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의 신앙Ⅱ
Remnant Faith
하나님말씀 : 이사야 6:1-13 2025.10.12. 主日禮拜
1. 다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책임인가?”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세상 논리로 말할 때, 하나님이 우둔하게 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우둔해서 믿지 아니한 그 사람 책임입니다. 예를 들어서요. 어떤 사람이 친구의 꼬임에 유흥업소에서, 밤늦도록 술을 퍼마셨습니다. 그러다가 음주운전으로 인사가 발생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면 경찰에게 자기 잘못이 아니라, 친구 때문이라는 말이 통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러니저러니 하고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자기가 져야 합니다.
유식하다는 분들 중 하나님이 고의로 누구를 버리고, 믿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을 필요가 없어”라고 항변하고 싶은 분이 있나요? 그렇다면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마음을 우둔하게 해서 구원받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씀에 불쾌감을 느낀다며, 하나님이 자기를 너무 사랑하셔서 창세전부터 선택하시고 마음을 열어 믿게 하셨다는 말씀에도,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 선택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성립될 수 있는 말입니다. 내가 만약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 대신 분명히 어떤 사람은 우둔한 자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구원하느라, 하나님의 관심권 밖에 있게 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아니한 것은 나 때문인지 누가 압니까? 이것은 중요한 말입니다. 야곱과 에서 중 어차피 하나만 택해야 했다면, 야곱이 하나님께 왜 형을 버렸느냐고 따릴 수 있을까요? 야곱은 자기가 선택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군가를 고의로 버렸다는 데 대해서 반발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신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선택받았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버린 자도 있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하면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렇다고 왜! 누구는 택하지 않으셨습니까? 라는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창조자, 절대자,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기인합니다(엡1:4-6). 우리는 내가 선택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선택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버림받은 사람은 그대로 끝인가요? 성聖 어거스틴Augustine,354-430은 “하나님의 은혜는 선택받기에 합당한 자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 대상자를 위해 ‘하나님의 선택받을 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열 명 중에서 한 명은 뜨거운 감격을 가지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참고/눅17:17).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비웃거나 싫어합니다. 이 현상을 단지 마음이 악해서라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결국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듣게 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듣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듣게 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자, 가족, 전도 대상자가, 듣는 자로 만들어 달라고, 선택받은 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2. 다음 “하나님 은혜로 택함 받은 남은 자”를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그렇다면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구원 받지 못하도록 한 책임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책임인 것입니다(사6:9-10).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셨습니다(사6:13). 전자 남아 있는 자는 멸망당할 자로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될 때, 십분의 일이 남아 있을 지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면 후자에 남아 있는 자는 구원받을 택한 자로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잇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남은 자란 멸망의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하기 위해 택하신 남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는 남은 자가 되어야지,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은혜 받지 못한 멸망받을 남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악한 아합의 왕 시대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신상으로 가득한 그 땅에 자신만이 혼자 남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은 남겨 주었다고 하십니다(롬11:3-4.참고/왕상19:10). 그 악한 시대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남은 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노아의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라는 것에 공감할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나라 전역에 세웠던 아합 왕의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라는 것에도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남은 자가 있습니다(롬11:5).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어야 합니다.
3. 다음 “남은 자의 신앙”(1)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그렇다면 지금 이 마지막 시대에 남은 자의 우리들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어야 하겠습니까? 한 목사님이 설교 중에 “동성애 같은 문제에는 난리를 치면서 성경에서 동성애보다 10배는 더 나오는 탐욕에 대해서 시위하고 분노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죄들도 많은데, 그것에 관해서는 그렇게 반대하지 않으면서, 왜 동성애 죄악에 관해서만,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 것이냐는 말로 들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성경과 시대 해석을 도치倒置, 뒤바뀌고, 우선순위를 세상 언론뉴스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동성애는 한 죄가 아닌, 임박한 심판, 멸망의 잣대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 그리고 퀴어문화축제가 종교다원주의로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과 궁극적 지향인 배교적 행위에 대한 지식도 일천日淺한 것입니다.
이에 한 신학자는 “오늘날 동성애 퀴어축제는 자유의 이름으로 전정한 자유를 파괴하는 인본주의 운동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남녀 양성의 결혼과 가정을 부정하고 해체시키는 제2의 반역The Second Revolt"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동성애는 “대세가 이미 넘어갔다”는 것은 “스스로 포기와 항복 선언을 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설교자인 그 목사 한 개인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반동성애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는 분들이 있다. 이는 스스로 포기요 항복 선언이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눈을 뗀데서 오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탈동성애 운동에서 세상 풍조와 타협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 서야 한다"며, “오늘날 글로벌 성 혁명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성애 퀴어운동은 성 자유의 이름으로 진정한 성性의 존엄과 자유를 오해하여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동성애의 하나님 거역과 사회적 해악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신학자는 결론으로 “한국교회는 오늘날 1930년대 일제시대 신사참배 강요로 다가온 시대적 흐름에 대하여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으로 극복했듯이, 그루터기의 남은 자 신앙으로 이겨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은 자 신앙’, 이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 일사각오입니다. 어떤 것에 앞에 우리의 생명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까? 죄악은 끝까지 죄악이요. 진리는 끝까지 진리입니다. 동성애에는 지금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죄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로 대표되는 죄악은 죄이지, 절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일사각오입니다. 즉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지 못하면, 항복하거나 타협하게 됩니다. 일사각오를 갖지 못하면, 교회 강단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어떤 믿음을 가질 위험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사각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 이것이, ‘거룩한 씨’, ‘이 땅의 그루터기’, ‘Remnant Faith’, ‘남은 자 신앙’ 바로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사6:13).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입니다. 노아의 시대, 아합의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인 지금 하나님이 은혜주시고자 위해 택한 남은자입니다.
4. 다음 “남은 자의 신앙”(2)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지난 제110회 총회 신학부 보고에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25.09.24). 이전까지 총회는 정동수 씨에 대해 이단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고 참여 금지 및 경계 결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금번 총회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정동수 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제를 단절해야 한다고 못 박은 것입니다. 신학부는 “정동수는 자신의 주장을 사과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편적인 교회의 속성을 부정하고 한국교회에 성경에 대한 혼돈과 번역에 대한 오해를 가져오게 하여 성도들을 혼동케 한다”며,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제를 단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시 된 것이 정동수 목사가 번역한 킹제임스성경 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그 외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등은 특정한 세력에 의해 가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부의 보고는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정동수 목사가 킹제임스성경을 가장 권위있는 성경으로 믿으나, 개역 개정 등을 제외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정통교회와 마찰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최소 유감을 표명하지 않은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이단 규정에 가정 잣대, 첫째는 삼위일체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한분 하나님으로 믿는 가입니다. 둘째는 기독론입니다. 예수님 만을 구원자로 믿는 가입니다. 세 번째는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를 믿는가입니다. 정동수 목사가 이 세 가지를 부정하거나 위배하거나 오용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단으로 규정한 총회의 결정을 저는 존중합니다. 정동수 목사의 신학 사상과 설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총회 신학부 결정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작년 9월 22-28일까지 송도에서 개최된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를 연구하고 발표하면서, “로잔대회는 총회와 다른 노선을 가진 교단과 단체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참석을 금지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게 아니다”며, “총회가 개혁주의 정체성을 분명히 선포하면서, 로잔대회의 주최자가 되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선구자적 역할과 사명을 감당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충격적인 결정입니다. 로잔대회는 총회 신학부 보고대로 우리의 신학, 신앙, 신조와 다른 노선을 가진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석을 금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니, 큰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한국로잔위원회는 그렇지 않겠지만, 국제로잔대회 본부와 참가 단체 중에는 개신교의 절대적 교리인 삼위일체와 기독론과 이신칭의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연합을 금지할 정도가 아니라고 하니, 말 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나아가 금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세계복음주의연맹 WEA 제14차 서울총회에 대하여, 1년간 조사 후 내년 111회 총회에서 보고하기로 했는데 금번 로잔대회의 보고와 같은 보고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성경에 관해서는 엄격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정동수 목사의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을 믿습니다. 그러나 WEA는 성경의 ‘무류성’無謬性,infallibility을 말합니다. 성경의 무오성은 구원의 교리는 물론 역사와 사실과 과학에 오류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성경의 무류성은 구원의 교리는 틀림이 없으나, 역사, 사실, 과학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배우면서 대홍수에 대해 나누었는데요. 방주에 승선한 노아와 가족은 구원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방주와 대홍수가 역사적, 사실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나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믿는데,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광풍이 잔잔해졌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성경 무류설은 성경 불오성不誤性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WEA는 성경의 무오성,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하나님 말씀 정경Canon으로 인정하는 성경 무오성inerrancy,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믿는 삼위일체Trinity, 예수님만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기독론Doctrine of Christ, Christology,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이신칭이Justification by faith, 우리가 믿는 것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고백문인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은 절대 변개할 수 없습니다. 일사각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이것이 ‘Remnant Faith’, ‘남은 자 신앙’ ‘거룩한 씨’ ‘이 땅의 남은 구루터기’ 바로 우리들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개신교, ‘Protestant’는 “저항하는 자”입니다. 진리는 끝까지 진리이다. 세상과 배교에 타협하거나 항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 말씀, 믿음, 예수, 진리를 진리되게 하고, 진리가 변질되지 않기를 저항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입니다. 노아의 시대, 아합의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인 지금 하나님이 은혜주시고자 위해 택한 남은자입니다.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죄인인 인간의 본성적인 우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막으시는 의도적인 우둔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적인 관심사를 상징하는 잘 먹고 잘 사는 ‘밥상’이 올무가 되어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아니한 사람의 생활이요, 우둔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와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하지 않게 하옵소서.
② 하나님이 우둔하도록 내버려 두어 구원 받지 못했다고, 책임을 떠넘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죄악 된 인간 본성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멸망 받은 것을 인정한다면, 창세 전 택하셔서, 구원받게 되는 은총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후자가 되게 하옵소서.
③ 우리가 선택 받았다는 것은 누군가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관심 밖에 있게 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권한은 창조자, 절대자,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우리는 내가 선택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중보하는 이들을 “하나님의 선택받을 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④ 남은 자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그대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남은 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남은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장망성, 멸망의 세상에서도, 택한 받은 남은 자가 되게 하옵소서.
⑤ 죄악은 끝까지 죄악이요. 진리는 끝까지 진립니다. ‘거룩한 씨’, ‘이 땅의 그루터기’는, 바로 끝까지 진리를 수호하는 일사각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 이 ‘남은 자 신앙’을 우리와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의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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