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얻었노라
하나님말씀 : 누가복음 15:11-124 2025.10.19. 主日禮拜
1. 다음 “둘째 아들이 탕진하다”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재산을 허비하고 고향 아버지를 생각하다. 둘째 아들은 고생 않고 손에 쥔 돈 날마다 펑펑 쓰다 동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 많던 친구들 한둘씩 다 떠나가 버립니다. 거기에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제 끼니조차 없게 되자, 남의 집 돼지를 치는 일을 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비참한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달픈 몸을 차디찬 땅바닥에 의지한 채로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때 문득 둥근 달로 환하게 비취어진 들녘을 바라보며, 그 너머 떠나온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혼자 생각으로 말했다는 말이죠)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집에는 일꾼 조차도 먹을 것이 넘친다는 말이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7). 한탄하며, 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빈털터리 신세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셨습니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을 만나라는 신호이다.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어떤 계기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계기가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한 평생을 자신만만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생각납니다. 아마 그때는 가장 순수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올 때일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왜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까? 아들이니까? 아버지가 계시니까? 왜 아버지를 찾습니까? 그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을 살다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니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능이에요. 여러분 본능을 속일 수 있습니까? 아들이기에 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나는 순간을 일컬어 ‘삶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위기 온 거예요. 그제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는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다양합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해보아도, 그때 뿐일뿐 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다시 그대로 마음이 텅 비어버리고 맙니다. 왜 이런 감정이 생깁니까? 이것이 위기입니다. 위기! 하나님을 알고도 제 마음대로 살다보니 찾아오는 위기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벼랑에까지 몰려도 안돼서, 땅 바닥까지 내동댕이쳐야 깨닫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혹은 중병으로 가족 중에 먼저 떠나게 되는 경우에 비로소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위기가 찾아 올 때, 모든 인간은 그동안 자기 자신을 포장했던 위장의 꺼풀이 다 벗겨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하나님” 이라고 하늘을 향해 외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찾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까? 왜 찾습니까? 내가 그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 분이 교회를 핍박하고 교역자를 비방하다가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다니던 교회에 장례를 요청하여, 교회 장으로 다 마친 후, 위로 예배를 드리러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제가 알지 못하고 그런 큰 죄를 지어 내 아들이 그렇게 되었다고요.” 그렇게 사랑하던 자식을 잃고 그 어머니가 찾은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런 인생의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왜! 찾는다고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적으로는 비극인지 모르지만, 그나마 그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생각하였다면, 인생에 복된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실패가 아니라, 위기에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실패이다. 인생 80-90 잘살다가 가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끝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위기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도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되었던 부름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어떤 계기로든 인생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위기를 만나 아버지를 생각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위기를 통해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 오늘 예배에 오신 분들 가운데 그런 위기에 있는 분들도 계실 줄도 모릅니다. 남이 모르는 마음의 위기 말입니다. 그때 누군가를 통해 교회로 인도되어 이 자리에 온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아버지를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세요. 이 자리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순간이 여러분에게 너무 너무나 복된 순간임을 꼭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2. 다음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아들을 포옹으로 맞이하는 아버지. 한편 둘째 아들을 멀리 떠나보낸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 생각에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아들의 헤프고 방탕한 끼를 누구보다도 알았던 아버지는 “이놈이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아마 제 마음대로 살다가 다 탕진하고 돌아올 거야 반드시 돌아올 거야” 하고 예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녁 상을 물리면, 저 멀리 동네 어귀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 어귀를 누가 돌아오는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영락없이 아들의 모습이거든요. 너무나 기쁜 아버지는 그 연로하고 비대한 몸을 뛰뚱뛰뚱거리면서, 아들을 향해 달음박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집까지 올 거리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런 말이죠)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아들을 보고란 말이죠)측은히 여겨 달려갔다…”고 하였습니다(20). 달리고 달려가서는 “아들아!” 큰 소리로 부르면서 덥썩 껴안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돼지 치던 몸에서 냄새가 얼마나 나겠습니까? 뭐라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모습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 오물 냄새도 아랑곳없이 누추한 차림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지요. 그저 내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 하나만을 기뻐한 아버지는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날을 묻지 않는다. 그 순간 아들은 아버지 만나면 꼭 해야지하고, 외웠던 말을 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19,21)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일꾼 머슴으로 봐달라는 말이죠. 머슴으로 나를 받아 주세요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얘야! 무슨 소리냐 아무말 하지 말고 집으로 가자”고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와 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지난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다 이제 왔냐! 책망하지 안했습니다. 가진 것 다 어떻게 했느냐 묻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아버지는 기뻐하면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하인들을 부르고 우리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다, 잔치를 베풀어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내 아들이 죽었다 살아났고, 내가 아들을 ‘다시 얻었노라’. 오늘 말씀의 제목이죠. 다시 얻었노라 온 집안이 잔치에 즐거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의 아버지는 과거를 묻지 않고 모든 것을 이미 다 용서하고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둘째 아들은 우리들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이 말은 하나님은 자기에게로 온 자들의 과거의 죄를 묻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둘째 아들과 같이 허랑방탕하게 살았다고 하였어도 어떤 계기가 되어 하나님을 찾았다 하여도,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받아 주신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기뻐서 하늘에서 천사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신다는 것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80-90 시한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 하나님과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인생의 종지부를 마친 다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히9:27). 심판은 영멸입니다. 지옥입니다. 밤낮없이 불과 유황으로 고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심판에 이르러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며,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에게 저 나라 천국에서 영원한 삶이 준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돌아와 참된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누린 것과 같이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때, 참된 평안과 안식과 행복 그것도 영원한 누릴 수 있는 삶을 약속해 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다음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3:10-11).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찾지 않은 것이 죄인이듯 하나님을 찾지 못하므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가 죽음이요.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완전히 끊어 버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이러한 약점과 난제를 아시고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을 주셨는데, 그것은 자기 아들 예수를 인간과 똑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인간이 발견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세상에 내려와 우리들의 세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게 한 분이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4:9).
4. 다음 “죄(죽음)의 문제를 해결받으라”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처리해야 될 문제가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죄를 가진 인간이 만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우리의 죄를 짊어질 자격자가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하나님으로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신 유일한 자격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이 중요한 것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히9:22).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하죠. 죄가 우리의 생명을 앗아갔어요. 그러므로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 죄를 없애야 하는데, 피가 필요합니다. 피가 있어야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데, 아무 피 갖고 되지 않아요. 의인의 피 즉 죄 없는 피가 필요한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신 저주의 죽음이요 지옥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을 모두 다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속입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니라”(행2:23-24). 예수님은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시고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한순간에 다 용서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내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예수님이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에게 조건은 딱 하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됩니다. 믿음의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안겨집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세요. 우리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너무나도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위기 고통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두 팔 벌리고 여러분을 안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제멋대로 살다가는 다음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심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 곁에 여러분의 마음에 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십시오. “예수님 믿습니다. 예수님 나를 위해 십자가 죽으심을 믿습니다. 부활하셔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만 믿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세요.”하고 고백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활을 하였건 둘째 아들의 아버지처럼 잔치를 벌이고 다 용서 하십니다. 그러면 이 시간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마음이 열리고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인생을 예수님 믿음으로 사십시오. 오늘 설교의 결론입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둘째 아들이 탕진 후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실패가 아니라, 위기에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우리가 중보이들이 어떤 크기이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복된 위기가 되게 하옵소서.
②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여 빈손을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돌아온 자들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너무 기뻐한 아버지 같이 잔치를 천국에서 여십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이 하나님이 준비한 잔치에 참예하게 하옵소서.
③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았으면, 계속 돼지를 치며, 돼지 우리에서 자고,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고 죽으면 영멸입니다. 지옥입니다. 밤낮없이 불과 유항으로 고통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참된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영원히 누리게 하옵소서.
④ 둘째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단했을 때, 아버지는 달려와서 아들을 맞이하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직접 세상으로 내려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주님의 노크에 문을 열게 하옵소서.
⑤ 둘째 아들이 모든 재산을 탕진했지만, 부자인 아버지에게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주님이 죽으신 십자가 대속으로 사하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조건은 단 하나 믿으면 됩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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