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쿠테타
The coup d'état in The Bible
솔로몬왕 이후 르호보암 때 여로보암이 반란을 도모 10지파를 이끌고 북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왕상11:26). 자신의 번성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의 정권을 잡는데 썼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펼쳐 하나님 보다 앞서려는 인간의 간교한 계획이요. 하나님의 역사를 뒤바꾸려는 교만의 출발이요. 깨어있지 못한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질서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파괴한 것이요.
여로보암의 쿠데타로 통일왕국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된 이 후, 남유다는 다윗 왕가로 왕들이 계승되었는데요.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조를 포함 9번의 왕조가 등장했습니다. 그것은 초대왕 여로보암이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쿠데타로 집권한 것과 같이 9차례의 쿠데타가 발발 그때마다 왕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홉 번의 쿠데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겠습니까?
고 박ㅇ희 소장께서는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후, 5-9대 18년 동안 대통령을 역임했지만, 자신의 만주 일본육사 동기이자, 최측근의 흉탄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정적이아니라, 신복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쿠데타에 실패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쿠데타는 성공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 것입니다. 11-12대 대통령을 지낸 고 전ㅇ환 소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못한다는 모 검사의 발언이 있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전ㅇ환에게 가장 큰 피해를 본 당시 김ㅇ중 총재가 사면을 김ㅇ삼 대통령에 건의하여 석방되었으나, 명예에 사형을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친구이자 동기이며 쿠테타 주역에 의해 백담사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리고 작고하신 이후, 아직도 매장지를 구하지 못해 자택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쿠데타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될 수 없습니다.
에브라임지파는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 바알 등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호4:17,13:1,14:8).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모르게 하니 백성들은 신을 섬기려는 욕망이 타오르고 이에 다른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뜻을 바알등 우상을 통해 펼치려 했던 것입니다. 이 일련의 역사적 과정에서 지난날 영광과 영화를 누렸던 이 에브라임 지파가 나중에는 악의 대명사로 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호5:13). 에브라임, 이스라엘이 자신의 병 즉 잘못을 깨달았는데 심령이 어두워졌음으로 그 문제의 해결을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야렙왕과 화친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보다 정치적으로 세상의 방법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야렙왕도 고치지 못하고 상처를 낫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호10:6). 오히려 도움을 구한 앗수르에게 수치를 당할 뿐인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호5:3). 에브라임은 자신들의 죄를 은밀하게 행함으로써 숨기려고 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의 죄악은 결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참고/히4:13).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을 뜻합니다. 이는 에브라임의 행음과 죄악된 상태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앞에 명백히 드러났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더러워졌느니라’, 영적 행음 우상숭배로 부정하게 된 죄악의 결과를 나타냅니다(참고/민5:27,28).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를 쿠데타로 쪼갠 북이스라엘은 우상에 빠지고, 나라의 어려움을 타국의 힘을 빌려 벗어나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도움을 구했던 앗수르에게 수도 사마리아가 정복당하고, 호세아 왕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참고/왕하17:4,5;사31:4). 훗날 하나님을 떠났던 유다 역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침략을 당하였습니다(참고/왕하25:1-12). 하나님을 거스르고 영적으로 행음하고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은 국가의 몰락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자각하고 애통하고 회개합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부터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민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도와 줄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종말론 > 종말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상계엄과 한국교회 Martial law and the Korean church - 이재현목사(청아비전교회) (0) | 2025.01.20 |
---|---|
로잔대회와 한국교회(5) (1) | 2024.09.21 |
로잔대회와 신복음주의 (6) | 2024.09.17 |
로잔대회와 한국교회(4) (0) | 2024.09.14 |
음모론과 종말론-음모는 현대의 위경이다 (0) | 2023.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