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1) 가정주일 이재현목사(25.05.18)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말씀 : 전도서 3:1-11 2025.05.18. 家庭主日禮拜
본문에는 총 14가지가 대조되어 있습니다(전3:2-8). 이 말씀의 관점은 대비되는 두 가지 때에서, “나에게 언제 좋은 때가 올까”가 아니라, 지금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때는 “끝이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전3:1). 인간은 자신이 어떤 때를 겪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결론은 인생의 노고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하십니다(전3:9-10). 하나님만이 그 나쁜 때를 좋은 때로 바꿀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는 말씀과 같이, “일생 동안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전3:9-10) 가슴에 멍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내가 어느 때가 되었던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게 됩니다.
‘형통한 날에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이 올 수 도 있습니다. 그때는 원망이 아니라, ‘되돌아 보아라’고 말씀합니다(전7:14).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전7:14). 또한 ‘장래 일’인 ‘형통’과 ‘곤고’는 사람이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고 하십니다(전7:14,3:11). 그렇기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의 주권과 섭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때라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쁜 때라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좋은 때이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나쁜 때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 철저히 내려놓습니다. 지금 나의 때를 보고, 인생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인생의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말씀합니다(전3:11). 좋은 때 이건 나쁜 때 이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전3:11). 한 목사님은 사모님을 먼저 떠나 보내신 후,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작정했습니다. 물론 사모님 돌아가시기 전 작정한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 하심이 없는 한, 사모님이 돌아가실 줄 몰랐겠어요. 그런데도 감사헌금 1억을 작정했습니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출을 받고, 은퇴까지 사례비와 퇴직금에서, 갚아 나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어떤 때가 되었건,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와 관계 없이 하나님을 만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이 저 천국 영원을 사모하는 자의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정주일에 가족 모두가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다음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1)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선지자였습니다. 사사로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이 삼중 직 대제사장, 선지자, 왕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그는 자신의 소임을 다한 후, 백성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누구의 소와 나귀를 빼앗은 적도, 누구를 속이거나 압제하지도,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런 행위가 있었다면, 다 갚겠노라고 하자, 백성들도 우리를 속이지도 압제하지도 빼앗은 적도 없다고 화답했습니다(삼상12:2-4). 그의 두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보고 배웠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하였습니다(삼상8:1-3). 하나님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정치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왕정 정치를 하게 된 데에는 다름 아닌 사무엘의 두 아들들 때문이었습니다(삼상8:5-7). 사무엘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사, 지금의 때가, 자기들 팔자 필 기회로 생각 한 것입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고, 착복을 한 것입니다. 왜! 우리의 집안의 부모와 자녀 모두가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이되어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2. 다음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2) “요한과 야고보”>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도 중요한 자리에 함께 했던 대표적인 세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중 요한과 야고보는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로 형제입니다(마17:1-8,26:36-46,27:56;막1:19,3:17,5:37,15:40;행12:2).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불 같은 성격으로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예수님의 정치적 메시야 되심을 믿고 세속적인 지위를 구하기도 했으며, 예수님이 잡히실 때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도망쳤습니다(마20:20-28;막3:17,14:50;요21:1-2;고전15:5). 이렇게 별다른 일을 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다가,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열두 사도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요21:1-2;고전15:5;행1:13,12:2.AD44). 요한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으로부터 마리아 봉양을 명 받았습니다(요19:26-27). 그 후로부터 삼십 년 그의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사실상 평생을 마리아 뒷바라지한 셈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인 일이 아닙니다. 그 기간 동안 ‘저런 일만 하고도 예수 제자야?’ 등등 온갖 헛소문이 들었려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주님이 주신 삶의 자리를 말씀을 믿고 지켰습니다(요13:34). 하나님은 정하신 때, 요한의 삶의 자리를 옮겨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뒤에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대적에게 목숨을 잃지 않고, 94세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AD100). 중요한 것은 단명과 장수가 아니라, 형제 중 한 명인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로 다른 한 명 요한은 마지막 하나님을 말씀까지 기록하는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집안의 형제와 일가가 이렇게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이되기를 소망합니다.
3. 다음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3) “호세아와 고멜”>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는 ‘고멜’은 ‘음란한 여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호1:3). 호세아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다음 돌아온 아내는 누구로 인지, 알 수 없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오기를 반복합니다(호1:2-9). 고멜은 나중에 포주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되지만, 수소문하여 찾아간 호세아는 아내에게 연가를 부르며, 사랑을 전하고,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다시 아내로 맞이합니다(호3:1-3).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훗날 고멜이 믿음의 여인으로 변화되었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배우자가 그 믿음에 부합하지 못하면, 얼마나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반면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한 믿음과 함 섬김과 한 비전으로 사도 바울의 동역자요. 초대교회의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이었다는 것을 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행18:2-3,18:18-19,24-26;롬16:3;고전16:19). 왜! 우리의 집안의 부부가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이되어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4.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교회는 또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혈육만이 가족이 아니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막3:35.참고/엡4:16).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동질성에는 한마음으로 한 믿음로 신앙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 각의 독립된 인격체로 하나님을 섬김과 함께, 교회 공동체 가족으로서, 함께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행2:46;히10:25). 협력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했습니다(요4:23). ‘예배하는 자들’이란 교회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지금의 때가 전부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 가족이라는 협력의 섬김을 갖추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진행하는 일이면, 할 수 있는 한을 넘어, 힘을 모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 ‘기적과 표적이 많이 나’타나는 역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가족들도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비전도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싶을 때, 그러한 것 하나 하나 한 가정의 이름으로 하는 것 좋은 일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난 된 가족들이 하는 일이면, 금상첨화인 것입니다. 그 외 섬기고 싶은 마음에 있을 때,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난 된 가족들이 하는 일이면,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일을 위해 드리는 것에 가족들이 하나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 가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에 하나 되는 가족 진정으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족 되기를 축복합니다.
5.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즉 지금 나의 때가 좋은 때이던 나쁜 때이던,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하나님을 만난 성도이고, 그 성도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자라는 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내가 어느 때를 당하던, 쉽게 들뜨지도 낙담하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지금 내가 설사 나쁜 때에 있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닌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그 나쁜 때를 좋은 때로 바꿀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성도는 지금의 내가 어떤 때가 되어도 희비하지 않습니다. 좋은 때라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쁜 때라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좋은 때이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나쁜 때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 철저히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맞은 가정의 주일에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영원을 사모하는 가족들로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의 예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지 못할 때,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았습니다. 또한 형제와 일가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서로 영원을 사모는 마음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도 하나님 안에서 가족인바, 목사와 성도 그리고 성도와 성도 모두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란 뜻에는, 교회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각 각의 인격체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한 가족으로서 협력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주님의 일에 할 수 있는 한을 넘어 힘을 모아야합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 가족들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큰 영광 받으십니다. 이러한 은총이 깃드는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 된, 우리의 가정 그리고 또 하나의 가족인, 우리 교회 공동체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같이 기도합니다.
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때가 되었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때로 믿고, 영원을 사모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②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에게는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도 우리의 자녀도 어떤 유산을 받건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영원을 사모하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③ 야고보는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로 그의 형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계시록을 기록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형제와 일가가 되게 하옵소서.
④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한 믿음과 한 섬김과 한 비전으로 사도 바울의 동역자요 초대교회 평신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부부가 되게 하옵소서.
⑤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인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각각 독립된 인격체로 하나님을 서김과 함께 영원을 사모하는 동질성을 가진 공동체로 함께 협력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도 영원을 사모하는 가족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일에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