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증거Paul testimony
이재현목사
자의赭衣를 입고도 복음을 증거하다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울의 증거는 장소와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히고,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게 넘겨져 로마 군대 영내 층계 위에 서서, 유대 무리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행22:1.참고/행23:26).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이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행22:6-9). ‘내가 너를 멀리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내겠다’하시며, 이방의 사도가 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행22:21). 이튿날 산헤드린 ‘공회’에서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호소했습니다(행22:30-23: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행23:11).
가이사랴 헤롯 궁 재판정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총독 벨릭스에게도 “의”,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의를 얻고, “절제”, 한 영혼,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심판”, 예수를 영접하여 살아서도 죽어서도 심판받지 않는, 복음을 증거했습니다(행24:24). 벨릭스에게서 베스도가 총독 ‘소임을 이어받’게 됩니다(행24:26-27). 갈릴리 분봉왕인 아그립바가 누이 버니게와 함께 새로 부임한 베스도에게 문안하고자 찾아오자, 베스도는 바울의 일을 꺼냈고, 아그립바는 직접 바울의 말을 듣고 싶다는 요청에 재판이 열렸습니다(행25:13-27). 재판정에 선 바울은 지금 내가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하다가, 고발당했지만,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와 모세의 예언을 말한 것으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 사람들에게 구원을 빛을 선포하실 분이라는 것을 전하리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행26:1-23). 바울은 쇠고랑에 차여 있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고 했습니다(행26:29).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지만, 재판 석에 앉아 있는 상대가, 왕이든 총독이든 왕비이든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광풍에 표류하는 선상에서
바울의 가이사에게 상소로 로마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행25:11,27:1). 이스라엘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 배로 출항 후, 오늘날 레반논 시돈을 거쳐, 터키 무라에서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배로 환승하여 항해를 이어갔지만,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행27:3-9). 바울은 항해를 계속하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며, 항해 중단을 승선한 사람들에게 권면했지만, 이송 책임자 율리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항해를 강행하였습니다(행27:11). 그 결과 ‘유라굴로’ 광풍에 파선하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행27:14-19). 승선한 사람들 모두 ‘구원의 여망’이 사라졌습니다(행27:20). 절망의 순간 바울은 일어서서 의연하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그러므로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행27:22-25). 바울의 증거대로 멜리데 섬에서 모두 구조됩니다(행28:1). 바울은 광풍에 떠내려가는 선상에서도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멜리데’ 섬에 ‘구조’ 된 후 ‘원주민들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영접’해 주어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행28:1-2). 바울도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이를 본 섬사람들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며, 바울을 죽을 줄 알았지만, ‘바울이 (뱀)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자, ‘그를 신이라’고 소리쳤습니다(행28:1-6). 그와 유사한 상황이 루스드라에서도 있었습니다(행14:8-15). 당시 바울은 자신을 ‘신들이 사람의 형상’이라고 한 이들에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 (사람을 믿고) (우상을 섬긴)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고 설교했던 것을 볼 때, 멜리데 원주민들에게 “나는 신이 아니고, 참 신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 증인”이라고 선포했을 것입니다(행14:11). 추장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고치고, 이러한 소식은 삽시간에 섬 전체에 퍼졌고,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행28:7-9). 바울이 치유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 개월 동안 바울을 통해 멜리데를 거룩한 영토로 원주민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구금 중 셋집에서(참고/행21:27-29,23:6,29,24:11,15,18-20,25:10-11,25,26:6-7,22-23,31-33).
바울은 로마에 도착 미결 수 신분으로 가택연금 상태에서,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청하’였습니다(행28:17). 그들에게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유대의 관습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요(행28:17). 유대에 있는 로마 군대 천부장과 총독과 왕들도 죄가 없다고 여겨 석방하려고 했다는 것이요(행28:18). 유대인들이 사실관계나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정죄하려고 했기에 가이사에게 상소했다는 것이요(행28:19). 내 민족인 유대인들과 송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요(행28:19). 이 자리에 유력한 유대인을 부른 목적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행28:20). 이 ‘소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며, 예수님이 성취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오히려 구약의 예언을 전하는 이 충성스러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변론을 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날짜를 정하고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고 하였습니다(행28:23). 바울이 재판을 기다리는 2년 동안 그의 셋집은 거룩한 처소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1, 2, 3차 전도 여행에서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결박당하고, 천부장에게 넘겨졌지만, 로마 군대 영내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가이사랴 헤롯 궁, 총독과 왕과 왕비가 앉아 있는 재판정에서, 광풍에 표류하는 선상에서,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구금 중 셋집에서도, 죄인이 입는 자의赭衣를 입고서도, 복음을 증거를 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던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바울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로마로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요. 이후 석방되어 사도행전 이후 4차 전도 여행이 시작됩니다. 멀리 서바나, 스페인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다가, 2차 투옥됩니다(참고/롬15:23-28;빌2:23-24;딤전1:3;딤후1:17,4:6,20;딛1:5,3:12;몬1:22). 이때 바울이 순교 직전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2;9). 바울의 몸은 감옥에 가둘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 복음은 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 마지막까지 부인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12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2-13). 예수님는 십자가 앞에서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참고/요18:37,19:10-11). 그리고 우리에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마10:32). 우리를 하나님 앞에 시인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내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도 예수님에게 부인을 당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지 못해도 예수님에게 시인을 받으면 사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돈 벌려고, 유익 얻으려고, 잠시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에 있을지라도, 돌아서서 마지막에는 믿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두 번 믿음을 잃어버리다가, 포기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분이 그러한 길에 들어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살 것이요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째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딤후2:11). 주를 위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주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참고/막8:35;롬14:7-8).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 큰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기 이전에요. 시간 내에서 예배 출석도 안 하고, 땀 흘려 봉사도 하지 않고, 피 같은 헌금도 안 하고, 다 나를 위해 사용했어요. 조금 더 나아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했어요. 그때 모든 것은 나와 조금 더 나아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했을 때, 여러분에게 행복했어요. 우리는 나를 위해 나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쓴다고, 그것이 내게 가정에 유익으로 행복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인간은 외롭고 공허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고 써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만날 때,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왕 노릇 권세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세 번째 ‘왕 노릇’의 권세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딤후2:12). ‘함께’라는 말은 주님과 함께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왕이시라는 것이고요. ‘왕 노릇’이라는 것은 왕은 아닌데 왕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왕 노릇할 자인가요. ‘주와 함께 죽었으면’은 바울과 같이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딤후2:11). 순교자들에게 하나님은 왕 노릇하는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 시대 순교자와 장차 종말 시대 순교자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에서)천 년 동안 왕 노릇’하고, 마지막 심판대인 흰 보좌 심판에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계20:14).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죽음의 자리에서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살아서 순교가 있는 것입니다. 앞서 베드로도 순교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베드로와 같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순교하지 않는 제자도 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마지막을 밧모섬에 유배당하며, 예수님에게 종말에 있을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계1:1,9). 사도 요한은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았지만, 순교자의 반열에 놓습니다. 그 이유는 일생동안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주님과 함께 죽고 산다는 신앙을 잃지 않고. 그 또한 ‘생명의 관’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계2:10).
결론
사도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즉 저 영원한 나라에서 자신과 같은 순교자들을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었습니다(딤후4:6-8). 더 더욱이 이 의의 면류관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곧 의로우신 재판장 (예수님)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도’라면서, 우리 또한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축복했습니다(딤후4:8). 사도 바울의 몸은 감옥에 가둘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 복음은 매일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자들이 ‘구원’과 함께 ‘영원한 영광’ 순교의 영광을 함께 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딤후2:10). 바울의 증거의 최종입니다. 어느 형편에서든지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매이지 않게 하는, 우리 모두에게 구원과 함께 이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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