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나님말씀 : 요한계시록 1:1-8 2026.09.20.主日禮拜 계시록강해 01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1-8)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두 주 동안 네 가지 영적 원리인 사영리를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다시 듣고 도 듣고 들어야 하는 이유는 영생을 얻는 길 천국에 들어가는 길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받은 계시
비밀의 베일을 벗기다
성경은 구원과 심판에 관한 책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택자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끝까지 이루어 가십니다. 반면 마지막까지 거역한 불신자들에겐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두 주제 구원과 심판의 결말은 예수님 재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재림을 종말이라고 하는데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재림 때, 이루실 십자가 구원의 완성과 심판의 최종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계시는 헬라어 ‘아포칼룹시스’Αποκἀλυϕις,Aporcalupsis로 ‘베일이 벗겨진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비밀이 아니고 공개되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록을 알게 하셨고, 우리들은 계시록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를 알고 믿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이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심을 믿습니다. 창세기가 시작이라면, 계시록은 마지막입니다. 인류의 종말을 알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마지막 시간을 모르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의 처음을 창세기를 통해, 그 마지막을 계시록을 통해 알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창조부터 종말까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태초에도 종국에도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백성이 멸망 받지 않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계시는 닫힌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열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일이 벗겨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창조부터 종말까지 모든 비밀이 계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계시라고 할 때 계시록 만 계시가 아닙니다. 창세기부터 모든 성경이 계시입니다. 예언입니다. 그 모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계시록도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은, 계시의 주체가 ‘예수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계시를 받을 대상을 ‘그 종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이 말씀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 주의 종인 정통교회 목회자들이 전하지 않아서, 성도들이 계시록을 듣고자 이곳저곳을 찾다가, 신천지와 같은 이단에 빠진다면 그 책임이 목회자들에게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주의 ‘종들’은 ‘때’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시대에 어떤 경성을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2-44.참고/살전5;1-4)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너희 주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하고 계십니까? ‘깨어 있으라’ 항상 경성할 것을 말씀합니다. 항상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예수님이 가까이 오심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 빠져,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엄중한 선포입니다(참고/행6:4;딤전4:5). 이에 대해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24:43). 이 말은 깨어 있으면 도둑이 와도, 그 침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지 못하면, 도둑이 노략질을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도둑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비유입니다. 즉 경성하지 못 한자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성한 자에게는 기쁨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마24:44).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주의 종이 되라고, “45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 즉 마지막 시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증거하고,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맞이할 거룩한 신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을 대비시키고, 무장시킨 종들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이며, ‘주인이 올 때’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고 하시며(마24:45-46), 그렇게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고 하였습니다(마24:47).
그러나 이렇게 성도들을 경성하고 대비시킨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과 달리, ‘악한 종’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48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여 49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4:48-51).
누가 ‘악한 종’입니까?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우리 시대에 주님이 오시겠어!”라며, 주님을 맞이할 준비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을 예수님은 ‘악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악한 종’들은 ‘동료들을 때린다’고 하였습니다. 재림을 증거하는 주의 종들을 무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가,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최종은 불신자들이 받은 형벌과 똑같습니다.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하신 것이 2천년 전인데 그 때도 지금도 예수님은 안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일자를 명시하고 오신 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어느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건 항상 경성하여,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대비를 한 성도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성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살던 모든 성도는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더더욱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안 믿는 자들도 마지막이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은 계시의 주체가 ‘예수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 그 계시를 받을 대상을 ‘그 종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이 말씀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또한 ‘종들’ 안에는 평신도도 포함됩니다. 성도들도 반드시 들어야합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전해 준 말씀
사도 요한은 이 계시를 밧모Πάτμῳ,Patmos섬에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 당시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Titus Flavius Caesar Domitianus Augustus,재위AD81-96의 박해로 유배당한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10). 이 계시의 진원지가 하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는 말씀이 그를 뒷받침합니다.
우리는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기록하여 정경 66권이 된 계시록 외에 그 어떤 말에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성경 외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살후2:2). 계시록 외에 다른 곳에서 마지막에 관해 종말에 관해, 주의 재림에 관해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요한이 받은 이후 계시록은 인봉된 책이 아닙니다.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22:10). 지금 계시록은 읽혀야하고 들어야하고 지켜야합니다.
재림의 날짜를 알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계시록을 연구 좀 했다고, 자기가 재림 날짜를 안다느니, 심지어는 자기가 재림 예수라니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백 프로 가짜요 이단입니다. 계시록은 그 날이 가까이 옴을 시대적 징조를 통해 보고 깨어 대비하라는 것입니다(눅12:54-56). 밝혀주신 계시에 어두운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사29:9-14). 개봉된 계시록을 다시 인봉하여, 성도들이 눈과 귀가 멀어서도 안 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반열에 서서, 예수님 재림에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위해 준비하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19:7-8).
하나님 시간과 인간의 시간
‘때가 가까움이라’에서 ‘때’Καιρός,Kairos는 하나님 시간입니다(3).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갈4:4). ‘때가 차매’ 즉 하나님의 정한 시간에 예수님을 2천 여 년 전 이 세상에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심판자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 ‘때가 가깝다’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참조/갈4:4;11:18,12:14). 하나님이 정하신 날 재림은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시간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 인간의 역사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이 전혀 다른 두 영역의 시간을 초림과 재림을 계시를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시기를 모르는데도 매우 가깝다고하신 것은 어느 시대이건 재림 이전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천 여 년 교회 모든 성도들이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근거를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마25:1-13).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달리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세속화 된 신앙을 말합니다(마25:8). 재림 신앙의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마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도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마25:13). 바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분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세상일에 전념하고 분주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마24:48). 항상 경성하여 기도하며, 성결한 생활과 열매 맺는 신앙을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복
읽는 자의 복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3). 먼저 목회자들이 읽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정독하여 교수하지 않으면, 평신도들이 학습하여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사들은 계시록을 쉽게 풀이해서,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평신도는 받는 수동적이고 목회자는 주는 하달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 ‘하나님의 종들’이 무장하지 않고는 성도들이 무장할 수 없습니다(참고/고전12:28). 목회자들이 먼저 주를 맞이할 준비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신도들도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될 수 있습니다.
“18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22:18-19). 계시록을 주해하고 강설하는 자들에게 주의 깊고 세심해야 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덮어두는 것은 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읽는 자에게는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듣는 자들의 복
첫 번째는 ‘읽는 자’의 복이요(3). 두 번째는 ‘듣는 자’의 복입니다(3).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 아닙니다. 방금 말씀 드린 데로 그의 ‘종들’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상징하는 ‘작은 두루마리를 가지라’고 했을 때, ‘달라 한즉 갖다 먹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10:8-9). 주셨지만 강청의 자세가 있을 때, 소유하게 됩니다. ‘갖다 먹어 버리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0:10). 종말의 비밀이 너무나도 귀한 것을 알게 되었으나,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소명에 복종할 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합니다(10:11).
예언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들려지기까지 과정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환상幻想이나 천성天聲으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말씀 알게 해달라는 간청함과 갖다 먹어버리는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입에 꿀 주옥같은 계시이지만, 배에 쓴 현실의 거부를 이기고, 증거 할 때, 우리 들이 듣게 되고, 계시록을 닫고 있는 성도들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씀합니다(롬10:14). 재림의 메시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 자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입니다(마24:45).
지키는 자의 복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3). 읽고 듣는 자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고 하셨습니다(눅6:49). 한 번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20여 년 동안 WCC 총회, 로잔대회, WEA 총회 등이 연속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리의 핵심은 ‘종교다원주의’입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배교를 용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한 개신교 인사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 할 수 있을까요? 이들로 인해 한국교회는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유일한 구원자 예수, 이 진리 사수는 계시록에서도 정점頂点입니다. ‘읽고 듣고 지키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성도가 인류 역사에 단 한 번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가장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목적․경종
계시록의 주제:재림(종말)
분문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계시록 주제입니다. 계시록의 주제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초두에 ‘때가 가깝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3). 계시록 내용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깝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다시 오심입니다. 목사들은 계시록을 쉽게 풀이해서,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는 요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7). 이 말씀은 계시록 마지막 장에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무리로 핵심이 재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22:20). 계시록의 주제는 ‘재림’입니다. 여기서 ‘이것들을 증언’이란 주의 재림을 말하고, 이 언약을 ‘속히 오리라’고 기록한 것이 계시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증언은 그 날, 종말 재림 전후에 있을 사건입니다. 재림의 중요한 사실이라는 전제를 갖고, 계시록을 독법하고 공부하고 외쳐야 합니다.
계시록의 목적:신부단장
계시록의 주제가 재림 종말이면,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을 보고 미로迷路 앞에 선 것 같이 여겨지는 것은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의 목적은 재림하시는 신랑 예수님을 맞이할 ‘신부단장’입니다(19:6-8). ‘흰 옷 입은 자들’, ‘어린 양의 혼인 기약’, ‘그의 아내’, ‘깨끗한 세마포 옷’,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 ‘성령과 신부’ 등 계시록에는 신부에 관한 말씀이 상당수입니다(7:13,12:1,19:7-9,21:9,22:17). 모든 성도들이 재림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고 그들에게 신부의 옷을 입혀 주시겠다는 신랑의 ‘러브레터’Love Letter가 계시록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 목적입니다.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신부의 보석은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이라고 하였습니다(사61:10).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 그렇다면 ‘공의’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시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눅12:8). 적그리스도 앞에서도 말입니다(12:17,13:15,20:4). 이것이 진리를 끝까지 사수한 교회요. 신랑을 맞을 최고의 축복인 신부로 단장된 성도입니다. 누구나 예수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지만, 재림하시는 예수 신랑을 맞을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부는 대적의 총칼 앞에서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입니다.
계시록의 경종:짐승(배교)
계시록의 주제가 재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적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신부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계시록의 경종을 알아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는 종말의 최대 징조입니다(13:1.참조/살후2:3). 이 자는 ‘용’(사탄)의 권세를 받아 장차 종말시대 7년환난 중 후 3년 반인 ‘마흔 두 달 동안’ 인류를 폭정으로 지배하며,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살육을 자행합니다(13:4-7.참고/단7:25). 그러나 7년환난의 시점에는 적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지구를 위기 가운데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단9:27). 전 3년 반 동안에는 세계의 영웅으로 유대인에게는 메시아로 추앙받게 됩니다. 이 때 그 자의 정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진리를 사수하는 촛대교회와 배교에 빠지는 음녀교회로 나뉘게 됩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깨어있는 촛대교회는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고, 그 자의 정체를 만방에 알리고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교에 물든 음녀교회는 적그리스도를 평화의 왕으로 추앙하며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며, 결국에는 적그리스도가 주는 ‘짐승표’666를 받게 됩니다(13:14-18). 짐승표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 전역에는 김일성 동상 3천 여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거기에 경배를 해야 배급표를 받습니다. 종말시대 전 세계 인류가 적그리스도 동상을 만들고, 거기에 조아려야 식량을 매매할 수 있는 짐승표 666을 받을 있습니다. 점승 적그리스도 우상을 경배하거나 짐승표를 받으면 그 결과는 ‘불과 유황으로 고난’ 받아야 하는 영멸입니다(14:10). 이를 밝히 증거할 자가 마태복음에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으로 계시록에는 ‘십사만사천’ ‘두 증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7:4,11:3;마24:45). 이에 반해 짐승을 따르도록 미혹할 자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13:11,19:20). 지금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외에 구원자가 있다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충돌하게 될 두 세력 가운데 교회는 종말의 사명자를 따라 진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절대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면 안 됩니다. 지금 배교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배교는 영적인 눈을 어둡게 합니다. 신랑이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경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경종입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재림입니다. 목적은 재림 주 예수님을 맞이할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경종은 절대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배교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한국 교회를 통해 본 종말의 징조
종말의 징조는 히말라야산맥의 거대 빙하 붕괴로 인해 사상자를 헤아릴 수 없는 네팔 대홍수와 같은 기후 재앙, 아프리카 콩고 등지에서 수 천 여 명이 죽음을 당한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테러, 폭동 소요와 같은 재난과 사고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있습니다. 영적인 종말의 징조입니다.
WCC(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로잔대회(세계복음화국제대회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WEA(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에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는 한국교회 대부흥을 견인하시고 성도들의 존경은 물론 세상의 찬사까지 받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기준의 첫 번째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으로 성경 66권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교리는 물론 역사와 사실과 과학에 오류가 없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WCC 로잔 WEA안에는 성경의 무류성無謬性,infallibility으로 구원의 교리는 틀림이 없으나, 역사, 사실, 과학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대홍수에서 방주에 승선한 노아와 가족은 구원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적, 사실적,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믿는데,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광풍이 잔잔해졌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무류설은 성경 불오성不誤性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무오성과 배치背馳됩니다. 그러므로 WCC 로잔 WEA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기준의 두 번째는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성과 사람의 인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고, 죄가 있거나, 인간화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셔야만 했기에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취하신 신인양성神人兩性,Christology입니다. 그러나 WCC 로잔 WEA 안에는 신인합일神人合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중 성경을 읽고, 깨닫고, 따른 모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라, 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말씀을 준행했다는 상징이지,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유일한 구원자의 자격과 배치背馳됩니다. 그러므로 WCC 로잔 WEA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세 번째 기준은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입니다.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믿음 생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그 의미가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교회에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WCC 로잔 WEA 안에는 믿음 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을 통해 구원을 이룬다는 ‘신인협동설’Synergism입니다. 그렇다면 믿음 생활의 종국이 천국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천국까지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단동설’Monergism에 반대됩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노력을 개입하려는 것은 오직 믿음인 이신칭의와 배치背馳됩니다. 그러므로 WCC 로잔 WEA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WCC 로잔 WEA에 활동하는 분들 가운데 자신들은 종교다원주의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다윈주의자들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WCC 로잔 WEA는 많은 기독론 이단들과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종교다원주의인 배교의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배교의 종국은 신랑 예수를 버리고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정리
이러한 배교의 시대를 이기고 진리를 끝까지 사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생애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를 맞이하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신부는 절대 배교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고 말씀합니다(7).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심판주로서의 엄위와 영광을 말씀합니다(참고/단7:13;마24:2726:64;살후1:7). 볼지어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 안 믿는 자, 재림을 사모하던 자, 무관심하던 자, 예수님 다시 오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참고/계6:15-17). 지구 밖의 다른 행성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거기에서 끌어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옵12:4). 그들은 모두 재림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재림 주를 맞이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한 사람은 재림 주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역사적으로 이루어 질 사실이며, 이를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려한 다섯 처녀’ 같이 등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졸며 자는 세속화 된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재림 신앙의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마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 같이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밤중소리’에 깨어야 합니다(마25:6). 항상 경성하여 기도하고, 성결한 생활과 열매 맺는 신앙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경성과 대비를 위해 주신 계시록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 가까이 해야 합니까? 읽고 듣고 지켜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3).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였습니다(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셨습니다(8).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2천 여 년 전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계획을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계22:13).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분으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하셨습니다(5). 그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완성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최종을 이루시겠다는 재림이 계시록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경배해야 합니다(6).
계시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신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대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배교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경종입니다. 지난주 사영리를 공부하면서 마지막에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과 같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교회공동체 가족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는 말씀의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생애에 주님이 오신다면, 그를 맞이하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신부는 절대 배교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배교의 시대를 이기고 진리를 끝까지 사수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믿는 자 안 믿는 자, 재림을 사모하던 자, 무관심하던 자, 모두가, ‘볼지어다’ 재림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왕의 왕 승리자요 죽은 자와 산자의 심판자로 오십니다. 재림 예수님 앞에 왼편의 염소가 되지 말고, 오른 편의 양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계시록 주제는 재림(종말)입니다. 목적인 재림 예수 신랑을 맞이할 신부로 단장되는 것입니다. 경종은 거짓 신랑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배교에 빠자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계시록은 주 오심의 경성과 대비를 위해 주신 예언입니다. 이 예언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계시록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사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증거하게 하옵소서.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28snjRRjgg&t=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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