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와 순교
예수님은 이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16-17/막2:18-22;눅5:33-39).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는 구약의 율법을 상징합니다. 생베 조각, 새 포도주는 신약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대속입니다. 생명,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롬14:8). 주를 위해서라면 순교의 자리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참고/요21:18). 성경의 선교는 대속, 생명, 순교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며, 인간의 주도로 평화, 일치, 화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대속, 생명, 순교가 없는 배교입니다. WEA, 로잔, WCC에 대속, 생명, 순교가 있는지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죄사함의 권세”(마9:1-8)|이재현목사(2024.11.17)|청아비전교회 주일2부 예배 설교 中
WEA는 GCF를 통해 로마 가톨릭 등 종교는 물론 UN과도 협력 세계의 평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平和는 순교殉敎를 망각忘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종파의 평화 화해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은 그리스도교라는 이름만 가지면, 성경과 신학과 신앙과 관계 없이 일치를 추구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인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계20:4).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거룩한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한데 모든 종교가 구원, 지복至福, 평화라면, 생명 걸고 예수 유일 구원을 증거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 2천년 교회시대 동안 예수 전파하다 죽임당한 순교는 무엇입니까? WEA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소양蘇羊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10년 형을 선고받고, 7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 잠시 풀려난 1939년 2월 첫째 주일 죽음을 목도하면서,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예의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1939년 12월 19일 배교한 평양노회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사님을 파면했고, 1944년 주 목사님은 차가운 감방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동시대 목회자로 백수에 가까운 연세까지 한국교회 성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님은 억압 받았던 일제에는 부역(또는 순응?)하고, 자유 하였던 군사정권에는 유착(또는 축복?)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의 손에는 오직 예수가, 신사참배하고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장수하신 이의 손에는 종교 노벨상이 들려졌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설 날을 사모하며, 손에 무엇을 들어야 할지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Protestant’ 저항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고, 복음이 변질하지 않게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파의 일치를 추구하는 종교다원주의에 ‘저항’이라는 단어가 있습니까? 저항의 끝은 순교입니다. 사도들이 그 길을 걸었고, 종교개혁가들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버리고, 평화로 위장하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면, 프로테스탄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WEA 평화는 순교를 망각하게 합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지복이고 평회라면 생명을 바쳐 예수를 유일한 구원자로 증거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 생명은 순결, 순결은 예수, 예수 위한 순교가 순결입니다. 순교를 망각하는 것은, 순결의 옷, 세마포, 그리스도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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