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가 WEA 지지를 결의했는가?
이재현목사
최근 WEA 서울 총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이영훈, 오정현목사)에서, 개 교회에 발송된 WEA 홍보물에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이하 합동) 제104회 총회에서 WEA를 교단의 신학과 정체성에 일치한다고 결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합동 총회에서는 WEA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 했습니다.
제44회 총회(1959)에서, “NAE(WEA의 지역 본부)를 탈퇴”하기로 결의했습니다(죽산 박형룡 박사께서는 WEA는 WCC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2013년 WCC 제13차 부산총회 후, 2014 WEA 서울 총회 유치를 발표했고(확정2011년),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길자연 목사)가 주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센 반발로 WEA 서울총회 무기한 연기라는 사실상 유치가 철회되었습니다.
제94회 총회(2009)에서 모 목사(현,증경총회장)께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견인해야 하는 우리 교단이 50년 전, 40년 전 문제 때문에, 통합이나 WCC에 대해 관계되는 것 가운데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겠지만, 일방적으로 WCC를 반대하는것 때문에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게 되었다며, 어떤 면에서 화합과 일치되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지킵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은 WCC를 옹호하는 것이며, 에큐메니컬 운동과도 함께 하자는 것으로, 총회 결의 위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09년은 WCC로 통합과 분리된 지 50년(1959)이 되던 해입니다. 그 당시 WEA도 탈되하기로 했었습니다. 위 분의 주장대로 40-50년 전의 일이라고 여긴다면, WCC, WEA가 종교개혁 후, ‘Protestant Motive’인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Scripture’ 오직 말씀, ‘Sola Cristo’ 오직 예수로 돌아왔습니까? 그곳에 ‘Soli Deo Gloria in Aeternum!’ 영원히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총회라는 공개석상에서 WCC지지 발언이 있은지 10여 년이 지난 후, 그 흐름에 부합이라도 하듯이, 일부이지만, 총회의 지도자들과 신학자, 목회자들이 제104회 총회(2019)에서, “WEA가 우리 총회가 지켜오고 추구하는 신학적 입장과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어 교류 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학부 보고를 받기로 가결”하였습니다. 아마 이것을 가지고, WEA 서울 총회 조직위원회에서, 마치 합동 총회가 WEA 지지를 가결한 것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회 이후 WEA에 대한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되었고, 제105회 총회(2020)에서, “WEA 신학 연구 요청 관련 헌의의 건은 신학부로 보내기로 가결”하였습니다. 이에 연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당시 위원장 한기승 목사(광주중앙교회)는 3차례 공청회 이후, WEA는 신복음주의이므로 본 교단과 그 구성원은 WEA에 가입 또는 교류, 협력해서는 안되다는 견해를 밝혔고, 그 외 연구위원 4명 중 1명은 신학적·사역적 교류 불가 또 다른 1명은 신학적 교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제106회 총회(2021)에서, “위원회의 처리 보고, 제1안(본 교단과 구성원은 WEA가 신복음주의임으로 가입하거나 교류해서는 안 된다)과, 제2안(제104회 총회 결의-WEA와 교류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를 유지하되 WEA의 신학적 흐름에 대하여 연구하고 주시한다)에 대하여는 유관 안건을 다루는 정치부 보고 시에 다시 다루기로 했고, 정치부에서는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결의 유보를 권고하기로 가결”하였습니다. 이처럼 합동 총회에서는 WEA 지지를 결의한 바 없습니다. 현재 증경단회(회장 김선규 목사)에서도, WEA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조사가 진행 중이고, 추후 입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2024년 6월 25일 서울 서초동 소재 한 교회에서 WEA의 선교운동으로 태동한 로잔대회를 위한 ‘Lausanne Global Partners’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때 모 목사는 “복음주의 기치를 표방하는 세계교회와 협력하여 ‘로잔 운동의 정신(신복음주의=신자유주의)’을 승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는 세계선교의 절박성을 느끼고, 온 성도들이 목자의 심정을 통감하며, 세계의 사명을 위해 기도해 오고 있다면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말씀 안에서 전략을 모색하며 기도하는 로잔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복음주의 교회지도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구체적인 선교 전략을 세운데 있어서 교회와 협력하고 헌신하고자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분의 친제親弟로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상기에 WCC를 옹호하기도 한 모 목사는 2024년 5월 10일 한국교회총연합회(대표회장 장종현 목사)와 한국로잔위원회(이사장 이재훈 목사)가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최근 세계는 K 컬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시기에 로잔대회가 세계 2위 선교국가인 대한민국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총을 재발견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멘텀Momentum을 마련하는 시간이 되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제106회 총회(2021)에서,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결의 유보를 권고하기로 가결하였다고 하였는데요. 어쩌면 그 윤곽이 자명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합동 총회를 대표하는 교회의 담임자인 이 두 분께서, 이제는 2025년 WEA 총회에 앞장 서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모두 경성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 18:8
WEA와 성경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을 믿지만, WEA는 성경의 ‘무류성’無謬性,infallibility을 말합니다. 성경의 무오성은 구원의 교리는 물론 역사와 사실과 과학에 오류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성경의 무류성은 구원의 교리는 틀림이 없으나, 역사, 사실, 과학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배우면서 대홍수에 대해 나누었는데요. 방주에 승선한 노아와 가족은 구원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방주와 대홍수가 역사적, 사실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나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믿는데,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광풍이 잔잔해졌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성경 무류설은 성경 불오성不誤性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WEA는 성경의 무오성,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고의 감사”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 | 이재현목사(2024.11.24.) | 청아비전교회 주일2부 예배 설교 中
*WEA는 신앙선언 1조 “성경을 원래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신적으로 영감된 무류한,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으로서, 그리고 신앙과 행위의 모든 사안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로서 믿는다.”를 근거로 자기들이 정통 개신교 성경관을 견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사는 성경의 영감과 완전함 자체에 있지 않고, 성경 해석의 실제적 적용성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본성과 관련해서는 성경의 무오(無誤,inerrancy)를 확정하고, 권위있고 확실한 기능과 관련해서는 성경의 무류(無謬,infallibility)를 확정한다”(데이비드 F. 웰스David F, Wells)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이는 성경의 오류를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벤쟈민 B. 워필드Benjamin B. Warfield가 “성경은 뜻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지니고 있다”라고 한 말과는 뜻이 상반됩니다. 위필드의 이 말은 성경 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는 “계시 구슬의 영감”과 그 말씀을 적었다는 “계시 기록의 영감”을 모두 함의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성경 무오와 성경 무류(=성서비평사상)의 두 길에 있습니다. 성경 무오와 성경 무류 사상은 정통 개혁파가 되는가? 신복음주의(신자유주의)자가 되는가? 갈림길이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방식에 큰 차이를 갖습니다. 성경 무오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무류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을 말합니다. 전자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습니다. 후자는 예수님을 구도자로 믿습니다.
‘구원자’救援者,savior는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구원을 주신 분입니다. ‘구도자’求道者,seeker of truth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구도자로 믿는 사람은 이성의 눈으로 성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 무오의 길이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성경 무류의 길이면 철학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성경 무오의 길을 갑니다.
박형룡 박사는 세속화의 길에 교회가 서지 않기를 기대한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김세윤 박사는 세속화의 길에 서지 않으면 복음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길을 보아야 합니다. WEA는 두 길에서 제3의 길을 표방한다고 말하는데, 이 제3의 길이 만나는 길은 두 길 중에 어느 길인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분리합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믿으면서도, 무오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가?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1899-1981는 성경의 오류를 말하는 신복음주의자에 대해 “신복음주의라고 하는 것은 더는 옛 복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라는 것입니다. 신복음주의는 신자유주의일 뿐입니다.
WEA와 예수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 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그런데 표현은 같지만, 그 의미를 달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WEA,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속한 총회의 한 교회가 2025년 10월에 WEA 총회 유치 확정을 발표했습니다. WEA의 “신앙선언”Statement of Faith 7가지 중 2번을 보면,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들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잘못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성과 사람의 인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고, 죄가 있거나, 인간화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취하신 신인양성神人兩性,Christology입니다. 그러나 WEA는 신인합일神人合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중 성경을 읽고, 깨닫고, 따른 모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라, 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말씀을 준행했다는 상징이지,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경에 도통했다고 하는 신천지 이만희가 주장하는 것이 신인합일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임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 없다는 단성론單性論,Monophysitism과 단의론単意論,Monothelitism등 많은 기독론 이단들과 자유주의자들을 표용하는 종교다원주의의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종교개혁의 핵심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권세”(마9:1-8)|이재현목사(2024.11.17)|청아비전교회 주일2부 예배 설교 中
* WEA “신앙선언”Statement of Faith은 정통개혁파 교회의 신앙과 보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WEA를 지지하는 분들은 전 사무총장 토마스 슈마허Thomas Schirrmacher 대주교의 서면 답변서와 현 사무총장인 굿윌 샤나Goodwill Shana의 영상 축사를 보고, 한 신앙 노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WEA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신학적 선언만 두고 평가하는 것은 반쪽짜리가 될 뿐입니다. 실질적 활동 사항은 선언문과 상관 이 없는 교회 현실과 별 차이가 없는 것과 같은 흐름이 WEA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조나 교리적 선언문보다 행위와 실천적 삶에 더 초점을 두는 자들은 누구라도 함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WEA는 WCC와 로마 가톨릭과 손을 잡는 포용적인 연합활동에 대해서 아무런 반감이나 거부감이 없습니다. 명분은 대 사회적인 책임과 국가적인 일들 대 대한 책무라는 대의 앞에 자신들 만의 신학적 특색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조에서 볼 때, WEA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 교리와 종교개혁의 요체인 이신칭의 교리 및 의의 전가 교리가 결여 되어 있어서, 개혁신학에 고유한 언약 신학의 핵심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칼게돈 신경’Chalcedon Creed(451)를 되외시한 WEA는 신인합일로, 예수님을 한 사람으로 인간 중 말씀을 준행한 모범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라, 교사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한 분으로, 예수를 하나님으로 볼 수 없고, 예수는 한 인간이라는, 단성론과 단의론 등 많은 기독 이단들을 포용하게 되고, 결국 다원주의에 문을 열어 주게 되며, 이신칭의와 의의 전가 교리를 도외시하게 되면, 종교개혁의 핵심가치가 상실되어 교회는 다시금 중세의 암흑기로 회귀 되고 맙니다.
신학적 선언과 실질적 활동이 다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교와 반反성격적 단체와 비非신앙적 집단과도 스스러움 없이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유일한 구원자 오직 예수를 도외시하고, 사회적 정의를 외치는 신복음주의는 신자유주의이고, 나아가 신이단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진리가 배제된 사랑의 실천은 기독교가 표방하는 원리가 아닙니다.
로잔도 마찬가지입니다. WEA 선언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을 기초했고, 그가 종교다원주의자와 창립한 것이 ‘세계복음화국제대회’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인 로잔대회Lausanne Congress입니다. 한국로잔위원회 소속 인사들은 자신들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종교다원주의자와 연합하려는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들과 조화도 일치할 수도 없고, 손을 잡지도 말고, 인사도 말고, 나와 따로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로잔이 국제 로잔의 성격을 바꿀 수 있습니까? 착각입니다. 로잔대회 이후 한국교회에 세계교회의 거대한 성령의 운동과 선교의 변혁이 일어났습니까? 그들만의 잔치로 끝났습니다. 몰락한 서구교회가 자금력이 없는 상황에서 WCC 로잔 WEA에 한국교회가 귀한 헌금으로 살렸을 뿐입니다. 앞으로 WCC, 로잔, WEA, 로마 가톨릭, 이슬람까지 종교통합대회가 한국에서 열릴지 모를 일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20여 년전에 창립된 ‘글로벌크리스천포럼’Global Christian Forum:GCF이 그동안 세 차례의 대회를 통해 종교통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한국에 명망있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참여 하고 있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상기는 2021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서 “개혁주의 신학 입장에서 본 WEA와의 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세 차례의 공청회 자료에서, 제가 동의하는 발제자의 글을 참고한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 입장에서 본 WEA와의 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절판이 되었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당시 공청회의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WEA와 로잔(&WCC)
WEA가 주도한 것이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이고, 배교 집단인 세계교회협의회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에 종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로마 가톨릭과 종교통합을 위해 많은 대화와 모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기점으로 2014년 교황 방한, 10년 후인 2023년 종교다원주의자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2024년 빌리 그레이엄과 WEA 신학을 정립한 존 스토트John Stott가 창립한 로잔대회Lausanne Congress 50주년 제4차 서울-인천대회 그리고 2025년 WEA 총회까지 한국교회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 대회들을 선도한 명망있는 신학자와 목회자들께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바른 성경, 신학,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산입니다. 당신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WCC, Lausanne, WEA가 총회 유치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몰락한 서구교회가 더 이상 자금력이 없기에 한국교회에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앞으로 WCC WEA 로마 가톨릭 3대 배교 집단의 연합대회가 한국에서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못된 나무 나쁜 열매, 주의 이름을 부르지만 양들을 노략하는 거짓선지자.(마7:15-23),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광명의 천사)으로 가장 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5).
이러한 시대 우리는 신앙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죄가 없으시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대속을 이루신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죄사함의 권세”(마9:1-8)|이재현목사(2024.11.17)|청아비전교회 주일2부 예배 설교 中
* WEA가 마련한 1974년 로잔회의가 채택한 로잔언약이, 교회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책임을 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로마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회의와 이에 기민하게 반응한 WCC에 의해 조성된 당시의 조류에 편승한 결과였습니다. ‘복음주의-로마 가톨릭 선교대화’(ERCDOM)(1977-1984),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회의 신학과 WCC의 BEMBaptism,EucharistandMinistry세례,성만찬직제 문서에 대한 WEA의 입장’, ‘WEA와 로마 가톨릭의 PCPCU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가톨릭의 기독교의 하나됨을 위한 교황위원회의 신학적 대화’, ‘WEA와 제칠일재림교의 공동성명’ 등 각종 문서와 모임을 살필 때 WEA는 신학과 구성원과 활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므로 일절 교류, 협력, 가입을 금지해야 합니다.
WEA가 WCC와 로마가톨릭과 함께 형성한 GCFGlobal Christian Forum, 글로벌 크리스천 포럼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만 하면, 신학이나 역사적 배경에 관계없이 어느 교단이나 단체라도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패역한 조류의 중심에서 조타수 역할을 하는 것이 WEA입니다. WEA는 신복음주의자들의 모임인데 그동안 그 평가가 주로 신복음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우호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2013년 WCC 제10차 부산 총회 이후, WEA는 WCC와 동류로서 그 책사와 전령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WCC의 위장단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미혹함에 있어서 WCC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물이 2025년 10월 WEA 총회 유치입니다.
WEA와 구원
똑같은 믿음 생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그 의가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교회에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믿음 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인간의 자유의지로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을 통해 구원을 이룬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믿음 생활의 종국이 천국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참고/시14:1). ‘전적타락’全的墮落,Total Depravity, 인간은 죄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천국까지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외에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노력을 개입하려는 것이 WEA의 신학입니다. 성경의 구원과 상이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13.참고/호6:6).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은혜로 구원 받는 것이지, 인간의 제사,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예배는 죄사 함을 받는 성도가 감사함으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권세”(마9:1-8)|이재현목사(2024.11.17)|청아비전교회 주일2부 예배 설교 中
* WEA가 마련한 1974년 로잔회의가 채택한 로잔언약입니다. 그렇다면 로잔대회 창립 주역인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오지의 원주민들도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정된 교리 중에 종교다원주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교회의 교리적 구성’Constitutio Dogmatica De Ecclesla이란 제목으로 전개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없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 받는 것도 없애고, 유대인과 이슬람 이방 종교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De Populo Dei(16조)란 제목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이 종교다원주의의 교리는 20세기 로마교회의 대표적 신학자 칼 라이너Karl Rahner,1904-1984의 신학을 따라 결정했습니다. 라이너는 전통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존재 자체를 하나님으로, 창조주로 삼았습니다.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배정 된다고 하였습니다.
1. 유대인들에 관한 결정이다. 그들은 언약을 받았고,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고, 선택된 조상들 때문에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라고 정하였다.
2. 이슬람에 관한 결정이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창조주를 인정하는 자들을 포함한다. 그들 중에 아브라함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슬람들, 그들은 우리와 한 하나님을 경배하고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심파할 자비하신 하나님을 경배한다.
3. 모든 이방인들에 대한 결정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 곧 하나님의 그림자와 상들 안에서 알려지지 않는 하나님을 찾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멀지 않으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구주로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허물없이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을 성실한 마음으로 찾고, 양심의 소리에서 하나님의 알려진 뜻을 은혜의 영향 아래 성취하려고 하는 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
또 신적인 섭리는 자기들의 허물없이 명백한 신神 지식에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신적인 은혜가 없지 않아서, 바른 삶을 영위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구원 얻음에 필수적인 보조물들을 거부하지 않으신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선과 참된 것은 교회에서 복음의 준비로 평가하며 또 모든 사람을 비추는 이에 의해서 주어진 것으로 평가한다.
이상에서 볼 때 예수님의 대속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단정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주 예수를 믿어야 만 구원 얻지 믿음 없이 구원에 이른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은 모든 신학을 완전히 현대화하고서 종교다원주의를 교리화 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과 직제를 완성한 사람이 WEA와 로잔이 기초를 세운 존 스토트입니다. 그와 함께 한 빌리 그레이엄이 왜 종교다원주의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예수 구원 믿음의 구원이 없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사상인 다중화 보편화 인류화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구원에 한 맥인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두 극단을 모두 배척함다며 ‘양비론’兩非論에 서다가 이제는 자기들과 로마 가톨릭이 옳다는 ‘양시론’兩是論을 내세워 난국을 모면하는 데 급급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복음주의자들의 신학적 ‘중도’는 사실상 ‘포용’이나 ‘혼합’과 다를 바 없고, 다른 것을 함께 세운다는 점에서는 ‘다원’과 다를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며, 신학의 상이함을 문제 삼지 않고 이현형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자세로 ‘복음화’를 거론하니, 그들의 ‘복음주의’에는 ‘복음’(‘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갈1:7))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전제됨이 없습니다. 이렇듯 ‘신복음주의’의 ‘새로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WEA입니다.
그러한데 2025년 WEA 총회 유치를 확정 발표한 조직위원장은 “작은 차이에 집착하면 지옥을 경험할 뿐이다”라며, “생각이 달라도 소통해서 하나 되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러한 신앙의 상이相異를 생각의 차이로 본다는 말인가? 지난 2천 년 교회사에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는 것인가? 그것이 예수 안에서 하나되게 한다는 말인가? 모든 종교와 하나 된다는 말인가? 교황 아래서 하나 된다는 말인가?
WEA와 순교
예수님은 이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16-17/막2:18-22;눅5:33-39).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는 구약의 율법을 상징합니다. 생베 조각, 새 포도주는 신약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대속입니다. 생명,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롬14:8). 주를 위해서라면 순교의 자리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참고/요21:18). 성경의 선교는 대속, 생명, 순교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며, 인간의 주도로 평화, 일치, 화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대속, 생명, 순교가 없는 배교입니다. WEA, 로잔, WCC에 대속, 생명, 순교가 있는지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죄사함의 권세”(마9:1-8)|이재현목사(2024.11.17)|청아비전교회 주일2부 예배 설교 中
WEA는 GCF를 통해 로마 가톨릭 등 종교는 물론 UN과도 협력 세계의 평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平和는 순교殉敎를 망각忘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종파의 평화 화해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은 그리스도교라는 이름만 가지면, 성경과 신학과 신앙과 관계 없이 일치를 추구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인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계20:4).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거룩한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한데 모든 종교가 구원, 지복至福, 평화라면, 생명 걸고 예수 유일 구원을 증거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 2천년 교회시대 동안 예수 전파하다 죽임당한 순교는 무엇입니까? WEA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소양蘇羊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10년 형을 선고받고, 7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 잠시 풀려난 1939년 2월 첫째 주일 죽음을 목도하면서,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예의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1939년 12월 19일 배교한 평양노회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사님을 파면했고, 1944년 주 목사님은 차가운 감방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동시대 목회자로 백수에 가까운 연세까지 한국교회 성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님은 억압 받았던 일제에는 부역(또는 순응?)하고, 자유 하였던 군사정권에는 유착(또는 축복?)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의 손에는 오직 예수가, 신사참배하고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장수하신 이의 손에는 종교 노벨상이 들려졌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설 날을 사모하며, 손에 무엇을 들어야 할지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Protestant’ 저항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고, 복음이 변질하지 않게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파의 일치를 추구하는 종교다원주의에 ‘저항’이라는 단어가 있습니까? 저항의 끝은 순교입니다. 사도들이 그 길을 걸었고, 종교개혁가들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버리고, 평화로 위장하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면, 프로테스탄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WEA 평화는 순교를 망각하게 합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지복이고 평회라면 생명을 바쳐 예수를 유일한 구원자로 증거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 생명은 순결, 순결은 예수, 예수 위한 순교가 순결입니다. 순교를 망각하는 것은, 순결의 옷, 세마포, 그리스도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WEA에 대한 총회 의결 사항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 총회
일 시 : 1959년 9월 24일 - 29일, 1959년 11월 24일 - 27일
장 소 : 대전중앙교회, 서울승동교회
회 원 : 출석 251명, 결석3명
총 회장 : 양화석
경기노회 총대 시비와 WCC의 에큐메닉스 신학에 대한 이견으로 비상 정회하다.
1959년 11월 24일 서울 승동교회당에서 속회하다.
WCC를 영구히 탈퇴하다.
NAE를 탈퇴하다.
통합측과 분립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4 총회
일시 : 2019년 9월 23일(월) ~ 9월 26일(목)
장소 : 충현교회당(한규삼 목사)
출석 : 총 1,568명 중 1,482명 참석
신학부 보고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금지 건: WEA가 우리 총회가 지켜오고 추구하는 신학적 입장과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어 교류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학부 보고에 대하여 열띤 논쟁이 발생하니, 전자투표를 시행한 결과 신학부 보고에 대하여 찬성 537명, 반대 448명으로 신학부 보고를 받기로 가결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5 총회
일시 : 2020년 9월 21일(월) 14시
장소 : 새에덴교회당(소강석 목사)외 35개 거점교회당
출석 : 총 1,562명 중 1,425명 참석
신학관련
가. WEA관련
ㆍ소래노회장 이기훈 씨가 헌의한 WEA 신학 연구 요청 관련 헌의의 건은 신학부로 보내기로 가결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6 총회
기간 : 2021년 9월 13일(월) 14:00 ~ 19:50
장소 : 우정교회당(예동열 목사) 외 2개 거점교회당
출석 : 1,582명 중 1,436명
■ WEA연구위원회 보고
WEA연구위원회 위원장 한기승 목사가 보고한 동 부서 사업결과는 유인물(보고서 493~520쪽)대로 받기로 하되, 위원회의 처리 보고 제1안(본 교단과 구성원은 WEA가 신복음주의임으로 가입하거나 교류해서는 안 된다)과, 제2안(제104회 총회 결의-WEA와 교류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를 유지하되 WEA의 신학적 흐름에 대하여 연구하고 주시한다)에 대하여는 유관 안건을 다루는 정치부 보고 시에 다시 다루기로 가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