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내 뜻, 내 선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20:13-16 2025.02.09. 主日禮拜
“포도원의 품꾼들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시다(막10:32-34;눅18:31-34)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한 어머니의 요구(막10:35-45)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시다(막10:46-52;눅18:35-43) 29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마20:1-34)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천국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와 귀신 들린 자 치유를 행하셨던 갈릴리를 떠나, 십자가에 죽으시기 한 달 전부터 베레아와 유대에서 전도하셨습니다(마19:1-2).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는데요(참고/마19:15). 이 시점에서 주님은 다시 한번 천국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천국을 쉽게 깨우치기 위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가 떨어진 ‘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을 통해, 우리에게 ‘좋은 땅’이 되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백 배’가 되라고 하셨습니다(마13:19-23). 좋은 땅과 같은 성도가, 천국 백성입니다. ‘밭의 가라지’ 비유를 통해, ‘추수 때’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 악인은 ‘풀무 불, 지옥에 던져 넣으리니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지만, 의인은 ‘영원한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셨습니다(마13:37-43). 천국 영광입니다. 겨자씨 비유를 통해, 가장 작지만, 나중에는 새들이 가지에 깃드는 큰 나무가 된단다고 하셨습니다(마13:31-32.참고/막4:30-32;눅13:18-20). 천국 승리입니다. 누룩 비유를 통해, 서 말의 밀가루를 모두 부풀린다고 하셨습니다(마13:33.참고/눅13:21). 천국 확산입니다. 보화와 진주 같다고 하셨습니다(마13:45-46). 천국 보배입니다. 그러나 천국 백성, 보배, 확산, 승리, 영광을 모르는 자는 못된 ‘물고기’처럼 버려져, ‘풀무 불’, ‘성 밖’,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참고/마13:48-49,24:51;눅13:28;계22:15). 우리는 천국 비유를 통해 천국의 백성, 보배, 확산, 승리, 영광을 믿는 좋은 물고기로 그릇에 담겨, 주님께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신, 하나님이 ‘하늘에 보좌’에 계신,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천국’에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참고/시11:4;마13:48;요14:2;계4:2, 21:1-2).
그리고도 예수님은 다시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3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인 갈릴리 호수 주변의 가버나움, 벳세다, 고라신만 아니라,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기 한 달여의 시간을 앞두고, 베레아와 유대와 예루살렘까지 이르셔서, 주님이 택하신 자녀들이 천국을 듣고 믿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의 천국 비유는 ‘포도원의 품꾼들’입니다.
주인과 품삯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1). 이 구절에서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를 주목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 간 것은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천국’ 비유임을 볼 때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품꾼’은 성도이고, ‘포도원’은 교회입니다. 지상의 교회가 장차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장터’가 상징하는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어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장터’는 헬라어 ‘아고라’ἀγορά,Agora로 영어로 ‘Forum’or gathering place, assembly 광장, 공회를 뜻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출입하는 여러문들이 있는데요. 그 중 북문에 가면 성문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다메섹 문’Damascus Gate이 나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요. 성경 당시에는 이곳 ‘장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직업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이나, 구경나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2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2-7)
포도원 주인은 동이 튼 이후 일찍 기다리고 있는 ‘품꾼’에게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을 줄 것을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2). 그런데 ‘삼시’ 오전 9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들어) 가고’라고 하였습니다(3-4). ‘육시’ 정오 12시, ‘구시’ 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일과 마감 한 시간 전인 ‘제십일시’ 오후 5시에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 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품꾼’들은 ‘우리를 쓰는 이가 없음이니다’ 답했고, 이에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5-7).
여기서 주인이 부른 품꾼들에게 주어진 일터인 ‘포도원’은 동일한데, 다른 점은 맨 처음 부른 ‘품꾼’에게는 ‘한 데니라온’이라고 품삯을 정한 것과 달리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째 부른 ‘품꾼’들에게는 ‘상당하게 주리라’라는 말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첫 번째 외에 다른 품꾼들은 얼마를 받을지 몰랐지만, 자신들을 불러 준 것에 기꺼이 응한 것입니다. 이상에서 주인이 놀고 있는 품꾼들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일부러 불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인이 오늘 안으로 수확을 마치려고 했고, 거기에 필요한 품꾼을 위해 거의 3시간 단위로 장터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포도를 수확할 때, 포도원을 비우고, 한가하게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주인이 장터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품꾼과 마지막 품꾼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8-16)
날이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들이도록 했습니다(8). 그런데 일당을 지급할 때, 순서는 처음 부른 품꾼부터가 아니고, 맨 ‘나중에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명하였습니다(8). 오후 5시에 온 품꾼은 ‘한 데나리온’을 받자 너무나 기뻤습니다. 주인이 ‘상당히 주리라’고 만했지, 당시 장정 하루 품값인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4). 오후 3시, 정오 12시, 아침 9시에 온 자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자, 각 각의 시간마다 차이가 있는데, 같은 임금에 다소 불만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지만, 만약 오늘 일하지 않았다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에서, 굶을 수 있었던 식구들을 먹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감사했습니다(9). 문제는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와서 주인의 부름을 받은 ‘먼저 온 자’들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10).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분을 참지 못하고,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며, 거세가 항의하였습니다(11-12).
그러나 ‘주인’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하였습니다(13-14). 주인의 요지는 가장 먼저 온 품꾼에게 약속한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고, 그 이후에 온 품꾼들은 내 것 가지고, 내 뜻 안에서, 내 선으로 행한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인의 말에 우리도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하루 10시간 일한 사람과 8시간, 6시간, 3시간, 1시간 일한 사람이 받는 급료가 같다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주인이 하루 10시간 일한 사람에게 사전에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제시했고, 품꾼도 이의 없었으며, 그대로 이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인의 마음을 아는 품꾼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포도원 주인이 단순히 장터에서 놀던 사람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니라, 오늘 중에 수학을 마치려는 가운데 가장 먼저 온 품꾼들로는 일손의 부족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럼 주인이 애초에 일할 양에 맞게 품꾼을 고용하지 못했을까요? 그러나 이 주인이 한두 해도 아니고, 오랫동안 포도원을 경영했다면, 견해를 달리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 계산으로는 먼저 부른 품꾼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품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너그러웠던 주인은 품꾼을 다그치려 하지 않고, 추가로 품꾼을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한편 오후 5시까지 일거리를 찾지 못해 장터에서 놀고 있던 마지막에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들은 1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으나, 주인이 불러 준 것에 고마워 최선을 다해 하루 일할 양을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일하지 않았다면 가족들 모두 굶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시간이었지만, 맨 처음 품꾼의 온 종일 일한 분량 이상으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맨 먼저 온 품꾼들은 어쩌면 주인의 너그러운 성품을 알고 있었을지 모를 입니다. 작년 이맘때 포도 수확을 할 때, 또 다른 작물 소출을 위해 품꾼으로 일한 경험으로 볼 때, 빈둥빈둥해도 시간만 채우면, 꼬박 꼬박 한 달란트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음 날에도 일해 하루 품삯을 더 받으려고, 일부러 일을 늦추는 꾀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어떤 공사를 맡기면 일주일 할 일을 열흘씩 늘리기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꾀를 쓴다고 주인이 몰랐겠습니까? 모를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그러운 주인은 그들을 품꾼으로 다시 기용했고,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고, 그보다 적은 시간에 일한 품꾼들에게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항의하는 맨 처음 일한 자들에게, 내 것 가지고, 내 뜻 안에서, 내 선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중으로 포도 수확을 마치고자, 한 주인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았던 이들은 누구입니까? 맨 나중된 자입니다. 그렇기에 이 비유 후에 주님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16).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된 자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 자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 –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
이 말씀이 ‘천국’ 비유임을 볼 때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품꾼’은 성도이고, ‘포도원’은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지상의 교회가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장터’가 상징하는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부른 자들에게 각 각의 은혜와 각 각의 복과 각 각의 일을 맡기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번째 품꾼 같은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맨 마지막에 부름을 받은 품꾼 같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모든 품꾼에게 동일하게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자, 맨 처음 일한 자들이 항의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인은 내 것 가지고, 내 뜻 안에서, 내 선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선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선을 알 수 있습니다.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1.“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10:35-37))
‘세베대의 아들’이 ‘두 아들’로 나오는데요(20,21),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이라고 하였습니다(막3:17).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살로메’Salome,평안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자매 사이입니다(마27:56;막15:40). 그녀는 주님의 은혜를 받은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 갈릴리 사역에 따라 다니며 섬기었습니다(막15:40-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십자가 아래 있었으며, 안식일 다음날 죽으신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에 갔다가,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여인 중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막16:1).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잘 배웠을 터인데, 살로메는 요한과 야고보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20-21). 살로메는 자기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가 천국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좌편에 앉는 큰 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병행 본문에는 요한과 야보고도 어머니 살로메와 같이 ‘주의 영광중에서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하여’달라고 하였습니다(막10:37). 주님의 영광에 가장 가깝게 있고 싶어다고 했지만, 실상은 주님의 영광 다음을 원한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살로메는 3년간 주님을 따라다녔을 터인데 아직도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세상의 영의정 우의정과 같은 지위가 아닙니다. 살로메와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과 야고보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24.참고/막10:41). 다른 제자들이 요한과 야고보에게 화를 내면서. 너희들만 가족과 생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줄 아느냐, 우리도 그렇게 했다. 너희들만 주님과 3년 동고동락하면서, 고생한 줄 아느냐, 우리도 그렇게 했다. 왜 높아지려면 같이 높아져야지, 너희들만 높아지려 하느냐고, 따지듯 대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5-27.“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2-4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25).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이지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2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도 그와 같이 영의정 좌의정의 권세를 갖고 백성을 강포하려 드느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라고 하십니다(26). 예수님은 이어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십니다(26-27). 너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으뜸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종으로까지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 우리가 하나님의 것, 바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빌2:6-8).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2천 여 년 전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것, 종으로 낮아지사 명을 받드신 분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롬6:22;딛1:1).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은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부름을 받은 품꾼들은 포도원에서는 주인이 명한 대로 해야 합니다. 자기 주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포도원은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명대로 해야 합니다. 다시금 명심합시다.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있어야 합니다. 직분이 클수록 더 낮아져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종을 통하여 하나님 일하여 주옵소서. 직분이 클수록 더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두 번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막10:45))
예수님은 이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28). 삼십 년이 넘은 일입니다. 군 복무 기간도 30개월이었고, 제대 후 5년 동안은 동원예비군으로 1년 4, 5일씩 군부대에 소집되어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 분이 제가 아는 형에게 대신 예비군 훈련을 받아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신원조회 등에 허점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탁을 했겠지요. 옛날 양반과 천민이 있던 시절에는 주인 대신 종이 형벌을 대신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매품팔이라는 직업까지 있었습니다. 흥부가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죄를 지은 양반이 자기 대신 매를 맞을 사람을 구하고, 돈이 필요했던 가난한 백성이 이에 응했던 것이 매품팔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탁을 한 사람은 부탁을 받은 사람보다 나이가 많거나 돈에 여유가 있습니다. 즉 세상의 대속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해 대신 죄 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에서, 대속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 보혈寶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아래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재물 중 한 줌도 안 되는 것을 던져주면서, 내가 범한 큰 벌을 네가 대신 받으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권세로 약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내 대신 네가 고초를 받으면, 후일을 도모해주겠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십자가의 대속물로 버리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Burnt Offering은 화제Offering by Fire로 드려집니다. 불에 불살라져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올려지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두 번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존재를 부각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없어지고 하나님 영광만 나타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2-23.“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10:38-40)).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좌편 우편에 앉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22).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잔’盞이 무엇인지 압니다. 고난의 쓴 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나와 가이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할 수 있나이다’고 대답은 하였습니다(22).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며, 그러나 천국에서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시다”(17-19.참고/막10:32-34;눅18:31-34).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당시에 ‘잔’을 십자가로 바로 이해했는지, 아니면 나중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난 뒤 성령을 받고 나서야 이해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열두 제자 모두 최후는 순교이었습니다. 예수 이름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다가 죽었습니다(참고/요21:18;행12:2;계1:9,20:4).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열두 제자들 모두 주님의 십자가를 따른 것입니다. 순교자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눅22:30.참고/마19:28).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받아야 합니다. 잔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쓴 잔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서 교회를 회상하며, 자신의 목양에 대하여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골1:24). 나의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공동체 성도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가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고난의 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며 주님의 고난을 제가 채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러한 자가 천국에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29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참고/막10:46-52;눅18:35-43)
여기에 등장하는 ‘맹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지 바디매오’로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을 하다가, 무리를 통해 예수님이 지나가시다는 소식을 듣고,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리가’ 시끄럽다며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지만, ‘더욱 소리 질러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참고/막10:46;눅18:35). 예수님이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고,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왔습니다(참고/막10:50).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묻자,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답했고, 주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사’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며,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되었습니다(참고/눅18:42). 그 자리에 있는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렸습니다(참고/눅18:43). 그리고 바디매오는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였습니다(참고/막10:52;눅18:43). 지난 주일 설교에서, 예수님께서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도,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나) 가’버린 청년과 대조적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마19:21-22).
이후에 바디매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많은 사람 가운데 실명이 기록된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예수님 70인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자신이 집이 최후의 만찬 장소와 오순절 성령상리에 탄생한 교회 장소로 사영되었고,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에도 함께 했으며, 바나바의 조카이었고, 사도 베드로의 통역자로 활동했으며,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에 의해 바디매오의 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참고/막14:51-53 ;행12:12,25,15:36-19;골4:10;벧전5:13). 이는 바디매오가 초대교회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로 볼 때 그는 열 두 제자와 함께 십자가, 고난의 잔에 참예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치유 받고, 십자가, 고난의 쓴 잔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있어야 합니다. 종을 통하여 하나님 일하여 주옵소서. 직분이 클수록 더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두 번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존재를 부각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 영광만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받아야 합니다. 잔은 십자가입니다. 고난의 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제가 채울 수 있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리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천국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와 귀신 들린 자 치유를 행하셨던 갈릴리를 떠나, 십자가에 죽으시기 한 달 전부터 베레아와 유대에서 전도하셨습니다(마19:1-2).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는데요(참고/마19:15). 이 시점에서 주님은 다시 한번 천국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천국을 쉽게 깨우치기 위해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등 여러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마13:19-23.참고/마13:31-33,37-43,45-46,48-49,24:51;막4:30-32;눅13:18-21,28;계22:15). 우리는 천국 비유를 통해 천국의 백성, 보배, 확산, 승리, 영광을 믿는 좋은 물고기로 그릇에 담겨, 주님께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신, 하나님이 ‘하늘에 보좌’에 계신,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천국’에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참고/시11:4;마13:48;요14:2;계4:2, 21:1-2). 그리고도 예수님은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로 다시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인과 품삯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1). 이 말씀이 ‘천국’ 비유임을 볼 때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품꾼’은 성도이고, ‘포도원’은 교회입니다. 지상의 교회가 장차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장터’가 상징하는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어, 주인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하듯이,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동이 튼 이후 ‘장터’에 있는 ‘품꾼’에게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을 줄 것을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2). 그런데 ‘삼시’ 오전 9시, ‘육시’ 정오 12시, ‘구시’ 오후 3시, ‘제십일시’ 오후 5시에도 가보니 품꾼들이 있기에 그들에게도 일하도록 하였습니다(3-7). 다른 점이 있다는 맨 처음 부른 ‘품꾼’에게는 품삯을 ‘한 데니라온’로 정한것과 달리, 다른 이들에게는 ‘상당하게 주리라’고 말만 하였다는 것입니다(7). 즉 첫 번째 외에 다른 품꾼들은 얼마를 받을지 몰랐지만, 자신들을 불러 준 것에 기꺼이 응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인이 나중 품꾼들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일부러 불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인이 오늘 안으로 수확을 마치려고 했고, 거기에 필요한 품꾼을 위해 3시간 단위로 장터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포도를 수확할 때, 포도원을 비우고, 한가하게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주인이 장터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품꾼과 마지막 품꾼. 날이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 일당을 지급하도록 했는데, 맨 ‘나중에 온 자로부터 주라’고 하였습니다(8). 오후 5시에 온 품꾼은 ‘한 데나리온’을 받자 너무나 기뻤습니다. 주인이 ‘상당히 주리라’고 만했지, 당시 장정 하루 품값인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4). 오후 3시, 정오 12시, 아침 9시에 온 자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자, 일한 시간 차이가 있는데, 같은 임금에 다소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에서, 자칫 굶을 수도 있는 식구들을 먹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9). 문제는 ‘먼저 온 자’들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10).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분을 참지 못하고,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다’며, 거세가 항의하였습니다(11-12). 그러나 ‘주인’은 태연하게 가장 먼저 온 품꾼에게 약속한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고, 그 이후에 온 품꾼들은 내 것 가지고, 내 뜻 안에서, 내 선으로 행한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것입니다(13-14). 이러한 주인의 말에 우리도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주인이 하루 10시간 일한 사람에게 사전에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제시했고, 품꾼도 이의 없었으며, 그대로 이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인의 마음을 아는 품꾼인가? 포도원 주인은 없는 일을 만들어 일거리를 주려고 장터에 있던 품꾼을 부른 것이 아니라, 오늘 중으로 수학을 끝내기 위해 불렀습니다. 그러면 애초에 주인이 일 양에 비해 품꾼을 적게 뽑았을까요? 경험이 많았던 주인이 그럴 수 없습니다. 먼저 일을 맡긴 품꾼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열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에 너그러웠던 주인은 다그치지 않고, 추가로 품꾼을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맨 마지막 오후 5시에 들어간 품꾼은 주인이 불러 준 것에 고마워 최선을 다해 1시간 동안 하루 일할 양을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맨 먼저 온 품꾼들은 어쩌면 작년에 일한 경험으로 볼 때, 빈둥빈둥해도 시간만 채우면, 한 달란트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런 너그러운 주인의 성품을 안 그들은 일부러 일을 늦추는 내일도 일해서 품삯을 더 받으려는 꾀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들을 품꾼으로 다시 기용했고,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고, 그보다 적은 시간에 일한 품꾼들에게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항의하는 맨 처음 일한 자들에게, ‘내 것 가지고’, ‘내 뜻 안에서’, ‘내 선을 행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인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자입니까?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된 자, 맨 마지막 품꾼이 주인의 마음을 아는 자입니다.
살로메의 요구
사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인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 사이로 은혜를 받은 다른 여인들과 함께 주님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섬겼고, 천사로부터 주님 부활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었습니다(참고/마27:56;막15:40-41,16:1).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말씀을 잘 배웠을 터인데, ‘예수께 와서 절하며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해 달라고 하였고, 요한과 야고보도 그와 같이 간청했습니다(20-21.참고/막10:37). 이들은 주님과 가장 가깝게 있고 싶었다고 했지만, 실상은 주님의 다음 자리를 원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로 화가 잔뜩 나서 왜 너희들만 높아지려느냐 같이 높아지자며 따지듯 대들었습니다(24.참고/막10:41). 지금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3년간 주님을 따라다녔을 터인데 아직도 천국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의 영의정 우의정이 아니라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원하는 하님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셨습니다(25).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것과 같이 하지 말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으뜸이 되려면 종과 같이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25-27).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 우리가 하나님의 것, 바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2천 여 년 전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것, 종으로 낮아지사 명을 받드신 분입니다(빌2:6-8).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롬6:22;딛1:1). 종은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부름을 받은 품꾼들은 포도원에서는 주인이 명한 대로 해야 합니다. 포도원은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명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종을 통하여 하나님 일하여 주옵소서. 직분이 클수록 더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두 번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 예수님은 이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28). 조선시대 후기에 죄를 지은 양반이 자기 대신 매를 맞을 사람을 구하고, 돈이 필요했던 가난한 백성이 이에 응했던 것이 ‘매품팔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대속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해 대신 죗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아래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십자가의 대속물, 대속제물로 버리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불살라져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두 번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존재를 부각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없어지고 하나님 영광만 나타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좌편 우편에 앉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22). 이 ‘잔’盞은 고난의 쓴 잔, 십자가입니다. 나와 같이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할 수 있나이다’고 대답하자,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며, 그러나 천국에서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일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2-23). 리고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셨습니다(17-19.참고/막10:32-34;눅18:31-34). 제자들이 이 당시에 ‘잔’을 십자가로 바로 이해했는지, 아니면 나중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난 뒤 성령을 받고 나서야 이해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열두 제자 모두 최후는 순교이었습니다(참고/요21:18;행12:2;계1:9,20:4).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열두 제자들 모두 주님의 십자가를 따른 것입니다. 순교자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눅22:30.참고/마19:28).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받아야 합니다. 잔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쓴 잔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서 교회 성도들에게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골1:24). 나의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공동체 성도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가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고난의 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며 주님의 고난을 제가 채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러한 자가 천국에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후 길을 떠나실 때, ‘맹인’ ‘거지 바디매오’와 또 다른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을 하다가, 무리를 통해 주님이 지나가시다는 소식을 듣고,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소리쳤습니다. ‘무리가’ 시끄럽다며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지만, ‘더욱 소리 질러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참고/막10:46;눅18:35). 예수님이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묻자,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답했고, 주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사’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며,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되었습니다(참고/눅18:42). 그리고 바디매오는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였습니다(참고/막10:52;눅18:43). 지난 주일 설교에서, 예수님께서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도,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나) 가’버린 청년과 대조적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마19:21-22).
이후에 바디매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많은 사람 가운데 실명이 기록된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예수님 70인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가, 바디매오의 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디매오가 초대교회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로 볼 때 그는 열 두 제자와 함께 십자가, 고난의 잔에 참예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치유 받고, 십자가, 고난의 쓴 잔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세 번째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받아야 합니다. 잔은 십자가입니다. 고난의 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제가 채울 수 있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품삯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주인이 불러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응한 마지막 품꾼같이, 하나님께서 교회로 인도해 주신 부름에 응답하며, 하나님 은혜에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한 것 외에 다른 사람이 받는 것에 관여하지 않게 하옵소서. 먼저 왔다고 자만하고, 나중에 온 이들의 열심을 보지 않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선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되지만,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것, 종의 형체인 사람을 입으신 예수님 같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낮아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종을 통하여 일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두 번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십자가 대속물로 버리셨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아래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제물이 죄게 하옵소서, 나는 없어지고 하나님 영광만 나카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 세 번쩨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시작장애인이었던 바디매오는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고 치유받고 고난의 잔, 십자가를 따랐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받게 하옵소서. 고난의 잔을 외면하지 말고, 주님의 고난을 제가 채울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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