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종말 시계視界(2)
절대적 성경과 시대적 징조
3. 혈통적 유대인과 율법적 유대인 - 유대교와 기독교 근본주의
지금 유대인은 성경적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위한 구원은 없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셈족 계열의 세파라딤Sepharadim의 존재에 대한 반증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이다. 셈족은 이천 여 년 간의 디아스포라 그리고 핍박과 고난으로 동화 및 멸절되었다. 지금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들은 소수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아쉬케냐짐Ashkenazim으로 카자르Khazar 왕국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셈족이 아니면서도, 유대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의 후손들이다. 카자르 왕국 역시 멸망으로 이산離散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아쉬케냐짐 유대인들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셈족의 유대인보다, 더 철저히 율법을 지키고, 시온이즘을 확산시켜, 현대 이스라엘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지금까지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 실제적인 유대인들이다. 미국 유대인들 70%도 아쉬케냐짐이다. 그들이 미국을 통해 세계를 좌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대 민족 역사를 들어 오늘날 유대인은 성경적인 유대인이 아니기에 그들에 대한 구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라는 말씀을 거치는 것이다(롬2:28). 하나님은 혈통적 유대인A Bloodline Jew들이 아니라, 율법적 유대인A Legal Jew들을 성경적 유대인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한다면, AD 136년 제2차 유대독립전쟁에서, 유다는 로마에 의해 국명이 사라지고, 백성들이 강제 이주 당한 후, 전 세계의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으며, 1948년에 가서야 현대 이스라엘 독립을 쟁취했다. 이 모든 사건들의 정점에는 세파라딤이 아니라 아쉬케냐짐이다. 죽음도 가장 많이 당했고, 건국도 주도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반론할 수 있어야 한다. 2천 여 년 간 나라를 잃은 국가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을 유대근본주의자들의 신념 때문으로만 보는가?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하는가? 후자라면 하나님은 세파라딤이 아닌 아쉬케냐짐을 성경적 유대인으로 사용하고 계심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율법적인 유대인으로 믿는 아쉬케냐짐을 성경적 유대인으로 종말계시를 이루심을 알아야 한다.
성경적으로도 이미 혈육적 유대인이 아닌 율법적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증거하고 있다. 출애굽의 기적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면 당시 가나안에 입성한 유대인들의 혈통은 무엇인가? 지난날 무려 430년 간 이방나라에 거했다. 그렇다면 통혼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요셉의 아내가 누구였는가?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다(창41:45). 그러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유대인이 아닌가? 그들은 야곱의 축복으로 훗날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반열에 오른다(창46:20,48:20).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무리 가운데는 ‘수많은 잡족’이 있었다(출12:38,‘중다한 잡족’(개역한글)). 타국에서 애굽에 포로 혹은 노동을 위해 온 자들로서, 노역 중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보고 개종한 자들과 애굽 족속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어떤 신분을 갖게 되었는가? 출애굽기 12장 48절에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라고 하였다. ‘수많은 잡족’들도 자신들이 원하고 율법을 따르면 유대인이 될 수 있었다.
구약에서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그 증거는 분명하다. 유대인들은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거주하는 유대인들만 아니라, 해외 거주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명에 따라 예루살렘에 모였다.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각 국의 도시에서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행2:10). 이 말씀에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유대인은 디아스포라의 역사 속에서도 타국에 회당을 세우고, 랍비를 통해 율법을 배웠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이국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또한 많은 외국인들을 포교했다. 이를 통해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은 유대인으로써,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에 참여한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자랐지만, 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고 신앙을 배웠다(출6:20).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인이었지만,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믿음을 가졌다(딤후1:5). 유대인들은 어머니만이 자녀를 유대인으로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아버지가 아랍인이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는 유대인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모계사회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모계를 통해 혈통이 보존된다는 것은 어렵다. 이렇게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율법적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이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명백한데, 셈족의 유대인들은 소멸되었기에 그들에 대한 구원도 끝났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구의 중심이 예루살렘이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산에 다시 성전을 건축하고,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고,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다.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 자신들이 선민으로 택함 받았고, 2천 년간 나라 없는 비극에서, 기적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자들을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이라고 한다. 유대교 시온이즘Judaism Zionism을 주창하는 이들로서 그들의 주관적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현대 이스라엘을 구약 이스라엘과 한 존재로 본다.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의 사상을 그대로 믿는 기독교 시온이즘Christian Zionism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 숭배에 빠져 있다. 이스라엘이 하는 모든 일들을 용인한다.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면, 침략 전쟁도 정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조지 부시George W. Bush,1946- 전 미국대통령이다. 그가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벌인 이라크전쟁은 석유를 찬탈하기 위한 침략 전쟁이었다. 이 배경에 바로 미국 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있고, 그 뒤에는 현대 이스라엘과 한 존재인 미국 내 유대인들이 있는 것이다.
2010년 6월 22일 ‘6.25 전쟁 60년 평화기도회'에 부시 대통령을 강사로 초청하여 한국개신교안에서 큰 논란이 일었었다. 당시 대회의 주최자들 가운데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광화문 등지 애국보수집회에서 개신교도들 가운데 성조기를 들고, 심지어 다윗별이 새겨진 국기를 들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 국가주의와 유대인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이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곧 하나님 말씀이고 하나님의 의라고 믿는 것이다.
유대교 시온이즘 입장에서, 그들의 사상이 옳다고 할 수 있지만, 기독교 시온이즘은 성경에 크게 위배된다. 기독교 시온이즘들은 ‘백 투 더 예루살렘’Back to the Jerusalem과 제3성전The Third Temple 건립 등을 통해, 주 오심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공격적인 선교를 벌이고 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회복’, ‘제3성전’등을 논하면 잘못된 종말론으로 낙인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므로 개신교내에서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을 따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노선은 따르지 말아야 한다.
유대교 시온이즘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들이어서 이스라엘 독립을 이룬 줄 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 실현시키고 용인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 시온이즘이 되거나, 성경적 종말론도 잘못된 종말론으로 오인하여 증명치 못하게 만든다.
4. 천년왕국과 천국 - 에덴의 실현과 영원
천년왕국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 후 마치는 유한한나라다(고전15:24;계20:9). 그러나 천국은 종국이 없는 영광이 가득한 영원한나라이다(계15:8,21:11,23). 천년왕국의 마침은 천국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천년왕국을 ‘영원한 나라’라 표현하기도 한다(단7:7). 그러나 두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는 성격은 같지만, 성질이 다른 것이다. 이사야 11장 9절의 ‘해 됨도 상함도 없는 세상’과 요한계시록의 21장 2-4절의 ‘눈물과 사망과 고통이 없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동일한 나라가 아니다. 천년왕국과 천국으로 분명히 구분된다. 그런데 신학자들 가운데는 두 나라를 구별하지 않고, 이상한 나라를 만들기도 한다. 천국에도 육초식 짐승들이 산다는 것이다. 이사야 65장 25절과 요한계시록 22장 1절을 믹서Mixer한 결과이다. 이러한 논지가 등장하는 이유는 역사적 천년왕국을 부인하는데 기인한다.
천년왕국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것은 에덴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창1:28).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을 보내어 우리를 ‘살려 주는 영이’되게 하셨다(고전15:45).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었다’(고전15:22). 첫 번째 아담의 실패를 마지막 아담이 회복시킨 것이다. 그러나 하나 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한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마지막 아담이 이루셨는가 하는 점이다. 영적 의미로 말고, 실제 의미로 볼 때,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류의 숙명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도 복원되었는가?(창3:17) ‘짐승이 받은 저주’가 풀렸는가?(창3:14)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신 적이 있는가?(계19:16) 상징적 의미 말고, 사실적 의미로 볼 때 말이다.
그러면 이것은 이루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이 두 가지, 아담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의 복원에서 누릴 ‘황금시대’The Golden Age와 만왕의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역사는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완성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 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역사를 영적 관점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과연 개혁주의에 부합하는가? 아니면 재림하신 주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땅의 저주를 복원하여, 새롭게 조성된 천년왕국에서,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신다는 실제 관점이 개혁주의에 부합하는가? 후자를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원수 된 것 곧 중간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둘이 하나가 되어,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한 왕으로 섬기게 된다(사9:6;고전15:24;엡2:14;계11:15).
첫 번째 아담이 이루지 못한 실패를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이 천년왕국에서 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된다(창1:28;사11:6-9;슥14:5-17;고전15:25).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천국에 입성하게 된다(계21:2). 인류의 구속사는 천지창조로 시작되어 신천신지로 마쳐진다(창1:1;계21:1). 천국도 에덴의 회복이라는 성격은 갖다. 그러나 성질은 다르다. 천년왕국은 에덴이 실현되는 것이고, 천국은 에덴이 영원을 입는 것이다. 전자는 에덴 창조에 대한 약속의 지상 실현이고, 후자는 에덴 창조에 대한 영원이 천상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천년왕국이 종말계시에 중대한 것은 실제 관점을 가지면, 요한계시록 전반을 역사적으로 해석하게 되지만, 영적 견해를 가지면, 상징적 입장을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5. 인류역사의 구속사- 구약시대, 신약시대, 종말시대, 천년시대, 영원시대
필자는 인류역사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구약시대’Old Testament, ‘신약시대’New Testament, ‘종말시대’Apocalypse, ‘천년시대’Millennium, ‘영원시대’Eternity로 나눈다. 종말시대를 신약시대와 동일하게 보거나,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마21:33-41;막12:1-12;눅 20:9-19). 그러나 필자는 신약시대를 예수님 초림부터 7년 환난 중 전 3년 반까지로 본다(롬3:11-12,25;고후6:2.교회시대). 이 기간 이방인 구원시대인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구원은 후 3년 반부터 재림까지이다(롬11:5.12). 이 가운데 예수님 재림 전 7년부터 재림까지를 종말시대라고 한다(단9:27;계11:2-3). 전 3년 반은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이기에 종말시대와 중첩된다. 그리고 천년시대는 천년왕국 또는 왕국시대에 해당된다(단7:27;사65:17-25;고전15:24;계11:15).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원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계21:2-7). 인류역사의 구속사는 천지창조The Creation로 시작되어, 신천신지New Heaven and a New Earth로 끝맺는다(창1:1;계21:1). 한국교회는 이 중 종말시대와 천년시대를 상징의 바다에 수몰시키고 있다. 마지막 징조 등을 종말시대가 아닌 교회시대 관점으로 해석한다. 이로 인하여 종말의 대비를 할 수 없게 된다.
결 론
지금까지 본론에서 한국교회에 종말계시가 닫힌 원인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제 결론에서는 오늘날 격변의 시대에 답은 성경적 종말론에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세상은 전염병의 창궐, 북한의 핵 위협, 세계의 곳곳의 분쟁, 기후의 격변, 자연재해의 재앙, 자원의 임계점, 경제의 추락, 식량 부족과 식수의 고갈, 세계 대전 등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가 있었던가? 이러한 때 사람들은 이 모든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자, 난세에 영웅을 구한다.
창세기에 ‘세상의 첫 용사’ 니므롯이 등장한다. 그는 대도시를 건설했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영웅이었다. 바벨탑 사건에 보듯이 인류를 하나로 규합한 영웅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첫 심판 대홍수의 원인이 무엇인가? 용사, 영웅 때문이었다. 계시록에는 마지막 영웅 ‘짐승’The Beast으로 지칭된 적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다. 이자는 등장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한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재림 7년 전에 출현 인류를 위기에서 타계할 ‘7년언약’을 체결한다. 바로 ‘7년환난’의 시작이다. 그리고 ‘전 3년반’을 지나 본색을 드러내고, 하나님이라 자칭한다. 그는 지배가 공고화된 ‘후 3년 반’,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인류들로 경배하게 한다. 또한 자신의 표인 ‘짐승의 수’로 ‘육백육십육’을 받게 한다. 짐승표는 외형은 매매의 경제적 수단이지만, 내용은 지배의 통치 수단이다. 짐승표 ‘666’을 ‘오른손에나 이마’에 받는 순간 짐승의 손에 의해 통제가 이루어진다.
신사참배를 가결한 제27회 장로교 총회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1938.9.9.).14) 그 결과는 참혹했다. 십년 후 평양에 김일성정권이 수립되었고, 동상이 세워졌으며, 거기에 경배하는 자만이 배급표를 받을 수 있다(1948.9.9.). 당시 한국초대교회가 지금의 성도들보다 믿음이 없어서 우상을 숭배했던가? 지구는 위기에서 막강한 중앙통제와 강력한 지도자가 요청되고 있다. 이것은 종말시대 세계단일정부와 짐승표로 압제할 적그리스도 등장에 대한 ‘Trailer’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영웅을 원하는 인류의 심리가, 창세기 때부터 지금도 여전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종말까지 이어져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된다. 지구를 위기에서 건져낼 자로 위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의 등장 이전에 배교를 경종하고 있다. 배교는 영적인 눈을 어둡게 한다. 세계인은 영웅으로 유대인은 메시아로 배교한 교회는 평화의 왕으로 적그리스도를 받들게 된다. 배교의 선봉이 종교다원주의이다. 진리는 다원이 아니다. 유일 예수이다. 예수만이 인류에게 진정한 평강을 주시는 평화의 왕이다. 사수해야 할 진리이다. 그래야 배교에 빠지지 않고 적그리스도 정체를 밝히 알고 영적 전쟁에서 승자리하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다. 범유행 감염병, 기후재앙, 자연재해, 전쟁과 테러, 사건사고 등 시대에 나타나는 징조들이 성경의 증언과 무관할 수 없다. 주 오심의 임박을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사실상 간과하고 있는 것이 일부 개혁주의자들이다. 말씀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나 작금의 사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반면 세대주의는 현상을 치중하다보니, 성경적인 분별이 약하고, 잘못된 종말론의 온상이 된다. 그러므로 상황적 시대의 징조를 절대적 성경의 증언을 통해 바로 보는 통찰을 갖고 경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모든 환난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일념을 가져야 한다. 예배에 우선하고, 믿음에 정진하며, 성경으로 역사를 보고, 오직 예수를 증거하며, 초림과 함께 재림 신앙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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