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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나처럼 되기를"(사도행전 26:24-29) 이재현목사(25.10.26)

이재현목사 2025. 12. 6. 09:33

모든 사람이 나처럼 되기를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5:1-26:32

 

사도 바울울은 지금 매우 중요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투옥된 것은 유대인들의 모함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이신 메시아라고 전하자 유대인들이 그를 모함하여 가이사랴에 있는 감옥에 집어넣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간 지 2년이 다 되어도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부득이 로마의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이 팔레스타인에서 벗어나 유대인들의 손에서 벗어나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행24,25장).

바울이 상소를 하자 총독은 매우 어려운 문제에 빠졌습니다. 죄수를 로마에 보내려면 뭔가 확실한 범법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바울을 아무리 신문해도 특별한 혐의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로마가 유대를 통치하기 위해 세운 유대의 분봉왕 아그랍바가가 자기를 방문했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왕에게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한번 심문해 볼 것을 넌지시 제안하였고 왕이 승낙하여 재판이 열린 것입니다(행26:24-32).

바울은 죄수 아닌 죄수의 신분으로 섰지만, 자기 앞에 재판 석에 앉아 있은 자들에게 위축되지 않고,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큰 소리로 당당하게 전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바울을 심문하고 있는 베스도, 아그립바, 베니게 이 세 사람을 보면, 전도할 때 만나게 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베스도 형에 대한 글을 읽 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베스도Porcius Festus,AD59-62,“‘기쁨’,‘즐거움’,‘명절’”:오해와 편견의 소유자. 베스도는 유대의 현직 총독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하자, 베스도는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 내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26:23-24). 베스도와 같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고, “미쳤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오해가 많이 쌓인 사람들입니다. 편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자를 광신자로 취급하고, “예수는 가난하고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이나 믿는 것이고, 교회는 나약한 자들이나 가는 곳이며, 게다가 성도란 사람들은 다 이중인격자들이다. 목사는 정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비웃듯이 말하는 대부분 사람은 기독교와 교회, 성도에 대해 자기 나름의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있음에도, 물의를 일으키는 몇 사람을 보고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교회 전체를 매도하고, 공격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베스도 형의 사람들입니다.

 

 

 

 

2. 아그립바 형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행26:3,27-28).

아그립바 왕Herod AgrippaⅡ,AD53-100:관심은 가지나 거부하는 사람. 아그립바는 예수님 탄생시 악명 높았던 헤롯 대왕의 증손자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스무 살 내외인 젊은 왕입니다. 재판에서 ‘주심’主審입니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라는 말씀을 볼 때, 유대 나라 상황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지역의 모든 물정과 종교에 밝은 사람입니다(26:3). 그래서 바울은 아그랍바 왕에게 매우 진지하고 세심하게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고 하였습니다(26:27). 그러나 아그립바는 냉담했습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6:28). “네가 몇 마디 말 가지고 예수 믿게 만들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만”이라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관심 있어 보이고, 귀 기울이는 것 같지만, 접근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뒤로 빼는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두어 시간이나 하면서, 끝까지 경청한 전도자가 “주일예배에 오세요”라고 하면, “저도 예수를 믿어요. 그런데 교회는 환경이 열리면 가려고요”라면서, 뒤끝을 흐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도자의 힘을 빼놓는 것입니다. 아그립바 형의 사람들입니다.

 

 

 

 

 

 

 

 

 

3. 버니게 형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행26:3,27-28).

 

버니게Bernice,‘승리자’:무반응과 냉소주의. 버니게는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맏딸로, 아그립바 왕이 남동생이며, 이전 총독 벨릭스 아내 드루실라의 언니입니다(행24:24). 그녀는 두 번 결혼해서 남편이 죽자, 본문 재판 주심인 친동생 아그립바에게 와서 얹혀살면서, 마치 왕비나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세간에 이 오누이에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았습니다. 나중에는 또 한 번 결혼하였으나, 그를 버리고 아그립바와 다시 동거하다가, 로마 황제의 아들 ‘티투스’를 유혹 정부가 되어 황후가 되고자 했던 대단한 여자이었습니다.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미모와 권력과 호사스러운 생활에 물든 그녀의 귀에는 한낱 죄수에 지나지 않는 바울의 말이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미있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자신만만하여, 무서운 것 없는 이들에게 “예수 믿고 천국 가자”라는 말이 들어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전도자를 “불쌍하다. 어쩌다가 저 모양이 됐을까? 허우대는 멀쩡한데 왜 저런 짓을 할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즐길 것이 많아질수록,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생길수록,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이런 사람들을 적잖게 만날 수 있습니다. 버니게 형의 사람들입니다.

 

 

 

 

 

 

 

4.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지만 상대가 왕이든 총독이든 왕비이든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 수 복음을 전하는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 께 원하나이다’는 말씀은 우리가 무장해야 할 세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행 26:29). 첫 번째 구원의 감격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도 바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딤전1:13,15). 나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는 구원의 감격이 심정을 뜨겁게 만들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구원의 감격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비록 가난할지라도,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울처럼 두 손을 번쩍 들고 “당신은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보다는 낫다는 우월감과 자기의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는 모두가 다 똑같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가장 밑바닥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해 주셨음을 믿을 때, 그의 마음에 구원의 감격이 밀려오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표정에서 구원이 가져다준 그 기쁨을 상대방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5. 두 번째 자존심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도 바울을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 버니게 왕비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조금도 위축당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슴에는 당당한 긍지가 있습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는 이 말 속에는, 나를 본받으라는 자신감이 진하게 배여 있습니다(참고/고전4:6,9:4-12;빌3:17;살후3:9).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가난하게 살면서도 당당했습니다. 가진 것이 전혀 없어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으로도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긍지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전도하려고 찾아가서는 집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이것은 “나는 당신처럼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이 더 나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지위와 직업이 어떠하던지, 누구 앞에서도, “저는 가진 재산도 별로 많지 않고, 건강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세요. 그게 저는 기쁘답니다. 예수님만으로도 저는 감사해요. 그런데 당신은 세상적으로 보면 다 가졌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예수님이 전부랍니다” 이런 자부심으로 속 사람을 무장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6. 세 번째는 연민의 마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겉으로는 바울이 불쌍해 보이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재판 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당신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호소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 그들을 향하여 무엇인가 간절히 애타는 연민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들의 영혼 앞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보았습니다(히9:27) 바울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당할 그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심판이 무엇인지 잘 알지만, 세상 사람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있으므로 심판이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 즉 심판받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겔18:23).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느끼는 연민의 정을 바울은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불신자들이 당할 심판을 생각할 때 가슴 찢어지는 연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며,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심정인 것입니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전도할 때, 편견과 오해 때문에 도전적으로 나오는 사람, 일말의 관심은 가지면서도 나중에는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 바울처럼 예수님을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② 구원의 감격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가장 밑바닥의 죄인임에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구원의 감격으로 전도하게 하옵소서.

 

③ 자존심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예수가 전부이게 하옵소서. 이 자부와 긍지로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은 자존심으로 전도하게 하옵소서.

 

④ 연민의 마음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상대가 누구이든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 영멸인 것을 보게 하옵소서. 악인이라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심정, 연민의 마음으로 전도하게 하옵소서.

 

⑤ 바울처럼 “당신들 모두가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증거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지역과 열방의 사명을 들고, 청라국제도시부터 대한민국과 세계에 복음 증거자의 무장을 갖추고, 하나님의 나라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온 땅에 충만해지는 날이 속히 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