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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삼상 17:12-30) 이재현목사(23.08.20)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8. 20. 18:14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말씀 : 사무엘상 17:12-30

 

1. 다음 이새의 아들들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는 엘리압, 아비나답, 시므아, 느다넬, 랏대, 오셈, 엘리후?, 스류야, 아비가일, 다윗까지 많은 아들이 있었습니다(삼상17:12). 이 중에 장자 엘리압은 특히 이새의 자랑이었습니다(참고/삼상16:6)). 비록 베들레헴 변두리에서 양이나 치는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엘리압은 자랑스러운 큰아들이었습니다. 엘리압은 동생 아비나답, 삼마와 함께 당시 블레셋과 전쟁에 참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애국심도 대단히 컸습니다(삼상17:13). 그러나 말째 다윗은 사울의 왕궁과 베들레헴을 오고 가며, 양이나 치고 아버지 잔심부름하는 아직 마음에 놓이지 않는 아이에 불과했습니다(참고/삼상17:17-19). 그러나 다윗은 진영陣營에 있는 형들을 만나고 오라는 아버지 심부름에, 다음날 일찍이 일어나 떠나기 전 양 떼를 다른 목자에게 맡기는 책임감을 보였습니다(삼상17:20). 그런데 마침 형들이 전쟁터로 떠난 후인 것을 알고, 음식이 담긴 을 감시병에 맡기고, 최전선을 향해 한숨에 달려가, 아버지의 안부를 전합니다(삼상17:20-22). 다윗이 겁쟁이였다면, 대적 블레셋이 있는 전장戰場에 갈 필요도 없고, 진영에서 형들 생사나 확인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직접 형들을 만난 용감함을 보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보인 책임감과 용감함은 아버지 이새가 생각한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성도님은 부모에게 어떤 자녀이었습니까?

 

 

 

 

 

2. 다음 골리앗에게 치욕을 당하는 이스라엘과 엘리압에 꾸지람을 듣는 다윗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다윗이 오랜만에 형들하고 재회 담소를 나누던 중 블레셋에서 괴성을 듣게 됩니다(삼상17:23). 키가 3m에 달하는 적장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삼상17:4-8,9,2). 그러나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삼상17:24). 오죽하면 사울 왕이 골리앗을 죽이면 많은 재물로 상을 주고, 딸을 주어 사위로 삼고, 그 집안 식구 모두에게는 세금과 병역의 의무를 면제해 준다고 공고까지 하였겠습니까?(삼상17:25). 이스라엘은 치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라며, 군인들에게 마다 호소를 합니다(삼상17:26). 이 당돌한 말을 들은 큰 형 엘리압이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이 센 녀석, 네가 전쟁을 구경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며 그 많은 군인 앞에서 면박을 줍니다(삼상17:28). 이에 다윗이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며, ‘돌아서서행했습니다(삼상17:29-30). 지금 다윗의 대적對敵은 골리앗이 아니라 엘리압입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동생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마냥 어린아이로 알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의지를 꺾어 버린 것이 바로 엘리압입니다. 다윗의 대적은 엘리압입니다. 다윗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형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자신이 싸워야 할 진짜 싸워야 할 대적, 진짜 대적은 골리앗이지 형 엘리압이 아닌 것을 안 것입니다. 최근 나의 진짜 대적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구나고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3. 다음 돌아서서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엘리압은 다윗의 대적으로 진짜 대적 골리앗을 못 보게 하는 대적입니다. 엘리압을 떠나 진짜 대적인 골리앗에게로 갔습니다. 만약 여기서 떠나지 않고 형 엘리압과 계속 논쟁을 했다면, 예기치 못한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적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대적인 사탄은 뒤로 한 채, “다 내 맘 같은 줄 알아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못 믿을 사람으로 여겨버리면 안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탄의 계략에 빠지는 꼴입니다.

사탄은 헛된 곳에 힘을 소비하고, 혈기로 분탕질을 하고, 사랑할 사람을 자꾸 잃게 됩니다. 우리의 진짜 대적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 사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자기가 진짜 대적인 것을 숨기고,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이 대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성도들 사이를 가족 사이를 불신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지금 나를 막고 서 있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 뒤에 정작 내가 감당해야 할 대적이 누구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아비 이새도 형 엘리압도 알지 못했지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양을 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산 역사입니다. 양 떼를 칠 때, 사자와 곰이 와서 양을 움키면 사자와 곰을 쫓아가서 막대기로 치고, 그 입에서 양을 건져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확신한 것이 있었습니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도 건져내신 하나님께서는 저 무시무시한 적장 골리앗에게서도 건져내시고 이기게 하시리라는 믿음입니다(삼상17:34-36). 그 결과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군대 최고 지휘관이 되고, 훗날 이스라엘이 낳은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삼상17:49-50,18:5;삼하2:7,5:3).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산 역사가 체험되는 능력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4. 다음 비전 있는 사람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21세기에 바람직한 기업가가 가져야 할 자질에 관한 설문 조사를 CEO들을 대상으로 한적이 있는데요. 오늘 말씀 교훈과 삶에 적용할 수 있기에 인용하고자 합니다. 첫째 비전 있는 사람입니다. 사원들에게 가야 할 방향과 기여 할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을 영어 성경에는 ‘leaders’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3:17). 지도자인 리더들이 일을 추진해 가는 것을 ‘leadership’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적 리더십은 무엇입니까?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는 사람, 영혼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13:17). 이것은 교역자만이 아니라 평신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은 세상의 지도자라는 것입니다(5:13-14). 우리는 구원받는 순간부터 다른 영혼을 인도할 지도자입니다. 한 영혼이 예수를 믿고 위대한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이 있어야 지도자입니다. 한 영혼에 대한 비전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한 영혼을 위해 보살피고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장차 하나님께 자기가 한 일을 낱낱이 아뢰어야 할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13:17).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한 것이었는가를 회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그 출발점은 목동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삼상17:34-37). 양 한 마리 없으면 그만이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과 싸우는 것 얼마나 무모한 짓입니까? 그것은 한 마리의 비천한 양이지만, 다윗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기업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업은 바로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간절함이 한 영혼 한 민족 한 국가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영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비전으로 갖기 바랍니다(8:36).

 

 

 

 

 

5. 다음 코페르니쿠스적인 개혁 정신을 가진 사람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시오.

 

코페르니쿠스’Nicholas Copernicus,1473-1543은 천동설을 믿던 시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설파했습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적이란 획기적이다”, “개혁적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개혁적입니까? ‘루터’Martin Luthe,1483-1546의 종교개혁운동1517.10.31은 성경을 첫째로 하였고, 이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로 부릅니다. 성경에 비추어 바르지 못한 것들을 늘 개혁해 나간다는 의미의 개혁주의’reformism와 동의어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개혁적이란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성경을 떠나 발전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시대가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욱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를 거쳐 소망하던 왕을 세워 통일 왕국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일개 부족 국가인 블레셋의 골리앗 하나 대항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말이 선민이지 신앙을 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인 어둠을 깨운 사람이 다윗입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대적들 앞에 선포하고, 이스라엘의 영적 대각성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적 개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문명의 혜택으로 누리는 안식보다,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해갑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가면 갈수록 문명이 아니라, 신앙의 중요성이 더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을 붙잡는 것이 코페르니쿠스 개혁입니다.

 

 

 

 

 

6. 다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비전의 메시지, 좋은 말, 희망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대치 중인 이스라엘이 적장 골리앗에게 꼼짝 못 하자, “! 속수무책으로 당하여야만 하는가?”, “!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데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가?”. 군인들을 만나면서 여론을 확산시켜 나갔습니다(삼상17:26,30).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사울에게 전하였습니다(삼상17:31). 사울 앞에 선 다윗은 골리앗으로 말미암아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싸우리이다고 하였습니다(삼상17:32).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의로운 여론은 일말의 희망을 왕과 이스라엘에 안겨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골리앗을 일격에 무너뜨리고, 전세를 완전히 뒤집는 힘이 되었습니다. 위로와 격려가 담긴 신앙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소문의 근원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영혼이 소생하고, 치유와 회복이 나타나며, 부흥의 아름다운 소식을 널리 퍼뜨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희망, , 비전을 보는 역사기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에게 사울의 뒤를 이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삼상16:13). 그렇지만 아버지에게는 양 떼나 치고 잔심부름하는 말째로 형들에게는 철부지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소년이었지만, 양 떼를 치며, 하나님 역사를 보았고, 확고한 신앙을 소유했습니다. 그 신앙이 장정들도 생각할 수 없었던 믿음과 용기 그리고 지도자적 자질을 갖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분들 가운데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과연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영혼의 가슴속에 있는 응어리를 믿음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하는 심각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어떤 커다란 문제 앞에서 돌아서서행하게 하는 신앙이 우리 모임에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산 역사를 체험하는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돌아서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않고, 진짜 대적인 마귀의 계략을 간파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이러한 위대한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①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돌아서서, 숨어있는 대적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은 미천한 양 한 마리를 구하려고 곰과 사자와 싸움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마리 양에 대한 사랑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면 받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② 이스라엘이 소원하던 왕을 세워 통일 국가를 세웠지만, 부족 국가인 블레셋에게 벌벌 떠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찾게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 정신을 갖게 하옵소서.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옵소서.

③ 어린 목동 다윗이 싸우시는 하나님을 외치자, 이스라엘 진영에 퍼지고 왕에게까지 들렸습니다. 다윗의 희망의 소리가 골리앗을 물리치는 역전의 발판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일으켜 세우는 말들, 격려, 위로로 희망을 얻게 하옵소서, 이 지역을 넘어 많은 물소리처럼 울려 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