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8:1-10
1.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도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기 위해 승선한 배는 유라굴로 인하여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한 사람도 상함을 당하지 않고, ‘멜리데’ 섬에서 ‘구조’되었고,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영접’해 주어서, 오랜만에 땅을 밟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2). 그러던 중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불에 넣으려고 하자, 그 안에 있던 독사가 그만 손을 물어버렸습니다(3). 이에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4).그러나 “바울이 그 짐승(뱀)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고 하였습니다(5). 원주민들은 바울이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고 소리쳤습니다(6). 그 이후 바울이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와 유사한 상황이었던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에서도 있었는데요(행14:8-15). 당시 바울은 자신을 ‘신들이 사람의 형상’이라고 한 이들에게 행한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고 말씀을 볼 때, 멜리데 원주민들에게 “나는 신이 아니고, 참 신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 증인”이라고 선포했을 것이 분명합니다(행14:11). 이 사건 후에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가’ 바울 일행을 환대하고, 자신 소유의 토지에 사흘 동안 머물도록 친절하게 배려해 주었습니다(7). 그즈음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8). 이러한 소식은 삽시간에 섬 전체에 퍼졌고, 다른 병든 사람들도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9). 바울이 치유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멜리데는 98%가 기독교 신자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섬에 머무는 삼 개월 동안 바울을 통해 멜리데를 거룩한 영토로 원주민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11).
2. 사도 바울은 지난 2년여 동안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행22:1,6-9,21,30-2
3:1,11,26), 가이사랴 헤롯 궁 재판정에서(행24:24,26-27,25:13-17,26:1-23,29), 광풍 에 표류하는 배 위에서(행27:11,14-19,20-44),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죄인이 입는 자 의赭衣를 입고서도, 복음을 증거를 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 서든지 전파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증언했습니까?(딤후2:9)
3. 바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같이 로마에 가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요. 이후 석방 되어 사도행전 이후 4차 전도 여행이 시작됩니다. 멀리 서바나, 스페인에까지 이르러 복 음을 전했고요. 그레데, 밀레도, 골로새, 에베소, 빌립보, 니고볼리 등 이전 전도 여행에 서 들렸던 도시들을 다시 찾아 성도들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잡혀 2차 투옥됩니다(참고/롬15:23-28;빌2:23-24;딤전1:3;딤후1:17,4:6,20;딛1:5,3:12;몬 1:22). 이때 바울이 순교 직전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 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딤후2:9).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로 마지막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2-13). 항상 신실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순간에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위해 살려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참고/요18:37,19:10-11). 바울은 예수님에게서 부인하지 않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자리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며, 복음을 끝까지 전할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부인하지 않은 것입니다. 끝까지 부인하지 않은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구원자가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위해 내 일생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것입니다(딤후4:7-8). 왜 우리가 끝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이 중요합니까?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2:12).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말씀이 아니요. 그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잃어버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라는 권면입니다. 강조입니다.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마10:32). 우리를 하나님 앞에 시인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도 예수님에게 부인을 당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예수님에게 시인을 받으면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부인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살기 위해, 내가 좀 돈을 보려고, 유익을 얻으려고, 잠시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에 있을지라도, 돌아서서 마지막에는 안 믿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두 번 믿음을 잃어버리다가 “나는 안돼는 구나”하고 포기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기도하는 모든 분이 그러한 길에 들어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4.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째로 주를 위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주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딤후2:11).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참고/막8:35).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 큰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기 이전에요. 시간 내에서 예배 출석도 안 하고, 땀 흘려 봉사도 하지 않고, 피 같은 헌금도 안 하고, 다 나를 위해 사용했어요. 조금 더 나아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했어요. 그때 모든 것은 나와 조금 더 나아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했을 때, 여러분에게 행복했어요. 우리는 나를 위해 나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쓴다고, 그것이 내게 가정에 유익으로 행복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모든 인간은 외롭고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고 써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만날 때,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 복음을 위하여 죽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살게되는 것입니다.
5.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세 번째로 ‘왕 노릇’의 권세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딤후2:12). ‘함께’라는 말은 주님과 함께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왕이시라는 것이고요. ‘왕 노릇’이라는 것은 왕은 아닌데 왕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왕 노릇할 자인가? 왕권을 받을 자인가하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죽었으면’을 상징적으로 보면, 끝까지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를 가리키지만, 실제로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이 순교한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딤후2:11). 순교자들에게 하나님은 왕 노릇하는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순교자에게 왕권이라는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급의 차이입니다. 일생을 평범하게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간 성도들과 주를 위해 목숨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들이 천국에서 상급이 같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왕 노릇의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순교자에 대하여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계20:14). 여기서 ‘짐승’은 마지막 때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일컫는데요. 이 말씀은 장차 등장할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지배하기 이전인 지금 교회 시대 순교자와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지배한 이후 종말 시대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순교자들에게는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말씀합니다(계20:14).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에 세우실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는 왕권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고 하였습니다(계20:14). 마지막 심판대인 흰 보좌 심판에서 순교자들은 악인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죽음의 자리에서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순교라고 할 때, 나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로 여기거나, 죽음의 위협이 내 앞에 오면, 나는 그 자리를 피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순교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순교하지 않는 제자도 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마지막을 밧모섬에 유배당하며, 예수님에게 종말에 있을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계1:1,9). 그리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 소망과 축복의 말을 남기고 편안히 주님이 계신 천국에 안식했습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았지만, 순교자의 반열에 놓습니다. 그 이유는 일생동안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주님과 함께 죽고 산다는 신앙을 잃지 않고. 그 또한 승리의 면류관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계2:10).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주리라’고 하였습니다(계2:26). 이 또한 순교자에게 주시는 왕 노릇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가이사랴 헤롯 궁 재판정에서, 광풍에 표류하는 배 위에서,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죄인이 입는 자의赭衣를 입고서도, 복음을 증거를 쉬지 않았습니다. “9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딤후2:9-10) 바울의 몸은 감옥에 가둘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 복음은 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자들이 구원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함께 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살리라는 신앙과 순교자로서 왕 노릇하는 반열에 들어설 수 있음을 소망하는 자가 받을 ‘의의 면류관’ 영광입니다(딤후4:8). 어느 형편에서든지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매이지 않게 하는, 우리 모두에게 구원과 함께 이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①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요. 우리가 주를 시인하면 주도 우리를 시인할 것이요. 마지막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② 두 번째로 주를 위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주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자게 하옵소서.
③ 세 번째로 ‘왕 노릇’의 권세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딤후2:12). 순교자에게 주시는 권세가 ‘왕권자’입니다. 예수 이름을 증거하다가 생명을 드리는 순교, 일생 동안 십자가 길을 가는 순교로,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 설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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