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편에 서 있는 자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22:41-46 2025.02.23. 主日禮拜
1. 다음 <주님을 존대하는 자, 열매를 드려라>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한 비유로 한 주인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열매 얻을 때가 되어 종들을 보내 가져오도록 하였으나, 농부들이 종들을 때리고 돌로 치고 죽였다고 했습니다(21:33-35). 주인의 명을 받은 종을 능욕한 것은 주인을 없신 여긴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인은 인내하고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그들에게도 그렇게하였습니다(21:36). 주인은 고심 끝에 아들을 보내면 존대하리라 생각했습니다(21:37). 그러나 주인의 기대와 달리 농부들은 산속자인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치하자고 하였습니다(21:38-39).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이고, 농부는 광의적으로는 이스라엘 전체, 협의적으로는 본문의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고, 종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인의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성문 밖’으로 끌고 가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히13:11-12). 이에 대해 농부들이 아들을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다고 하신 것입니다(21:39).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과 같이,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공사장에 필요 없는 ‘돌’을 버려버리듯이, 십자가에 죽게 했지만. 하나님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버린 돌’을 ‘머릿돌’이 되게 하는 ‘기이한 일’을 행한 것과 같이, 아들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며,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21:40-42.참고/시118:22;사28:16;행4:11;빌2:9-11;벧전2:7).
예수님은 예수님을 영문 밖에서 죽인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43).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라는 이전 문맥과 연결할 때, 자신은 죄인이라며 탄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 죄인과 세리와 창녀들을 말하고, 광의적으로 저와 여러분 이방인을 말합니다. 잘못된 선민사상을 가진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로 대표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받은 민족이요, 육체의 할례를 받았기에 구원받았다고 자신만만했지만, 주인의 아들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요12:44-50). 이렇게 잘못된 선민사상에 빠진 유대인들이 지옥의 땔감 정도로 여기는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하나님 나라, 천국에 입성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 천국을 빼앗기고, 이방인들에게 지옥의 땔감이라고 하였지만, 정작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이,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참고/마8:11).
‘주인’은 아들을 ‘존대’ 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으로, ‘농부’인 성도는 ‘주인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존대’해야 합니다. 주님이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존대하다’는 헬라어 ‘티마오’τιμάω,timavw로 “가격을 정하다, 물질을 지불하다, 높이 평가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존대는 말로만이 아닌 가시적으로 나타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존대하는 자는 열매 거둘 때가 가까워, 주인이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낼 때, 열매를 드리는 농부가 되어야합니다. 농부는 성도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께 드릴 열매는 여러분 각 각이 정해야 한다. 주님을 존대하는 자는 열매를 드린다.
2. 다음 <주님을 예복을 입은 자, 믿음을 드려라>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아들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며, 종들을 보내 청한 사람을 오라 하였지만, 각 각 자기들 사정만을 내세우며 응하지 않고, 어떤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22:1-6). 이에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살랐습니다(22:7). 그리고 종들에게 거리로 나가 만나는 데로 청하여 오라 명하자, 혼인 잔치에 손님들로 가득하였습니다(22:8-10). 연회장이 만석이되자 입장한 손님을 보는 중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친구여 왜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22:11-12). 왕정 시대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는 한 주, 두 주 동안 진행되는 국가적 행사입니다. 그러므로 수개월 전부터 초대할 자에게 전갈하고, 잔치에 입을 예복까지 미리 전달해 줍니다. 그런데 임금이 준비해 준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임금이 혼인 잔치 초대를 위해 보낸, 종들을 죽인 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왕권을 경멸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왕이 친히 준비한 예복을 입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은 자기 권위를 인정하고 기뻐하는 태도로 여겨줍니다. 비유에 임금으로 등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우리에게 주실 예복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신랑으로 맞이할 신부될 성도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이면 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사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2:13).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라’(22:10). 누구든 관계없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느니라’(롬4:22). 하나님은 아들을 믿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 예수 믿음을 통해 혼인 잔치의 기쁨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복인 믿음을 저버리면, ‘임금이 사환들에게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구원받지 못합니다. 임금의 혼인 잔치의 초대를 거절한 자들을 불살라 버린 것과, 혼인 잔치 초대에 응하였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 아무 댓가 없이 주어지는 믿음을 붙잡지 않으면,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통탄하게 될 것입니다(22:13).
예수님은 비유 후,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셨습니다(22:1-14.참고/눅14:15-24).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유대인으로 하나님의 청함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예복,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택함 받은 자는 못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인 잔치에 초대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인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예복, 믿음을 붙들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믿음을 떠난 것은, 자기 잘못임을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예복은 믿음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다른 이유로 저버렸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 저와 여러분이 잊지 말고 매일 소망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와 우리가 축복하고 사랑하고 중보하는 이들이 예수님 앞에 설 때까지, 예복, 믿음을 붙잡게 기도해야 한다. 택자인 주님의 예복을 입은 자는 믿음을 드린다.
3. 다음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 정의를 드려라(1)-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읽 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즉, 구약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 (돌대가리)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마5:2-3.참고/출20:13;신5:17). 예수님은 율법에 적시된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을 모욕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해석한 주님의 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마5:17;롬10:4,13:10). 그러므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이란, 율법에 기록된 조문(글자)을 넘어 율법의 의미인 정신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와 혼인 잔치 비유 가르침으로 할 말을 잃은 종교지도자들은 멈추지 않고 도발을 계속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였습니다(21:15). 그런데 이번에는 제자들과 자기들 대적 관계 있는 ‘헤롯 당원’Herodians들 까지 끌어들여, ‘예수께 보내’ 아부를 떨면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묻자, ‘예수께서 악함을 아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며,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고, ‘이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하셨고, ‘가이사의 것이니이다’고 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고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놀랍게 여겨 떠나’갔습니다(22:16-22.참고/막12:13-17;눅20:20-26).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세금에 대한 두 가지 의견이 대치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형상이나 모양도 만들지 말라는 율법 앞에 황제의 형상이 들어간 화폐로 세금을 내는 것을 꺼렸습니다(출20:4;신4:15-18). 그러나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친일파와 같은 매국노였던 유대인 중 헤롯 당원은 우호적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오는 이권을 누리며, 헤롯 왕조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조문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졌다고 가이사의 것입니까? 이 세상의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 화폐 또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국가의 법을 준수한다고 대통령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국가를 세우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있다고,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조문에만 머물지 말고 율법의 정신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4. 다음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 정의를 드려라(2)-가장 큰 계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이때 최대 종파인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고 묻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하셨습니다(34-40.참고/막12:28-34;눅10:25-28).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동족인 유대인만을 이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유대인 중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것을 버리고 갔는데, 그 앞에 같은 동족인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쳤지만,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이 불쌍히 여겨, 치료하고, 주막에 데려다가 보살피고,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그렇다면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자, 율법사는 자신들이 천대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요”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고, 마지못해 답하자,, ‘예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눅10:31-37).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의 조문 이웃 사랑은 자기 동족에게만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신의 이웃 사랑은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믿어야 할 분들로 영적 돌봄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5. 다음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 정의를 드려라(3)-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율법의 조문만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가르쳐 주신, 주님의 계명을 받으라고 하신 후, 바리새인에게 그리스도를 누구의 자손이라 생각하느냐 물었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답하자, 그러면 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41-43). 다윗이 “주께서(하나님께서) 내 주께(예수님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44). 구약 시편 110편 1절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에서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이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윗도 자기의 족보에서 오실 그리스도를 주라고 호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 너희는 여기 서 있는 나, 예수를 그리스도(왕)로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 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고 하였습니다(41-46.참고/막12:35-37;눅20:41-44).
우리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이란, 율법에 기록된 조문(글자)을 넘어, 율법의 의미인 정신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재림 때까지, 자기 오른편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른편을 뜻하는 원문의 뜻은 “올바른”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과 같이 오른쪽에 서야 합니다. 오른쪽 ‘Righteousness’ 정의입니다. 정의는 하나님 오른편에 서야합니다. ‘좌편’은 ‘저주를 받을 자‘ 악인 ‘염소’요, ‘오른편’은 ‘복을 받을 자’ ‘의인’ ‘양’이라고 하셨습니다(마25:33,34,41;요2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오른쪽에 서 있는 줄 믿습니다. - 하나님 오른쪽에 서 있는 성도는, 교회에서도 오른쪽에 선다. 성도에게서도 오른쪽에 선다. 목사에게서도 오른쪽에 선다. 오른쪽은 옳은 길이다. 정의이다.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는 정의를 드린다.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인 예수님을 농부인 성도들이 존대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주님만을 높이게 하옵소서. 주인인 하나님이 열매를 원하실 때 드릴 수 열매를 드릴 수 있는 농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존대하는 자로 열매를 드리게 하옵소서.
②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 혼인 잔치에 청한 자들에게 주신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신랑으로 맞이할 신부될 성도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이면 됩니다. 우리와 우리가 축복하고 사랑하고 중보하는 이들이 예수님 앞에 설 때까지, 예복, 믿음을 붙잡게 하옵소서. 택자인 주님의 예복을 입은 자로 믿음을 드리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재림 때까지, 자기 오른편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오른편 교회의 오른편에 서게 하옵소서. 오른편은 옳은 길입니다. 정의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로 정의를 드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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