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十一條,Tithe
십일조는 소득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아브라함이 제사장 멜기세덱Melchizedek에게 바친 십일조가 그 기원입니다(창14:20;히7:9). 그런데 교회의 장로로 임직을 받은 분들 가운데도 십일조로 인해 시험에 들고 근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헌금이 아닙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말3:8).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말3:9.참고/창14:20,28:22;레27:30-33;민18:21-24;신12:5-18,14:23:27-29,26:12-15). 수입의 십분의 일외에 드리는 것이 헌금이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그중의 십 분의 일을 드리면 모든 것을 드린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였습니다(참고/대상19:14;말3:10-12;고후9:6-7). 십일조 외에 물질을 드리는 것이 헌금이고, 십일조는 이렇게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참고/마23:23).
어떤 분들은 십일조는 구약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2:42-45;4:32-37) 예수 믿고 영생 얻은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신약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재산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성도님들이 드려지는 십일조로 교회를 운영하고 교육과 선교를 하고 소외된는 분들이 없도록 나눔으로 성경적인 초대교회의 거룩한 헌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배척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간혹 메스컴에 나와서 십일조 불필요를 언급하는 저명한 신학자와 목회자와 평신도와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름 있는 이들일지 모르나 성경에 없는 말을 하는 몰지각한 자들입니다. 십일조를 배척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내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다른 분들이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가 유지되겠지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렇게 다들 생각하고 교회에 다니고 있을 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분들이 다수일 수 있습니다.
십일조로 부담을 주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은혜받으면 즐거이 자원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초신자가 아니라. 10, 20년 이상을 교회 다닌 분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20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지 못해 십일조를 드리지 못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신앙의 영역에 은혜와 감동과 기쁨만이 있습니까? 자신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에 부은 마리아의 애통이 있었습니다(요12:3). 허리가 휠 정도도 가난한 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과부의 헌신이 있습니다(눅12:44). 주님의 사역을 위해 자기들의 소유로 섬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 등의 희생이 있었습니다(눅8:1-3). 이렇게 신앙의 영역에는 은혜와 감동과 기쁨만이 아니라. 애통과 헌신과 희생이 있는 것입니다. 두 영역이 함께 할 때 균형이 있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영역에서 은혜와 감동과 기쁨만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라는 우상, 미신, 무속의 신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 애통과 헌신과 희생을 드릴 때, 우리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고, 비로소 하나님의 신앙 안에서 진정한 은혜와 감동과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십일조에 관해서 부정적 시각과 도외시하려는 견해와 믿음과 별개의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은 못 드리는 것이 아니고, 안 하고 싶어 하는 명분 백 가지로 무장하고 있지 않나 우려스럽습니다. 책임과 권리가 있습니다. 의견은 많은데 예물은 없다는 것은 권리만 내세우고 책임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처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내가 말씀을 받는 제단에 물질을 드릴 때, 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마6:21.참고/말3:1). 그렇지 않으면 마당만 밟는 자, 교회 다니는 사람 수준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참고/사1:12).
우리는 백 가지 말보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성별하여 드리기를 소망하고 교훈하며 축복합니다. 물질은 항상 부족합니다. 수입이 있으면 바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지출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 않은 일들로 금전에 손해를 보고, 자주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상하고,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갖가지 문제가 생기고, 이러한 일들이 있을 때 중보를 하는데요. 십일조를 결단하지 못해서 그렇게 물질들이 세어나가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물질이 부족한 가운에도 하나님의 것을 성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부유한 자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인색한 자가 되지 맙시다(참고/눅12:20). 그러나 이 세상에서 헌신 때문에 환난과 궁핍을 당했더라도, 그는 ‘실상은 부유한 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계2:9).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 ‘생명의 관’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2:10).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은혜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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