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온 마음으로"(렘 29:11-13) 이재현목사(23.02.26)

이재현목사 2023. 2. 26. 16:33

온 마음으로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예레미야 29:11∼13 2023.02.26. 主日禮拜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213)

 

 

악인들 가운데는 일생 동안 잘살다가 죽음도 고통없는 자들이 있습니다(73:5). 그러면 하나님은 악인을 좌시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까지입니다(참고/6:5). 그리고 의인의 의도 채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참고/벧전3:12). 하나님이 정하신 그날, 의인에게는 상급이요. 악인에게는 진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 이후에도, 바벨탑으로 인간들의 반역이 하늘을 찌르자, 흩으심으로 제거하셨습니다(11:4-8). 반면 애굽의 압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 상달 되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2:23). 하나님은 악인의 죄악이 하늘에 닿을 때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가 하늘에 올려질 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십니다(참고/1:2-6;5:8,8:4).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전3:9.참고/3:16;딤전2:4).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하나님이 정하신 죄악의 채움까지 쌓고 계신 것입니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2:6-8).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고,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18:5-6). 이제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실 예수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딤후4:1). 마지막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해도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북극의 눈물 등을 시리즈로 오염과 공해로 인한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2천 년 전 성경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있다고, 지구의 눈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8:19-22). 이것은 초림의 예수님에 의한 구원 시작만 아니라, 재림의 예수님의 구원 완성에 대한 갈망입니다. 그가 다시 오셔서, 죄악을 심판하시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통해, 죄악이 없는 나라를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을 알아보고자, 보낸 두 천사를 소돔인들은 외지에서, 온 남자로 보고,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무리가 몰려왔습니다(18:20-21,19:4-9). 소돔은 부끄럽게 숨겨야할 죄악이 공론되고 대중되었습니다. 오늘날은 동성애가 공론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중의 지지를 받고, 이제는 법제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외의 죄악들은 이미 가득찼음을 보여 줍니다. 동성애는 죄악의 프로나운Pronoun, 재앙의 리트머스Llitmus, 심판의 바로미터Barometer입니다. 개신교 보루인 미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판결했습니다(2015.6.26.). 이제 전 세계에서 이슬람 국가와 일부 사회주의 국가 외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한국만 남았습니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사망자만 4 6천명에 다랍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들어서 대지진의 강도는 더 강력해지고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죠. 대형 산불, 대홍수, 최강 한파, 살인적 폭염, 쓰나미 등 기후 재앙이 해마다, 더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임하심 (재림)과 세상 끝 (종말)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묻는 제자들에게,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24:3;21:10-11). 대지진은 인간의 죄악이 하늘까지 사무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외적 빙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과 목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세상법정과 대중매체와 기후재앙을 통해서도, 종말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제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음으로 그 날까지 쌓고 계시다는 메시지입니다.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경성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첫 번쩨 물 심판이 죄악이 가득찬 후 내렸던 것과 같이 마지막 불 심판까지 죄악은 쌓여만 갑니다(벧후3:7.참고/6:5). 종국에 하늘에 사무칠 때, 주 재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8:5,19:2).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의인으로서 간구입니다. 악인은 죄가 하늘에 사무치게 하지만, 우리는 의가 하늘에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그 땅에 거하는 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을 배반하고 떠났지만,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룻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올 때부터, 조카가 아닌 친 자식과 같이 여겼습니다. 천사에게 아브라함은 간절히 간구 합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성 중에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18:23-25). 이에 하나님은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18:26).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의인 50 명에서 10명까지 줄이면서, 하나님께 내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고 애원합니다. 이러한 간절한 간구에 조카 롯을 구하게 됩니다. 단 한 명의 구원을 위해서도 드렸던 의인의 간구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인 수를 50명에서 10명까지 줄였을 때, 변개했다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변개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이 가깝습니다. 상황적 시대의 징조를 절대적 성경의 증언을 통해 보고, 영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의인의 간구가 하늘에 사무치는 역사를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의인들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수호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거기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 악인들이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18:4). 시편 기자는 악인이 하는 일마다 잘되고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73:17). 우리 청아비전교회가, 악인의 죄악의 하늘에 사무치는 이 시대, 분명한 의인들의 간구로 하늘에 사무치게 하는 역사를 이루는 성소, 제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의인으로서 간구를 하늘에 사무치게 하여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의로운 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생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그날에 악인의 심판과 의인 보응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절대 헛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부르짖음의 기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지난 한 주간의 삶 어떻게 보내셨어요. 아침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노라면, 금세 점심시간이 되고,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어느덧 저녁이 됩니다. 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요. 이러한 일상 중에 숨 가쁘게 준비해서 교회에 오면, 목사님은 형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 기도하세요. 지금 힘이 있고, 젊음이 있을 때, 더 봉사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기도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동안 살다 보면, 평일에 정말 시간을 내어서, 예배당에 와서 개인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새벽기도에 와야 하는데, 밤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보니, 새벽기도 또한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 당면한 문제들 말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매듭들이, 혹시 내가 깨어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적인 염려라고 할까요. 게으름이라고 할까요. 기도의 분량을 채우지 못해서, 이렇게 힘든 것인가? 한 영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실천을 하지 못해서 막히는 것인가? 섬기는 교회의 필요에 헌신이 부족해서, 이리 답답한 것인가? 이러한 생각들 말입니다. 

 

본문에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29:12). 이 말씀에서 부르짖음의 기도요. 내가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잃어버리고 살기에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 예배에 오신 분들 가운데, 이러한 마음에 있는 분이 계세요. 저는 그 성도님들도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구하여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것만 해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간절한 기도, 본문의 부르짖음의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130여 년이라는 짧은 기독교 역사에서, 6만여 교회, 8백여만 성도, 3만 여명에 가까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경이적인 부흥과 기적을 이룬 데, 첫째도 둘째도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많은 간증을 들었고, 알고있는 바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십대 이상 되신 성도님들 가운데 유년부터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은 어렸을 때, 어머니 세대들이 얼마나 기도를 했는가?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얼마나 애통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거룩한 체험이었고, 신앙의 밑거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간절한 기도, ‘부르짖음의 기도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무리 보아도 한국초대교회 우리 믿음의 선조들과 비교할 때, 그만큼의 간절함을 갖고 드리는 기도, 그만큼 애통하면서 올리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금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 하나님 마음에 맞는 성도

 

여기서 우리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입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3). 이 말씀에서 온 마음으로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온 마음으로는 앞 구절과 연결할 때, 부르짖음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의 마음을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NASB에는 ‘all your heart’로 번역하고 있고요. 예전에 사용하던 개역 성경에는 전심으로로 되어 있습니다. 전력을 다해 애원하며 올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으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를 더 강조하는 것이 온 마음으로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온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는가? 입으로는 간절한데 마음은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온 마음으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와 함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면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마음과 맞는 것입니다. 부르짖음의 기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의 기도와 함께 중요한 것이 하나님 마음과 하나 되는 온 마음으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장 최선은 부르짖어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마음에 통하여 플러스 될 때, 엄청난 영적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들은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 그리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과 통하는 성도가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 ‘온 마음으로 통하는 기도가 최선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최선은 못하더라도 차선이 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에 못나오고, 주일예배 외에 수요예배 등 공 예배를 드릴 수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들 심령이 온 마음으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에게 통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말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인 성군으로 불린 다윗으로부터, 통일왕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때 나이 20세에 불과했습니다. 솔로몬은 약관에 이 엄청난 국가를 경영하기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양과 소 일천 마리를 제물로 드리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했습니다. 어느 날은 기도 후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왕상3:5). 이에 솔로몬은 먼저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한껏 낮추었습니다(왕상3:7). ‘출입할 줄 알지 못하고란 자신이 그만큼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겸손입니다. 그리고 구합니다. “8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8-9)

 

솔로몬은 왕으로서, 맡겨진 이 많은 백성을 자신의 통치할 수 없다고 합니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 알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 알아야 누구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백성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한 백성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옳고 그름을 바로 분별하여, 국정을 바로 이끌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스무 살에 왕이 된 솔로몬이 그 어린 나이에 이렇게 기도한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해도 대견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 까요?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3:10).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도 잘 구했고요. 그 구한 것이 더 잘된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구한 것이 누구 마음에요. 하나님의 마음에 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솔로몬의 마음이 누구와 통한 것이에요. 하나님과 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한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얼마나 간절히 소원을 올려드렸는지, 그 중심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 애끓는 간구만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중심이 누구 마음에 들었어요. 하나님 마음에 들었어요. 기도의 내용도 좋고, 간절한 간구도 좋고, 하나님 마음에 들었으니, 금상첨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부르짖음의 기도에도, 생활의 현장에서도,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all your heart’, ‘전심으로’, ‘온 마음으로 말입니다. 

 

새벽기도에도 나오고, 주일예배 외에 수요예배 등 공 예배에도 출석해서, 간절히 부르짖어 온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 마음에 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새벽기도회에 못 나오고, 여러 공 예배와 교회 봉사의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내치시겠어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일상이 분주해서, 예배당에 나오는 시간이 적더라도, 여러분의 생활에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살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도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받기를 바랍니다.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하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성도가 가장 최선이고요. 그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 차선은 어떤 자리에 있던 온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이 하나님과 통하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오늘도 반드시 증거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 더불어 주시는 복 

 

솔로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어떤 응답을 주셨습니까? “11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3:11-12).

 

솔로몬의 간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니,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백성들 통치할 지혜롭고 총명함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와 총명은 유명한 두 여인의 이야기에서 빛나지 않습니까?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우기다가, 솔로몬에게 판정을 의뢰했습니다. 솔로몬은 병사에게 아이를 둘로 자르라고 명합니다. 이때 한 여자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상대방 여자에게 아이를 주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그녀가 바로 아이의 생모라고 판정을 합니다(왕상3:27).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반으로 갈라 주라고 하겠어요. 차라리 남의 손에 아들을 주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 구한 지혜와 총명을 솔로몬이 받아 백성들을 잘 치리한 것이지요.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고 하였습니다(왕상3:28).

 

그러나 이뿐만 아닙니다.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3:13).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을 주어,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부귀’, ‘영광’,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는 최상입니다. 이 세 가지 부귀’, ‘영광’, ‘최상은 솔로몬이 직접 구하지 않았지만, 솔로몬의 간구가 하나님 마음에 맞았기에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부귀’, ‘영광’, ‘최상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더불어 주시는 복이라고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온 마음으로 즉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에게 더불어 주시는 복까지 내리워 주십니다. 사랑하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 여러분 이러함에도, 우리 마음이 다른 곳에 맞추어져 있다면, 이 시간 버려버리고, 우리의 마음의 채널을 하나님의 마음의 주파수에 맞추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께 의지하세요. 성령님이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6:26). 

 

우리 교회 공동체의 공동 기도제목, 성도님들 가정과 기업의 개인 기도제목에 구한 응답뿐만 아니라, ‘더불어 주시는 복까지 내리워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온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과 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님들께서 가장 시급하게 응답이 되기를 바라는 기도제목이 무엇이세요. 그리고 그 기도제목이 응답된 후, 하나님이 세 가지를 더 주신다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받고 싶으세요. 지금 가장 시급한 기도제목이 이에요. 그 기도제목이 응답된 후, 세 가지도, ‘’, ‘’, ‘이세요. 그렇지 않으시죠. 그와 함께 영광된 예배’, ‘거룩한 부흥’, ‘위대한 역사 등과 같은 영적인 일을 위해서도 구하고 계실 믿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에게도 주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어요. 주실 줄 믿습니다. 단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요. ‘온 마음으로’, 바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하신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동성애에 관해 3일 연속 나누었습니다. 지난 주일 동성애 관련 설교를 한 후, 다음 날인 월요일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이 적법하다고 판결이 나왔습니다. 작년 1 1심에서는 헌법에 불일치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2심에 판사들이 어떤 판단과 법리 해석을 하였는지 승소 판결을 한 것입니다. 서울고법 행정 1-3부는 동성 커플을 사실혼으로 볼 수 없다면서도, ‘사회보장 제도는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정서적 경제적 공동체라고 규정하며, 사실상 사실혼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법을 모두 무시한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판결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혼인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민법도 혼인을 남녀간의 결합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동성 커플에게도 부부와 같은 자격을 주라고 한 것은 명백한 법관의 월권이자 재량권 남용입니다. 앞으로 있게 될 마지막 대법원(3) 판결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스페인에서는 16세 이상이면, 신고만으로 남-, -남으로 성전환이 가능한 입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동안은 관련 전문의와 정신과 의사가 2년 여 동안 진료한 소견서를 첨부할 때만 허락되었는데, 이제는 누구나 제한 없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 법은 14세도 그 범주에 포함되고, 12세 이상도 의사 진료서만 있으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서구는 이제 동성애 결혼을 넘어 성전환까지 합법화되어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이 모든 과정을 지켜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시도를 하게 될지가 예측됩니다. 첩첩산중입니다. 큰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12:40).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한 것입니다. 동성애자, 성소수자 그리고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지지하는 분들 또 아무런 의사도 표현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마음이 완악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고침 받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유대 사회에서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 말하지 못하는 관리들이 있습니다. 당시 출교는 오늘로 말하면 직장에 취업도 할 수 없고,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12:43). 우리는 침묵하지 말고 각기 삶의 현장에서, “동성애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만이 아니라, 안 믿는 자에게도 소중한 가정의 근간를 흔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소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영광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단체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아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크자, 이를 알아보고자, 두 천사를 보냈습니다. 소돔 인들은 두 천사를 외지에서 온 남자로 보고, 관계하고자, 노소, 어른부터 아이까지 막론하고, 원근, 가깝든지 멀리 떨어져 있든지, 무리를 지어 두 천사가 거하는 롯의 집을 에워쌉니다(18:20-21,19:4-9). 소돔은 부끄럽게 숨겨야할 죄악이 공론되고 대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에 죄악이 얼마나 큰가를 보고자 보낸 두 천사가 목격한 것이 동성애입니다. 동성애가 만연되었다는 것은 다른 모든 죄는 다 찼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오늘날 동성애가 공론화, 일반화,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외의 죄악들은 이미 가득찼음을 보여 줍니다. 동성애는 프로나운Pronoun, 죄악의 대명사입니다. 리트머스Llitmus, 재앙의 시험지입니다. 바로미터Barometer, 심판의 잣대입니다. 개신교 보루인 미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판결했습니다(2015.6.26.). 이제 전 세계에서 이슬람 국가와 일부 사회주의 국가 외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한국만 남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합법화되면, 이제 거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를 경각하고, 이 시대 의인으로 진리를 사수하는 저와 여러분, 바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 것입니다. 교회에 있던, 가정에 있던, 직장에 있던, 누구와 만남에 있던, 모임이 있던, 어느 순간에도 말입니다. 

 

온 마음으로’ -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자, 그래서 간절한 소망한 기도의 제목과 함께 더불어 주시는 복까지 받은 솔로몬, 솔로몬은 히브리어로 שְׁלֹמֹה쉴로모,영어:Solomon혹은Shlomo로 그 뜻은 평화롭다입니다.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대상22:9).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 솔로몬에 대한 예언입니다. 솔로몬이 평화의 왕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에서 보라 한 아들이 나리니 그의 생전에 평안을 줄 것임이라는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 예언을 보면, 우리가 많이 들어본 분과 오버랩Overlap되지 않으세요. 맞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아멘! 예수님을 어떤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솔로몬은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구약의 솔로몬은 평강의 왕으로서, 오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모형인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자라고 하면, 원형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분이심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신 세 군데만 찾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음성 -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첫 번째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을 때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7).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 후로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십자가를 향한 출발점입니다. 이 거룩한 사역인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이에요. 안 든다는 것이에요. 질문하기가 유치하지요. 하나님 마음에 너무나도 맞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첫 번째 발걸음부터,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과 통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두 번째 음성 -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예수님이 사역의 중간 정도가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 수제자인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부활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구약 선지자였던 모세와 엘리야가 그 자리에 나타난 예수님과 대화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9:35).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화한 예수님, 그리고 그 예수님이 두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에, 신비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나의 아들 곧 택함 받은 자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라는 것이에요. 다르다는 것이에요. 이 또한 유치한 질문으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다는 표현인 것이지요.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아예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겠지요. 이때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중간 시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공생애 시작인 세례 때부터, 중간인 변화산상까지, 예수님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과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음성 -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하나님 마음에 맞으셨을까? 그 답을 알면서도, 확인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12:28). 이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일주일 앞두고 입니다. 예수님은 지난 삼년 여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모든 것을 드렸다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사역의 완성인 십자가를 지겠다고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리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가 최고의 영광을 아들을 통해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십자가 앞까지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맞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마음에 맞았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함을 알게 합니다. 

 

지금까지 온 마음으로 통해 배운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르짖음의 기도에 온 마음으로 하는 것이 가장 최선입니다. 두 번째는 차선이지만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이 중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에 대하여, 좀 더 말씀을 이어가고 자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시작은 온 마음으로 하지만, 그 후 과정에서, 그렇지 못한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반문합니다(3:3). 영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마치는 것은, 처음은 온 마음으로이나, 그 중간과 마침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 신앙생활 후 3년은 너무 좋은 시간이다

예수님께서 그 처음과 중간과 마침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분이었다고, 말씀을 나누었지 않습니까? 그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몇 년입니까? 3년입니다. 여러분 그러말 들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 이 말에는 누구나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3년은 구름을 밟고, 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좋은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똑같은 것을 보는데도, 은혜 받으면 아름답게 보여요. 본문에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는 것처럼, 은혜 받으면, 재앙 같은 일 앞에서도, 평안과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합니다(29:11).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 신앙생활 후 3년을 넘어서라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는 말에는 첫 번째로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3년은 너무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신앙생활을 한 후 3년을 넘어서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이 지나, 어떤 자리에 놓이셨습니까? 십자가입니다. 그 앞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26:39). 몇 번이나 그렇게 하셨어요. 세 번입니다. 세 번을 하셨다는 것은 정말 십자가가 감당하기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인 줄 알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얼마나 힘겹게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22:44). 물론 이 기도는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인성으로 하신 기도입니다. 이제 공생애 3, 마지막 십자가 앞에서, 우리로 표현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에 놓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3년을 넘어선 것입니다.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는 신앙생활 후, 3년을 넘어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변에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당하는 시험을 못 이기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한 시험을 당하지 않았다면은 축복이고요.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 신앙생활 후 3년을 지날 대 놀라운 축복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 첫 번째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3년은 너무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신앙생활 후, 3년을 넘어서라는 의미이고요. 세 번째는 신앙생활에서 3년을 지날 때 놀라운 체험 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3년을 넘어서셨습니다. 그 후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3:10-11). 아멘! 신앙생활 후 3년을 지나 묵묵히 나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있게 됩니다. 구한 것만 아니라, 구하지 않을 것까지 도요. 여러분에게 지금 이 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3년을 이야기했다고, 이것을 시간적 개념으로 못 박아,  3년으로만 보지를 않기 바랍니다. 각 각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성도들마다 달라요. 그러함에도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통해서 볼 때,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성도들을 볼 때, 의외에 이 3년을 이기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거기만 넘어서면, 하늘에서 한 없이 부어주시는 복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이 이러한 때, 이러한 역사가 임하시기를 다시 한 번 축복

합니다.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 첫 번째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3년은 너무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신앙생활 후 3년을 넘어서라는 의미이고요. 세 번째는 신앙생활에서 3년을 지날 때 놀라운 체험 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이 될 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가를 늘 기억하고 간절히 기도하면, 은혜 받고 3년이 아니라, 30, 천국갈 때까지 지날 수 있습니다. 아멘! 누가 그렇게 하셨어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정리

 

부르짖음의 기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주한 일과 가운데 시간을 내어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인생의 매듭들이 기도의 분량을 채우지 못해서, 한 영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실천을 하지 못해서, 교회의 필요에 헌신이 부족해서, 이리 답답한 것인가? 이러한 생각들 들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29:12).  부르짖음의 기도를 잃어버리고 살기에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간구하여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것만 해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부르짖음의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130여 년이라는 짧은 기독교 역사에서, 6만여 교회, 8백여만 성도, 3만 여명에 가까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경이적인 부흥과 기적을 이룬 데, 첫째도 둘째도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기도를 했는가?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얼마나 애통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거룩한 체험이었고, 신앙의 밑거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무리 보아도 믿음의 선조들과 비교할 때, 그만큼의 간절함을 갖고 드리는 기도, 그만큼 애통하면서 올리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금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 하나님 마음에 맞는 성도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3). ‘온 마음으로는 앞 구절과 연결할 때, 부르짖음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의 마음을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개역 한글 성경에는 전심으로로 되어 있습니다(‘all your heart’(NASB)). 전력을 다해 애원하며 올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부르짖어 기도를 더 강조하는 것이 온 마음으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약관 20세에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통일왕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꿈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왕상3:5). 이에 솔로몬은 먼저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한껏 낮춘 후, 맡겨진 이 많은 백성을 자신의 통치할 수 없으니,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 알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민심은 천심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한 백성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옳고 그름을 바로 분별하여, 국정을 이끌게 해달라고 구하였습니다(왕상3:7-9). 하나님은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고 하였습니다(왕상3:10). 솔로몬이 구한 것도 잘 구했고, 그것이 더 잘된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든것입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과 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부르짖음의 기도에도, 생활의 현장에서도,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all your heart’, ‘전심으로’, ‘온 마음으로 말입니다. 새벽기도에도 나오고, 주일예배 외에 수요예배 등 공 예배에도 출석해서, 간절히 부르짖어 온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 마음에 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살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도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 더불어 주시는 복 

 

솔로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니,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백성들 통치할 지혜롭고 총명함 마음을 전무후무하게 주었습니다(왕상3:11-12).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우기다가, 솔로몬에게 판정을 의뢰했습니다. 솔로몬은 병사에게 아이를 둘로 자르라고 명합니다. 이때 한 여자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상대방 여자에게 아이를 주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그녀가 바로 아이의 생모라고 판정을 합니다(왕상3:27). ‘이스라엘이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고 하였습니다(왕상3:28). 그러나 이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을 주어,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3:13). 솔로몬의 간구가 하나님 마음에 맞았기에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부귀’, ‘영광’, ‘최상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더불어 주시는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다른 곳에 맞추어져 있다면, 버려버리고, 우리의 마음의 채널을 하나님의 마음의 주파수에 맞추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께 의지하세요. 성령님이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6:26). 성도님들 가정과 기업의 개인 기도제목에 구한 응답뿐만 아니라, ‘더불어 주시는 복까지 내리워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응답된 후, 하나님이 세 가지를 더 주신다고 하면, 무엇을 받고 싶으세요. ‘’, ‘’, ‘인가요? 그렇지 않으시죠. 그와 함께 영광된 예배’, ‘거룩한 부흥’, ‘위대한 역사 등과 같은 영적인 일을 위해서도 구하고 계실 믿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에게도 주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어요. 주실 줄 믿습니다. 단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요. ‘온 마음으로’, 바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있던, 가정에 있던, 직장에 있던, 누구와 만남에 있던, 모임이 있던, 어느 순간에도 말입니다. 

 

온 마음으로’ - 시작부터 끝까지 

 

솔로몬은 히브리어로 שְׁלֹמֹה쉴로모,영어:Solomon혹은Shlomo로 그 뜻은 평화롭다입니다(참고/대상22:9). 솔로몬이 평화의 왕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평강의 왕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9:6). 구약의 솔로몬은 평강의 왕으로서, 오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예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형인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자라고 하면, 원형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분이심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예수님에게 들려주신 세 곳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음성 -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 후로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십자가를 향한 출발점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3:17).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너무나도 맞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발걸음부터,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과 통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두 번째 음성 -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예수님이 사역의 중간 정도가 되는 시점에 산에 오르셔서,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셨고,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에, 신비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9:35). ‘나의 아들 곧 택함 받은 자 또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라는 것입니다. 공생애 중간에도 예수님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과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음성 -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예수님이 죽음을 일주일 앞두고, 공생애 기간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모든 것을 드렸고, 이제 십자가를 지겠다고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리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하시자, 하나님은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십니다(12:28). 하나님은 최고의 영광을 아들을 통해 입었다고 하십니다. 십자가 앞까지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맞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마음에 맞았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함을 알게 합니다. 

 

온 마음으로’ -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시작은 온 마음으로 하지만, 그 후 과정에서, 그렇지 못한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반문합니다(3:3). 영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마치는 것은, 처음은 온 마음으로이나, 그 중간과 마침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 신앙생활 후 3년은 너무 좋은 시간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몇 년입니까? 3년입니다.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 이 말에는 누구나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3년은 구름을 밟고, 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좋은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는데도, 은혜 받으면 아름답게 보여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는 것처럼, 은혜 받으면, 재앙 같은 일 앞에서도, 평안과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합니다(29:11).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 신앙생활 후 3년을 넘어서라.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 두 번째는 3년을 넘어서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이 지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지나가게 해달라고 세 번 기도 하신 것은 감당하기가 너무나도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26:39). 죽음의 길인 줄 알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물론 인성으로서 간구 였습니다. 그러나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3년을 넘어선 것입니다.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당하는 시험을 못 이기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넘어서야 합니다. 

 

은혜 받은 후 3년을 지나서 - 신앙생활 후 3년을 지날 대 놀라운 축복.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 세 번째는 3년을 지날 때 놀라운 체험 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3년을 넘어서셨습니다. 그 후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습니다. 모든 자들이 그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3:10-11). 신앙생활 후 3년을 지나 묵묵히 나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있게 됩니다. 구한 것만 아니라, 구하지 않을 것까지 도요. 여러분에게 지금 이 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숫자적 3년이 아니라 성도들마나 각가의 3년이 있습니다. 이기면 하늘에서 한 없이 부어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결론:최종정리

 

우리는 분주한 일과를 보내면서, 좀 더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당면한 문제,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매듭, 내가 더 깊은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갖지 못해서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성경도 분명히 우리에게 부르짖음의 간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온 마음으로’, ‘전심으로’, ‘all your heart’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르짖음의 기도에도, 온 마음으로가 아닐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장 최선은 부르짖어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마음에 통함이 플러스 될 때, 엄청난 영적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내가 그러한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내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평소에 항상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솔로몬처럼 기도한 제목 지혜와 총명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것, 세 가지 부귀와 영화와 최상까지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맞는 마음이 시작부터, 과정으로 마지막까지, 변함없어야 함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 본을 보이신 분이 다름 아니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새벽기도의 자리와 같은 평일에 예배당에 와서 부르짖음의 기도를 드릴 수 없더라도, 항상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고, 이 말씀이 새벽기도와 공 예배에 나오지 않는 것에 안도할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 같은 것으로 받으실 분은 없을 줄 압니다. 이것은 차선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최선은 부르짖음의 기도 간절한 기도를 가지면서도, 그의 마음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맞는 것입니다. 이를 사모해야지, 이것은 제처 두고, 오늘도 하나님 마음에 맞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늘 설교를 잘못들은 것이고, 신앙의 나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청아비전교회 성도님들은 그런 낮은 수준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교회에 있던, 가정에 있던, 직장에 있던, 누구와 만남에 있던, 모임에 있던,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기를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과 통하는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아들 예수님에게 아버지 하나님은 어떤 음성을 들려주셨습니까?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7). 예수님이 하나님 마음에 맞으니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35).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니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12:28).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을 지향하는 성도는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을 지향하는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구별이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을 지향하는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자긍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기쁨의 감사, 택함의 구별, 영광의 자긍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지나셨습니다. 이를 볼 때에도, 성도들이 믿음생활 임상을 통해서도, “은혜 받고 3년을 지나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3년은 너무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고요. 신앙생활 후 3년을 넘어서라는 의미이고요. 신앙생활에서 3년을 지날 때 놀라운 체험 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예수님이 그러한 놀라운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온 마음으로 통해 배운 것 정리를, 다시 다섯 가지로 요약을 해서, 각인하기 원합니다. 첫 번째는 부르짖음의 기도에 온 마음으로 하는 것이 가장 최선입니다. 두 번째는 차선이지만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도,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구한 제목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는 것도 받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 마음에 맞은 예수님에게 들려주신 음성을 통해,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감사, 항상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구별,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자긍입니다. 여러분에게 기쁨의 감사, 택함의 구별, 영광의 자긍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다섯 번째는 은혜 받고 3년을 지나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생을 주님처럼 말입니다. 놀라운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온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결단과 능력으로 인도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온 마음으로 첫 번째,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도 생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나의 교회와 가정과 기업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온 마음으로 두 번째, 우리에게도 구한 것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을 주신다고 할 때, 물질, 형통, 번영만 아니라, 영광된 예배, 거룩한 부흥, 위대한 역사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온 마음으로 세 번째, 공생애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던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 앞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온 마음으로 네 번째, 하나님 마음에 맞은 예수님에게 들려주신 음성을 통해,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감사, 항상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구별,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자긍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기쁨의 감사, 택함의 구별, 영광의 자긍을 갖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온 마음으로 다섯 번째, 은혜 받고 3년을 지나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년을 넘어선 주님처럼 놀라운 역사와 하늘의 복을 받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