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강해 26 이재현목사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행 28:11-31)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2. 12. 18. 15:30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8:11-31 2022.12.18. 主日禮拜 

 

바울이 로마로 가다 11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보고 듣는 자의 복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29(없음)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15-31)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기 위해 승선한 배는 유라굴로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한 사람도 상함을 당하지 않고, 멜리데 섬에서 구조되었고,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주어서, 오랜만에 땅을 밟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2). 바울이 독사에 물렸지만 상함을 당하지 않는 역사가 나타났고, 추장 보블리오 부친이 열병과 이질을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하여 낫게 되었으며, 다른 많은 병자도 고침을 박았습니다(3-9). 하나님께서는 섬에서 삼 개월 동안 바울을 통해 멜리데를 거룩한 영토로 원주민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11). 본문에서 지난 2년여 동안 바울은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22:1,6-9,21,30-23:1,11,26), 가이사랴 헤롯 궁 재판정에서(24:24,26-27,25:13-17,26:1-23,29), 광풍 에 표류하는 배 위에서(27:11,14-20-44),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죄인이 입는 자의赭衣를 입고서도, 복음을 증거를 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전파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면서도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딤후2:9), 첫 번째로 마지막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항상 신실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참고/18:37,19:10-11). 이 신앙을 바울은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참고/딤후4:7-8).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2:12). 최후까지 신앙을 가지라는 명령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연약함으로 부인할 수도 있지만, 돌아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참고/26:69-75).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10:32). 우리를 하나님 앞에 시인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예수님에게 시인을 받으면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를 위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주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딤후2:11).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참고/8:35).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 큰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기 이전에요. 시간 내에서 예배 출석도 안 하고, 땀 흘려 봉사도 하지 않고, 피 같은 헌금도 안 하고, 다 나를 위해 사용했어요. 그때 행복했어요. 우리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쓴다고, 그것이 내게 유익으로 행복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모든 인간은 외롭고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고 써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만날 때,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위하여 죽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왕 노릇의 권세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딤후2:12). ‘함께라는 말은 주님과 함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왕이시라는 것이고요. ‘왕 노릇이라는 것은 왕은 아닌데 왕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주와 함께 죽었으면’(딤후2:11). 왕권자는 바울과 같은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을 산 성도와 주를 위해 목숨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의 상급이 같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20:14). 마지막 때 등장할 짐승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지배하기 이전인 지금 교회 시대 순교자와 장차 적그리스도가 지배한 이후 종말 시대 순교자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말씀합니다(20:14).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에 세우실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에서, 왕권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흰 보좌 심판에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20:14). 

 

사도 요한 밧모섬에 유배당하며,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1:1,9). 그리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2:20-21). 종언 후, 편안히 천국에서 안식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순교자의 반열에 놓습니다. 그 이유는 일생 동안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주님과 함께 죽고 산다는 신앙을 잃지 않고. 그 또한 승리의 면류관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2:10).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주리라고 하였습니다(2:26). 이 또한 순교자에게 주시는 왕 노릇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며 충성을 다하면 순교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자가 구원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함께 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딤후2:10).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증거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살리라는 신앙과 순교자로서 왕권자가 되는 의의 면류관 영원한 영광입니다(딤후4:8).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기 위해 승선한 배는 유라굴로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한 사람도 상함을 당하지 않고, 멜리데 섬에서 구조되었고,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주어서, 오랜만에 땅을 밟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2). 바울이 독사에 물렸지만 상함을 당하지 않는 역사가 나타났고, 추장 보블리오 부친이 열병과 이질을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하여 낫게 되었으며, 그 외 많은 병자도 고침을 받았습니다(3-9). 하나님께서는 섬에서 삼 개월 동안 바울을 통해 멜리데를 거룩한 영토로 원주민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11).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10). 멜리데 섬에서 석 달간 겨울을 보내고, 항해를 재개를 준비할 때, 그동안도 후한 예로 대접을 했던 원주민들은 필요한 물품들까지도, 배에 가득 실어주는 선을 베풀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이러한 후대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느 사람이든 사용하실 수 있으신 분임을 믿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마시고요. 바울과 같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는 분들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11). 로마로 여정이 재개되었습니다. 지중해는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항해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래서 멜리데에서 겨울을 난 것이고요. 따라서 출항은 대략 2월 중 후반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군인·학자. 속주 총독이었고, 나폴리만의 해군 제독으로 재임한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의 저서 자연사에는 지중해는 2 8일에 서풍이 불기 시작하므로, 이때부터 로마로 여행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 일행도 그 전후로 섬을 떠났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로마로 이송되는 바울의 동행자이자,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알레산드리아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고 하였습니다(11). ‘디오스구로’Dioscuri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신 제우스Zeus와 레다Leda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신The Twin gods ‘카스토르’Castor 폴룩스’Pollux로 선원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들의 별자리인 쌍둥이자리가 폭풍 기간에 보이면 행운의 전조로 여겼습니다. 

 

삼 개월 전 그레데섬 미항에서 바울이 항해를 계속하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중단을 말했을 때,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겨울을 지내기 좋은 뵈닉스로 항해를 강했는데요(27:7-11). 어쩌면 선장과 선주는 전날 밤 쌍둥이 별자리를 보고 자신들의 수호신인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바다에서 지켜줄 줄 알고, 행해를 결정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과 같이 유로굴라 광풍으로 배가 파선되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27:14-18). 누가가 뱃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디오스구로까지 언급한 것은 성경과 신화를 대조하여 교훈하고자 함입니다. 너희들이 수호신으로 믿고 있는 신화의 신들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뱃머리를 장식한 디오스구로 같은 미신을 내심 믿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오직 하나님 만을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멜리데 섬을 떠난 뒤 첫 번째 기착지는 수라구사입니다(12). ‘수라구사는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 있는 한 항구이고요. 이곳에서 사흘을 정박했습니다(12). 아마도 바람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이고요. 또 유로굴로 광풍으로 배가 손상되었고, 멜리데 섬에서 어느 정도 정비를 하였지만, 미비한 곳들을 재점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수라구사에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게 되는데요(13). ‘레기온은 이탈리아 본토에서 발가락 모양과 같이 생긴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하루를 지낸 후 항해하기에 좋은 남풍 일어남으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게 됩니다(13). 드디어 육지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죠. 보디올 레기온 로마의 중간 지점으로, 오늘도 마찬가지로 나폴리 만 가운데서 가장 안전한 남부 이탈리아의 주요 항구입니다. 특히 이곳은 바울이 지금 타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배와 같이 밀을 주로 싣고 온 배들이었으며, 따라서 이곳은 로마의 중요한 무역항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함에 따라, 유대 총독 베스도는 이스라엘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 배에 바울을 승선시켰고, 이때부터 로마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25:11-12,27:1). 이튿날 오늘날 레바논 시돈을 거쳐, 터키 무라에서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환승 후, 항해를 계속했지만,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27:2-9). 이때 바울의 항해 중단을 권면하였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강행을 하였고, ‘유라굴로 광풍에 파선되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며, ‘구원의 여망을 잃어버렸습니다(27:10-20). 이 순간 바울이 의연한 모습으로 일어서서, 안심하라 한 사람도 상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한 그대로 이백 칠십육 명 모두가, ‘멜리데 섬에서 구조되었습니다(27:21-44,28:1). 그리고 섬에서 석달 간 겨울을 나고, 다시 행해를 시작한 다음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에 도착하기까지, 약 오 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이제 보디올에서 로마까지 육로로 약 243km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14). 바울 이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는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보디올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되는데요. 오 개월 전쯤 시돈에서와 마찬가지로 보디올에서도, 백부장의 배려로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참고/27:3). 이를 통해 볼 때, 복음이 이미 로마로부터 이탈리아 항구까지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보디올에 있는 주의 형제들을 사도행전을 통해 추적해보면, 본문으로부터 약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해외에 거주해 있는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십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제자에게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2:1-3.참고/24:49).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타국에서 온 유대인들이 거주 나라들의 언어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였습니다(2:4,7-11). 이때 로마에서 온 유대인들도 있었을 것이며, 이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듣고, 예수님은 구주로 영접하였으며, 세례받고 죄 사함을 받았으며, 성령의 선물을 받고, 로마에 교회를 세웠을 것입니다(2:31,38-39). 이미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로마에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 부부를 만난 것을 보아도, 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18:1-2). 이렇게 로마 교회는 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바울을 통하여 더욱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본문으로부터 3년 전, 고린도에서 삼 개월을 체류하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쓴 로마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참고/20:2-3;16:1-2,23;고전1:14;딤후 4:20). 그러므로 보디올에 있는 성도들은 죄수의 신분으로 온 바울은 따듯하게 맞아 주었고, 일주일간을 기쁨으로 대접하며, 귀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바울도 죄수의 신분이지만 이송되는 도시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안부과 교제와 말씀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보디올에서 이레를 보낸 후,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14). 이제 정말 로마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라고 하였습니다(15). 로마에서도 바울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영접하러 온 주의 형제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압비오 광장’Forum of Apphius은 여행객들이 묵으면서 말을 바꾸어 타던 여행 경유지입니다. ‘트레이스 타베르네’Three Taverns 세 채의 여관이란 뜻으로 압비오 광장에 근처에 있는 숙박업소입니다. 로마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1929-1993이 동전을 던졌던 세 개의 분수” ‘트레비 분수’Trevi Fountain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 있던 주의 형제들이 황제 앞에서 재판받고자 압송되어 오던 바울을 마중 나와 만났던 세 개의 여관” ‘트레이스 타베르네도 있습니다. 그 앞에서 바울의 감격은 얼마나 컸겠어요. 이미 오래전에 성령께서는 바울에게 로마로 가면 마지막 사역지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참고/19:21,21:13,23:1). ‘로마에서 압비오 광장까지는 약 70km, ‘로마에서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는 약 50km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순교지 로마에서도 자신을 보고자 찾아온 형제들을 바울이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15). 테러와 결박과 환난과 광풍과 표류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로마로 오게 된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들을 보고 담대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성도들도 이러한 관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서로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는 관계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만나다는 헬라어 아파테신’ἀπάντησιν은 어떤 도시의 대표단이 왕이나 개선장군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이 비록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이송되었지만, 로마 교회의 형제들이 볼 때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로서 그리고 영적 지도자로서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교회 성도들의 높임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환대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낙담한 영혼들이 교회에서 감사와 담대로 평안을 얻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참고/16:33).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고 하였습니다(16). 바울은 감옥에 구금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택연금 상태와 같습니다. 미결수 신분으로 정식 재판을 받기까지, 자신이 얻는 셋집에 거하면서, 재판을 기다려야 했습니다(30). 어느 번역본에는 우리가 로마로 들어갔을 때, 백부장은 자신의 죄수를 군 진영의 책임자에게 넘겼다고 했습니다(“And when we came to Rome, the centurion delivered the prisoners to the captain of the guard: but Paul was suffered to dwell by himself with a soldier that kept him”.kKJV)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13).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 감금되어 있던 때입니다. 그 기간이 2년이었는데요(30). 바울은 이러한 중에도 자신을 지키는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 전파 진전을 이루었습니다(1:12). 당시 시위대가 구금 방법은 죄수를 혼자 두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옥에 갇힐 때처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12:6). 군인과 죄수를 함께 동거하여 지내게 했습니다. 바울의 구금 장소는 시위대 영내가 아니라, 밖에 있는 가옥에서 연금 형식인데요. 일종의 보호관찰을 전제로 한 감금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요. 시위대 군인의 감시하에 행동해야 했기에 많은 제약制弱이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말씀과 같이 그리고 지난주일 설교와 같이 죄수가 입는 자의赭衣를 입고도 복음 증거를 쉬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전도자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전도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전도의 현장에 전도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가택연금에서 여러 정리를 마치고, ‘사흘 후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청하였습니다(17). 바울은 이전 전도 여행에서는 도시 있는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었습니다(9:20,13:5,14,14:1,17:10,18:4,19,19:8). 그러나 이제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자, 로마에 있는 유력한 유대인들을 자신의 주택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앞서도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많은 주의 형제들이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이 바울이 가이사 상소로 로마에 와있다는 소식을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과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같이 자신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로마까지 오게 된 이유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17-20)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요지. 첫째,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유대의 관습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요(17). 둘째, 유대에 있는 로마 군대 천부장과 총독과 왕들도 자신이 죄가 없다고 여겨 석방하려고 했다는 것이요(18.참고/23:29,25:25,26:31-32). 셋째, 자신은 유대인들이 사실관계나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정죄하려고 했기에 가이사에게 상소했다는 것이요(19.참고/21:27-29,23:6,24:11,18-20,25:10-11,26:22-23). 넷째, 자신은 내 민족인 유대인들과 송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요(19.참고/25:11). 다섯째, 이 자리에 유력한 유대인을 부른 목적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자신이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20). 사도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하여 이전에도 여러 번 증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며, 예수님이 성취하였다는 것입니다(참고/23:6,24:15,26:6-7). 특히 그는 예수님이 언젠가 다시 오셔서, 이스라엘의 왕과 열방의 주로 서실 메시아임을 굳게 믿었습니다(참고/1:6). 이렇게 바울은 재판이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송사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하게 되었으며, 무죄로 석방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오히려 구약의 예언을 전하는 이 충성스러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바울은 로마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은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21). 바울이 그동안 겪었던 재판과 상소와 이송 등에 대하여, 자신들은 어떤 사실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로마에는 이미 기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가 대립한 크레스토스(그리스도) 소동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제4대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AD41-54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에게 예배를 허용하는 등 관용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에 잦은 분쟁이 발생하자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습니다(18:2). 그러므로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에 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모른다고 한 것은, 이전의 크레스토스 소동 같은 사태가 재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도 로마에서 추방당할 수 있기에 때문입니다. 이렇게 로마 유대인 지도자들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답변으로 보입니다.

 

바울에게 유대인 지도자들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요(22). 이 말에서 그들의 모순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을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서는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라고 말한 뒤, ‘이 파에 대하여라는 것은, 예수를 증거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 예수를 아주 하찮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만, 유대인들은 어느 국가에 가든지 회당을 세웠고, 각 나라의 도시에 있는 회당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도,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을 아주 인기 없는 예수 파당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디 서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자의 복 

 

바울의 변론을 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날짜를 정하고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고 하였습니다(23). 바울이 재판을 기다리는 2년 동안 그의 셋집은 거룩한 처소가 된 것입니다. 바울의 강론을 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졌다고 하였습니다(24-25).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이사야서 를 인용했습니다(24-25).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26-27).

 

예수님께서도 유대 무리에게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하시면서(13:2,13),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13:14-15). 예수님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천국에 관한 가르침을 주시기 원했지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3:11). 천국은 무엇입니까? 천국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천국은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 첫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4:17). ‘천국이 가깝다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으로 번역한 영어 성경도 있습니다(RSV). 그 뜻은 천국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네 눈앞에 네 손에 잡힐 거리에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너희들 앞에 있는 나 예수가 천국이다. 나를 잡아라,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 눈앞에 천국, 예수님이 계신데도 믿지 않는 무리에게 예수님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13:13-15).

 

사도 바울도 강론을 통해 유대인 지도자들아, 너희들이 알고 있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이 곧 천국이신 예수에 대한 예언이다고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서로 맞지 않는다며, 흩어지는 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너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라고 한 것입니다(25-27).

 

천국이 가까이’ ‘at hand’ 손닿을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손만 뻗으면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누구라도 예수님이 구주가 되심을 믿고, 지은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믿음의 손을 뻗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 천국을 두고도, 엉뚱한 곳에서 천국을 찾고 있습니다. 또 천국 문을 열기 위해 아무 소용도 없는 온갖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회두청산’回頭靑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청산이 거기 있더라는 말입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봄을 찾지 못하고 신발이 다 닳도록 산등성이 구름만 쫓아다녔네! 집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치는데 봄은 이미 매화나무 가지 위에 온전히 와 있었네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마찬가지로 구원의 도리를 모를 때, 어떤 종교는 고행합니다. 그것은 신발이 다 닳도록 구름만 쫓아다닌 꼴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순간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천국이요. 예수님 계신 곳에 천국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20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17:20-21). 예수님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천국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우리 마음이 천국인 것이요. 천국인 저와 여러분이 모인 교회 또한 천국입니다.

 

천국은 예수님께서 2천 년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 전파를 통해서 계속 확장하고 있으며,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주님이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시는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여, 천지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그리고 난 후, 영화로운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천국에 입성으로, 천국은 완성되는 것입니다(3:21;고전15:24,50-51;22:1-2). 천국은 예수님 자신이며,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우리 자신, 가정, 교회입니다. 어느 곳이든 예수님이 함께 계시고,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곳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을 주시기 위하여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눈앞에 있는 예수님에게 손만 뻗으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이 자기들 눈앞에 왔는데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예수님을 전하고 알도록 하였는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까? 천국인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이 천국임을 믿습니까? 우리가 모인 가정과 기업과 교회가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13:11). ‘13그러므로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13:13,16). 다시 한번 전합니다. 예수님이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까? 천국인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이 천국임을 믿습니까? 우리가 모인 가정과 기업과 교회가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복 중의 복 가장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力說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믿음, 구원, 영생을 갖지 못하면, 지옥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갖지 못했어도, 믿음, 구원, 영생을 가지면 천국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가장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받지 못하고 떠나는 유대인들에게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28). 저와 여러분은 유대인이 아니요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으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명예, 지위, 부유가 부럽지 않습니다. 예수가 전부입니다. 구원이 전부입니다. 복음이 전부입니다.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사도행전 첫 장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그러면 이 명령이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서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셋집에서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이 자세야말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1, 2, 3차 전도 여행에서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결박당하고, 천부장에게 넘겨졌지만,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22:1,6-9,21,30-23:1,11,26), 가이사랴 헤롯 궁, 총독과 왕과 왕비가 앉아 있는 재판정에서(24:24,26-27,25:13-17,26:1-23,29), 광풍에 표류하는 선상에서(27:11,14-19,20-44),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28:8-90), 로마로 압송 미결수로 가택연금에서도, 천국을 전파하며,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사명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었습니다. 예수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가이사랴 헤롯 궁 재판정에서, 광풍에 표류하는 선상에서,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로마의 셋집에서도, 천국을 전파하며,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던 것과 같이, 우리도 어떤 환경과 형편에 놓이던 전해야 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 이 말씀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구원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이 구원받은 지금은 교회시대 성령시대 은혜시대이기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2:21참고/2:4,37-38). 그러나 이 시기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할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고후6:2). ‘지금이란 말은 이후에는 끝이 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을 상징하는 돌감람나무인 저와 여러분, 이방인의 구원의 충만한 수가 차면, 꺾이게 됩니다. 교회시대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되면,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 돌 감람나무는 잘라버려 지고, 원래 잘렸던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 가지가 붙여집니다. 더 이방인의 구원 받을 수 없는 종말의 시대가 됩니다(11:12,17-26).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가 이르기 전, 지금 전해야 합니다.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눈앞에 있는 것을 잡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을 주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손만 뻗으면, 예수님 믿기만 하면, 곧바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전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천국이 있다는 복음을 모릅니다. 우리의 전파가, 구원을 얻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해 천국을 얻지 못해, 인생의 향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니까요. 우리는 천국이 손에 닿을 곳에 있다고, 모두에게 힘써 전해야 합니다. 천국을 전파하며,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더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증인 되리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정리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

 

바울의 일행이 멜리데 섬에 구조되어 겨울을 나기 위해 석 달을 머무는 동안, 원주민들은 후한 예로 대접을 했고, 떠날 때는 필요한 물품까지도, 배에 가득 실어주었습니다(10-11). 하나님께서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해 원주민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울같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는 분들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이전에 바울의 권면을 듣지 않고, 항해를 강행한 이유가 어쩌면, 선원들의 수호신인 디오스구로의 쌍둥이별자리를 전날 밤 보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11.27:7-11). 결과는 유로굴로 광풍으로 파선을 하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27:14-18). 신화의 신들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입니다. 디오스구로 같은 미신을 내심 믿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오직 하나님 만을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멜리데 섬을 떠난 배의 이탈리아 시칠리섬에 있는 수라구사에 기착했습니다(12). ‘사흘을 머문 후, 본토에서 발가락 모양과 같은 레기온에서 하루를 지내, 항해하기 좋은 남풍을 타고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게 되는데요(13). 드디어 육지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이사랴에서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약 오 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보디올에서 로마까지 육로로 약 243km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보디올에서 일주일을 있는 동안 바울을 주의 형제들이 찾아와 문안하였습니다(14). 로마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지만, 이전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한 편지인 로마서 통해, 교회가 더욱 아름답게 세워져 갈 수 있었습니다(참고/18:1-2,20:2-3;16:1-2,23;고전1:14;딤후 4:20). 그러므로 보디올에 있는 성도들은 죄수의 신분으로 온 바울은 따듯하게 맞아 주었고, 귀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바울도 죄수로 이송되는 도시에서도, 믿음의 사람들과 안부과 교제와 말씀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여행객들의 휴식와 숙박할 수 있는 압비오 광장’ ‘트레이스 타베르네에서도, 소식을 듣고 맞으러 온 형제들과 만나게 됩니다(14-15). 순교지가 될 로마에서도, 자신을 보고자 찾아온 형제들을 바울이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15.참고/19:21,21:13,23:1). 테러와 결박과 환난과 광풍과 표류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로마로 오게 된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들을 보고, 담대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환대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낙담한 영혼들이 교회에서 감사와 담대로 평안을 얻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참고/16:33).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미결수 신분으로 구금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얻은 셋집에서 2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16,30). 그 기간 자신을 감시하는 시위대 군사들에게 복음 전파 진전을 이루었습니다(16.참고/1:1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전도자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전도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전도의 현장에 전도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은혜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가택연금에서 여러 정리를 마치고, ‘사흘 후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청하였습니다(17). 주의 형제들을 통하여,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들 중 유력한 자들이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로마까지 오게 된 이유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첫째,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유대의 관습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요(17). 둘째, 유대에 있는 로마 군대 천부장과 유대 총독과 왕들도 자신이 죄가 없다고 여겨 석방하려고 했다는 것이요(18.참고/23:29,25:25,26:31-32). 셋째, 자신은 유대인들이 사실관계나 뚜렷한 증거도 정죄하려고 했기에 가이사에게 상소했다는 것이요(19.참고/21:27-29,23:6,24:11,18-20,25:10-11,26:22-23). 넷째, 자신은 내 민족인 유대인들과 송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요(19.참고/25:2,11). 다섯째, 이 자리에 유력한 유대인을 부른 목적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자신이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20). 사도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하여 이전에도 여러 번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며, 예수님이 성취하였다는 것입니다(참고/23:6,24:15,26:6-7). 이렇게 바울은 재판이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송사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하게 되었으며, 무죄로 석방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구약의 예언을 전하는 이 충성스러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로부터 로마로 오게 된 이유를 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은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21). 바울이 그동안 겪었던 재판과 상소와 이송 등에 대하여, 자신들은 어떤 사실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일까요? 로마에는 이미 기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대립한 크레스토스(그리스도) 소동으로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추방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18:2). 그렇기 그와 같은 사태가 재발생하여 피해를 받지 않을까봐 정치적 판단에 따라 처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에게 유대인 지도자들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요(22). 이 말은 모순입니다. 바울을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라고 하였고요. ‘이 파에 대하여라는 것은, 예수를 전파하는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다른 나라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서도, 이미 반대하고 있다는 정보를 로마 유대인 지도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아주 인기 없는 예수 파당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보고 듣는 자의 복 

 

바울이 재판을 기다리는 2년 동안 그의 셋집에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날짜를 정하고 찾아왔고, ‘바울이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를 전하는 거룩한 처소가 되었습니다(23).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졌다고 하였습니다(24-25). 바울은 이사야를 인용, ‘26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 마음이 우둔하여 귀로는 둔하게 듣고 눈은 감았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26-27). 예수님께서도 유대 무리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요(13:2,13-15). 그것은 천국을 가르치시기 원했지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3:11). 천국은 무엇입니까? 천국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천국은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 첫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를 영어 성경에서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번역하고 있습니다(RSV.4:17). 그 뜻은 천국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 앞에 있는 나 예수가 천국이다. 나를 잡아라,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 눈앞에 천국, 예수님이 계신데도 믿지 않는 무리에게, 예수님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율법과 선지자의 말이 곧 천국이신 예수에 대한 예언이다고 전했지만, 맞지 않는다며, 흩어진 자들에게 주님과 같이 말씀한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at hand’는 손닿을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손만 뻗으면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누구라도 예수님이 구주가 되심을 믿고, 지은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손을 뻗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 천국을 두고도 엉뚱한 곳에서 천국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20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17:20-21). 예수님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천국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우리 마음이 천국인 것이요. 천국인 저와 여러분이 모인 교회 또한 천국입니다.

 

천국은 예수님께서 2천 년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 전파를 통해서 계속 확장하고 있으며,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주님이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시는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여, 천지창조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그리고 난 후, 영화로운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천국에 입성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3:21;고전15:24,50-51;22:1-2). 이제 눈앞에 있는 예수님에게 손만 뻗으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이 자기들 눈앞에 왔는데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예수님을 전하고 알도록 하였는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까? 천국인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이 천국임을 믿습니까? 우리가 모인 가정과 기업과 교회가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13:16). 우리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복 중의 복, 가장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떠나는 유대인들에게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28). 우리는 이방인이나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을 얻은 자입니다. 유대인으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명예, 지위, 부유가 부럽지 않습니다. 예수가 전부입니다. 구원이 전부입니다. 복음이 전부입니다.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사도행전 첫 장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1:8). 이 명령이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서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셋집에서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이 자세야말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가이사랴 헤롯 궁 재판정에서, 광풍에 표류하는 선상에서,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로마의 셋집에서도, 로마로 압송 미결수로 가택연금에서도, 천국을 전파하며,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참고/22:1,6-9,21,30-23:1,11,26,24:24,26-27,25:13-17,26:1-23,29, 27:11,14-19,20-44, 28:8-9).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사명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었습니다. 예수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같이, 우리도 어떤 환경과 형편에 놓이던 전해야 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 이 말씀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구원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이 구원받은 지금은 교회시대 성령시대 은혜시대이기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2:21.참고/2:4,37-38). 그러나 이 시기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할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고후6:2). ‘지금이란 말은 이후에는 끝이 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을 상징하는 돌감람나무인 저와 여러분, 이방인의 구원의 충만한 수가 차면 꺾이게 됩니다. 교회시대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되면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 돌 감람나무는 잘라버려 지고, 원래 잘렸던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 가지가 붙여집니다. 더 이방인의 구원 받을 수 없는 종말의 시대가 됩니다(11:12,17-26).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가 이르기 전 지금 전해야 합니다.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눈앞에 있는 것을 잡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을 주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손만 뻗으면, 예수님 믿기만 하면, 곧바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전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천국이 있다는 복음을 모릅니다. 우리의 전파가 구원을 얻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해 천국을 얻지 못해 인생의 향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일까요. 우리는 천국이 손닿을 곳에 있다고 모두에게 힘써 전해야 합니다. 천국을 전파하며,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더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증인 되리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믿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을 믿습니다. 천국인 예수 믿는 우리 마음이 천국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모인 가정과 기업과 교회가 천국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보고 듣는 복을 주셔서, 가장 큰 복 예수 믿고, 천국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세상 부럽지 않습니다. 예수 전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바울은 로마 셋집에서도, 천국을 전파하며,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과 형편에 놓이던 전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전파가, 구원을 얻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해 천국을 얻지 못해, 인생의 향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되게 하옵소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증인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이어서 기도합니다.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따뜻한 보살핌 만 아니라, 다시 항해하는데 필요한 준비까지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해 그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누가 변화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그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은혜를 기도합니다. 

 

선장은 배의 수호신 디오수구로의 쌍둥이 별자리를 보고 항해를 결정했다가, 유로굴로 광풍에 파선했습니다. 신화의 신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은혜를 기도합니다. 

 

가이사랴에서 시작된 로마의 여정은 오 개월여 만에 보디올에 도착 육지를 밟게 됩니다. 이때 바울의 편지 로마서를 통해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한 로마 교회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죄수로 이동 중에도 교제와 말씀을 나누며, 큰 힘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이 은혜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주의 형제들을 만나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환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낙담한 영혼이 와서 감사와 담대로 평안을 얻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가택연금 중에도 자신을 감시하는 시위대에게 복음의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전도자입니다. 전도의 현장에 전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은혜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