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강해 22 이재현목사 "바울의 강론"(행 23:12-24:27)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2. 11. 20. 15:38

바울의 강론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사도행전 23:12-24:27 2022.11.20. 主日禮拜 

 

바울을 죽이려는 간계 23:12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바울을 벨릭스 총독 앞에 세우다 31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바울을 고발하다 24: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6하반-8상반 없음) 8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바울이 변명하다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바울이 감옥에 갇혀 지내다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23:12-24:27)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추수감사주일에 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온 가족이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좋은 목사님 성도님을 만나서, 사랑하고 섬기고 중보하고, 위로받고 격려하고 세워주고,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고,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신, 축복의 통로로 교회 공동체를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일 첫 번째 가르침 주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바울은 안토니아 요새Antonia Fortress  층대에 서서 자신을 죽이고자 모여 있는 백성에게 회심 이전 신분과 이후 주님의 제자가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예수님께 교회를 잔멸하던 자기 정체가 드러났을 때, 이방 사도가 되라는 그분의 명령을 받고 따랐습니다(21:39-22:21.참고/9:1-19,26:12-13). 그러나 무리는 예수를 전해 믿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된 자들이 자기들이라고 하자, 옷을 찢고 먼지를 날리며, 분노했습니다(22:22-23.참고/삼하16:13;26:65;7:58,22:18,23:12-13). 주님이 바울을 부름은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9:15). 우리는 주님께 솔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부르신 것은, 주신 은사와 복을 따라, 가장 귀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계획을 모르는 자는, 무리와 같이 분노를 발하는 것입니다(참고/딤후3:8). 우리는 나를 알고 계신 주님의 뜻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같이 주님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향하신 주님의 계획대로 나를 가장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두 번째 가르침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안 천부장은 이튿날 정식으로 산헤드린Sanhedrin 공회를 열었습니다(22:24-23:1). 바울이 일성으로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듣기 싫다며,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 명하였습니다(23:2). 이십칠 년 전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신성모독으로, 이제는 바울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겼다며 정죄하려는 것입니다(참고/20:7;26:63-65). 바울은 율법이 무죄 추정 원칙인데, 변론 시작에 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재판관으로서 자격이 없고, ‘하나님이 (아나니아)를 치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23:3.참고/13:10-16;23:27). 그러나 대제사장의 처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율법에 백성의 관원을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기에 존중한다고 하였습니다(23:5.참고/22:28). 인정과 존중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너희도 죄에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담아야 합니다(참고/고전6:1-11). 주님의 말씀에 순종입니다. 

 

세 번째 가르침 주님의 고난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공회에 서로 대립하는 두 종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23:6-8.참고/17:13-18:50;7:3-8,9:10,14,12:2,5-6,23:2-

7;12:18;20:27;23:6,8;3:5;1:14).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은 바리새인으로서 교리를 증거했습니다(23:6,8). 사두개파가 반발했고, 결국 양쪽의 분쟁으로 공회는 해산되어 버렸습니다(23:7,9-10참고/19:23-41).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에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 바울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무리에게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최종 목적지인 로마로 가기 위해 지금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아야 함을 알았습니다(참고/1:24). 우리의 가정과 생업과 교회가, 고난이라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하였습니다(고후1:5.참고/7:4;고전1:21,3:18-21;벧전4:13). 주님의 인도에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고난에 순종할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은혜와 복과 위로는 넘칠 것입니다. 모두 받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을 죽이려는 간계 

 

예루살렘의 유대 무리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울의 죄를 밝히려 했지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바울의 증거로 서로 대립하여 모임이 해산되어 버렸습니다. 로마 군대 천부장은 바울을 안토니아 요새 영내로 들였습니다(23:11). 유대 무리는 공회에서 바울을 유죄 판결 받게하고, 목숨을 해하려고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달했습니다(23:12-13).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분노가 하늘을 찌른 것입니다. 이 사십여 명으로 구성 된의 자객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바울의) (범죄)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영내에서)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너희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는 무시무시한 살해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23:14-15).

 

그런데 바울의 생질이 (사십 명의 자객들이) (바울을 없애려고)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알게 됩니다(23:16). 여기에 등장하는 바울의 생질 조카는 바울 누나의 아들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누나가 있다는 것인데요. 그녀가 누구인가는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고,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유년 시절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공부하며, 정통 바리새인으로 훈련을 받을 때, 누나의 집에 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회심 후, 주님 제자로 살면서부터, 누나와 인연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된 후에는 집안에서 버림받고 상속권까지도 박탈당했을 것입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물로 여겼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3:8). 앞서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누나의 집에 가지 않고, 야손의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도 이를 확인해 줍니다(21:16). 유대교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른 배교자가 된 바울을 그의 가족은 의절했을 것이며, 누나 또한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유대인의 간계에 빠져 죽게 된 것을 보고, 아들을 보내 바울을 구한 누나를 보며, 피는 물보다 진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증오감이 극도에 달했고, 그를 암살하려는 계획입니다. 그것을 로마 군대에 알리려다가, 발각되면 유대 사회로부터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감행한 누나와 조카의 용기와 결단은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밀하게 준비하신 도움의 손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조카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이 음모를) (급히) 알린지라’ ‘바울이 한 백부장(에게)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청하였습니다(23:16-17). 바울은 이것은 중대한 사안으로 예루살렘 치안 총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조카를 보내 직접 알리도록 한 것입니다. ‘백부장이 바울의 조카를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고 하였고,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23:18-19). 바울의 조카는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고 하였습니다(23:20-21).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으로 판단한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23:22).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이었기에 더 예루살렘에 남겨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공회로 바울을 보내었다가, 매복하고 있는 사십여 명의 자객들에게 바울이 목숨을 잃게 되면, 로마 시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천부장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러 밤 제 삼 시(우리 시간으로) ( 9시에) 유대 총독의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할 비밀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23:23).

 

가이사랴’Caesarea는 헤롯 대왕이 인조 항구를 축조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헌상한 지중해 연안 도시입니다(10:1).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서 105㎞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반 장정이 하루에 8시간씩 걷는다고 했을 때,  3-5일이 소요됩니다. 팔레스타인 제일의 거대 도시로 주민 대다수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그동안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서도, 여러 번 언급이 되었습니다. 빌립 집사님이 전도한 성읍 중 하나이었고, 베드로가 로마 군대 백부장 고넬료를 회심시켰으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연설을 들은 백성들이 신의 소리라고 하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벌레에게 먹혀 죽음을 당했고, 회심한 바울이 고향 다소로 가는 도중에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 후에도 2, 3차 선교여행에서도 팔레스타인으로 귀향할 때, 이 항구를 이용했었습니다(8:40,9:30,10:1,24,11:11,12:19-23,18:22,21:8). 그리고 본문에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이곳으로 이송되어 2년 동안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하에 구금되어 변론을 하였고, 황제에게 항소하여 로마로 압송될 때 출항하였던 곳입니다(23:23,25:1227:1).

 

천부장은 두 명의 백부장을 책임자로 세우고,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게 하고,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였습니다(23:23-24). 당시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이 대략 1천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사백칠십 명을 바울을 이송하기 위해 동원한 것으로 볼 때, 천부장의 바울이라는 죄수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수가 아니라, 왕이나 귀빈을 호위하는 행렬 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은 군사를 동원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바울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심입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동맹한 자가 몇 명입니까? 40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부장을 통해 몇 명이 바울을 지키도록 하였습니까? 열 배가 넘는 470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수의 신분이라도 높임을 받게 하는 것 같습니다. 죄수가 아니라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의인으로 이 땅에서도 영원한 나라에서도,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존귀한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천부장은 이송 병력에 편지를 보냅니다(23:25). 예루살렘 치안 총 책임자 천부장 “26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23:26-29) 천부장이 보기에는 바울에게서 어떤 죄도 찾을 수 없었고, 그들의 율법에 관한 것만 문제인데, 유대인들이 공회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였고, 이제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고, 총독에게 이송하게 되었으니, 고발자들도 총독에게 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23:26-29). 

 

바울의 재판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 서다 

 

저녁 9시가, 지금 우리에게는 초저녁에 가깝지만, 밤을 밝히는 전등이 전무하던 2천 여 년 전 팔레스타인 깊은 밤입니다. 사람들이 대부분은 잠든 시간입니다. 사백칠십 명의 군사들이 천부장의 명을 받은 대로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출발) 안디바드리에 이르게 됩니다(23:31). 안디바드리Antipatris,‘안디바에 속한는 헤롯 대왕이 그의 부친 안디바Antipater를 기념하기 위해 재건한 헬라화된 도시입니다. 예루살렘과 가이사랴를 연결하는 군용 도로에 인접한 성읍으로 예루살렘에서 55㎞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정도 거리이면 바울을 죽이려고 예루살렘에 매복해 있는 자객들의 위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생각하고 야영을 하게됩니다. 이제 가이사랴까지는 45㎞ 정도가 남아있는데, 그 거리를 가기 위해서도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두 명의 백부장은 이백 명의 창병과 칠십 명의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보병 이백 명은 예루살렘 영내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23:32). 예루살렘에서 떠나 멀리 왔고, 가이사랴에 인근까지 왔기에 보병까지 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천부장의)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습니다(23:33). 당시 총독은 안토니우스 벨릭스Antonius Felix 52-60년에까지, 유대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천부장의 편지를)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였습니다(23:34-35). 

 

바울을 고발하다 

 

바울이 예루살렘 안토니아 요새에서 공회로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복해 있던 자객들은 가이사랴 총독에게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을 제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방법은 총독에게 정식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를 대동하고,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함께 내려와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합니다(24:1). 재판정에서 피고발자인 바울을 부르매 바울이 그들 앞에 서자, 변호인 더둘로가 고발하기에 앞서 총독에게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며 아부 발언을 합니다(24:2-3) 이어 더둘로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면서, 고발 사항을 열거합니다.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6하반-8상반 없음) 8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24:4-9)

 

고발의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첫째는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는 것이고, 둘째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며, 셋째는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벨릭스 총독은 이미 천부장이 보낸 서신을 통해, 바울에게서 로마 형법에 저촉대는 어떤 죄도 찾을 수 없었고, 유대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변명하다 

 

고발자의 고소 내용을 들은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고 하였고, 피고발자인 바울의 답변이 시작됩니다(24:10). 바울이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24:10).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24:11-13)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총독께서도 곧 아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고발한 사람들은 내가, 성전에서나 회당에서나 성내에서, 누구와 논쟁을 하거나, 군중을 선동해서 모으거나, 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내가 한 일을 들어서 고발하고 있지만, 총독께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24:11-13). 바울은 지금 대제사장의 변호인인 더둘로는 어떤 사실관계나 물증도 없이 고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24:14-16). 그러나 나는 총독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데, 나를 고발하는 이 사람들도, 저와 똑같이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곧 그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장차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24:14-16). 바울은 고발하는 자들과 한 ’, 같은 한 하나님을 믿고 있고, 장차 부활을 믿는 신앙도,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24:17-18) 더욱이 저는 사랑하는 내 민족에게 구제금을 전달하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려고, 여러 해 만에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내가 나실인으로 서원한 네 명의 비용을 부담했으며, 이방 땅에 있다가 돌아와서 성전에서 행하는 정결 예식을 보았을 뿐, 내가 작당을 하거나,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24:17-18.참고/21:26). 바울은 고발인이 말하는 대로 율법을 반대하는 자도 아니요, 성전을 더럽히는 자도 아니요. 오히려 예루살렘 교포들이 어려움을 돕고자, 구제금을 갖고 오고, 율법의 준수했다고 하였습니다. 

 

“18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24:18-20) 내가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에 있는 그 자리에 아시아에서 온 몇몇 유대 사람이 있었는데, 예전에 내가 에베소에 있을 때, 드로비모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그들은, 지금 예루살렘 시내에 그가 있다고, 내가 이방인인 그를 성전에 데리고 가 더럽혔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벨릭스 총독에게 정식으로 고발해야 마땅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전 산헤드린 공회에 내가 끌려갔을 때, 그들이 무슨 잘못을 찾아냈는지, 말해보도록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24:18-20.참고/21:27-29,22:30). 당시 공회는 바울에게서 어떤 죄도 밝히지 못한 채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교리 논쟁으로 해산된 바 있습니다(참고/23:1-10).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24:21).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심문을 받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관련된 문제 때문입니다 하는 이 한마디 말을 부르짖었을 뿐이라면서, 법을 위배하는 어떤 행위나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였습니다(24:21).

 

양측, 대제사장의 고발과 바울의 변명을 경청한 총독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고 하였습니다(24:22). 벨릭스 총독은 천부장의 편지를 통해서도, 그리고 이전에도 예수님에 대해서도,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통치자로서, 그 지역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바울의 무죄임에도 석방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당시 사건 담당자인 예루살렘 치안 책임자 천부장을 가이사랴로 불러들인 후, 당신들의 소송을 처리하겠다면서, 신문을 연기하였습니다(24:22). 율법, 종교적 문제로 자칫 자신 신변까지도, 이상히 생길 수 있기에 한 발을 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24:23). 바울을 총독 관저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친구들의 면회도 수시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24:33). 이러한 배려도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총독도 인정을 한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강론 

 

바울이 감옥에 구금된지 수일 후에 벨릭스 (총독이)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습니다(24:24). ‘바울이 총독과 그의 아내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였습니다(24:25).

 

Righteousness,義

 

바울의 강론 첫 번째는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처음 주신 의는 율법”Law,律法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고 하였습니다(7:12).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선이 무엇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19-20).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의인은 하나도 없고,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참고/3:10). 이렇게 모든 인간의 숙명은 죄인으로 심판이라는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3:10.참고/27:26). ‘나무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습니다(3:13.참고/21:23).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 죽임을 당하신 분이 누구 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나무에 달리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였습니다(3:10).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율법 아래 죄인인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신 것입니다(5:17). 그러므로 이제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하였습니다(3:9.참고/5:1;2:16). 이렇게 하나님의 의인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는 예수님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3:21).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3:11.참고/2:4;3: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3:22). 예수 믿은 의인에게는 차별이 없습니다. 

 

절제Self-Control,節制

 

바울의 강론 두 번째는 절제입니다. 절제의 정의는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절제는 그 의미가 전부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 가면,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며, 고별담화를 하면서, 자신이 떠난 후,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으니, 지난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20:17,28-31). 바울이 본을 보인 것 가운데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라고 하였습니다(20:33-343). 저는 이것을 절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받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곳입니다. 다른 성도에게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드리는 곳입니다. 나의 입지를 다지는 곳이 아니라, 남을 세우는 곳입니다. 사람은 이해득실에 민감합니다. 나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던져야 합니다. 이것을 헌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절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날 같았으면 당연히 내 것으로 취해야 할 순간 아니지!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으로 드려야지라며, 타인에게 기꺼이 베풀 수 있는 것. 그 순간이 바로 아름다운 절제입니다. 내 유익을 타인의 유익으로 바꾸는 크리스천의 고귀한 절제입니다.

 

그리고 이 절제가, 더욱 빛을 발하는 절제가 되기 위해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절제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다른 사도들과 (베드로)와 같이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율법도’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먹을 것을 주라고) (하였다)’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사도들도) (가진) 권리를 (내가) 쓰지 아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고전9:4,5,8,9,11,12). 바울은 윤리적 개념으로 절제만이 아니라, 응당 받을 수 있는 대가까지도, 한 영혼의 전도와 인도와 정착에 쓰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절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고 하였습니다(8:36). 영혼의 구원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헌신이라면,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는 가난한 자일 수 있으나, 영혼을 위해서는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절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2년간, 2,240여㎞, 2차 전도 여행 약 3년간 4,500-5,600여㎞, 3차 전도 여행 5년 동안 4,500-5,600여㎞, 도합 13,440km 그리고 훗날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서, 풀려난 후, 전승에 의하면 스페인 등까지 최대 15,000km까지, 이르는 지역을 순회하며, 쉼 없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 전도 여행 동안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고후11:23-27). 얼마나 고되고 중하며, 핍박과 환난과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까? 그런데도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후11:28-29). 자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염려하였습니다. 한 영혼이 약해지지 않을까 실족하지 않을까? 애가 탔다고 하였습니다. 모직 박해에도,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한 영혼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절제입니다. 

 

심판Judgment,審判

바울의 세 번째 강론은 심판입니다. 악인은 득세하고 의인은 고통받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 불의를 방관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18:5).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악이 하늘을 찔렀다는 것입니다(참고/6:5). 인간들의 죄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지막 심판 때까지 쌓이는 것입니다.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하였습니다(2:5).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28).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22:31). 그들이 지은 죄는 하늘에까지 사무쳤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벧후3:9).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면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득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죄가 하나님이 정한 죄에까지 차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 재림 주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의인의 고난에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순교자의 피, 헌신, 희생이 차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 재림 주께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6:10-11,17,18:18,24,19:11-21).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의인을 보응하고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지금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참고/3:18;고후5:10;살후2:12;9:27).

 

듣지 않는 자의 최후

 

바울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강론을 듣고, 벨릭스 총독과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24:25). !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바울의 강론을 듣고 두려워했을까요? 벨릭스는 로마 황실 노예에서 총독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탐욕스럽고 잔혹한 폭군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바울의 강론을 듣고는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면서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고 하였습니다(24:25-26). 바울의 강론에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부른다고 하고, 다시 부르면서, 그가 원하는 것은 바울에게 돈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풀어 줄 수 있으니 뇌물을 바쳐라, 그러한 의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유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싫어하는 바울을 풀어 줄 수 없기 때문에, 송사를 미루고 미루고, ‘이태 (2년이나)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고 하였습니다(24:27), 유대인과 바울 사이에서 양 줄을 타고 있는 벨릭스가 얼마나 간교한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드루실라Drusilla는 벨릭스의 세 명의 아내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녀는 헤롯 대왕의 손녀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 딸로 태어났고,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입니다. 처음에는 부친의 뜻에 따라, 6살에 소아시아에 있는 콤마게네Commagene 왕자 에피파네스 Epiphanes와 약혼했으며, 15살 때는 수리아에 있는 에메사Emesa 왕 아시수스Azizus와 결혼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고, 유대 총독 벨릭스와 결혼하여 아그립바를 낳았습니다.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다고 믿는 여자이었습니다(Josephus).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가질 것 다 가져보고, 누릴 것 다 누려 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한데 ”, 로마 황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어야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 되고, “절제 총독의 자리에서 치부致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수많은 종을 거느렸습니다. 그에게 한 영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포기하는 절제를 해야 하고, “심판 유대 지역 모든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게, 당신이 구주를 영접하지 않으면 살아서도 심판이요, 죽어서도 지옥 형벌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바울의 강론을 듣고 두려워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바울의 강론 듣고 진리를 알게 된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바울에게는 석방해줄 수 있는 것을 은연중에 비치며, 금품을 바라고, 또한 자리를 보존 받기 위해 고발자인 유대인들 환심을 사야 하기에, 바울이 무죄인 것을 알면서도, 송사를 2년 동안 미루며 가두었습니다. 이것은 의와 절제와 심판의 강론을 듣고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정리

 

바울 죽이려는 간계 

 

유대 무리는 공회에서 바울이 유죄 판결하고 받게 해서 목숨을 해하려고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에 달했습니다(23:12-13). 자객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천부장에게 바울을 너희에게로 내려오게 하라, (우리가 매복하여 있다가)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했다며, 치밀하게 살해 계획을 세웠습니다(23:14-15). 이 사실을 바울의 생질이 듣고, ‘바울에게 (급히) 리었고, 바울은 백부장을 통해 천부장에게 인도하여 전하도록 하였습니다(23:16-17). 천부장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습니다(23:18-22). 만약 바울이 목숨을 잃게 되면, 로마 시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자신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부장은 즉각 백부장 둘을 불러 밤 제 삼 시(우리 시간으로) ( 9시에)’ ‘벨릭스 총독의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로 바울을 이송하기 위해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명했습니다(23:23-24). 마치 왕이나 귀빈을 호위하는 행렬 같지 않습니까? 이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심입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동맹한 자가 몇 명입니까? 40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부장을 통해 몇 명이 바울을 지키도록 하였습니까? 열 배가 넘는 470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죄수의 신분이라도 높임을 받게 하십니다. 죄수가 아니라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천부장은 벨릭스에게 이송 병력에 편지를 보냅니다(23:25). 예루살렘 치안 총 책임자 천부장 “26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23:26-29) 천부장이 보기에는 바울에게서 어떤 죄도 찾을 수 없었고, 그들의 율법에 관한 것만 문제인데, 유대인들이 공회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고, 총독에게 이송하게 되었으니, 고발자들도 총독에게 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23:26-29). 

 

바울의 재판

 

사백칠십 명의 군사들이 천부장의 명을 받은 대로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출발) (가이사랴 중간 쯤에 위치한) 안디바드리에 이르게 됩니다(23:31). 이 정도 거리이면 바울을 죽이려고 예루살렘에 매복해 있는 자객들을 위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생각하고 야영을 합니다. ‘이튿날 두 명의 백부장은 이백 명의 창병과 칠십 명의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보병 이백 명은 예루살렘 영내로 돌아갔습니다(23:32). ‘가이사랴에 (도착) (천부장의)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습니다(23:33). 벨릭스 총독이 (천부장의 편지를)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였습니다(23:34-35). 바울이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자객들은 그를 제거 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이제 방법은 정식 고발뿐이었습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를 대동하고,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합니다(24:1). 재판정에서 피고발자인 바울이 그들 앞에 서자, ‘더둘로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는 것이고,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며,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한다는 세 가지를 고발합니다(24:4-9). 벨릭스 총독은 이미 천부장이 보낸 서신을 통해, 바울에게서 로마 형법에 저촉대는 어떤 죄도 찾을 수 없었고, 유대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변론을 통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총독께서도 곧 아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발한 사람들은 내가, 성전, 회당, 성내 어느 곳에서도, 논쟁이나 선동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총독께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24:10-13). 나는 총독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데, 나를 고발하는 이 사람들도, 저와 똑같이 고대하고 있습니다. 곧 그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장차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24:14-16). 더욱이 저는 사랑하는 내 민족에게 구제금을 전달하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려고, 여러 해 만에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내가 나실인으로 서원한 네 명의 비용을 부담했으며, 이방 땅에 있다가 돌아와서 성전에서 정결 예식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고, 내가 율법을 반대하거나, 작당하거나,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24:17-18.참고/21:26). 

 

아시아에서 온 유대 사람들이 예전에 내가 드로비모와 에베소에 있는 것을 보았고, 지금 예루살렘 그가 있다고, 내가 이방인인 그를 성전에 데리고 가 더럽혔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벨릭스 총독에게 정식으로 고발해야 마땅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전 공회에서 무슨 잘못을 찾아냈는지, 말해보도록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24:18-20.참고/21:27-29,22:30). 당시 공회는 바울에게서 어떤 죄도 밝히지 못한 채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교리 논쟁으로 해산된 바 있습니다(참고/23:1-10). 바울은 공회에서 내가 심문을 받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관련된 문제 때문입니다는 한마디일 뿐 형법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24:21). 벨릭스 총독도 논쟁의 핵심인 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바울의 무죄라는 것도 인지했지만, 유대 총독으로 그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천부장을 불러 소송을 처리하겠다며, 신문을 연기하였습니다(24:22). 그리고는 바울을 헤롯 궁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친구들의 면회도 수시로 할 수 있게 했습니다(24:23). 이러한 배려 또한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 조치입니다. 

 

바울의 강론 

 

바울이 감옥에 구금된 지 수일 후에 벨릭스 (총독이)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습니다(24:24). 드루실라는 벨릭스의 세 아내 가운데 하나로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입니다. ‘바울이 총독과 그의 아내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였습니다(24:25).

 

바울의 첫 번쨰 강론은 ”Righteousness,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처음 주신 는 율법Law,律法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고 하였습니다(7:12).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의인은 하나도 없고,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3:19-20.참고/3:10). 이렇게 모든 인간은 숙명적으로 죄인의 심판이라는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3:10.참고/27:26). ‘나무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나무에 달리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였습니다(3:10,13.참고/21:23).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요일3:5). 율법 아래 죄인인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신 것입니다(5:17). 그러므로 이제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9.참고/5:1;2:16). 이렇게 하나님의 의인 율법 이에 하나님의 한 의는 예수님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3:21). 그러므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3:11.참고/2:4;3: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3:22). 예수 믿은 의인에게는 차별이 없습니다. 

 

바울의 두 번째 강론은 절제”Self-Control,節制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절제는 국어적 의미가 전부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고별 담화에서, 자신이 떠난 후,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으니, 지난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20:17,28-31). 바울이 본을 보인 것 가운데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였다고 했습니다(20:33-34). 이것을 절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날 같았으면 당연히 내 것으로 취해야 할 순간 아니지!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으로 드려야지라며, 타인에게 기꺼이 베풀 수 있는 것. 내 유익을 타인의 유익으로 바꾸는 고귀한 절제입니다. 더욱 빛을 발하는 절제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절제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와 같이 응당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쓰지 않은 것은,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하기 위해, 한 영혼의 전도와 인도와 정착에 쓰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고전9:4-12.참고/8:36). 

 

사도 바울은 최대 15,000km에 달하는 전도 여행 동안 “2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고후11:23-27). 그런데도 자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지 아니하며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았냐고 하였습니다(고후11:28-29). 모진 박해에도 자신을 돌본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절제입니다. 

바울의 세 번째 강론은 심판”Judgment,審判입니다. 악인은 득세하고 의인은 고통받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 불의를 방관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18:5.참고/6:5). 인간들의 죄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지막 심판 때까지 쌓이는 것입니다(2:5).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22:31.참고/1:28). 하나님은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벧후3:9).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면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죄는 하나님이 정한 죄에까지 차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정하신 순교자의 피, 헌신, 희생이 차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 재림 주께서 의인을 보응하고 악인을 심판하십니다(6:10-11,17,18:18,24,19:11-21). 지금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참고/3:18;고후5:10;살후2:12;9:27). 

 

바울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강론을 듣고, 벨릭스 총독과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24:25).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가질 것 다 가져보고, 누릴 것 다 누려 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한데 ”, 로마 황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어야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 되고, “절제”, 총독의 자리에서 치부致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수많은 종을 거느렸습니다. 그에게 한 영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포기하는 절제를 해야 하고, “심판”, 유대 지역 모든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게, 당신이 구주를 믿지 않으면 살아서도 심판이요, 죽어서도 지옥 형벌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바울의 강론을 듣고 두려워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바울의 강론 듣고 진리를 알게 된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는 석방해줄 수 있는 것을 은연중 비치며, 금품을 바라고, 또한 자리를 보존 받기 위해 고발자인 유대인들 환심을 사야 하기에 바울의 송사를 2년 동안 미루며 가두었습니다(24:25-27). 이것은 의와 절제와 심판의 강론을 듣고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의 강론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16:8).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죄와 의와 심판은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성령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5:26). 그러므로 바울의 강론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십자가의 대속을 완성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요 11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16:9-11). 이렇게 주님의 말씀인 죄와 의와 심판은 바울이 강론한 의와 절제와 심판과 동일한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감사를 먼저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벨릭스와 드루실라와 같이 세상에서, 가질 것 다 가져보고, 누릴 것 다 누려 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 본 사람들도, 믿지 못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2:11;13:23;벧후1:11).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10:28).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1:21).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3:22;3:7).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늘 시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3:20).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자, 바울의 강론인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의를 얻고, “절제 한 영혼,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심판 예수를 영접하여 살아서도 죽어서도 심판받지 않는, 진리를 깨닫고, 믿고, 전하게 된 것 또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벨릭스의 마지막이 어떠했을까요? 유대인들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이 무죄한 것을 알면서도, 송사를 미루고 2년 동안 잡아 가두었지만, 말년에 가이사랴 유대인들의 고소로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사람의 처세로 인생이 보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드루실라의 마지막이 어떠했을까요? 신분 상승을 위해 권력가들과 수차례 결혼하기를 반복했지만, 폼페이Pompei 멸망으로 잘 알려진 AD. 79년 베수비오Vesuvius, 이탈리아 나폴리 만에 있는 활화산 화산 폭발 때, 아들 아그립바와 함께 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Josephus). 사람의 수단으로 인생이 보존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야 보존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손경민 목사님은 자기 나이 10대에 어머니 28살에 아버지가 지을 나갔습니다. 아직 젊고 젊은 나이의 어머니는 행상에 노점상에 식당 허드렛일에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예수 복음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손 목사님은 초등학교부터 석간 신문 배달 등 알바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도 힘든 역경 속에서도, 감사, 행복, 은혜, 예수 충만, 복음을 알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귀한 삶이라는 사명의 찬양을 작곡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당여한 것 아니라 은혜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하는 삶,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감사, 내 뜻대로 안돼도 감사. 구원은 오직 한 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드리는 우리의 감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바울의 강론 ”,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의를 얻고, “절제”, 한 영혼,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심판”, 예수를 영접하여 살아서도 죽어서도 심판받지 않는, 진리를 깨닫고, 믿고, 전하게 된 것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세상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상속자가 되고, 하늘 시민이 된 것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합니다.

 

벨릭스와 드루실라를 보면서 인간의 방법과 처세와 수단이 허망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내 노력으로 인생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 감사를 드립니다. 내 인생의 주인되신 예수님, 내 길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