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마태복음 교재

마태복음 교재 23 이재현목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23:37-39)

이재현목사 2025. 3. 3. 10:55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23:37-39 2025.03.03. 主日禮拜

 

1. 다음 <주님의 제자, 더 낮은 곳으로(1)>를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에게 ’(저주)를 일곱 번이나 선언하셨습니다(23).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에게그들은 위대한 선지자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했습니다(1-2.참고/12:31,20:1;1:1,34:10-12). 얼마나 크고 위엄 있는 자리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무엇이든지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시며,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 (백성)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3-4).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한다고 했습니다(5). 그러나 솔선하는 귀감이 아니라, ‘경문 띠를 넓게하였습니다(5.참고/6:8). ‘경문’經文,Phylacteries,트필린תפילין은 양피지에 한 조작에 기록된 출애굽기와 신명기 말씀 중 네 구절을 상자에 담은 것으로 이마와 팔뚝에 차고 다니도록 만들었습니다. 작은 성구함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항상 산다는 외적 표지입니다. 그런데 이 경문의 띠인 끈을 길게 하여, 이마에서 머리 뒤로하여 허리까지 내려오게 하거나, 팔 전체를 둘둘 감았습니다. 위엄있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또한 옷 술,‘찌찌뜨’Tzitzit,צִיצִית. 길게 하였습니다(5.참고/15:38-40). 우리 목도리 끝을 몇 가닥씩 길게 느려 뜨라는 것과 같은 것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라고, 옷에 네 군데에 옷 술을 매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땅에 끌릴 정도로 내려뜨렸습니다. 이 또한 위엄있게 보이고, 백성들과 차별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것들로 본이 될 수 있나요. 그뿐 아닙니다. ‘잔치에 항상 윗자리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였습니다(6).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거드름을 피우며, 백성들의 문안받는 것을 즐겼습니다(7). 저는 교회 제직에게 이런저런 일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 말하지 않는 편입니다. 단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처음 오신 새신자에게는 따뜻하게 깍듯하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랍비Rabbi,히רַב,헬ῥαββι(선생)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7).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과 무리에게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라시며,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셨습니다(8-10). 우리의 선생이 예수님이신 이유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11). 예수님은 대속물로 섬김의 본을 보이신 분입니다(10:45.참고/20:28;딤전2:6).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만이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2). 자기를 높이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25:42.참고/21:43,22:13). 자기를 높이는 자는 가장 낮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 다음 <주님의 제자, 더 낮은 곳으로(2)>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는 주님 같이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낮아지려고 노력합니다. 최선을 다해 섬기고자 합니다. 담임목사가 사례비를 받지 못해도 계속 목회를 해야 하는 가요?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과 같이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고 하였습니다(고전9:4-5.참고/18:1-17). ‘모세의 율법에도 일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다며, 하나님께서 소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말씀이 아니냐며, 우리가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고전9:9-11). 고린도교회를 설립한 바울 이후, 고린도교회에 부임한 다른 사역자들은 사례비를 받았습니다(고전9:12). 그러나 바울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고전9:12). 그러나 빌립보교회 등 다른 여러 교회에서는 사도 바울도 사례비를 받았습니다(참고/4:15-16).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는 바울이 낮아짐으로 사례비 없이 복음을 전한 것은, 고린도교회를 높이려 즉 예수 믿게 하려 함인데,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을 가지고, 다른 사도 보다 열등하여서 못 받는 것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고후11:7).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섬기기 위해 다른 여러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고후11:8). 그만큼 고린도교회에서 목회할 때는 그 환경 안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이 필요했고, 반면 다른 여러 교회에는 그 환경 안에서, 사례비를 받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말씀에 따라, 우리 교회에서 받고자 하면 받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사례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도 주님을 위해 마땅한 주장도 하지 않는 줄 압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도 성도도 물질적 문제로 부딪힘이 없었고, 이후로도 없기를 축복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모두가 낮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높이심을 믿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교만이요. 가장 큰 불의요. 가장 큰 죄악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 하셨습니다(12). 그러나 예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통회 자복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참고/9:10,21:1-32;2:15,11:1-33;5:30,19:28-20:8;12:12-22). 구원받은 자는 하늘나라에 오르게 됩니다. 그것만큼 높아지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12). 우리는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와 같이 상석에 앉으려 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문안받으려 하고, 랍비라, 칭함 받기를 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랍비, 선생은 한 분 예수님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분만이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그분과 같이 낮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별도로 교훈하신 것이다. 첫 번째 가르침 주님의 제자는 대속물되신 주님 같이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3. 다음 <주님의 제자, 더 깊은 곳으로>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들은 음식에 넣는 향신료인 박하와 희향과 근채와 같이 작은 소득의 형식적 십일조는 강조하면서도,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23-24). 율법의 행위에 치우쳐서, 하루살이 같은 사소한 것까지, 율법을 적용하여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은 낙타를 삼켜버린 것과 같은 율법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24). 율법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행위와 자만과 윤리를 발견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별도로 교훈하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있게 보아야 한다. 두 번째 가르침 주님의 제자는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4. 다음 <주님의 제자, 더 맑은 곳으로>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종교지도자들은 겉은 위엄있게 보이나, 속은 탐욕과 방탕’, 정욕으로 가득찬 위선자들입니다(25-28).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4:3). ‘예수의 (제자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였습니다(5:24). 우리는 장차 주님과 정금같고, ‘맑은 유리 같과 그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된 성의 길을 거닐며,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좌우에 수양버들처럼 늘어선 생명나무 열두 가지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21:8,21,22:1-2). 그렇다면 우리 안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받고 주의 보혈로 맑고 깨끗하게 사함받아야 합니다. 죄인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예수 앞에 나오면 됩니다. 예수 이름 믿으면 용서받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맑아진다는 것입니다(고후4:16). -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별도로 교훈하신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 주님의 제자는 더 맑은 곳으로입니다.

 

 

 

 

5. 다음 <주님의 제자, 더 밝은 곳으로>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37-39.참고/12:10;1:9). 그러나 예수님께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이라고 하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신,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그의 아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8:11,21:44). 우리는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우둔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13:13.참고/11:25). 예수님은 그들에게 화있을진저 눈 먼자라고 하셨습니다(26). 우리는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과 같지 않고, 지금부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이시는 이여찬송하며, 재림 주를 영접할 때까지, ‘를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봄이라는 글자는 “~을 보다라는 말이 어원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보라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무엇을 봅니까? 초목과 꽃들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봄을 보내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자기와 함께 하신 분이 예수님인지 알이 못하다가,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예수)인 줄 알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24:31). 여러분이 눈이 밝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능히 이김이 있습니다. -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별도로 교훈하신 것이다. 네 번째 가르침 주님의 제자는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6. 다음 <주님의 제자, 더 높은 곳으로>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너희는, 조상들이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였지만,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러한 패역한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하였습니다(29-30). 그러나 이 말은 자신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너희들도 조상들이 피를 흘린 것과 같이 분량을 마저 체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격노하셨습니다(31-33).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지만, 포도원 농부 비유와 혼인잔치의 비유와 같이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고 하였습니다(34).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한 짓에 더해,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박해하고 생명을 빼앗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첫 번째 순교자인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히브리식 분류 방식으로 성경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역대기에 기록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죄 없이 흘린 모든 피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고 하셨습니다(35-36.참고/12:38-40;11:37-52,20:45-47).

주님의 예언에도,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라며, 예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고 하였습니다(27:25). 그들의 말 그대로, 그 당시 세대 유대인들 가운데는, 40여 년 후 AD 70년 로마 티투스Titus Flavius,39-81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초토화 되었고, 성전은 무너졌으며, 로마 병사에 의해 아이들은 성벽에 던져졌고, 포로로 끌려가 원형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 건설에 동원되어 강제 노역에 희생당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는 나치Nazi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에 의해 6백 만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그리고 장차 종말시대 7년환난 중 후 3년 반 적그리스도의 잔혹한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24:2 15;13:2,14;19:42-44,20:5-6,21:6,20,24;11:2).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종교지도자들은 피를 부르는 자들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하였고, 주님을 믿고 의인된 성도와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자들입니다(참고/6:9-11,18:24). 제자는 피를 흘리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자들입니다. 제자의 최종은 순교입니다. 순교자는 예수님 보좌 좌우에 있는 보좌에 앉아 왕권자의 권세를 가집니다(참고/19:28;22:30). 순교는 최상의 상급이요 면류관입니다(참고/20:18;7:59;6:2,20:4).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 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 옵니다.” -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별도로 교훈하신 것이다. 다섯 번째 가르침 주님의 제자는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우리의 선생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제자는 낮아져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상석에 앉으려 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문안받으려 하고, 랍비라, 칭함 받기를 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내려가라는 자리까지 내려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② 우리는 하루살이를 걸러 내고 낙타를 삼키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에서 행위와 자만과 윤리를 발견하지 말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찾게 하옵소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③ 종교지도자들같이 겉은 위엄있게 보이나, 속에 있는 정욕을 주님 보혈로 사함 받게 하옵소서. 맑은 성, 맑은 길, 맑은 강가, 천국에서, 주님과 걷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깨끗하게 맑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더 맑은 곳으로 가게 하옵소서.

④ 바리새인과 같이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주를 보지 못하는 눈먼 자가 아니라, 지금부터 그날까지 주를 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눈이 밝은 자는 주님을 봅니다. 우리 눈을 밝게 하사,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⑤ 종교지도자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하였고, 성도의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피를 흘리게 하는 자가 아니라, 피를 흘리는 자게 되게 하옵소서, 순교는 최상의 상급이요 면류관입니다. 주님 보좌 좌우의 보좌에 앉게 됩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됩니다. 주님의 제자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