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우리 하나님 삼위 하나님"(창1:26-28;계1:4-8) 이재현목사(25.06.15)

이재현목사 2025. 6. 16. 10:35

우리 하나님 삼위 하나님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창1:26-28;계1:4-8 2025.06.15. 主日禮拜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6-28);“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4-8)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6월은 애국의 달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는 하나입니다. 가정 사랑은 교회 사랑이요 국가 사랑이며, 교회 사랑은 가정 사랑이요 국가 사랑이며, 국가 사랑은 가정 사랑이요 교회 사랑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모두 하나님 은혜 안에 강건하고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두주 전 취임한 21대 대통령 이재명 정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三位一體論,󰃙Trinitarianism,󰂞Trinitarismus,Τριάδος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역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Rest하셨습니다. 그 육일 동안 창조하실 때, 각 날마다. 일성一聲하나님이 이르시되로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고”(1:3). 이렇게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일 째 되는 날은 이전의 날과 추가되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날 하나님께서는 땅의 생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는데요. 땅의 생물을 만드실 때는 이전과 똑같이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사람을 만드실 때는 추가된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이 말씀에 보면 사람을 만드실 때도, 다른 창조 사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시작하고 있지만, 이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을 창조할 때와는 달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우리의 형상이라는 말씀을 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정통교회에서 이단으로 판명되어 기성 성도들의 교류를 금하고 있는 한 단체는 이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이라고 말씀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음으로, 하나님도 남자 하나님이 있고, 여자 하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1:27). 즉 하나님이 두 하나님, 남자 하나님 여자 하나님이시기에 만드신 사람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주장하는 단체는 교주를 남자 하나님으로 아버지 하나님으로 부르고, 그가 죽자 교주의 부인을 여자 하나님으로 어머니 하나님으로 섬깁니다. 참을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에 많은 성도가 빠져 버렸습니다. 한 번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면, 걷잡을 수 없음을 헤어 나올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난 닷새 동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창조를 하시고, ! 육 일째 되는 날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만들자고 하셨을까요? 이 표현은 하나님이 누군가와 상의를 하는 것으로까지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신데 누구와 상의한다는 것이 성립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우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그것은 삼위 하나님을 나타내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이를 삼위일체Trinity,三位一體라고 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각 각의 위이지만, 이 세 위는 하나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진리를 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창세기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과 시간을 만드신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데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신 후,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누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하시니, ‘그대로 되니라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도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1:14-15).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33:6).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11:3).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말씀)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고 하셨습니다(148:2-5).

 

그리고 이 천지창조에는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함께 하신 것에 대하여,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1:1-3). 성도 여러분도 함께 읽겠습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였습니다(1:26).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컫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도, 성경을 통해 글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즉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에게 인간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1:14).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정리를 하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하셨는데, 그는 말씀이고,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에서(1:1-3),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함께 계셨다고 하십니다. 그는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과 동등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6). 하나님이 세상의 만물을 만드실 때,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창조사역에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하십니다(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천지창조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104:30).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그 자리 위’位로서는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 관계이지만, ‘ 몸 체’體로는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쉬운 설명을 더한다면 사람의 아들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에서, ‘우리는 어떤 몰지각의 극치, 왜곡의 지존. 술수의 달인들이 말하는, 남자 하나님, 여자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창조부터 종말까지

 

오늘 두 번째 본문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1:4-8).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4). 아멘! 거기까지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자 오실 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십니다(1:8). ‘알파’ ‘Α는 헬라어의 첫 글자입니다. ‘오메가’ ‘Ω는 헬라어의 마지막 글자입니다. 즉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고 하셨습니다(90:2). 또한 장차 오실 이라고 한 것은 인간 역사의 창조와 종말이 그 분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일곱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수입니다(1:4). 그러므로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곧 성령을 의미합니다.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씀합니다(4:5). ‘일곱 뿔’, ‘일곱 눈으로도 상징하고 있습니다(3:9;5:6).

 

이어 본문에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5-6). 예수님은 하나님께 충성된 증인이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입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분입니다. ‘나라는 천국의 백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으로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20:28).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또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구약에는 거룩한 직분을 가진 제사장만이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27:51).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10:19).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2:9).

 

이렇게 오늘 두 번째 분문에서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전능한 자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부활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며, 만왕의 왕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그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일곱 영으로서, ‘하나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그런데요 첫 번째 본문 창세기와 두 번째 본문 계시록에 똑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시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 창세기에서 삼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이고요. 두 번째 본문 계시록에서 삼위 하나님은 천지를 심판할 때입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심판자로서, 오시는 예수님의 엄위와 권능과 영광을 말씀합니다(1:7.참고/7:13;26:64).

 

이렇게 오늘 두 번째 본문 계시록에는 예수님이 재림주로 오시는 마지막 날까지도,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 창세기에서 삼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삼위 하나님은 천지의 종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삼위 하나님의 창조하신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삼위 하나님이 심판 하시는 종말 이전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날마다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2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16). ‘또 다른 보혜사라는 지금 예수님이 보혜사이시고, 예수님과 똑 같은 보혜사, ‘Comforter’,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고, ‘Helper', 우리의 돕는 자가 되시고, ‘Counselor', 우리의 상담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이 보혜사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보혜사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하십니다(14: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14:26). 즉 보혜사이요. 진리의 영은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고 하셨습니다(16:7).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그 예수님을 믿게 하는 분이 누구에요. 바로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와 여러분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삼위 하나님의 창조 때로 보아서는 그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의 심판 의 날인 종말로 보아서는 그 이전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날마다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신 성부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심판주로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시대에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안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것을 교회시대라고 합니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기에 은혜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고, 주님이 이름을 부르도록 이끄시는 분이 누구세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를 교회시대요, 은혜시대요, 성령시대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4:30).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인을 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5:18).

 

성령 안에서 말씀을 들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2:7).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고 하십니다(요일5:6).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라고 하셨습니다(10:15).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말씀을 듣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인 계시록의 저자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말씀합니다(1:10).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께서는 감동하심으로 말씀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해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가셨다고 했습니다(4:1).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2:26). 그리고 마침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2:27). 사도 바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갔다고 하였습니다(16:6). 예수님과 시므온과 사도 바울의 공통점은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이요.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 성령의 감동, 성령의 말씀은 동일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5-7).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영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의 인도가 매일 매 순간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두 번째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1:20).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한 영혼을 위해 중보 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그 영혼이 가장 갈망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 영혼이 물리쳐야 할 것을 알게 합니다. 그 영혼이 채워져야 할 것을 알게 합니다. ! 그렇습니까?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8:26-27). 다른 성도를 중보 할 때도, 성령님께 그 영혼이 간절히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시고, 그를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성도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그 성도가 자신을 위해서, 내가 기도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하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세 번째로 성령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고 하였습니다(1:8). 사도 바울이 에바브라를 칭찬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는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바울에 대한 사랑을 전해주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5;5).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하신,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부음 받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하지 않게 되면, 인간의 이해에 불과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같으나,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거나, 끝내 버립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하게 되면, 그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섬겨주고, 얼마나 더 낮아지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그동안 베푼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것인가, 회의가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나를 위해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종의 형체인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네 번째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라고 말씀합니다(고전12:4). 이렇게 성령의 은사를 주심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말씀합니다(고전12:7). 그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고전12:8-11).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합니다. !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합니까? 그래야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 은사가 없어요. 받았는데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먹상무라는 말 아시지요. 잘 먹는 것도 은사에요. 제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잘 먹습니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목사님들 모임에 가면, 제 상에는 다른 분들 두 배 정도 음식을 챙겨주었어요. 제가 잘 먹는 것을 알고요. 식사를 준비하신 분들은 대식가인 저를 좋아하셨어요. 자신들이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즐겁다고 하십니다. 예전부터 저의 식성을 아시던 한 목사님이 최근에 그런 말을 하시더군요. “이재현 목사님은 예전 신의 경지에서 이제 사람의 자리로 돌아왔다고요.” 요즘 제가 먹는 양이 줄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이렇게 잘 먹는 것도 은사라고 할 수 있어요. 음식을 준비한 분에게 고맙습니다. 그 한 마디가 대접하는 분들 마음을 흡족하게 하니까요? 그것 또한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은사를 행하세요. 그리고 행할 때는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5:16).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합니다. 어떤 경우는 성령의 은사를 행한다고 하면서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10: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신유의 은사와 각 종 은사를 능력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행하여 치유의 역사가 있더라도,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니, 우리가 행하는 것도 거저 행하는 것입니다.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여 헛된 영광육체의 욕심을 구하지 말아야,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는 일이 교회에 없는 것입니다(5:25-26).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여,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성령의 열매를 가득 맺어야 합니다(5:22-23).

 

성령 안에서 거룩하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다섯 번째로 성령 안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15:16). ‘택하심을 받은 자들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벧전1:2). 저와 여러분이 거룩함을 입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일 목욕 재배를 하는 것입니까? 이재현목사 처럼 새로 산 옷은 꼭 주일에 먼저 입어야 거룩한 것입니까?

 

성경에서 거룩은 육체적 도덕적 의미 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이 말씀에서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즉 최후의 날, 종말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흠 없게 보존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거룩은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흠 없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21:2). 우리가 입성할 천국을 가리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설명 속에 담긴 신부인 성도는 누구를 위하여 단장해야 합니까? 신랑 예수입니다. 그 단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신랑의 약속을 믿고,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주 극동방송 수요 정오의 기도 시작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입니다(4:1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만을 우리의 구원자로 정하시고, 중보자로 세우셨으며, 치유자로 보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기도하는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 자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중보자 예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받고, 그 이름으로 선포하여 고침과 풀림과 깨끗함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축복하고 선포하는 줄 믿습니다. 요사이 예수 말고 구원자가 있다는 소리를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데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님입니다. 이 진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자를 찾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이 믿음이 흠없이 보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입니다. 여기에도 변함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정리

 

삼위일체 하나님三位一體論,󰃙Trinitarianism,󰂞Trinitarismus,Τριάδος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이르시되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섯째 날에 만드신 피조물들과 다르게 예섯째날에 추가 된 것이 있는 데 사람을 만드실 때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습니다(1:26). 여기에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Trinity,三位一體를 말합니다. 세 위는 각각이지만 한 체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진리를 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함께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과 시간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1:1,3).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33:6).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말씀)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148:2-5).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11:3).

 

이 천지창조에는 성자 예수님이 함께 하신 것에 대하여,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1:1-3). 태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였습니다(1:26).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에게 인간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1:14).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에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1:1).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함께 계셨다고 하십니다. 그는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그 자리 위’位로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지만, ‘ 몸 체’體로는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쉬운 설명을 더한다면 사람의 아들은 사람인 것입니다(참고/2:6;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천지창조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104:30).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에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창조부터 종말까지

 

오늘 두 번째 본문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1:4-8).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자 오실 이’(1: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1:8). ‘알파’ ‘Α오메가’ ‘Ω는 헬라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즉 하나님은 시작과 끝으로서, 이제도 전에도 장차도 계신,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창조와 종말이 그 분께 있는 것입니다(참고/90:2). 그리고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1:4.참고/3:9;4:5,5:6).

 

성자 예수님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충성된 증인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이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만왕의 왕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사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분입니다(1:5-6). ‘나라는 천국의 백성을 말한다. 예수님의 피로 값으로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20:28).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또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구약에는 거룩한 직분을 가진 제사장만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참고/27:51;10:19;벧전2:9).

 

이렇게 첫 번째와 같이 두 번째 분문에서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시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삼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이고요. 계시록에서 삼위 하나님은 천지를 심판할 때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심판자로서, 오시는 예수님의 엄위와 영광을 말씀합니다(1:7.참고/7:13;26:64). 이렇게 오늘 두 번째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재림주로 오시는 마지막 날까지도,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 창세기에서 삼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삼위 하나님은 천지의 종말까지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삼위 하나님의 창조하신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삼위 하나님이 심판 하시는 종말 이전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날마다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4:16). 2천년 당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보혜사이시고, 예수님과 똑 같은 보혜사, ‘Comforter’,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고, ‘Helper', 우리의 돕는 자가 되시고, ‘Counselor', 우리의 상담자가 되시는 분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진리의 영은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14:27,26).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14:2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그 예수님을 믿게 하는 분이 누구에요.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16:7).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와 여러분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삼위 하나님의 창조 때로 보아서는 그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 심판의 날인 종말로 보아서는 그 이전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대에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신 성부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심판주로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시대에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을 교회시대라고 합니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기에 은혜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도록 이끄시는 분이 누구세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를 교회시대요, 은혜시대요, 성령시대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4:30,5:18).

 

성령 안에서 말씀을 들으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2:7.참고/10:15;요일5:6).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첫 번째 성령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그 순간)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하였습니다(1:10). 성령의 감동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가셨습니다(4:1).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 마침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2:27). 사도 바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갔습니다(16:6). 예수님과 시므온과 사도 바울의 공통점은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십자가 대속을 완수하셨다면,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 성령의 감동, 성령의 말씀은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영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8:5-7). 이 성령의 인도가 예배 자리는 물론 매일 매 순간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성령으로 기도하라(1:20).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두 번째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그 영혼이 가장 갈망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 영혼이 물리쳐야 할 것을 알게 합니다. 그 영혼이 채워져야 할 것을 알게 합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8:26-27). 중보 할 때도, 성령님께 그 영혼이 간구하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그를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성도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그 성도가 자신을 위해서, 내가 기도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하라.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1:1-8).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세 번째로 성령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의 사랑을 에바브라를 통해 성령께서 바울에게 전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하신,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부음 받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5:5).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하지 않게 되면, 인간의 이해에 불과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같으나,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거나, 끝내 버립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하게 되면, 그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성령 안에서의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12:4).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네 번째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 하심입니(고전12:7.참고/고전12:8-11).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 은사가 없어요. 받았는데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예를 든다면 섬김뿐만 아니라, 섬김을 잘 받는 것도 은사일 수 있습니다. 대접하는 분들 마음을 흡족하게 하니까요? 그것 또한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10:8).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니, 우리가 행하는 것도 거저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여 헛된 영광육체의 욕심을 구하지 말아야,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는 일이 교회에 없는 것입니다(5:25-26.참고/5:16).

 

성령 안에서 거룩하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다섯 번째로 성령 안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벧전1:2). 거룩함을 입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거룩은 육체적 도덕적 의미 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즉 최후의 날, 종말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흠 없게 보존되는 것이 거룩이라고 하셨습니다(살전5:23).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거룩은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흠 없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성할 천국,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비유하였습니다(21:2). 이 설명 속에 담긴 신부인 성도는 신랑 예수를 위하여 단장해야 합니다. 단장은 신부가 신랑의 약속을 믿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주 극동방송 수요 정오의 기도 시작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입니다(4:1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만을 우리의 구원자로 정하시고, 중보자로 세우셨으며, 치유자로 보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기도하는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 자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중보자 예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받고, 그 이름으로 선포하여 고침과 풀림과 깨끗함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축복하고 선포하는 줄 믿습니다. 요사이 예수 말고 구원자가 있다는 소리를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데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님입니다. 이 진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자를 찾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입니다. 여기에도 변함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최종 정리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 말씀의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종말에 때까지 함께 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기 백성을 지키십니다. 지금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삼위 하나님의 창조하신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삼위 하나님의 심판 하시는 날 종말 이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날마다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2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게 되고, 종말에 다시 오실 신랑 예수를 맞이하는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끌리심,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이요.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을 담고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영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성령의 인도가 매일 매 순간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두 번째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를 위해 중보 할 때, 성령님께 그 영혼이 간절함을 알게 해주시고, 그를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성도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그 성도가 자신을 위해서, 내가 기도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보의 대상자가 용기를 얻고 일어서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세 번째로 성령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하신,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부음 받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하지 않으면, 형식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거나, 끝내 버립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하게 되면, 그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성령 안에서의 사랑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네 번째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닙니다. 모두에게 한 가지 그 이상 몇 가지를 갖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행하지 않을 뿐입니다. 은사를 행할 때도 성령 안에서입니다. 어떤 경우는 성령의 은사를 행한다고 하면서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큰 능력을 행했어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니, 우리가 행하는 것도 거저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여,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성령의 열매를 가득 맺어야 합니다(5:22-2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다섯 번째로 성령 안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성령이 거룩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거룩은 육체적 도덕적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흠 없게 보존되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은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흠 없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비유합니다. 신부인 성도는 누구를 위하여 단장해야 합니까? 신랑 예수입니다. 그 단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신랑의 약속을 믿고,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님입니다. 이 진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자를 찾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이 믿음이 흠없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입니다. 여기에도 변함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하나님은 삼위의 하나님입니다. 이 삼위 하나님은 창조부터 종말까지 함께 하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성령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에게 보내 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 삼위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이 땅에서 이루게 되고, 종말에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을 통해 이루실, 우리 하나님, 삼위 하나님의 역사에 참예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우리의 하나님, 삼위의 하나님 창조와 종말까지 영광 올려드리는 흠 없는 믿음을 가진 청아비전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부터 종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올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도록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 성령시대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마지막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함 첫 번째, 매일 매 순간 성령의 인도로 성령의 감동 따라, 성령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② 성령충만함 두 번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기도하여 그 영혼이 갈망하는 것과 물리쳐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중보하고 있음을 교통하게 하여 주옵소서.

 

③ 성령충만함 세 번째, 성령 안에서 사랑하게 하옵소서. 인간의 이해가 아닌 성령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④ 성령충만함 네 번째,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은사를 행하여, 헛된 영광, 육체의 욕심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교회에 유익이 되게 하옵소서.

 

⑤ 성령충만함 다섯 번째,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는 우리가 신랑 예수를 맞이할 신부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유일한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마지막 날 그 분이 오실 때까지, 흠없는 믿음을 가진 거룩한 신부로 단장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