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사도행전 교재

사도행전 교재 24 이재현목사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내게 주셨다"(행27:1-44)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2. 12. 4. 14:54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7:1-44

 

1.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로마 시민권자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함에 따라, 이제 로마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로마 황제의 근위대 백부장 율리오를 책임자로 세우고, 바울을 로마까지 이송하도록 하였습니다(1).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 배를 타고 출항을 했는데, 아리스다고가 바울의 수발을 돕고자 함께 승선을 했습니다(2). 또한 우리로 기록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죄수로 이송되고, 로마에 당도하기까지, 동행하였습니다(1,2.참고/16:10-17,20:5-21,21:1-18,27:1-28:16). 누가는 유창한 헬라어와 의사로서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20:5-6;4:14). 누가도 바울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면서, 초대 교회의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고, 바울로 전해 들은 말씀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를 기록할 수 있었으며, 바울이 순교 후에도, 누가가 15여 년 간 복음을 증거 할 때, 가는 곳곳마다 성도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대에는, 바울이 생전에 많은 교회에 편지를 통해 누가의 헌신과 사랑을 소개하였기 때문입니다(참고/1:3,2:10,4:18-19,14:21;1:1;3:8;딤후4:11;4:14;1:24). 우리 교회 공동체의 동행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동행은 인생의 비전을 바뀌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동행은 재능을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동행은 강력한 시너지를 갖게 됩니다. 가이사랴에서 출발한 배를 이튿날 시돈에 대니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그곳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접대 받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3). 죄수임에도 의사 누가와 수발자 아리스다고의 도움을 받는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서로를 귀히 여기는 성도의 동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높일 때, 다른 이들도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 배로 출항 후, 오늘날 레반논 시돈을 거쳐, 터키 무라에서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배로 환승하여 항해 하였지만, 외태로운 상황이 되 었습니다(3-9). 이때 바울의 권면과 백부장의 결정은 무엇이었습니까?(10-11)

 

 

 

 

 

 

3. 2의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14-20)

 

 

 

 

 

 

4.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이 순간 바울이 의연한 모습으로 일어서서, 지금 안심하라고, 전한 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 즉 천사가 전해 준 말이라고 하였습니다(21-22). 그리고 지금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바울이 가이사, 로마 황제에게 가야 하겠기에 지금 광풍 속에서도, 이 배가 안전하게 지켜지리라고 했습니다(23-24).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가 그 뜻입니다(24). 바울의 이러한 확신에는 일주일 전에도 하나님께서 항해를 계속하면, 위험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쳐주셨기에,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항해를 강행하면 어려움은 겪게 될지 모르나, 지켜주실 것 또한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모두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25-26).

 

바울의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믿게 되었고, 바울의 명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바울은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를 하였고요, 배에 있는 사람이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후, 다른 밀 식량은 바다에 모두 버리고 배를 가볍게 하였습니다(27-38). 그리고 한 항구에 도착 항구 부근에 배를 고정시킨 후, 어떤 이는 헤엄을 치고, 어떤 이들은 널조각과 배 물건을 붙들고, 멜리데라라는 섬에서 구조됩니다(39-44). 승선인 이백 칠십육 명 중 한 명도 생명의 손상을 입지 않았습니다(37). 광풍을 만난 후, 열 나흘만입니다(27). 바울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5.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첫 번째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가? 로마로 죄수들을 이송하는 책임자인 백부장은 선장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다고 하였습니다(11). ‘더 믿더라’.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더 믿고 계세요. 하나님을 믿으니까 당연히 말씀을 듣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겠지요. 그런데 그 목사의 말을 믿는 것보다 더 믿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돈 버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현실에서 당장 필요한 것을 공급할 방법을 목사가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백부장이 보기에 바울은 항해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지요. 선장의 항해 경험이 유라굴로가 한순간에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광풍도 하나님 주권하에 있습니다(참고/8:26;4:39;8:24;7:1,16:5,14:18). 

 

반면에 바울은 항해의 지식은 없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 있으면, 천사를 통해, 바다를 하나님이 어떻게 주관하실지 알았습니다. 목사는 성도 여러분의 물질 등 어려운 현실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도 여러분 가정과 기업에 임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 가운데 될 수 없는 일도 되게 하시고, 막힌 것도 풀어주시고, 돌아가는 길을 바로 가게 하시고, 거역하는 자의 것을 순종하는 자의 것으로도 되게 하시며, 두 배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을 백배의 이윤을 얻는 시장으로도 만들 수 있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말을 듣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6.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두 번째 다수와 소수가 아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항해에 모두가 찬성했고 바울만이 반대하였습니다. 어떤 단체든 사람이 모이면 조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조직에서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다수의 의견을 따른 것이 통례입니다. 그런데 민주사회에서는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의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들도 한 조직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다수가 되었건 소수가 되었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수를 따르느냐, 소수를 따르느냐, 그런 민주적 절차를 논하기에 앞서, 교회에서는 다수이든 소수이든,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 전체가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주하고 여력이 없더라도 시간을 내고, 정성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우리가 모두 함께 승선한 공동체이기에 교회를 위한 기도는 나의 가정과 기업 위에도, 아름답고, 거룩하며, 역사하는 힘이 큰 응답으로 임할 줄 믿습니다. 

 

 

 

 

 

 

7.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세 번째 책망 속에서 희망을 들으라 입니다. 바울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내 말을 듣고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하였습니다(21-22). 바울은 희망보다 책망을 먼저 전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위해 책망이 먼저 기록된 말씀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베푸는 곳으로 오는 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매섭게 호통을 쳤습니다(3:7). 그리고 이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3:8), ‘내 뒤에 오시는 이(예수님)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3:11). 이러한 세례 요한의 외침을 끝까지 듣고, 믿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앞에 한 말,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는 말을 듣고, 돌아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참고/딤후3:1-2).

 

그러나 성경은 먼저 책망을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도 말씀의 목적이 책망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살릴 수 없음을 깨닫고, 구원자를 만나냐 한다는 희망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에게,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책망을 먼저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하고자하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8: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생각으로 내가 좋은 말을 듣기 만을 원하고, 진리라고 하여도 듣고 싶지 않으면, 듣지 않으려는 자가 되지 말고, 성령의 생각으로 듣고 싶지 않아도, 진리이면 듣고, 생명을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채찍으로 들려올 때도, 그 말 듣고 싶지 않다고 돌아서서, 이어지는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아멘' 하면 반드시 주시고자, 하는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8.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네 번째는 말씀에 확신을 가지라입니다. 바울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에 손상을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한 후, 즉시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무려 열 나흘째 되는 날까지 망망대해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27). 아니 하나님의 응답입니다라고 선포를 했는데요. 여전히 파도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시방석과 같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의 보름 동안이요. 말은 해 놓았는데, 실현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 지경이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하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 이것이 확신입니다. 확신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요. 믿고 선포했으면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요. 인내의 기간 동안 허튼 생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13:8).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확신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가를 측량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9.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다섯 번째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입니다(24). 배에 승선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은 네가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입니다(24). 냉철하게 보면,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바울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바울을 살리셔야 했고요. 그 하나님 역사에 다른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있었기에 살게 된 것입니다. 바울로 인해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나중에 이러한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바울 한 사람의 사명자는 곧 다른 사람들이 살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사명자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바른 사명자가 있으면, 그가 속한 교회와 가정의 성도와 가족은 모두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에 분명한 사명자가 있다면, 다른 성도들이 살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이 사명자가 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정에 분명한 사명자가 있다면, 그 가족 전체가 사명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24). “하나님께서 이재현목사와 함께 항해하는 성도님들의 안전을 다 이재현목사에게 주셨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사명자가 목사 뿐입니까? 우리는 모두 세상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명자입니다. 하나님이 청아비전교회를 보았을 때, 이재현목사 뿐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를 보았을 때도, 여러분을 보고 다른 성도들의 안전을 여러분에게 맡길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0.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선장의 항해 경험을 들을 것인가? 바다를 주간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것인가? 들을 말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② 다수가 되었건 소수가 되었건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특히 공동체에 승선한 모든 성도들의 보호를 위해, 교회를 위해서도 항상 기도하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의 책망에 돌아서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각으로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듣게 하옵소서. 복을 받게 하옵소서.

 

④ 바울이 말씀 선포 후 보름이 지나도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확신했습니다. 인내의 기간 확신하게 하옵소서.

 

⑤ 이처럼 겸비될 때,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내게 주셨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항해자가 되어, 나와 함께 모든 이들도 보호받고,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