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감사Paul Gratitude
이재현목사
바울의 회심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는 예루살렘교회에 큰 슬픔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행8:2). 그러나 이와 달리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 사람이 있었습니다(8:1). 사울입니다(8:1). 사울이 성경에 처음 등장은 스데반의 순교 현장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7:58). 공회 종교재판에서 무리가, 스데반 집사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을 던졌을 때, 거짓 증인들은 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행7:57-60). 이것은 사울도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일에 사울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 순교 후,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박해는 극에 달했고, 사울이 그 선봉에 섰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8:3).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 성도의 씨를 말리려고 한 것이지요. 이렇게 되자, 성도들은 타국으로 피신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8:4). 박해로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만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원정에 나서, 성도들을 잡아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9:1-2).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데 얼마나 특심特甚이었던지, 현재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Dammeseq,다마스쿠스(Domascus)의 히브리어 지명에 가서, 그곳에서 전도하는 성도들을 끌고 와서, 고초를 당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교회 핍박을 공식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대제사장 명의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에 있는 회당들을 찾아가, 잠입해있는 성도들을 색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즉 예수를 믿는 자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겪게 됩니다.
예수 믿는 자면 남녀를 막론하고 잡아들이고자, 예루살렘에서 목적지인 다메섹에 도착했을 즈음에, 사울을 둘러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었습니다(행9:3). 바로 앞에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강력한 광선에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난생처음 당하는 상황에서, 다리가 풀린 사울은 그대로 ‘땅에 엎으러’졌습니다(행9:4).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떠는 사울에게 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행9:4). 공포에 휩싸인 사울은 ‘주여 누구시니이까’ 숨죽이듯 여쭈었습니다(행9:5).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5).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없지만, 예수님은 사울에게 교회를 박해한 것을, 예수님을 박해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재림 예수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다고 하셨습니다(계19:15). 아마도 사울은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묘사된, 재림 주의 세상 심판의 엄중함을 미리 경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의 쏟아지는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던 초자연적 현상과 하늘의 소리로 들린, 주님의 음성에, 엎드려져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사울에게, 예수님은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지시하셨습니다(행9:6).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벙벙해서 서 있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행9:8).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였습니다(행9:8-9).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진 것이지요. 사울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은 어떤 자이었습니까? 예루살렘교회를 잔멸하던 자이었습니다. 이제는 시리아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서, 곤욕을 당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를 결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박을 당했습니다.
바울의 사명
하늘에서 눈을 뜰 수 없는 빛이 쏟아지는 초자연적 현상과 하늘의 소리로 들린 주님의 음성에, 엎드려진 사울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명령에 기다리고 있을 ‘그 때에’, 예수님은 또 다른 사람에게도 환상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입니다(행9:10).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고 하셨습니다(행9:11). 예수님은 사울이 환상 중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행9:12). 예수님이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만나 안수를 받게 될 것을 미리 보게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아나니아는 무척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고 아뢰였습니다(행9:13-14). 교회를 잔멸하는 자인 사울에 대해서 아나니아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그를 찾아가라고 하시니, 아나니아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수긍하지 않으려는 그에게 ‘주께서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행9:15-16). 예수님은 사울을 이방인의 전도자로 소명하셨고, 그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예수 이름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도 알려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더는 주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아나니아가 떠나’ 유다의 ‘집에 들어가서’ 소문으로만 듣던 사울을 대면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전하였습니다(행9:17). 아나니아의 말을 들은 사울은 자신이 만난 분이 정말 예수님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면도 없었던 아나니아가, 자신에게 주님이 말씀하셨던 그대를 대언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울은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은 ‘즉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행9:18-19). 사울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예수 이름으로 큰 고난을 당할 것인 것도 알았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행9:19). 며칠 동안 다메섹에 있는 주의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영육을 회복한 사울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9:20). 소명받은 사울은 즉각 사명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며, 놀라워했습니다(행9:21). 이에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9:22). 유대인들은 사울을 ‘여러 날’을 지켜보았지만, 사울이 예전에 자신들과 같이 교회를 잔멸하던 자가 아님을 알았습니다(행9:23). 이제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였습니다(행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자,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어, 다메섹에서 피신을 하게 됩니다(행9:24-25). 교회를 핍박했던 자가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회심 이후에도 의심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자도자들에게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9:27). 바나바는 바울을 소개하고 교회의 일꾼으로 삼아 동역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바울은 초대교회 역사의 중심부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행9:28-29) 하나님의 그릇이 된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위대한 전도자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감사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그리스와 로마로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서바나, 스페인에까지 선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가택 연금 상태로 2년간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행28:30-31,AD60-62년). 그리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로부터, 2차로 투옥되기 전인 A.D 63-65년 사이, 마게도냐에서 디모데전서를 기록합니다. 바울이 로마 대화재로 인한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가 극에 달한 때에 체포되어, AD 67년 경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바울이 순교 2-5년 전, 바울이 회심 후 전도자로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 회상을 디모데전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회심 전 예수와 교회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이었지만,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것이라고 합니다(딤전1:13). 우리 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다고 합니다(딤전1:14).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한 말씀이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이라고 합니다(딤전1:15). 죄인 중에 괴수인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먼저 바울에게 끝없이 참아 주심을 보이셔서,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려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딤전1:16).
그렇기에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1:12). 예수와 교회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이, 지난 30여 년간 위대한 전도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격이 되어서가 아니라, 충성되이 여겨 이방인의 그릇으로 직분을 맡기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를 올릴 수밖에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감당할 때,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행9:16). 이 예언대로 바울은 수많은 고난과 죽음의 위기까지 겪어야 했습니다(행9:23-25.참고/고후11:23-27). 그럼에도 바울은 주신 직분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도전 주면서,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고백한 바울 같이, 겸손히 맡은 직분을 행하면 우리를 통해 많은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4:5;고전15:8). 우리는 그날까지, 이방인 사도의 직분을 감사한 바울 같이, 소명에 감사해야 합니다(참고/롬11:13;갈2:8;딤전2:7).
공원에서 개척했을 때, 주변에 많은 교회가 개척 했습니다. 빌딩을 임대하거나, 분양해서 또는 용지를 매입 번듯하게 신축을 해서,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부러웠습니다. 버스로 그 앞을 지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 가운데는 수년이 지나면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예배당 건물을 갖고 있음에도, 여러 사정으로 폐쇄하는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원에서 개척된 외형으로 볼품없는 우리 교회는 아직도 존속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사명자로 세우신 것을 감사하고, 강단에서 설교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리도 이전 마음과 행함으로 예수와 교회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만아니라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바울 같이 죄인 중에 괴수인 우리가, 구원 받음과 부름 받음과 직무 받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의 감사가 바로 우리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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