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하나님의 요구는 행복이다"(신10:12-13) 어린이어버이주일 이재현목사(25.05.04)

이재현목사 2025. 5. 4. 19:28

하나님의 요구는 행복이다

이재현 목사

 

하나님말씀 : 신명기 10:12-13 2025.05.04. 어린이어버이主日禮拜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0:12-13)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어린이 어버이 주일예배에 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6:1-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22:6) 이 말씀이 임하는 가정되기를 축복합니다.

 

행복은 아버지로부터

 

한 모임에 발제자로 나선 목사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의 행복이 첫째이다. 나는 성도들이 행복한 것이 목회의 첫째이다. 성도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는 가장 마음이 아프다.” 제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습니다. 목사로서 자기가 섬기는 교회 성도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안타까움을 넘어 슬프고 애통할 일 아니겠습니다. 앞서 그 목사님의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는 각 각 한 가정의 부모이고 배우자이고 자녀입니다. 나의 가족들, 자녀는 부모로 인해 행복하고, 부모는 자녀로 인해 행복하고,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 행복하다면, 참 좋은 일 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또 하나의 가족인 교회에서도 성도가 목사로 인해, 그리고 목사는 성도로 인해, 또한 성도는 성도로 인해, 행복한 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바라는데요. 그렇다면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좀 전에 자녀는 부모, 부모는 자녀,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 성도는 목사, 목사는 성도, 성도는 성도로 인해 행복한 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대방으로 인해 행복을 갖기도 하지만, 그들이 줄 수 있는 행복은 계속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행복을 주다가,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이들이 그들이 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우리는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어떤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까? 한계가 없는 영원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불행하게 하지 않게 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9-1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가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비유를 하신 것이지요. 어느 아버지이던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 것과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고 말씀했습니다(10:30,13:3). ‘하나님그의 아들예수님을 율법 아래 나게하셨습니다. 율법의 요구인 죄인들이 받아야 할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고, 말씀합니다(4:4). 그를 통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인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속량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4:5). 그러므로 이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고 하셨습니다(4:6-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유업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자녀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좋은 것을 받을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겼다고 하였는데요. 이제 그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저와 여러분이 것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행복인데, 어떤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한계가 없는 영원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말씀합니다(10:10).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73:26). ‘영원한 왕’, ‘영원한 분깃’, 그러므로 한계가 없고, 영원한 행복을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행복은 불행을 주지 않는 행복이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6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고 하였습니다(34:6-7).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인자를 언제까지 베푸십니까?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데요. 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불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고,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행이 없는 행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하나님에게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받아야 합니다.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오늘 설교의 ‘Text’도 이 행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13).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은 이렇게 그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하시는데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명하는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명하시는 것이 무엇입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0:13).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으려면, 받으려면, 누리려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작아집니다. 행복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참 좋았는데요. “하나님은 행복을 주시는 분이다. 한계가 없는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분이다. 행복을 주시다가 불행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행복만을 주시는 분이다.”고 말했을 때는 그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그 행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는 작아집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진정한 행복,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기 위해, 받기 위해,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마음의 준비가 되셨어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수 있으세요. 더 나아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계세요. 온전하지 안다고 하더라도, 절반은 아니 그 이상은 하고 계신 성도님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어떤 명령과 규례라고 할 때, 반항하고 싶은 거역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렇기 하나님은 너희들의 행복을 위하여 정한 나의 명령과 규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복있는 사람은 ! 하나님 알겠습니다.”라고 따르지만, 불행은 사람은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행복 없이 그냥 제 힘으로 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지요. 어떻게 하나님을 대항해서 행복하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행복하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명에 대하여, ‘요구라고 말씀합니다(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10:12) 이 요구가 바로 명령과 규례인 것입니다. ‘Demand’, 요구要求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응당 받아야 할 것을 필요 따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당한 요구라고 합니다. 요구에는 부당한 요구도 있습니다. 그것은 받아야 할 것이 아닌데, 자기 것처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부당한 요구를 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당한 요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명령과 규례는 정당한 요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이 점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정당한 요구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받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왜! 정당합니까?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내어 주시고 저와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내어주고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요구에 우리는 순응해야 합니다. 따라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와 자원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인생의 행복은 시작됩니다. 불행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한 성도가 되기를 원하세요. 그러면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요구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명하신 명령과 규례에 거역의 본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기쁨과 감사와 자원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에게 행복이 안겨 줄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요구에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10:12). 이 말씀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세 가지의 요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

그 첫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섬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섬기는 경외가 어떤 경외이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에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하나님만을 경외한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012-13절은 출애굽기 341-10절을 리바이벌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올 당시에 기록된 말씀이고요. 신명기는 40년 지난 다음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모세가 출애굽 2세들에게 지난날, 하나님의 도우심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설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신명기 1012-13절은 출애굽기 341-10절을 재 인용하여 재 설교한 말씀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을 들고, 하산한 모세의 눈앞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간 40, 그 사이를 이스라엘은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32:4). 이에 격분한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을 땅에 내치어 깨치게 됩니다(32:19). 그 후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시는데요. 이 번에는 두 돌 판을 직접 만들어 올 것을 명하십니다(34:1-2). 그리고 재차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게 됩니다(34:10). 오늘 본문은 이 배경에 있었던 사건을 모세가 다시 한 번 설교한 것입니다. 본문 위 “1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 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2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로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10:1-2).

 

성도 여러분! 십계명이 무엇인지 잘 아시죠. 그러면 십계명 중에 제일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20:3). 하나님의 요구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20:4-6). 하나님은 십계명의 두 번째로 절대로 짐승과 일월성신 모양을 한 우상을 만들어 너희들을 위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것도 섬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에 다른 믿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준비한 돌 판에 두 번째로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 가운데, “15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16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17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34:15-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나라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음란한 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 이방 민족이 이방신에게 제물을 드리고 이스라엘을 초대하면, 너희들이 그 제물을 먹을까 하나님은 염려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이방민족의 딸들을 자부로 맞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딸들이 우상 신을 음란하게 섬겨, 네 아들들을 그 음란한 우상 신을 섬기게 하게 될 것을, 하나님은 유려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 신들의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상의 신상을 만들게 되면, 애착을 갖게 되고, 들여 보게 되고, 결국에는 마음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그는 태평성대와 부귀영화와 성전과 왕궁을 건설 한 뒤, 이방의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들의 이방신을 섬겼고, 마침내는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왕상11:3).

 

이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알게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한 가지 ’Tip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구별하여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단사이비는 달리 이단사이비가 아닙니다. 이단사이비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합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합니까? 그들이 성령님을 안 믿든다고 합니까? 그들도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성령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미혹할 때 우리도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믿어요.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합니까? 우리도 믿어요. 우리는 성령님도 믿어요. 그런데 그 하나님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성령님과 함께 믿어야 할 분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창시자나, 교주가 또 다른 하나님이다.”, “또 다른 예수다.”, “또 다른 성령이다.”고 하면서 마수를 뻗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것을 함께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가 교제하는 사람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렇습니까?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딤후2:15) 믿음의 사람을 따르면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 불신의 사람을 만나면 불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실한 성도를 만나면 신실한 성도가 되지만, 부정의 사람, 비판의 사람을 만나면 부정과 비판의 사람이 되고, 신앙을 등한히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라고 하는 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우리가 믿던 복음이 낡고 오래된 것입니까? ‘새로운 복음新福音’은 없습니다. ‘새로운 복음다른 복음이고, ‘다른 복음틀린 복음입니다(1:6-9). ‘새로운 복음은 없고 새로운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참고/2:14-17). 신복음주의는 전도를 위해서라면, 타 종교와도 대화해야 하고, 반성경적 집단과도 연합하는 입장에 서야 하며, 다른 구원자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일 수 없습니다. 신복음주의라고 말하는 이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 될 뿐입니다(고전11:17). 성경은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지 말라”(고전4:6)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가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5:37) 명령합니다. ‘그리스도 복음오직 예수에 라고 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 다른 구원자에 아니요라고 해야 합니다. 그 중간의 자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오직 예수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라고 하셨습니다(2:16). ‘오직다른무엇을 더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포용주의입니다. 함께 섞는 것은 혼합주의입니다. 나란히 세우는 것은 다원주의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복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듯이 새로운 복음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있습니다(1:7). 우리는 이들과 같이 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교제하는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8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9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11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이1:8-11).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명령과 규례 즉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 말씀에 무슨 뜻이 있다고요. 하나님만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사람들과 교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 믿는 자들도 우리의 전도 대상자이기에 배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안 믿는 자들의 사상과 언행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안 믿는 분들보다 믿는 분들로 인해 신앙에 더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믿는 분들이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에 다른 믿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만을 경외하기 소망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라, 하나님만 경외하는 사람과 만나라,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하나님의 요구, 둘째는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라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입니다. ‘Follow Him’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대언하신 말씀입니다. “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5:4-6).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나를 찾으라고 요구하십니다. 나를 찾지 않고 벧엘을 찾고, 길갈로 들어가며, 브엘세바로 나아가면,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비참하게 될 것이요, 심판의 불을 끌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모스 선지자 당시 북이스라엘은 외적 번영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사치와 향락, 계층 간의 갈등과 소외 현상, 우상 숭배와 불신앙이 만연했습니다. 즉 벧엘, 길갈은 북이스라엘의 섬기던 잡신과 맘몬이 가득했던 도시였습니다. 브엘세바 또한 남 유대였지만 우상숭배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명하십니다. 이들 우상과 사치와 향락의 도시인 벧엘과 브엘세바와 길갈로 가지 말라, 그리로 가면,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비참하게 될 것이며, 심판의 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곳의 최후는 장망성입니다. ‘장망성’將亡城,the City of Destruction이란 멸망의 성’, ‘파멸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성읍을 가리키는 예언적인 이름입니다.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19:18). 멸망의 성읍을 예전에 사용하던 개역한글 성경에는 장망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장망성인 세상에 발걸음을 거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쉽게 성경의 예를 통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겼던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기근이 당하자, 우상의 도시인 이방 모압에 이릅니다(1:1). 그곳에서 정착하여 두 자부를 맞이하고, 행복할 것 같았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연이어 잃는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1:2-5).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의 이름을 버려버리고, 사람들에게 고통, 쓰다는 의미의 마라로 불러 달라고 하였습니다(1:20). 남편이 죽고 두 아들까지 먼저 떠난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이었으면, 이름까지도 바꾸었겠습니까? 기근을 피해 이방 땅으로 왔던 나오미는 재산은 물론 가족까지 다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1:6-7). 그런데요 미망인이 된 첫째 자부는 모압의 친정으로 돌아갔는데, 둘째 자부 룻은 어머니의 고향이 내 고향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며, 나오미를 따라 나섭니다(1:14-17). 나오미는 간곡히 만류했지만 끝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룻의 간청에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1:19).

 

고부姑夫 둘 다 과부이지 않습니까? 먹고 살 것이 여의치 않아 나오미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일인, 추수 때 떨어진 이삭을 주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한 날도 어느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는데, 그 밭의 주인이 베들레헴의 유력자인 보아스이었습니다(2:3). 나오미를 따라온 룻의 믿음과 신의를 이미 알고 있었던 보아스는 룻에게 다가가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였습니다(2:8).

 

집에 돌아간 뒤 이 사실을 시어니에게 고하자, 나오미는 룻에게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보아스)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면서, 다른 밭에 가지 말고 보아스의 밭에만 가라고 하였습니다(2:20-23).

 

그 이후의 스토리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룻은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지만, 그곳에서 남편과 가장 가까운 친척 중의 하나인 보아스와 계대결혼법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고, 다윗의 할아버지이자, 메시아의 조상인 오벳을 출산하게 됩니다(4:17). 훗날 은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기명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1:5).

 

모압의 여인으로 베들레헴에서 이주해 온 남편을 맞아 혼인했지만, 남편이 곧 죽음을 당하고, 과부가 됩니다. 시부도 아주버니도 죽었습니다. 손위 동서도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며 고백한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랐습니다. 곧 누구를 따른 것이에요. 하나님을 따른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밭에 이삭을 주우면서 밭주인인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애기를 들은 시어미니 나오미도 룻에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보아스의 밭에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따를 수 있습니까? 이 또한 앞에서 하나님 경외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과 교제와 같습니다.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행복을 받는 사람은 들을 말을 듣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들리게 말하는,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극과 극, 다른 극의 말을 듣게 됩니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비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길가, 바위, 가시떨기 그리고 좋은 땅 옥토입니다. 그 중에 길 가에 떨어진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8:12).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마귀가 말씀을 자꾸 빼앗아 갑니다. 그러한 이는 하나님의 길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100배 결실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8:14.참고/13:23).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룻과 같이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자입니다.

 

목사는 누구인가 목사는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성도들에게 듣도록 전하여, ‘성도를 온전하게하는 자입니다(4:1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재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에게 그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전하는 목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목사도, 그 말씀을 듣는 성도도 함께 하나님의 길을 따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하나님의 요구 셋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며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I love you”라고 하면, 상대방이 무엇이라고 답해야 합니까? “love too"라고 답해야 합니다. 나는 사랑해서 수없이 “I love you”라고 말해도 상대방은 “love too" 말없이 침묵만을 한다면, 사랑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수없이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듣고 또 들어도 식상하지 않을 말씀 하나님은 사랑이다리플레이’Reply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9) 아멘!.

 

이렇게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시그널'Signal을 육적 영적으로 보내시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사랑으로 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사랑으로 답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하여 본문에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십니다(10:12). 즉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영어로 ‘Heart'이고요. ’무엇을 하겠다고 속으로 먹는 마음이라는 국어사전의 의미가 아니고요. ‘Soul'로 영혼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4:24). 이 때의 이 뜻을 다하여입니다.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너는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22:37).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한 율법사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질문에 답한 것입니다(22:36). 이 때 예수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어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22:38-40).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다고 하십니다. 첫째 하나님 사랑은 둘째인 이웃 사랑과 그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여야 하는데요. 그 사랑은 마음과 뜻 즉 마음과 영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뜻을 다하는 사람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예수님이 가리켜주고 계신 것이에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이웃은 광의적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할 수 있고요. 협의적으로는 우리 가정의 가족과 교회의 성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마음과 뜻 즉 마음과 영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가족과 성도에게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내어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의 전부인 마음과 뜻 즉 마음과 영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가족과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가족과 또 하나의 가족인 성도를 어떻게 사랑하는 가를 보면, 하나님께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꼭 정리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성도에게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어떤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요. 우리는 그 방법보다 결과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말입니까? 내가 정말로 하나님께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사랑하듯, 가족과 성도에게 한다면, 그 가족과 성도가 하나님 사랑으로 나와야 합니다. 즉 행복은 하나님에게서만 올 수 있는 것을 내 가족과 성도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한 가족과 성도가,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때, 여러분의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가족과 성도들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리

 

행복은 아버지로부터

 

가정의 자녀는 부모로 인해 행복하고, 부모는 자녀로 인해 행복하고,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 행복하다면, 참 좋은 일 일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는 성도로 인해, 또한 성도는 성도로 인해, 행복한 것 또한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 사이의 행복을 갖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행복을 주다가,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이들이 그들이 일 수 있습니다. 한계가 없는 영원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불행하게 하지 않게 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어느 아버지이든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 것과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하셨습니다(7:9-11).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하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 ‘유업을 받을 자가 되었습니다(4:5-7.참고/10:30,13:3).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좋은 것을 받을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저와 여러분이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이십니다(10:10).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십니다(73:26). ‘영원한 왕’, ‘영원한 분깃’, 그러므로 한계가 없고, 영원한 행복을 주실 분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불행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분이시며,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34:6-7). 우리는 이 하나님에게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받아야 합니다.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은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13). 그런데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명하는것이 있습니다(10:13).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으려면, 받으려면, 누리려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10:13).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작아집니다. 행복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참 좋았는데요. “하나님은 행복을 주시는 분이다. 한계가 없는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분이다. 행복을 주시다가 불행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행복만을 주시는 분이다.”고 말했을 때는 그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그 행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는 작아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기 위해, 받기 위해,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마음의 준비가 되셨어요. 나아가 지키고 계신가요? 온전하지 안다고 하더라도, 절반은 아니 그 이상은 하고 계신 성도님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니까요? 인간은 어떤 명령과 규례라고 할 때, 거부하고 싶은 거역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렇기 하나님은 너희들의 행복을 위하여 정한 나의 명령과 규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복있는 사람은 ! 하나님 알겠습니다.”라고 따르지만, 불행은 사람은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행복 없이 그냥 제 힘으로 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행복하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한 명령에 대하여, ‘요구라고 말씀합니다(10:12). 이 요구가 바로 명령과 규례인 것입니다. 요구要求,Demand는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부당한 요구를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명령과 규례는 정당한 요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받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정당한 이유는 아들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명령과 규례에 거역의 본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기쁨과 감사와 자원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리할 때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10:12). 이 말씀에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세 가지의 요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 그 첫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입니다. 이 말씀에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신명기 1012-13절은 출애굽기 341-10절을 리바이벌한 말씀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고, 하산한 모세의 눈앞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32:4). 이에 격분한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을 땅에 내치어 깨치게 됩니다(32:19). 그 후 하나님은 재차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는데 두 돌 판을 직접 만들어 올 것을 명령하십니다(34:1-2,10.참고/10:1-2). 본문은 이 배경에 있었던 사건을 40년이 지난 후, 모세가 다시 한 번 설교한 것입니다.

 

십계명 첫 번째는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20:3). 두 번쩨는 짐승과 일월성신 모양을 한 우상을 만들어 너희들을 위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20:4-6).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것도 섬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에 다른 믿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준비한 돌 판에 두 번째로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방 나라의 주민과 언약도 통혼도 우상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의 신상을 만들게 되면, 애착을 갖게 되고, 들여 보게 되고, 결국에는 경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34:15-17).

 

우리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을 구별하여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단사이비도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께 믿어야 할 분이 있다면서, 자신들의 창시자나, 교주가 또 다른 하나님,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성령이다.”며 마수를 뻗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것을 함께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가 교제하는 사람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딤후2:15) 믿음의 사람을 따르면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 불신의 사람을 만나면 불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라고 하는 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믿던 복음이 낡고 오래된 것입니까? ‘새로운 복음新福音’은 없습니다. ‘새로운 복음다른 복음이고, ‘다른 복음틀린 복음입니다(1:6-9). ‘새로운 복음은 없고 새로운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참고/2:14-17). 신복음주의는 전도를 위해서라면, 타 종교와도 대화해야 하고, 다른 구원자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오직 예수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2:16). ‘오직다른무엇을 더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포용주의입니다. 함께 섞는 것은 혼합주의입니다. 나란히 세우는 것은 다원주의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복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듯이 새로운 복음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있습니다(1:7). 우리는 이들과 같이 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교제하는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참고/요이1:8-11).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명령과 규례 즉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 말씀에 무슨 뜻이 있다고요. 하나님만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사람들과 교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 믿는 자들도 우리의 전도 대상자이기에 배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안 믿는 자들의 사상과 언행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안 믿는 분들보다 믿는 분들로 인해 신앙에 더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믿는 분들이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에 다른 믿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만을 경외하기 소망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하나님의 요구, 둘째는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라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입니다. 아모스 선지자 당시 벧엘, 길갈은 북이스라엘의 섬기던 우상과 맘몬이 가득했던 도시였습니다. 브엘세바 또한 남 유대였지만 우상숭배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으로 가지 말라, 그리로 가면,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비참하게 될 것이며, 심판의 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5-6). 하나님을 찾아야 살리라고 하십니다(4:4).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이 세상은 장망성’將亡城,the City of Destruction입니다. ‘멸망의 성읍’, ‘파멸의 도시라는 뜻입니다(19:18). 우리는 장망성인 세상에 발걸음을 거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겼던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당하자, 우상의 도시인 이방 모압으로 이주하여, 자부를 맞이하고, 행복할 것 같았지만, 남편과 두 아들을 연이어 잃는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1:1-5).“기쁨이라는 뜻의 나오미를 고통을 의미의 마라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1:20). 모든 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자부들에게 이별을 고하였고, 큰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 갖지만, 둘째 룻은 끝까지 떠나지 않겠다며 함게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1:6-7,14-17,19). 룻은 시모를 봉양하기 위해 한 밭에서 추수 때 떨어진 이삭을 주었는데 그 밭의 주인이 베들레헴의 유력자인 보아스이었습니다(2:3). 친척으로 그 집안의 사정을 알고 있던 보아스는 룻에게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였습니다(2:8). 집에 돌아간 이를 나오미에게 고하자, 그는 우리와 가까우니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라면서, 다른 밭에 가지 말고 보아스의 밭에만 가라고 일렀습니다(2:20-23).

 

그 이후 보아스와 유대 계대결혼법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고, 다윗의 할아버지이자, 메시아의 조상인 오벳을 출산하게 됩니다(4:17). ‘은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기명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1:5). 룻은 손위 동서도 떠났지만, 어머니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며 고백한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랐습니다. 곧 그녀는 하나님을 따른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밭에 이삭을 주우면서 밭주인인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애기를 들은 시어미니 나오미도 룻에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보아스의 밭에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따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행복을 받는 사람은 들을 말을 듣게 됩니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비유에서, 길가, 바위, 가시떨기 그리고 좋은 땅 옥토입니다. 그 중에 길 가에 떨어진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8:12).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마귀가 말씀을 자꾸 빼앗아 갑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좋은 땅에 뿌려져 백배의 열매를 맺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룻과 같이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자입니다.

 

목사는 누구인가 목사는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성도들에게 듣도록 전하여, ‘성도를 온전하게하는 자입니다(4:1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재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에게 그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전하는 목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목사도, 그 말씀을 듣는 성도도 함께 하나님의 길을 따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하나님의 요구 셋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며입니다(10:12).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수없이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사랑으로 답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하여 본문에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십니다(10:1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에서, ’뜻을 다하여라는 의미가 갖고 있습니다(4:24). 너는 마음과 뜻 영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가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22:37), 이어 첫째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22:38-40).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마음과 뜻 즉 마음과 영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웃은 광의적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할 수 있고요. 협의적으로는 우리 가정의 가족과 교회의 성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부인 마음과 뜻 즉 마음과 영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가족과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입니다. 오늘 어린이어버이주일에 이 말씀을 담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형식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즉 모양만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가족과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모양만으로 가족과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들까지 내어주시며 사랑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께만 찾을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랑으로 하나님께 올려야 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마음과 뜻, 마음과 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누구에게요. 가족과 성도에게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가족과 성도들 어떻게 사랑하는 가를 보면, 하나님께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족과 성도에게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께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사랑하듯, 가족과 성도에게 한다면, 그 가족과 성도가 하나님 사랑으로 나와야 합니다. 즉 행복은 하나님에게서만 올 수 있는 것을 내 가족과 성도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한 가족과 성도가,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때, 여러분의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가족과 성도들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이 말씀을 담기를 바랍니다.

 

 

최종 정리

 

예수님께서는 어느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한계도 없고 행복을 주었다가 불행을 주는 대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을 영원히 주실 수 있는 분,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지 않은 분, 하나님으로부터 행복을 찾아야 하고 받아야 하고 누려야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복을 위해 명하신 명령과 규례가 있습니다. 이 요구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본능에 있는 요구의 거역을 물리치고 순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명령과 규례, 하나님의 요구 첫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어떤 뜻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만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주신 팁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야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단사이비 등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외 다른 것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과 교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말씀을 통해서 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의 말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길 가에 뿌려진 씨앗과 같이 마귀에게 말씀을 빼앗기 말고, 좋은 땅에 뿌려져,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100 결실을 맫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을 들을 것을 들어, 하나님의 길을 따른 결과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요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이웃 즉 내 가족과 성도들에게 마음과 뜻을 다하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행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나 자신도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가족과 성도에게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여, 그 가족과 성도들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에게로 부터만 오는 것임을 알 수 은혜가 있기를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세 가지 요구, “하나님만 경외하라”, 신실한 사람을 만나면 신실한 성도가 됩니다. 사람을 구별하여 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만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 하나님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를 때, 하나님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과 뜻, 마음과 영을 다해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나의 가족과 성도들 사랑하여, 그들이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린이어버이주일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행복을 찾고, 받고,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같이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① 예수님은 어느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만이 영원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신뢰가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으로부터 행복을 찾고, 받고 누리게 하옵소서.

②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 주신 명령과 규례 첫 번째,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렇지 않는 자들을 구별할 수 있는 성령의 분별을 주옵소서.

③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 주신 명령과 규례 두 번째,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좋은 땅에 뿌려진 백배의 결실을 맺음과 같이, 말씀을 들을 것을 듣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④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 주신 명령과 규례 세 번째,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마음과 뜻을 다해 섬기고, 이웃, 내 가족과 성도들에게도 마음과 뜻을 다하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5월 가정의 달에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에게로 부터만 오는 것임을 아는 모든 가족과 또 하나의 가족인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