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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흠뻑 젖은 사람"(벧전 4:8) 이재현목사(23.07.30)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8. 1. 16:46

사랑에 흠뻑 젖은 사람

 

 

하나님말씀 :베드로전서 4:8

 

 

1. 다음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God is Love’. 하나님이 사랑의 기원이고 본질이며 자체입니다. 이 사랑을 알 때 사람은 참다운 인생을 살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의 첫 번째는 누구일까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7.참고/1:11;3:22).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여러 번 예수님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9:7;20:13;3:35.벧후1: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5:9). 순서를 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 그리고 우리에게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관계였는가요?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입니다(1:27;5:17,10:30).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14:31).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항상 행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나사로의 사건을 통하여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감사하옵나니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 내가 알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11:41-42).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17:4-5).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응답되는 사랑이었고, 상호 사랑의 관계 안에 충만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음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실현인 십자가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더욱 극대화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0).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표현이고 외현이고 실현입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있었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표출이고 행위이고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인간의 몸을 입은 성육신, 십자가에 죽으심이, 가장 완전한 사랑이며, 인류 최대의 사건인 것입니다(1:14;2:8).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사랑이 곧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막연하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 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고치셨다고 하셨습니다(1:41.참고/4:23-25;1:39-40;6:17-19,7:14-15).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심정을 대변하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 세상에 죽음과 악한 귀신과 질병과 고통과 슬픔이 찾아 왔습니까?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보고 이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느니라고 한 것입니다(참고/2:12,3:11;5:25,19:37).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44). 예수님이 곧 하나님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신 또 다른 이유는 의인이라고 자만하고 착각하고 위선을 떠는 자들이 아니라,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통회하며 자복하는 자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은 서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욕심도 많지 않다는 등 자신의 선을 열거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머리를 하늘로 향하여 들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 오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18:9-13). 예수님은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18:14).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죄인이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셨지,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자들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납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용납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참고/2:17).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3. 다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예수를 죄인으로 만드시면서까지,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행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독생자를 죽게 하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사랑 할 수 없는 자들도 사랑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희들이 아주 죄인으로 취급하는 세리와 이방인들도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5:46-4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힘이 이 세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랑의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정말 미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부수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미운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 밉다고 나와 함께 살던 가족과 내 정성을 다해 꾸민 가정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이 살면서 미워하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탁 막히고 심장은 요동합니다. 이게 무슨 내 아름다운 가족 있는 가정입니까? 그러나 그 미워하는 사람 하나 때문에 그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억울할 때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데 그것을 예사로 여기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인일 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은 사랑이 없다. 사랑이 고갈되었다라는 것은 일반적인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자라도 사랑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사랑 즉 아무나 할 수 있는 사랑은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그저 둘만의 그저 친구끼리, 조금 더 나아가야 그저 관계 맺고 있는 사람 정도입니다. 이것이 무슨 사회에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믿지 않는 자들도 잘 챙기는 너무 잘 챙기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후자의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을 실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 성도가 앞장서야 하는데 먼저 우리 성도 안에 이 사랑이 충만히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4. 다음 법이 필요치 않은 사랑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랑에는 법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은 재판의 결과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이때는 하고 저 때는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재판대에 판결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재판대를 놓고 이 사람 사랑할 사람 저 사람 미워할 사람하고 있다면, 무서운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어긴다면 죽이려 드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개의지 않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참고/12:9-12;3:1-6;6:6-11). 한 영혼의 생명을 구원하시며, 사랑을 행하였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10). 사랑은 율법을 이긴 것이고,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사랑 없는 계모는 그냥 친 엄마가 하는 것 보고,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무에만 충실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계모에게 아이는 자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3:24). 우리가 성도의 사랑이란? 사람들에게서 가장 고귀한 무엇을 발견하게 되어야 하지요. 그것은 생명입니다. 그 사람을 어떤 선입견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안의 생명을 보는 것이며, 그 생명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한 영혼을 대하는 사랑입니다.

 

 

 

 

 

 

5. 다음 사랑은 자신을 내어버리는 것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모든 것을 통하여 볼 때 사랑은 결국 자신을 내어버리는 것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요. 그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예수님과 같이 자신을 내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친절)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사랑의 송가인 이 말씀은 곧 자신을 내어버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제야 우리는 항상 촉촉한 흡족한 넘치는 사랑 안에 거하고, 베풀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라는 복음송도 있듯이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자신을 내어버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15:11). 이를 영적으로 재해석하면 이 땅에는 항상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완성하러 예수 님이 오셨고, 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자신을 이 세상에 내던져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내가 한 것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요. ‘허다한 죄를 덮는다’. 내가 그에게 내던졌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 원수 같은 사람도 예수로 보이는 것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나를 속일 줄 모르나, 나는 그를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사랑으로 그의 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아주 흠뻑 젖어야 하겠습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변하고, 그것이 의식화되어, 내 생활화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원망과 욕심과 시험 거리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슬로건을 반복하고 반복하여 말씀드립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13:35).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요일4:7). 그리고 본문에도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할지니’. 자신을 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안에서부터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흠뻑 젖고, 그 사랑으로 험악한 이 세상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승리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의 기원이고 본질이며 자체이십니다. 그 사랑 첫 번째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상호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

②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실현인 십자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화목제물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은 표현이고 외현이고 실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면 구원하신 것입니다. 자기의 선을 떠벌이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 엎드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방과 세리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성을 다해도 예사로 여기는 사람들로 속상해하지 말고 우리가 죄인 때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④ 법이 필요치 않은 사랑. 예수님은 안식일 어긴다며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개의치 않고 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볼 때 법이나 단서를 잘지 않고, 그 생명을 바라보며, 주님을 영접하여 영생 얻어야 할 사랑으로 보게 하옵소서.

⑤ 사랑은 자신을 내어 버리는 것.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는다. 이를 영적으로 재해석할 때 이 세상에는 항상 사랑이 부족합니다. 돈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돈이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버리고 버려도 남을 수 있는 우리를 사랑하사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사랑에 흠뻑 젖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