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왕하 20:12-19) 이재현목사(25.05.11)

이재현목사 2025. 5. 12. 09:51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이재현 목사

 

하나님말씀 : 열왕기하 20:12-19 2025.05.11. 主日禮拜

 

“12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6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왕하20:12-19)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 달 교회의 표어는 생명의 달입니다. 가정의 중심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또 하나의 가정인 교회, 가정과 교회에 생명의 환희가 가득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히스기야 하면 우리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떠올립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가 병들아 죽게 되었을 때, 다른 분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요. 그로 인해 병을 고침 받았을 뿐만 아니라, 15년이나 생명이 더 연장되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히스기야 하면, 히스기야의 기도가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위 구절들은 그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왕하20:1). 이렇게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걸렸을 때,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2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2-3). 히스기야는 이제 죽음을 받아드리고, 유언하라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곳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한 히스기야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며,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을 진실과 전심으로 섬긴 것과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며, 하나님 보시기에 한 가지라도 선한 것이 있다면, 자신을 고쳐 달라고 애절하게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간절히 올린 기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왕하20:4). 히스기야에게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 선지자가 왕궁을 벗어나,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어떤 응답이 왔을까요?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왕하20:5). 하나님은 히스기야 기도에 응답했습니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었고,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네가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 제사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구체적인 사항까지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왕하20:6).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죽을병에서 고친 것만 아니라, 그의 생명의 수한을 15년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또한 남유대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도 건져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으로 통치하는 예루살렘 성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고침 받은 것만이 아닙니다. 그 생명이 15년 연장되었습니다.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도 지킴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보호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의 경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고침 받았다는 이 기적같은 이야기는 주변 나라에도 소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Merodach-Baladan,“마르둑(바벨론의 주신)은 아들을 주셨다는 뜻. 개역한글에는 부로닥 발라단Berodach-Baladan, 이사야 39:1에서는 므로닥 발라단’(Merodach-Baladan, NIV)으로 언급된다.은 사신을 통해 편지와 예물을 보내어, 히스기야의 건강과 안녕을 전했습니다(왕하20:12-13.참고/39:1-8). 이에 히스기야는 고무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중병에서 고침 받을 것을 알고, 이웃 나라 그것도 당시 앗수르와 패권을 다투던 대국 바벨론이 왕이 친히 사신을 보냈었으니, 히스기야는 매우 들뜰 정도로 흡족했고, 그 흡족함의 표현으로 자신의 왕궁의 보물들을 바벨론 왕 사신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친히 자신이 안내를 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에 관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입니다. “12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왕하20:12-13).

 

히스기야 왕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왕궁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 그 뿐 아닙니다. 국가의 중요 시설이자 안보에 직결되는 군기고와 창고의 무기들과 최신 장비 등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보여 주었는지,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중병에서 고침 받은 그리고 나라의 보호함도 약속받은 자가, 왕궁의 보물은 물론 국가 안보의 중대한 무기들과 최신 장비 등을 대적국 사신들에게 보여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선 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이러한 히스기야의 행동은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직격탄을 받게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왕하20:14). 선지자 이사야가 왕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이에 히스기야는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고 답을 합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왕하20:15).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사신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는가에 대해 이어 질문을 합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다고 답합니다.

 

“16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왕하20:16-18). 바벨론 사신들을 환대하고 왕궁의 모든 것을 보여 준, 히스기야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왕국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 유대는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될 것이고, 오늘 바벨론에게 사신들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이 모두 보여 준, 그 모든 보물은 약탈당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져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후손 가운데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환관이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앞서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을 때, 간절히 기도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도 지킴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보호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신들에게 행한 그의 경솔함은 자신 후손의 때에서,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당하는 비극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남 유대는 나중에 바벨론으로부터 세 차례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II,재위BC604-562BC 606년 예루살렘으로 진군 왕족의 소년들인 다니엘 등을 포로로 잡아갑니다(왕하24:1-2). 느부갓네살 왕은 남 유대로부터 매년 조공을 받기로 하고 바벨론을 돌아갑니다. 그러나 BC 597년 재침공 때는 유다왕 여호야긴과 왕실의 가족들도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다(왕하24:10-16). 그리고 오늘 본문의 예언대로 왕궁의 모든 보물들을 찬탈해갑니다.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하24:13). 심지어는 장정과 기술자들까지 싹 쓸어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BC 5863차 침략으로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했고, BC 957년 모리아산 위에 세워진 제1성전 솔로몬성전Temple of Solomon은 파괴되었습니다(왕하25:9-12;대하3:1). 예루살렘의 금은보화를 2차 침공 때 약탈해 간 느브갓네살은 이 세 번째 침략 때 성전의 기물들까지 쓸어 가버립니다(왕하25:13-17).

 

히스기야의 교만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 사신을 대한 히스기야의 경솔한 행동은 왕실과 백성 그리고 성전과 왕궁 그리고 나라를 잃는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이 좀 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보물과 무기와 장비들을 보였다고, 국가가 패망하고, 이방 나라에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빼앗기게 하시다니 말입니다. 하나님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항의 아닌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본문에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대하32:24).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낯을 벽을 향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에게 병을 고치시고, 15년 생명을 연장시키시는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침 받은 히스기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대하32:25). 이 말씀에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교만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려 바벨론에게 패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어떤 교만을 가졌습니까?

 

히스기야는 오늘 본문에 자신의 병중에서 고침 받은 사실을 알고, 바벨론 왕이 건강과 안녕을 전하기 위해 보낸 사신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히스기야가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합당하겠습니까?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하나님을 전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 죽음을 받아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족들을 모아 이를 알리고 유언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낯을 벽을 향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시고, 고쳐 달라고 심히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왕궁을 떠나, 성읍에 가기도 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었고, 나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낫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죽을병에서 쾌유하여, 삼일 후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 제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당신들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병 만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명을 무려 15년이나 연장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 유대 왕국을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 보호해주신 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의 사신들 앞에서 히스기야는 간증하고 하나님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왕궁 보물고 보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군기고와 창고에 보관 중인 최신 무기와 장비들까지, 보여주지 아니한 것이 없이 다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 행동에는 어떤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자랑입니다. 바벨론 사신들에게 이렇게 보물과 무기가 가득하다고 자랑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무엇으로 보신 거예요. 교만으로 보신 것입니다.

 

이사야 38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고침 받은 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린 찬양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38:20). 히스기야는 자신을 고쳐주신 하나님을 일생 동안 찬양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자기 사는 평생에 하나님을 높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은혜받은 자로서, 마땅하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왕궁 보물고의 보물과 군기고와 창고의 무기와 장비들을 보여 주며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이로 볼 때, ! 히스기야가 후대에 나라가 멸망하고, 그가 보여준 모든 왕궁의 보물들과 무기와 장비 그리고 성전의 기물까지, 모두 남김없이 빼앗기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관찰해보면, 바벨론 사신들을 맞이한 히스기야가 이사야로부터 질문을 받았는데요. 두 가지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왕하20:14)’. 이렇게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두 가지를 질문 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고 답했습니다. 지금 이사야는 두 가지를 질문했는데, 히스기야는 한 가지를 답변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질문에 사신들은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다고만 했을 뿐, 사신들이 왕에게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라는 이사야의 질문에는 히스기야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바벨론의 사신들이 히스기야에게 무엇을 말했을까요? 성경은 그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고 만 했을 뿐, 바벨론의 사신들이 히스기야를 대면한 자리에서, 무엇을 말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왕하20:12). 그러나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의 말을 듣고 자기의 보물고와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바벨론 사신들이 아마 좋은 얘기를 히스기야에게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나라의 살림을 보여 주겠습니까? 또 바벨론는 남 유대와 화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을 수도 있습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국방의 전력을 보여 주겠습니까? 아마도 이러한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이때는 히스기야가 큰 은혜를 받았을 때입니다. 너무나도 기쁨이 넘쳤을 때입니다. 거기에 이방 나라 왕이 보낸 사절단까지, 자신의 쾌유와 왕위를 높여 주니 얼마나 들떴겠습니까? 이렇게 황홀지경에 있을 때, 바벨론 사신들의 달콤한 말에 무장을 해제해 버린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의 병 문안을 위해 사신을 보낸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와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벨론은 남 유대와 동맹을 맺어 앗수르를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에서 사신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러한 술수를 간파하지 못하고, 자신의 속을 다 보여준 것입니다. 상대가 선의로 다가 올 때, 계산 없는 선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사랑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남을 위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을 한다고 해도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 사랑하세요. 자식들 왜 사랑하세요. 자식이 잘되면 내가 좋거든요. 그러면 이것이 이타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이타적인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사랑 안에서, 예수님 십자가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이방 나라 왕이 아무런 목적 없이 오직 선의로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교만했습니다. 바벨론 사신들 앞에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왕궁 보물고의 금은보화와 군기고와 창고 무기와 장비를 보였습니다. 자기를 보였습니다. 자기 자랑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렇게 교만한 자는 적국이 찾아온 목적이, 술수인지 선의인지 구분을 못하게 됩니다. 교만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절대로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만은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상인데 정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상이 아닌데 정상으로 봅니다. 일을 그르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를 통하여 교만에 대하여 교훈하셨습니다.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청한 자가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고 하신 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14:11).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했는데요(벧전5:5). 야고보 장로도 똑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4:6). 교만을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은혜 후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 받은 후

그러므로 간절한 기도를 드려 응답을 받은 은혜 중요하고 그와 못지 않게 은혜 받은 후도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다른 교훈 은혜 받은 후입니다. 히스기야는 너무나도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죽을병에서 고침 받은 것도 너무나 큰 은혜인데요.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습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은 남 유대가 이방의 앗수르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은혜를 받은 후 그는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왕궁의 보물고와 군기고와 창고를 보이며, 자신을 높였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은혜 받은 이후, 우리의 믿음과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본문을 통해서 바로 배워야 합니다.

 

한나의 서원

이 말씀을 이렇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은혜 받은 이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가 한나입니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삼상1:1-2). 엘가나의 두 부인에 대해 한나와 브닌나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아마도 한나가 첫 번째 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있고 한나는 아이를 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날이면, 브닌나와 그의 소생들에 준 제물의 분깃 갑절을 한나에게 주었습니다(삼상1:3-4). 이것을 브닌나가 모를 일이 없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브닌나를 한나의 적수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삼상1:6). 그것도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매년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시키므로 울고 먹지 아니했다고 말씀합니다(삼상1:7). “네가 정실이면 정실이지, 애도 못 낳은 주제에 제물 분깃이나 두 배씩 받고 양심 좀 있어라”. 아마도 이렇게 격분을 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한나를 남편인 엘가나는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며 위로를 하였습니다(삼상1:8). 참 남편 엘가나의 아내 한나에 대한 사랑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나는 그 위로만 듣고 마냥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맞설 힘도 물러설 곳도 없다고 생각한 한나가 선택한 곳은 성전에서 기도였습니다. 자신을 격분시킨 브닌나로 인해 마음의 괴로움을 가득 않고, 성전을 찾은 한나는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한나는 기도를 드리면서,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만으로 안되겠다고 다짐한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을 드립니다. 서원 기도를 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의 문을 여시고 아들을 주시면,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실인’Nazirite으로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나실인이라 구별된 자란 뜻을 갖고 있는데요. 일평생 세상과 단절하고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된 자를 말합니다.

 

아들을 서원하며 기도한 한나에게 대제사장은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며 축복했습니다(삼상1:17). 이에 한나는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고 답한 후,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하였습니다(삼상1:18). 밤을 꼬박 세워가며, 기도한 한나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삼상1:19).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서원기도를 올린 한나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뜻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을 하게 되고, 아들의 이름을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의 사무엘이라 하였습니다(삼상1:20).

 

참 귀한 응답 큰 은혜를 한나가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 또 다른 갈림을 넘어야 했습니다. 바로 서원한데로 아들 사무엘을 성전에 보내야 했습니다. 한번쯤 고민했을 법도 한데, 한나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남편 엘가나에게도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삼상1:22). 젖을 뗀 후에는 아직 어린 사무엘을 안고,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성전에 올라갔습니다(삼상1:24). 그리고 대제상 앞에서,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고 고백한 후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삼상1:27-28).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대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요.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삼상2:21). 하나님께 서원하여 기도한 후, 응답받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 받은 후 어떠해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서원

야곱은 어머니 라헬의 말에 따라 형 에서의 장자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에 원한을 품은 에서는 심중에 아버지 이삭이 죽기만하면, 동생 야곱을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27:46). 이를 눈치 챈 라헬은 야곱을 외삼촌이 사는 밧단아람으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28:5). 야곱이 홀로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는 노중 석양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할 수 없이 광야에서 유숙하기로 하고, 돌을 베게 삼아 누었습니다(28:11). 그날 밤 꿈속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3-15). 부모를 떠나 타지로 행하면서, 광야에서 유숙해야 했던 야곱은 외롭고 두려웠지만,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신다는 것을 확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로 명명했습니다(28:17-18). 그리고 세 가지를 서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올 때, 이 자리로 와서 지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게 인도하시면, 하나님만이 하나님인 것과, 십일조와 벧엘에서 제사를 드릴 것 세 가지를 서원 한 것입니다.

 

21년 후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큰 부와 많은 식속들을 그리고 우양의 떼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야곱이 위의 세 가지 약속 중,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벧엘을 찾아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였는데요. 벧엘에 가지 않고, 세겜에 이르게 됩니다(33:18). 그곳은 가나안 땅으로 우상을 섬기는 곳입니다. 야곱이 가야 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은 큰 비극을 겪게 됩니다.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큰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34:1-2).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디나와 한 어머니 레아의 소생인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사람들에게 우리와 사둔을 맺으려면, 우리의 표식인 할례 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 받아들인 세겜은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삼일 째 되는 날, 아직 상처가 아물지 못한 틈을 타서,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읍의 모든 남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34:25).

 

큰 비극 앞에 경악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35:1). 야곱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21년 전 내가 제사 드리기로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습니다.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35:2-3).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야곱은 세겜 땅에서 받은 이방 신상들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가족들을 데리고 세겜을 떠나 벧엘로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돌보시고 야곱을 해하려는 자들의 추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35:4-5). 그리고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의 엘벧엘로 불렀습니다(33:7). 본문의 히스기야 만이 큰 은혜를 받은 후, 바로 하지 못해서 화를 당한 것만 아닙니다.

 

삼손의 서원

이스라엘 단 지파의 마노아Manoah의 아내는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아들을 가질 것이며, 그 아들은 날 때부터 나실인Nazirite이 되고 여호와께서 그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13:3.참고/6:1-21;삼상1:28;1:15;18:18). 그 아들이 바로 삼손Samson,‘태양의 사람’,‘작은 태양입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택함을 받았음을 알았기에 그 역시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고자 서원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언 가운데 출생한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다. 삼손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그가 날 때부터 거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임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13:24-25).

 

그런데 나실인으로서 성별해야 함에도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딤나에 사는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14:1-9). 하지만 결혼식 피로연에서 일어난 수수께끼 사건이 발단이 되어 삼손은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이에 격분한 삼손은 여우 300마리를 잡아 두 마리씩 묶어 꼬리에 횃불을 달아 블레셋 사람의 곡식밭에 풀어 놓았습니다(14:20,15:4-5).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에 대한 복수로 이전에 삼손과 결혼한 딤나 여인과 그녀의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습니다.

 

이 복수 행위는 또 다른 큰 복수를 불러 일으켜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에담이라 불리는 바위 틈에 숨었었습니다. 이를 빌미로 블레셋 사람들은 유다를 침공하여 삼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하여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삼손은 결박한 끈을 끊고 나귀의 턱뼈로 1천 명을 죽였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통해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의 면모를 보여 줍니다(15:14-19).

 

이후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본거지인 가사로 가서 한 기생의 집에 유하였는데, 삼손을 잡으려는 블레셋 사람들이 성문을 닫고 함정을 놓았습니다(16:1). 그러나 그 밤에 삼손은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들고 헤브론 앞 산 꼭대기에 갖다 놓았습니(16:2-3). 삼손의 계속된 방탕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셔서 초자연적인 힘을 그에게 계속 공급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른 블레셋 여자인 들릴라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고, 이 여자를 통해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16:4).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머리털을 잃은 삼손은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기 힘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자신으로부터 떠난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16:5-20).

 

힘을 잃은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사슬에 묶인 채, 두 눈이 뽑히고 가사에 있는 감옥에서 맷돌을 돌려야 했습니다(16:21). 그후 이방신인 다곤 신의 축제일에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구경거리로 불려나가게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힘을 다시 받아서, 원수 블레셋 3천 여 명을 단번에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만, 나실인으로 택함 받아 예언대로 큰 능력을 받았지만, 그 역시 은혜받은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16:27-30).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후 똑같이 서원한 한나와 야곱 그리고 삼손을 통해 우리들은 은혜 받음과 함께 은혜 받은 후도 중요함을 본문의 히스기야와 비교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도 고침을 받고 난 후 일생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짐을 했습니다. 맹세를 했습니다.

 

 

정리

 

히스기야의 기도

 

히스기야 하면 우리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떠올립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걸렸을 때,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왕하20:1). 그러나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왕하20:2).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을 진실과 전심으로 섬긴 것과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며, 하나님 보시기에 한 가지라도 선한 것이 있다면, 자신을 고쳐 달라고 애절하게 통곡하며,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왕하20:3). 히스기야에게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가 왕궁을 벗어나,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왕하20:4).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고,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 제사드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하20:5). 뿐만 아니라 생명의 수한을 15년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또한 남유대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도 예루살렘 성을 건져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왕하20:6). 이렇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의 경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고침 받았다는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주변 나라에도 소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Merodach-Baladan은 사신을 통해 편지와 예물을 보내어, 히스기야의 건강과 안녕을 전했습니다(왕하20:12-13.참고/39:1-8). 이에 히스기야는 고무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중병에서 고침 받을 것을 알고, 이웃 나라 그것도 당시 앗수르와 패권을 다투던 대국 바벨론이 왕이 친히 사신을 보냈었으니, 히스기야는 매우 들뜰 정도로 흡족했고, 왕궁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 그 뿐 아닙니다. 국가의 중요 시설이자 안보에 직결되는 군기고와 창고의 무기들과 최신 장비 등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보여 주었습니다(왕하20:12-13).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앞으로 왕국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며 종국에는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될 것이고, 오늘 바벨론에게 사신들에게 보여준, 그 모든 보물은 약탈당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져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하20:14-18). 앞서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을 때, 간절히 기도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도 지킴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보호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신들에게 행한 그의 경솔함은 자신 후손의 때에서, 바벨론의 1, 2, 3차 침략을 받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당하고 솔로몬성전은 파괴되고, 왕과 왕족과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참고/왕하24:10-17).

히스기야의 교만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히스기야가 교만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대하32:5).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려 바벨론에게 패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어떤 교만을 가졌습니까? 히스기야는 오늘 본문에 자신의 병중에서 고침 받은 사실을 알고, 바벨론 왕이 건강과 안녕을 전하기 위해 보낸 사신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히스기야가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합당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죽을 병에서 고쳐주셔서,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고, 남 유대 왕국을 이방 앗수르의 침략에서 보호해주시고, 예루살렘 성을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의 사신들 앞에서 히스기야는 간증하고 하나님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왕궁 보물고 보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군기고와 창고에 보관 중인 최신 무기와 장비들까지, 보여주지 아니한 것이 없이 다 보여주었습니다. 자랑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무엇으로 보신 거예요. 교만으로 보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고침 받은 후, 자신을 고쳐주신 하나님을 일생 동안 찬양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38:20). 자기 사는 평생에 하나님을 높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히스기야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은혜받은 자로서, 마땅하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왕궁 보물고의 보물과 군기고와 창고의 무기와 장비들을 보여 주며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이로 볼 때, ! 히스기야가 후대에 나라가 멸망하고, 그가 보여준 모든 왕궁의 보물들과 무기와 장비 그리고 성전의 기물까지, 모두 남김없이 빼앗기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바벨론 사신들을 맞이한 히스기야가 이사야로부터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라고 두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요.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고 답했을 뿐, 사신들이 왕에게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바벨론 왕이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고 만 했을 뿐입니다(왕하20:12). 그러나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의 말을 듣고 자기의 보물고와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을 통해 유추할 때, 아마도 좋은 얘기를 히스기야에게 했을 것입니다. 바벨론는 남 유대와 화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을 것입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다는 말이죠. 아마도 이러한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이때는 히스기야가 큰 은혜를 받았을 때입니다. 이렇게 황홀지경에 있을 때, 바벨론 왕의 전갈을 들고 온 사신들의 달콤한 말에 무장을 해제해 버린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의 병 문안을 위해 사신을 보낸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와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 유대와 동맹을 맺어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술수를 간파하지 못하고, 자신의 속을 다 보여준 것입니다. 상대가 선의로 다가 올 때, 계산 없는 선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하신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사랑 안에서, 예수님 십자가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이방 나라 왕이 아무런 목적 없이 오직 선의로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들 앞에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모든 것을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그 교만은 적국이 찾아온 목적이, 술수인지 선의인지 구분을 못하게 됩니다. 교만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절대로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상인데 정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상이 아닌데 정상으로 봅니다. 일을 그르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청한 자가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고 하신 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14:11).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4:6). 교만을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은혜 후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 받은 후

한나의 서원.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다른 교훈은 은혜 받은 이후, 우리의 믿음과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 가입니다. 성경에는 은혜 받은 이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하나가 한나입니다. 그의 남편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아내 브닌나가 있었습니다(삼상1:1-2).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있고 한나는 아이를 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제사를 올릴 때도 제물의 갑절을 한나에게 주었습니다(삼상1:3-4). 화가난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분시키므로 울고 먹지 아니했습니다(삼상1:6-7). 그런 하나를 엘가나는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당신은) 내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며 위로를 하였습니다(삼상1:8).

 

그러나 한나는 결단을 하고 성전에 올라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서원을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의 문을 여시고 아들을 주시면,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삼상1:11). 일평생 세상과 단절하고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나실인’Nazirite으로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으로부터 이제 평안히 가라 네가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축복을 받고. 밤을 꼬박 세워가며, 기도한 한나는 근심 빛 없는 얼굴로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삼상1:17-18).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아들을 허락하셨니다(삼상1:19).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을 하게 되고, 아들의 이름을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의 사무엘이라 하였습니다(삼상1:20).

 

그러나 사무엘을 성전에 보내야 했습니다. 한번쯤 고민했을 법도 한데, 한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사무엘을 안고, 준비한 제물을 갖고, 성전에 올라갔습니다(삼상1:22-24). 그리고 대제상 앞에서,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고 고백한 후,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삼상1:27-28). 그 후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이자, 대제사장, 선지자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를 돌보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삼상2:21). 하나님께 서원하여 기도한 후, 응답받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받은 후 어떠해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서원. 야곱은 어머니 라헬의 말에 따라 형 에서의 장자권을 차지하엿지만, 원한을 품은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죽기만하면, 동생을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27:46). 이를 눈치챈 라헬은 야곱을 외삼촌이 사는 밧단아람으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28:5). 한 번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야곱은 광야의 길을 홀로 걷다가 야영을 하게 되었고, 돌을 베게 삼아 누었습니다(28:11). 그날 밤 꿈속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의 조부와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동서남북으로 네 자손이 퍼져 나갈 것이며, 복을 받을 것이다, 에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이끌어 돌아오게 할지라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28:13-15). 야곱은 그 자리를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로 명명하고, 고향을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게 인도하시면, 하나님만이 하나님인 것과, 십일조와 벧엘에서 제사를 드릴 것 세 가지를 서원했습니다(28:17-18).

 

이제 21년 후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많은 가족과 대부호가 되어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벧엘에가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서원을 잊고, 세겜에 이르게 됩니다(33:18). 그곳은 가나안 땅으로 우상을 섬기는 곳이었고,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큰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34:1-2). 이에 분노한 디나의 친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에게 우리와 사둔을 맺으려면, 할례를 받을 것을 제안하고, 삼일 째 되는 날, 할례받은 그들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 틈을 타서, 모든 남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34:25).

 

하나님은 경악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35:1). 야곱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야곱은 세겜 땅에서 받은 이방 신상들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가족들을 데리고 세겜을 떠나 벧엘로 떠났습니다(35:2-3). 하나님은 야곱을 돌보시고 야곱을 해하려는 자들의 추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35:4-5). 그리고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의 엘벧엘로 불렀습니다(33:7). 본문의 히스기야 만이 큰 은혜를 받은 후, 바로 하지 못해서 화를 당한 것만 아닙니다.

 

삼손의 서원. 이스라엘 단 지파의 마노아의 아내는 잉태하지 못하였는데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아들을 가질 것이며, 나실인Nazirite이 되고, 블레셋의 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13:3.참고/6:1-21;삼상1:28;1:15;18:18). 그 아들이 바로 삼손입니다. 삼손은 어릴 때부터 성별됨을 알았기에 그 역시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고자 서원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의 큰 은혜를 받았고, 여호와의 영이 임재하여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13:24-25). 그런데 나실인으로 하지 말아야 할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고, 피로연에서 일어난 수수께끼 사건으로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이에 격분한 삼손은 여우 300마리를 잡아 두 마리씩 묶어 꼬리에 횃불을 달아 블레셋 사람의 곡식밭에 풀어 놓았습니다(14:1-9,20,15:4-5). 그러자 블레셋은 삼손과 결혼한 여인과 그녀의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습니다.

 

이후에도 삼손은 블레셋 가사의 한 기생의 집에 유하고 물의를 일으켰습니다(16:1-3). 그럼에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셔서 초자연적인 힘을 그에게 계속 공급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블레셋 여자인 들릴라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고, 이 여자를 통해 힘을 잃게 되고,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16:4-20). 블레셋에 붙잡힌 삼손은 쇠사슬에 묶인채 두 눈이 뽑히고 감옥에서 맷돌을 돌려야 했습니다(16:21). 이방 다곤 신의 축제일에 불려나간 삼손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힘을 다시 받아서, 원수 블레셋 3천 여 명을 단번에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만, 나실인으로 택함 받아 예언대로 큰 능력을 받았지만, 그 역시 은혜받은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16:27-30).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후 똑같이 서원한 한나와 야곱 그리고 삼손을 통해 우리는 은혜 받음과 함께 은혜 받은 후도 중요함을 본문의 히스기야와 비교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도 고침을 받고 난 후 일생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짐을 했습니다. 맹세를 했습니다.

 

 

최종 정리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공동체 가족 여러분! 히스기야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생명이 15년이 더 연장되었습니다. 이방 앗수르의 침략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바벨론 왕의 보낸 사신들이 찾아 왔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고치시고 우리나라를 보호하시겠다는 언약을 증거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바벨론 사신들은 이 남 유대는 하나님이 지키신 나라임으로 우리가 함부로 대적할 수 없겠구나.”, 남 유대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바벨론 왕에게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보물고와 군기고와 창고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야 할 자리에 자신을 보인 것입니다. 결국 그는 후대에 나라가 멸망당하고, 자신이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었던 모든 것을 바벨론에 의해 침탈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야 할 자리에 하나님을 보이지 않고, 자신을 내 보인 히스기야를 하나님은 교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이타적 사랑을 받은 우리도 아직까지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세상 사람들에게 이타적 사랑을 기대한 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아무런 목적 없이 선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숨기고 찾아온 바벨론의 술수를 모른 히스기야는 자신의 속을 대적에게 다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배운 것은 하나님께 간절히 소망하는 것에 응답 받는 것은 참 큰 은혜입니다. 큰 은혜를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은혜 받은 후도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히스기야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 받은 자에 대해서 세 사람을 통해 이를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와 야곱은 둘 다 외롭고 힘든 중에 하나님께 간절히 서원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나는 그토록 원했던 아들이지만, 서원한데로 성전에 아들을 봉헌했습니다. 그러한 한나에게 하나님은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성공하여 다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을 만난 벧엘에 찾아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겠다는 서원을 잊고, 21년 후 돌아올 때, 우상의 땅 가나안 세겜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랑하는 딸 디나가 추장에게 봉변을 당했고, 이에 디나의 두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성읍의 모든 남자를 살육으로 복수하는 끔찍한 비극을 당해야 했습니다. 21년 전의 서원을 야곱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았습니다. 벧엘로 돌아갈 것을 명하시고, 그를 모든 추격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야곱은 비로서 깨닫고, 벧엘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나실인으로 성별되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나실인을 일생을 살아야 하는 서원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경험을 했음에도 또 다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고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처절한 회개로 다시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의 대적을 물리쳤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이 보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대적의 사신들에 모든 것을 보임으로 보인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이 보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누구 앞에서도 하나님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찬양해야 합니다. 나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큰 은혜를 받고도 잊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으세요. 하나님을 보이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이시고, 죽을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앗수르의 침략에서도 예루살렘 성을 건져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하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에 응답과 그 이상것 또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② 히스기야는 자신의 안녕과 건강을 전한 바벨론 왕 사신들에게 들뜬 나머지, 왕궁의 보물고와 군기고 등 보이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후대에 보여준 모든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바벨론에 빼앗기게 됩니다. 히스기야 같이 교만하여 판단이 흐려지지 않게 하옵소서, 대적에게 자랑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증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③ 은혜를 받음도 중요하고, 은혜 받은 후도 중요합니다. 무자한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일생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나실인으로 서원하였고, 은혜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때가 되자, 이제 젖을 막 뗀 어린 사무엘을 지체 없이 성전에 제물과 함께 드렸고, 훗날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혜받도 난 후에도 중심이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④ 야곱은 세 가지 서원 중 한 가지를 잊었습니다. 그로 인해 딸이 큰 비극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항상 깊은 관계로 하나님을 뜻을 이루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⑤ 우리가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이 보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간절히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보인 것입니다. 누구 앞에서도 하나님을 보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높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은혜를 받고 잊지 않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