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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출 15:22-27) 이재현목사(23.08.06)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8. 6. 17:29

한 나무

 

 

하나님말씀 : 출애굽기 15:22-27

 

 

1. 다음 하나님의 시험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이스라엘은 홍해의 대역사를 통해 구원받고 감격에 겨워 찬양했지만, 불과 사흘 만에 또다시 옛날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15:22-24).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스스로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너무나도 쉽게 의심하는 이 마음이 치료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광야에서 사는 동안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 바로 불순종과 완학함과 패역함의 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본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시험하셨습니다(15:25). 광야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물 없이 사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중간에 마라라는 함정이 하나 있었습니다(15:23). 이 물은 마실 수 없는 쓴 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계속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던 터라 믿음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사흘이 지났을 때,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는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필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물입니다. 사흘 길을 갈증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 필요하겠습니까? 드디어 중간에 물을 발견했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물입니다. 마시면 무서운 복통을 앓아야만 했습니다. 마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들의 불신앙은 이미 마시지 말아야 할 물을 마셔버린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중간에 시험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목표는 엘림입니다. 마라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다 간 지점에서 무시무시한 원망불평을 하나님께 쏟아 냈습니다. 홍해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병은 너무나도 깊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최근 어떤 시험이 있었고, 그때 어떤 은혜가 예비되어 있었습니까?

 

 

 

 

 

2. 다음 치유되어야 할 본성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목격하고 감격의 찬양을 드렸다고,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깊은 악한 본성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치료하기 위하여 물 없는 고통의 사흘 길을 주셨습니다. 불신앙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주는 시험입니다. 모든 것이 뜻대로 잘되는데 누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한다고 말 못 합니까? 고통이 와야 우리의 믿음이 시험test됩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목말랐을 때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는 전혀 소용없습니다. 모두 쓴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웅덩이로 달려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미움 때문입니다. 빨리빨리 내 말을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증오심입니다. 그러나 그 물은 더욱더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생기는 어려움은 본성을 보게 하는 시험의 고난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고난에 처하면 말씀을 붙들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살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마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독으로 퉁퉁 부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에 부은 상태에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엇인가 비밀스럽게 나름대로 다 살길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내 안에 변하지 않은 본성을 감추고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본성의 치료가 시급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서 하나님 저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강퍅한 마음을 치료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려야 합니다. 솔직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려움의 실상은 내 안에 부패한 본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다음 불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다 쓰러져 버리고 말았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나무를 정하시고 물에 던져 순간 단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물이 되었고, 병 든 자들도 다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15: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죽게 된 것은 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소홀히 했기 때문인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를 생수로 만드셨습니다. 병 든 자들을 다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10가지 재앙으로 종류별로 질병을 겪었지만,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는 한 이 무서운 질병은 하나도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대비가 되어야 합이다. 어려움을 당할 때일수록 그 곤경보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실패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곤두박질하게 됩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살길을 만들어보았자, 그곳은 결국 마라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치료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셨던 그 길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걸어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시험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 보시는 분입니다. 형편이 좋아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믿음이란 어려운 가운데서도 거짓 된 곳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4. 다음 한 나무와 예언의 성취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이스라엘이 마신 마라의 쓴 물은 바로 자기 자신들입니다. 자기 살길을 찾는 불신앙과 패역함과 완악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마라입니다. 이 물을 마시면 온몸이 쑤시고 퉁퉁 부었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추악하고 더러운 독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라를 단물이 되게 한 한 나무는 무엇입니까? 한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자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란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참고/벧전2:24). 마라에 한 나무를 던지니 물이 달아졌다는 것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가리켜 쓴 잔이라고 합니다. ‘고난의 잔이라고 합니다. 인류의 더럽고 추악한 모든 죄가 녹아 있는 것이 쓴잔, 십자가입니다. 내 더러움을 내가 마시면, 온몸이 욱씬 욱씬 쑤시고, 열병이 나고 견딜 수 없는 그 고통을 하나가 아니라 인류의 모든 더러움을 예수님이 마신 잔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나음을 주셨습니다. 구원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18:31), 예루살렘에 입성 후 체포당하기 전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26:24), 겟세마네 동산에서 결박당했을 때 격분한 베드로가 칼을 빼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어버리자, “5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26:53-54),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19:28,30).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음모로 체포되어 희롱과 능욕과 채찍질을 당할 것이며,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까지, 모두가 하나도 남김없이 말씀을 따라 이루신 것입니다.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참고/22:15,69:21).

 

 

 

 

 

5. 다음 하나님 말씀에 절대 복종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절대복종의 극치는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의 대속을 위함이 첫째입니다. 대속의 값이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또한 인간의 정욕과 탐심도 못 박은 것입니다(5:24).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인간의 본성 더러움 반역도 죄와 함께 십자가에서 없애 버리신 것입니다.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십자가는 세상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며, 또한 세상에 대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십자가에서 죄 사함과 함께 우리의 불신앙의 본성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 목적지는 열두 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 엘림입니다. 엘림은 영적으로 천국입니다. 우리의 본향입니다. 그 나라에 가기까지 하나님 말씀을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치료해 주십니다. 일으켜 주십니다. 건져 주십니다. 그 예수님 붙잡으면 우리는 승리합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비밀스럽게 자기 살길 가는 사람이 얻을 것은 마라입니다. 예수님처럼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중국의 지배 아래에 있는 티베트에는 불교의 한 종파인 라마교’Tibetan Buddhism, lama敎가 발달해있습니다. 한때 전체 인구의 1/3이 수도승이었습니다. 라마교에서는 마니퇴’manidui堆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전을 넣은 크고 작은 통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전을 찾은 사람들이 마니퇴를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여깁니다. 경전을 읽지 않자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경전을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종교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웃고 넘기고 말 것이 아니라,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절대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내 패역의 본성대로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 한다면, 내가 성경을 들고 교회에 한 번 올 때마다, 어쩌면 마니퇴를 한번 돌리는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6. 다음 예화를 읽고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을 인용하면서(15:11), 이 구절을 영적으로 재해석 세상에는 항상 사랑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돈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에 돈은 따라가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년 여름 수련회 찬양제에서, 대부분 중학생들로 가사를 숙지 못해 악보를 보면서도, 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고,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찬양을 드린 교회에 적은 액수이지만, 맛있는 것이라도 사드실 수 있도록 남은 수련회 비용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수련회 전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기간에도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갔다 와야 하는 했는데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고 감사의 답신을 했습니다. 사실 수련회 비용이 남은 것은 아니고, 선생님들이 식사와 간식을 사셨고, 지급된 교통비도 반납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남았던 것입니다. 보낸 드린 25만 원은 우리 교회에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쓸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한 분이 1백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6:38), 단순한 예이지만 말씀대로 했을 때,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눕니다, 개인적으로 쓰라고 보냈지만, 교회에 다 드렸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① 홍해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은 불과 사흘이 지나 물이 없다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목말라 죽어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불순종과 패역함과 완악함을 나 자신에게서 바로 보게 하옵소서.

② 하나님은 불신앙의 본성을 아시고 중간에 마라쓴 물로 시험하셨습니다. 마시면 안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빨리 갈증을 해결해 달라고 알면서도 마셨습니다. 이러한 불신앙으로 시험에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③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본성을 보게 하는 시험의 고난입니다. 그때 말씀을 붙들기보다 자기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보았자 마라일 뿐입니다. 그렇게 하다 독에 퉁퉁 부은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말씀 약속을 붙잡게 하옵소서.

④ 한 나무가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었습니다. 한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가 담아 있는 쓴잔을 한 방울도 남기지도 않고 마셨습니다.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나음을 주시며, 갈증을 해갈시켜 주시고, 치료해 주시며, 구원을 주셨습니다. 죽음까지도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절대복종하게 하옵소서.

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응하신 예수님 같은 우리의 삶이 교회와 가정 나아가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때마다 일마다 곳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능력과 복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