것이니, 주를 위하여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바르고 지혜로운 기도입니까?

 

우리가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을 우리가 좋은 것으로 마쳐져서는 안 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이름이 증거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이기도도 마찬가지고, 나라를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이 나라가 하나님께 영광되는 기도 제목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과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제목을 올려 드릴 때, 꼭 빼놓지 않은 것이 성민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제목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념적으로 생각하지 말고요. 포괄적으로 기도하다보면, 우리 교회로서, 이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 우리가 가정으로서, 이 민족을 위하여 해야 할 일, 우리 개개인으로서, 이 민족을 해야 할 일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민족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리

 

백부장의 사랑

 

백부장’百夫長,Centurion은 로마 보병 100명의 지휘관으로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에서도, 중심지이었던 가버나움을 총괄하는 책임자입니다(7:1-2). 백부장은 지배자로서 피지배자인 이스라엘에서 판사, 경찰 권력을 가졌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라는 말은 나는 권세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이라는 말로서, 로마의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그 황제로부터 임명받은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BC20-AD39의 명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7:8). 그런데 이 백부장은 다른 백부장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요. 그를 고치고자 하였고요. 그 뜻을 유대인의 장로들에게 전하고, 장로 몇 사람이 예수님께 직접 찾아와,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당시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의 장로들이 자신들의 일도 아니고, 백부장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께 찾아와 부탁을 했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에게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어야 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4). ! 그런가에 대하여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5).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로 이방인이었지만, 유대 민족을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군사, 사법, 경찰을 겸한 권력을 가졌지만, 횡포하지 않고, 오히려 식민지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을 감싸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말씀의 전당殿堂인 회당을 세우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사랑의 진정성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감화와 존경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병들려 죽게 된 자는 백부장이 아니라, 백부장의 종입니다. 그렇다면 백부장의 종은 백부장과 같이 로마인이 아니고,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종으로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종에 대하여,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종이지만, 그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보듬어 주었음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또한 백부장이 유대민족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은 유대민족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경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장로들로부터 요청을 받은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전갈을 받은 백부장은 급히 벗들을 보내어, 먼저 예수님을 주여라고 호칭하였습니다(7:6). 이것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는 말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로 부르며,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7:6). 백부장이 예수님을 얼마나 위엄있는 분으로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통해 예수님에게 부탁을 한 것은 자신의 신분이 높아서가 아니라, 자기 같은 낮은 자가 감히 예수님께로 나아올 염두도 못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직접 오시지도 않고,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라고 아뢰었습니다(7:7). 내가 부하에게 가라 명령하면 가고, 오라 명령하면 오고,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도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하면서(7:8),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집에 오실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말씀만 하면, 종의 병이 고침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듣고, 그를 놀랍게 여기셨습니다(7:9). 그리고 돌이키사 지금 노중에 있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7:9). 예수님도 인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유대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고요. 이스라엘 중에서도 그만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의 병도 고침을 받았습니다(7:10). 백부장의 믿음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가르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백부장의 유대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백부장의 변화

 

본문을 역순으로 보면,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 이방인이었지만, 자신의 신분과 관계없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자신이 지배자로 있지만, 피지배자인 유대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종까지도 존중하고, 사랑할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이러한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을 사랑한다면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당인 회당을 짓는데 앞장선 것입니다. 피식민지인 유대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식민지를 통치하는 로마에도 합당한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가르침인 백부장의 믿음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믿음의 사람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요. 백부장에게 나타난 사랑은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백부장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후, 자신의 나라인 로마만 자기의 민족이 아니라, 유대민족 또한 자기 민족과 똑같은 민족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그 유대민족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회당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족에 대한 사랑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들에게 믿음의 사람의 사랑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이 오늘 말씀에서는 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63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기쁨보다. 아픔을 갖게하는 것은 전임 대통령께서 임기 5년 가운데 3년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없는 국가는 없고, 국가 없는 교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를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을 베이스Base로 하여 우리가 견지해야 할 민족 사랑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사람 사랑은 곧 민족 사랑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乙巳勒約 부터 사실상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후 60년 후, 1945년 해방된 지로는 20년이 지난, 1965년 한일협정韓日協定을 맺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측은 식민지 수탈을 공식 시인하지도 않았고, 그것과 관련한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을사늑약 120주년이고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역사 앞에서 치루어지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치욕의 날인 경술국치庚戌國恥,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45815일 광복을 맞이하기 까지, 70여 년간 한국 근대사에서, 많은 애국애족인사들이 목숨을 버리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역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삼일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삼분의 일이 넘는 16명이 기독교인 이었을 정도로 한국교회는 민족 사랑에 앞장섰습니다.

 

고종황제의 밀사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일합방의 부당함을 알리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강점을 폭로한 분이 다름 아닌, ‘헐버트’Homer B. Hulbert,1863-1949 선교사님인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유해는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을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한국 근대사에서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민족을 사랑했는지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1945년 광복이후, 80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국 현대사Contemporary History of Korea에서 한국교회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서방국가에서 막대한 원조가 지원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아, 과부, 장애인등 전쟁의 피해자들을 위해, 많은 구호단체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컴팬션’Compassion이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한 선교사님 부부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컴팬션은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지금은 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홍보대사로 있는 한국컴팬션이 조직되어, 이제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번에 경북 일대에 대형산불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교회가 속한 총회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가 복구작업과 재원지원과 식사제공 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복지시설 중 교회와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것이 그 단체에 따라 50-80%를 차지합니다. 성금 후원도 수재의연금의 68.8%, 북한 인도적 지원금의 51.1%, 해외 구호금의 64.9%를 기독교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타 종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이에 대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다양한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사랑임을 알려주는 통계로 볼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한국교회는 5만여 교회가 있고, 8만 여 목회자와 선교사가 있고, 600여만 명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와 성도들은 각 각의 형편과 사정이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진로에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왕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도, 집에 귀가하면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6:10). 한 날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읽는 중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자기와 함께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유대 민족이 유수가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9:2). 이 말씀을 통해 유대민족이 포로로 잡혀온 년 수를 헤아려보니,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이 마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즉각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면 간구하기를 결심하고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9:3). 먼저 다니엘의 기도는 회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잃고, 성전이 불타고, 이국에 포로로 잡혀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라고 자복하고 있습니다(9:4-7). 그리고 기도의 마지막엔 간절한 도고를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무너진 성소, 성전을 일으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9:17-18).

 

이어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라고(9:19),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짖는 주여 삼창을 처음으로 사용한 이가 다니엘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9:19), 즉 지금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은 유대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9).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주의 것이니, 주를 위하여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참 바르고 지혜롭게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즉각 응답해 주셨습니다(9:20-23).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네 백성유대 민족, ‘네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9:24).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유대민족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오랜 후에 메시아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신 후, 장차 다시 오셔서, 유대민족을 완전히 회복할 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데에는 다니엘이 민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간절한 기도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족을 위해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민족을 위한 기도의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유대민족이 나라를 잃고 성전이 불타고 이국에 포로로 잡혀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라고 자복했습니다(9:3-7). 개인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비극은 다른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만 아니라 세상에도 임합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세상적인 말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사람들을 통해서도 전하실 때가 있습니다. 통일왕국의 3대 왕에게 즉위한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이 건의를 했습니다. 전 왕인 솔로몬 통치하에서, 성전과 왕궁을 건설하고, 도시를 정비하면서, 많은 세금과 노역에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세금도 적게 거두고, 노역에도 차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더 강압적으로 국가를 다스릴 것을 선포했는데,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12:15). 즉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르호보암 왕 때에 나라가 두 나라로 나뉘었습니다. 이렇게 백성의 요구를 하나님이 듣지 못하게 하면, 들을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민심을 알지 못하면, 국가적인 비극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대통령부터 모든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기도의 둘째-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다니엘은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9:17). 이 기도는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9:18).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2). 의라고 할 때. 이것이 의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차별이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의입니다. 이러한 의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어떤 공의가 이러한 하나님의 의에 비견될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앞에 우리의 공의는 내세울 것도 보잘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민족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공의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되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면, 허술한 것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그리고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기도의 셋째-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 다니엘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9:19). 이어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고 아뢰었습니다(9:19). 유대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9).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주의 것이니, 주를 위하여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바르고 지혜로운 기도입니까? 우리가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을 우리가 좋은 것으로 마쳐져서는 안 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이름이 증거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의 기도도 마찬가지고, 나라를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제목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념적으로 생각하지 말고요. 포괄적으로 기도하다보면, 우리 교회로서, 이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 우리가 가정으로서, 이 민족을 위하여 해야 할 일, 우리 개개인으로서, 이 민족을 해야 할 일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민족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최종정리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과 관계없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자신이 지배자로 있지만, 피지배자인 유대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심지어 자신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종까지도 존중하고, 사랑할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이러한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을 사랑한다면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당인 회당을 짓는데 앞장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조국인 로마에 배반하는 행위인가요? 로마로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백부장은 피식민지인 유대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식민지를 통치하는 로마에도 합당한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주된 가르침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백부장의 믿음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믿음의 사람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요. 오늘 본문에서 백부장에게 나타난 사랑은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백부장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후, 자신의 나라인 로마만 자기의 민족이 아니라, 유대민족 또한 자기 민족과 똑같은 민족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그 유대민족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회당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사람 사랑은 민족 사랑과 별개 일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근현대사에서 크리스천들이 민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역사를 통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이러한 한국교회의 민족에 대한 사랑은 오늘까지도, 타 종교 모두를 합한 것을 압도하는 복지사업, 대북지원, 성금 등을 전개하고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해 드렸습니다. 이러한 사업들은 개 교회와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어떤 형편과 사정에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데는 일치하고 함께 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방 나라에서 포로로 끌려가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조국을 사랑하여, 왕의 명을 거역하면까지, 하루에 세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조국을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를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첫째로 이 나라의 대통령부터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국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국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 행위가 개인적인 신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저와 여러분은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의 귀에는 인간의 신념이 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이 민족에도 그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민족에 대한 기도는 어떤 기도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해달라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세계 4대 제 강국으로 도약 국민 소득 4만 불 시대를 열겠는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셔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강국이 되고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세계 질서를 하나님께서 한반도 중심으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되는 것도 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합니다.

 

셋째로 이 민족을 위한 기도는 우리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응답을 위해 간구할 때, 우리를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 다른 곳이 아닌 교회를 세워가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위해 사용되기를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의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사랑하여, 유대민족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는 중보자가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

 

올해는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 80주년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일본의 선량한 시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극우 일본 정치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역사이던 아픈 역사이던 잊지 말고, 그 역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주여, 이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주여, 이 민족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옵소서!”, “주여, 이 민족을 위해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시민이요. 거룩한 청아비전교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① 백부장은 지배자로 유대인 피지배자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회당을 건립했으며, 하인의 병 고침을 간청했고, 내 집에 오지 마옵시고 말씀만 하여도 낫게 나이다며, 주님을 경외하였으며,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사람으로 칭함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한 일에 앞장 설 수 있게 하옵소서.

 

② 민족을 위한 기도 첫 번째,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르호보암은 백성의 요청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 나라가 쪼개졌습니다. 민심을 알지 못하면 국가의 비극이 찾아 옵니다. 대통령부터 모든 국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③ 민족을 위한 기도 두 번째,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공의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로 이 나라를 고쳐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긍휼로 허술한 것도 완전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④ 민족을 위한 기도 세 번째, 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 개인의 기도도 국가의 기도도 하나님을 위해 응답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민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한반도에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옵소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 지상 명령을 완수하게 하옵소서.

 

⑤ 올해는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 80,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여, 이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주여, 이 민족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옵소서!”, “주여, 이 민족을 위해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응답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