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이 보이거늘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17:1-8 2025.01.19. 主日禮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다(막9:2-13;눅9:28-36)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막9:14-29;눅9:37-43上) 14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없음) 죽음과 부활을 다시 이르시다(막9:30-32;눅9:43下-45)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성전세를 내시다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17:1-27)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교회와 성도를 위해, 이땅에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변화산
본문에 ‘높은 산’으로 기록된 곳은 ‘헤르몬산’Hermon입니다(1). 2023년 10월 7일 개전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467일 만에 전격 합의를 이루었는데요.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마스가 몇 십배 보복을 당했습니다. 하마스 수도 격인 가자지구에서 4만6000명 이상이 숨지고 10만명 이상이 다쳤으며, 수십만 명의 실향민이 발생했고, 가자지구의 거의 모든 주택이 완파되거난 손상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만 아니라, 주변 레바논, 이란, 예멘, 시리아까지 공격을 했습니다. 이 중 시리아의 골란고원Golan Heights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6일전쟁으로 불리리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차지했는데요.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의 분쟁을 막기 위해 골란고원 비무장 완충지대를 설정했는데 이스라엘이 금번에 그곳까지 자악해 버린 것이죠. 저도 성지순례 중에 다녀왔는데요.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시리아가 남산을 차지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경복궁에 위치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리아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죠. 이렇게 군사적 요충지를 이스라엘은 방치 할 수 없기에 전쟁을 통해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안보는 물론 강수량이 매우 작은 이스라엘 물 자원의 15%를 책임지는 경제적 가치 또한 매우 큰 곳입니다. 골란고원 북쪽 끄트머리에 해발 2,769m의 산이 있는데 그 산이 바로 헤르몬 산입니다. 헤르몬산은 만년설萬年雪로 뒤덮혀 있으며, 여기서 녹아내린 물은 갈릴리와 요단 강의 근원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예전부터 헤르몬산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헤르몬의 히브리어 ‘하르 헤르몬’ הר חרמון으로 “거룩한 산”이란 뜻으로 성경에는 ‘헐몬’이라고도 불립니다(시133:3). 안티 레바논 산맥의 남쪽 산. 다메섹에서 남서쪽으로 48㎞ 지점에 있으며, 팔레스타인 북방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엄한 외모와 자연의 혜택으로 인해 시돈 사람들은 ‘시룐’, 아모리 족속들은 ‘스닐’, 가나안 원주민들은 ‘바알 헤르몬’, 이스라엘에서는 ‘시온’ 등으로 부르며 매우 신성시하였습니다(신3:9,4:48;시133:1-3). 이 산은 바산 왕 옥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나, 훗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으로 차지하였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수11:7,12:1,5;대상5:23). 한편, 학자들 가운데는 앞에서 언급한 헤르몬 산의 여러 이름들을 각기 다른 봉우리로 보기도 합니다. 이 산은 그 후에도 초대 교부들의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데, 1년 내내 눈이 덮혀 있다 하여 오늘날에는 ‘예벨 엘-탈리’Jebel el-Thali ‘눈의 산’와 ‘예벨 엘-세이크’Jebel el-Sheikh ‘잿빛 머리털의 산’백발산(白髮山)이라는 아랍어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르몬산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셨다고 하여 우리는 변화산으로 부릅니다.
주님 영광
이 헤르몬산 남쪽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 도시가, 지난 주일 말씀에서 보았던 가이사랴 빌립보이고요. 이곳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했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시며, 큰 칭찬을 하셨습니다(마16:16-17).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육일 ‘엿새’를 유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 헤르몬산에 오르셨습니다(1). 예수님은 헤르몬산에 오르실 때, 베드로 장모 열병을 치유하실 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러 가실 때에도, 아홉 제자를 동산 어구에 남겨두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을 대동했습니다(막1:29,5:37,14:33-34). 예수님은 열두 제자 가운데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더 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별도의 가르침을 얻도록 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조언과 권유와 위로를 드릴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2025년 임명된 제직과 부서장이 있습니다. 또한 공석 중인 자리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자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종의 은혜를 축복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세 제자에게 별도의 가르침 가운데 본문에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2). 헤르몬산 정상에서 벌어졌기에 이 사건을 변화산상의 기적으로도 부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는 것은 장차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세 자자에게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엿새 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로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마16:21). 이제 그들에게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을 때의 모습을 눈으로 보게 하신 것이지요. 죽음이후에 영광을 입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고전15:40).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속하신 분으로 이 세상에 내려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원래 가지고 계신 ‘하늘에 속한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예수님이고, 이 하늘의 영광을 세 제자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주의 영광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고후3:18).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입을 영광을 예수님이 영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 하였습니다(고전15:41). 이 세상에서도 각 각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최상의 영광은 대통령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의 자리에 있다가도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77년동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빌3:19). 세상의 영광은 거짓, 위선, 기만, 사귀, 배신이 난무합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영광을 따르는 자들의 ‘신은 배(욕심)요’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라고 하였습니다(빌3:19). 우리는 그런 영광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 제자에게 미리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은 우리가 그 영광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빌3:21). 우리는 장차 부활한 영광의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며, 함께 유리 같은 맑은 정금으로 깔린 그 영광스러운 천국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계21:21,22:4).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주님 증언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변화하신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3).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참고/민12:8).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하였습니다(신34:10). 모세는 하나님과의 내밀한 대화를 나눌 정도의 친분 관계에 있던 선지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눅24:44). 모세는 철저히 오실 메시아 예수를 예언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는 말씀입니다(참고/요1:45,5:46-47;행3:22,7:37,26:22-23). 모세는 자신이 예언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을 앞설 수 있는 어떤 인간도 존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토록 위대한 선지자 모세도 예수님을 예언한 한 선지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시점으로 볼 때, 모세는 율법을 받은 자로서, 율법을 받은 이후 최초의 선지자이고,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신 최후의 선지자입니다(참고/신18:15-19;마5:17;행3:22-23,7:37,롬13:10). 모세는 자신이 받은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모세와 함께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심이 특별했으며(왕상19:10;롬11:2-3), 엘리야는 이방신에 빠진 북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 선지사 사백 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고 하였고(왕상18:19).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호통을 쳤습니다(왕상18:21).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물리치고 그들을 처단한 것을 백성들에게 명했습니다(왕상18:40). 이렇게 엘리야는 우상 숭배 타파에 앞장서고, 여호와 유일 신앙 사수에 일념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왕상17-19장).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상과 무속과 미신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금 모습은 대한민국의 애재哀哉입니다. 대통령 내외의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굿을 매월 동일시에 계룡산 등 전국 5대 명산에서 각각 수천만을 드려서 벌이고 있고, 대통령실 4급 행정관에 특채로 역술인을 채용 누구와 일을 해야 맞는가를 점괘를 보도록 하였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밤 10시 30분’을 한자로 풀면, 十ニ월(王), 三일 十시(王), 三十분(王), ‘王’ ‘王’ ‘王’, ‘王’자가 세 개가 된다는 말이 나돌았었습니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 선포 43일 만에 체포된 시각인 10시 33분을 한자로 풀면, 十시 三十三분으로 ‘王’ ‘王’, ‘王’가 두 개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다가 국민들이 일상을 점괘로 풀며 사는 세상이 될까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민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우상을 몰아내고 지키고자 했던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라는 유일 신앙은 엘리야가 예표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을 통해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 오실 길 예비로 이어졌습니다(참고/사40:3;말4:5;마3:3,17:10-13;막1:3;눅1:15-17,3:16). 이렇게 엘리야는 자신이 증거한 여호와 유일 신앙이 자신을 예표하고 있는 세례 요한이 증거한 유일한 구원자인 예수님을 변화산에서 직접 보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물리친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예수님 보다 앞에 설 수 없고, 예수님을 예언한 선지자이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주님을 증언한 선지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영광을 본 우리는 주님 증거에 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영혼 구원에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전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갈 때, 놀라운 주님의 일하심이 있을 줄 믿습니다.
주님 말씀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세 제자에게 ‘보이거늘’(3).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유대인들이 높이 받들고 우러러 보는 구약의 대표적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고, 그들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 그리스도, 왕으로 고백한 예수님을 예언한 것을 알았으며,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이 감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4). 한때는 ‘초막 셋’을 교회 예배당, 비전센터, 묘지로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전망 좋은 저택, ‘Holiday’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별장, 정기적으로 임대 수입을 낼 수 있는 빌딩. 베드로는 영광스럽게 변형되신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존경에 마다하지 않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 그 분들을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지금 그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는 말씀이 들려옵니다(5).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누구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까? 주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인 것입니다(골1:15).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님의 음성은 들은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고 하셨습니다(6-8).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떠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은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지자, 그들이 그들이 눈을 들고 보니, 모세도 엘리야도 없고 예수님 만 자신들 앞에 있었습니다. 지금 세 제자들 눈에는 누구만 보이고 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들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을 듣는 자는 주님만 보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눈을 뜨면 누가 가장 먼저 떠 오릅니까? 오늘도 살아가야 할 험악한 세상이 생각나나요? 아니면 주님인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어느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님인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중대한 일에도 가장 먼저 누구의 도움을 믿습니까? 주님인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주님만이 보인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4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35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3:34-36). 주님만이 보이는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고, 그에게 가장 큰 복 영생을 주시고,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만물을 맡기실 줄 믿습니다(참고/요14:14). 주님은 우리에게 만물을 맡기셨습니다. 만물 안에 있는 수없이 많은 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할 때, 주님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가장 먼저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중대한 일에도, 사람에게 찾아가고,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사람에게 사정을 말하지 말고, 가정 먼저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자는 주님 말씀을 듣십니다. 주님 말씀을 듣는 자가 주님 만을 보게 됩니다. 그에게 가장 크고 첫 번째 복인 영생과 만물 안에 있는 많은 복도 넘치게 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사람
변화산에서 세 제자들이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9). 부활의 영광 또한 하나님이 택하신 주님의 백성들만이 볼 수 있지, 그렇지 않는 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14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는 주님 말씀을 새기고 새겨야 합니다(마13:14-16.참고/눅8:10).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로 더 나아가 보지 않고도 주님을 믿는 복있는 주님의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참고/요20:29).
이어서 예수님에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들이 물어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고 하였습니다(10). 아마도 제자들은 구약에 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메시아, 예수님이 오시기 전 엘리야가 와야 한다고 했는데, 그 엘리야가 누구를 예표하는 지 아직도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한 세례 요한입니다(눅1:17). 예수님은 아직도 구약에 오리라고 한 엘리야가 세례 요한임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셨고, ‘그제서야 제자들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고 하였습니다(11-13.참고막9:2-13;눅9:28-3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에 오리라고 한 엘리야가 예표하는 세례 요한이 이미 왔고, 그가 오실 길을 준비한 메시아 예수님이시고, 헤롯에게 감옥에 갇히고 끝내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 같이 예수님 또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정리를 해 주시고 다시 한번 죽음과 부활을 이르셨습니다.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22-23.참고/막9:30-32;눅9:43下-45).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고후7:10).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7:10). 주님의 영광을 보고도 세상적으로 판단하면 맞지 않기에 근심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광을 보고 신앙적으로 분별하면, 예수님이 나를 주님 사람으로 세우고자 함을 알고, 좀 더 그 뜻에 부합하기 위해 거룩한 근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근심할 때, “당신이 이렇게 지쳐있는데 지금은 하지 않아도 돼”는 사람의 위로가 들려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막아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신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마16:23).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주님 사람입니다.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세상적 판단을 물리치고 신앙적 분별로 주님 뜻에 부합하기 위한 거룩한 근심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능력
에수님께서 세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14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고 하였습니다(14-16).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을 때 주님의 다른 제자와 무리가 산 아래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제자들을 청했으나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환자를 ‘이리로 데려오라’명하시고,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17-18).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고치지 못한 귀신들려 간질하는 아이를 깨끗하게 치유하시자, ‘19제자들이 (무리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여쭙자, 예수님은 ‘20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19-21.참고/막9:14-29;눅9:37-43上).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고 하신 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막16:15-18). 예수님이 세 제자와 산에 올라계셨을 때, 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은 주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주님 능력이 임합니다. 주님 믿음과 주님 능력은 같은 거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주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주님을 믿는 자입니다.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주님 믿음이 주님 능력입니다. 주님 능력이 나타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임재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24-27)
예수님 당시 유대의 20세 이상된 남자들은 유대력 ‘아달월’the month Adar, 태양력 2-3월경에 ‘성전세’聖殿稅를 납부해야 했습니다. 일명 ‘생명의 속전’에서 기원된 것인데요(출30:12-16,38:25-26). 부자나 가난한 자 구분 없이 성인 한 사람당 노동자 이틀치의 품삯에 달하는 반 세겔Shekel을 의무적으로 드렸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 포로 생활이후, 빈핍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1/3 세겔로 그 액수를 줄여 새롭게 성전세를 책정하기도 하였으나(느 10:32), 신약 시대에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거둬들인 성전세로 예루살렘 성전의 수리와 유지를 위해 쓰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침 성전세를 거두고 있을 때 가버나움에 가셨고, 그때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찾아와서 예수님의 성전세를 요구한 것입니다. 배드로는 그에게 있단 주님도 내신다 말하고 집으로 가게된 상황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으셔도 되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성전세를 낼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면세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가 그 말씀입니다(26). 그렇지만 예수님은 세금을 내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입니다(27). 만일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큰 반발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온갖 비난을 가했을 것입니다. 또한 무리도 자신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선생께서 성전세를 내지 않았다며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요컨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 하나님 나라 일에 지장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큰 의를 이루기 위하여 내지 않아도 될 세금까지 기꺼이 내신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헌금으로 운영됩니다. 성도들은 자기 수입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헌금을 드립니다. 그 헌금 중 일부를 목회자의 사례비로 드립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도 세금을 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중과세입니다. 그러나 빛과 소금이 될 교회로서 세상과 의미 없는 사안에 논란 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성전세를) 주라’고 하셨습니다(27).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그 동전으로 성전세를 내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기적은 세상 권력이 얼마나 힘없는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입니다. 세상 군왕의 권력과 비견될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입으로 동전을 물게 하고, 그 물고기를 낚아서, 동전을 성전세로 납부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찮은 물고기로도 세상 권력을 일거에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성도가 국가의 시민으로 준법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신앙 위에 준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의 눈으로 영의 일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교호 밖의 시각으로 교회 안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육적 시각으로 영적 사안을 보는 것은 자칫 하나님께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준법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철저한 준법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예배와 헌신 침해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자입니다. 준법의 잣대로 교회를 보지 말고 주님 임재로서 교회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성도들의 공동체인 청아비전교회에 주님 임재인 주님 역사, 주님 통로, 주님 기적을 축복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성도들 가정에 주님 임재인 주님 역사, 주님 통로, 주님 기적을 축복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성도들 기업에 주님 임재인 주님 역사, 주님 통로, 주님 기적을 축복합니다.
정리
변화산
‘높은 산’은 ‘헤르몬산’Hermon을 가리킵니다(1). 헤르몬산은 골란고원의 북부 이스라엘·시리아·레바논 접경지에 있는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또한 해발 2,769m인 헤르몬산은 만년설萬年雪로 뒤덮혀 있으며, 여기서 녹아내린 물은 갈릴리와 요단 강의 근원이 됩니다. 강수량이 매우 적은 팔레스타인에서 헤르몬산 수원水原은 이스라엘 물 자원의 15%를 책임지는 경제적 가치 또한 매우 큰 곳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예전부터 헤르몬산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헤르몬의 히브리어 ‘하르 헤르몬’ הר חרמון으로 “거룩한 산”이란 뜻으로 성경에는 ‘헐몬’이라고도 불리고, ‘시온’으로도 불립니다(신4:48;시133:3). 이 산은 바산 왕 옥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나, 훗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정복되어,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었습니다(수11:7,12:1,5;대상5:23).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변형되셨다 하여 우리는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주님 영광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유하시던 예수님은 육일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 헤르몬산에 오르셨습니다(1). 예수님은 헤르몬산에 오르실 때, 베드로 장모 열병을 치유하실 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러 가실 때에도, 아홉 제자를 동산 어구에 남겨두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만을 대동했습니다(막1:29,5:37,14:33-34). 예수님은 열두 제자 가운데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더 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별도의 가르침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조언과 권유와 위로를 드릴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은혜로 순종의 은혜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세 제자에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2). 이것은 장차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세 자자에게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2). 엿새 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로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6:21). 이제 죽음 이후에 부활의 영광을 입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속하신 분으로 이 세상에 내려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원래 가지고 계신 ‘하늘에 속한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고전15:40). 그것이 부활의 예수님이고, 이 하늘의 영광을 세 제자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주의 영광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고후3:18).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입을 영광을 예수님이 영광을 보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15:41). 이 세상에서도 각 각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최상의 영광은 대통령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신은 배(욕심)요’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라고 하였습니다(빌3:19). 우리는 그런 영광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 제자에게 미리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은 우리가 그 영광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우리의 낮은 몸을 (예수님께서)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빌3:21).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주님 증언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변화하신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3).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참고/출33:11;민12:8). 모세는 하나님과의 내밀한 대화를 나눌 정도의 친분 관계에 있던 선지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모세도 나를 예언하엿다고 하였습니다(눅24:44.참고/요1:45,5:46-47;행3:22,7:37,26:22-23). 예수님을 앞설 수 있는 어떤 인간도 존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예언한 주님을 만난 모세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불리쳤고,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길 것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왕상18:21,40). 엘리야는 우상 숭배 타파와 하나님 유일 신앙 사수에 일념을 가졌습니다(왕상17-19장).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상과 무속과 미신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일상을 점괘로 풀어가는 나라가 돼서는 안 됩니다. 엘리야가 예표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을 통해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 오실 길 예비로 이어졌습니다(참고/사40:3;말4:5;마3:3,17:10-13;막1:3;눅1:15-17,3:16).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예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주님을 증언한 선지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영광을 본 우리는 주님 증거에 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말씀
주님의 세 제자는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구약의 대표적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3).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이 감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4). 큰 기쁨 가운데 지금 그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5). 하나님은 세 제자에게 주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인 것입니다(골1:15).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손길로 제자들을 어루만지자, 두려워 떨던 그들이 눈을 들고 보니, 모세도 엘리야도 없고, 주님만 자신들 앞에 있었습니다(6-8). 여기에서 하나님이 들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을 듣는 자는 주님만 보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눈을 뜨면 누가 가장 먼저 떠 오릅니까? 어느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기도하고 있습니까? 중대한 일에도 가장 먼저 누구의 도움을 믿습니까? 주님인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주님만이 보인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주님만이 보이는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고, 그에게 가장 큰 복 영생을 주시고,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만물 안에 있는 만은 복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참고요3:34-36,14:14). 우리는 아침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할 때, 주님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가장 먼저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중대한 일에도, 가정 먼저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자는 주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 말씀을 듣는 자는 주님 만을 보는 자입니다. 그에게 가장 크고 첫 번째 복인 영생과 만물 안에 있는 많은 복들도 넘치게 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사람
변화산에서 세 제자들이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9). 부활의 영광 또한 하나님이 택하신 주님의 백성들만이 볼 수 있지, 그렇지 않는 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우리는 ‘봄으로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하신 주님 말씀을 새기고 새겨야 합니다(마13:14-16.참고/눅8:10). 더 나아가 보지 않고도 주님을 믿는 복있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참고/요20:2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에 오리라고 한 엘리야가 예표하는 세례 요한이 이미 왔고, 그가 오실 길을 준비한 메시아 예수님이시고, 헤롯에게 감옥에 갇히고 끝내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 같이 예수님 또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10-13.참고/막9:2-13;눅9:28-36).
그리고 다시 한번 죽음과 부활을 이르셨는제 제자들은 ‘근심’ 하였습니다(22-23.참고/막9:30-32;눅9:43下-45).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7:10). 주님의 영광을 보고도 세상적으로 판단하면 맞지 않기에 근심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광을 보고 신앙적으로 분별하면, 예수님이 나를 주님 사람으로 세우고자 함을 알고, 좀 더 그 뜻에 부합하기 위해 거룩한 근심을 갖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주님 사람입니다.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세상적 판단을 물리치고 신앙적 분별로 주님의 뜻을 위한 거룩한 근심을 갖고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능력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을 때 주님의 다른 제자과 무리가 산 아래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제자들을 청했으나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14-16). 이에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환자를 ‘이리로 데려오라’명하시고,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17-1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귀신들여 간질하는 아이를 깨끗하게 치유하시자, ‘19제자들이 (무리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여쭙자, 예수님은 ‘20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19-21.참고/막9:14-29;눅9:37-43上). 주님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주님 능력이 임합니다(참고막16:15-18). 주님 믿음과 주님 능력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주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주님을 믿는 자입니다. 주님 믿음이 주님 능력입니다. 주님 능력이 나타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임재
이스라엘은 성인 한 사람당 노동자 이틀치의 품삯에 달하는 반 세겔Shekel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도록 하여, 성전의 수리와 유지를 위해 사용했습니다(참고/출30:12-16,38:25-26;느10:32). 예수님이 마침 성전세를 거두고 있을 때 가버나움에 가셨고, 그때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찾아와서 예수님의 성전세를 요구했습니다(24-27.).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면세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가 그 말씀입니다(26). 그렇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내셨습니다(27).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으셨을 때, 찬반의 논란 등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 하나님 나라 일에 지장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헌금으로 운영됩니다. 성도들은 자기 수입에 세금을 징수하고 헌금을 드립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도 세금을 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중과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교회로서 의미 없는 사안에 논란 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가 입으로 동전을 물게 하고,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낚아서, 동전을 성전세로 납부하게 했습니다(27). 예수님은 하찮은 물고기로도 세상 권력을 일거에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국가의 시민으로 준법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신앙 위에 준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적 시각으로 영적 사안을 보면, 하나님께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자입니다. 준법의 잣대로 교회를 보지 말고, 주님 임재로서 교회를 보아야 합니다. 청아비전교회에 주님 임재인, 주님 통로, 주님 역사, 주님 기적을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①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입을 영광을 보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부끄러움이요 멸망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종착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 영광이 우리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② 구약을 대표하는 위대한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도 예수님을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영광을 본 자로서, 주님 증거에 전력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가장 기뻐하며 맞이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은 주님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영광을 본 자로서, 주님 말씀 만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고 중보하는 이들이 주님 말씀을 듣는 자로 주님 만 보게 하옵소서. 가장 크고 첫 번째 복인 영생과 만물 안에 있는 많은 복도 넘치게 받게 하옵소서.
④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주님을 믿는 자입니다, 주님 믿음과 주님 능력은 하나입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 능력을, 교회, 가정, 기업, 자녀, 전도 대상자들에게 내리어 주옵소서.
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본 주님 임재를 아는 자입니다. 세상 준법의 잣대로 교회를 보지 말고, 주님 임재로서 교회를 보게 하옵소서. 청아비전교회에 주님 임재인, 주님 통로, 주님 역사, 주님 기적을 날마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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