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까지 사무쳤다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요한계시록 18:4∼6 2023.02.19. 主日禮拜
“4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계18:4∼6)
요셉과 마리아가 정결예식과 율법의 규례를 지키기 위해 성전을 찾았을 때, 아기 예수님을 알아본 두 사람 중 한 명은 ‘시므온’Simeon,‘(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입니다(눅2:22-24.참고/레12:1-8;민3:46-47).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위로’ 즉, 메시아 구원자를 ‘기다리는 자’로, ‘그리스도’ 즉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마침’ 만나게 된 것입니다(눅2:25-27).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요셉과 마리아를 축복한 후,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선포했습니다(눅2:29-35). 또 한 명은 ‘안나’Anna,‘은총’, ‘은혜’로 ‘아셀 지파 바누에의 딸’이며 ‘선지자’입니다(눅2:36). 그녀는 14살 즈음 결혼했고, 7년을 남편과 살다 과부가 된 후, 73년을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84세가 되던 해, ‘마침’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속량’ 메시아임을 성전에 모인 자들에게 전했습니다(눅2:37-38).
시므온과 안나가, 얼마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항상 생각해야 한다. 안나도 시므온도 일생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눅2:25-27,36). 성령께서 한 순간에도 인도 하시지만, 많은 시간을 훈련 후, 인도하실 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전이면 성전인 전인 우리의 가정도 성전입니다(고전3:16).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안나도 이 날 ‘마침’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눅2:27,38). 다른 날 내내 잘 나오다가, 이 날 오지 않았다면, 그동안 기다렸던 예수님을 못 만난 것입니다(참고/눅2:41-42). 우리의 가정이 성전인바 인내하세요. ‘마침’ 여러분에게 응답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또한 청아비전교회가 나의 성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배당 문턱이 닳기까지 오세요. ‘마침’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항상 색각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사람인가를 확신해야 한다. 우리 집에 내가 합당한 사람인가, 생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충돌, 다툼, 갈등이 일어날 때, 더욱 그러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맞아서 사는 가족이 얼마나 되던 가요? 그저 내 가족이니 하고 사는 것이지요. 내 교회가 맞는가 예배자로 세우신 것이 맞는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시므온을 이끄셨던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청아비전교회에 예배자로 세워졌다는 확신하고 드릴 때, 그 중심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나의 성전인 가정과 교회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확신해야 합니다.
셋째 내게 있어야 할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는 만나야 할 사람을 못 만난 데에서, 내 인생의 고통의 원인을 찾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요. 부모님 없이 지금 여러분들이 존재할 수 있나요? 부모님의 영향이 없나요. 그런데 내 부모에 대해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비교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집 부모들은 정말 잘해주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부모를 소중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 목사님과 성도님들에 대해서 소중함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 입술이 부르트도록 기도하고, 노심초사하며, 애태우면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분이 누구세요? “돌아보니 그때 나와 있던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 가정과 교회에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넷째 내가 있어야 도움이 된다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시므온과 안나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분, 메시아를 증거했습니다. 개인적인 은혜만 아니라. 자기 민족에게 구원이라는 복된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성전인 가정과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사람은 연약함과 이기가 내재하고 있기에 도움을 우선 찾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요15:13). 십자가에 죽으심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이타적인 사랑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어야 도움이 된다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다섯째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지금 있는 곳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교육전도사 때, 한 달 사례비가 지금 노동일 이틀 일당도 안되었습니다. 고바우에 있는 빌라 지하에 얻었는데요. 침침한 곳이기에 바퀴벌레가 많았습니다. 외출했다고 들어오면, 방 입구에 바퀴벌레가 환영해요. 한두 마리가 아니고, 바글바글하게 말이죠, 불을 켜면 황급히 흩어집니다. 제 모습을 본 두 살짜리 딸이 무슨 놀이처럼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집에 가고 싶겠어요. 그러나 온종일 밖에서 일하고, 발길을 집으로 향할 때, 그래도 내 가족과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니,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찬송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곳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있는 곳이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이에요.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함을 받고, 안나는 여 선지자로서, 일생동안 성전에 있었던 것이 쉬운 일이었겠어요. 그 시간 동안 변개하고 싶고, 시험에 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왜 없었겠어요. 그들도 인간인데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전에 있으라고 하신 말씀, 지금 있어야 할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알았기에 은혜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의 성전인 가정과 교회가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오늘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은혜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간구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인한 많은 사망에 묻혀, 피해 상황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있는데요. 시리아 서북부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시리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난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1971년에 군사쿠데타러 정권을 찬탈한 하페즈 알 아사드Hafez al-Assad가, 2000년 차남인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에 권좌를 물려 준 후, 부자의 50여 년 압제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전으로 사망자가 50만 명, 난민이 1천 100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지진이 하필이면, 정부군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는 반군 거점 도시에 발생한 것입니다. 지진 후 5일 만에 피해지역인 알사포를 방문한 알 아사드 대통령은 표면으로는 구조대를 파견하고 유엔이 구호품을 전달할 통로를 열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지진 당일에도, 반군이 거주하는 지진 피해지역에 폭격을 가하는 냉혹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알 아사드는 반군의 대지진 고통을 보며 속으로 쾌조를 불렀을지도 모를일입니다.
이같은 사례는 ‘악인은 오늘도 왜 번영하는가?’, ‘의인은 왜 무고한 피를 흘려야 하는가?’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시편 73편에 악인들 가운데,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12),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5),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라고 말씀합니다(5).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악인들의 죄악을 보고, 좌시하고 계신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죄악이 계속되는 세상을 보면서, 갖게 되는 의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곡식만이 곡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죄악도 곡간을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채워간다는 것은 진행이지만, 곡간에 죄악이 다 찰 때가 이르면, 더 이상의 죄악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대홍수 심판 이전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창6:5). 아담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죄로 덮이기 시작했고, 이 죄악은 노아 때 이르러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가득함’을 개역한글 성경에는 ‘관영함’으로 번역했습니다. 죄악이 찰 때까지, 찼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죄는 시작되었지만, 그 죄는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찰 때가 있습니다. 죄악의 찰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찰 때를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죄악은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그날에 심판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가 차감과 함께 의도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라고 하였습니다(벧전3:12). ‘의인의 간구’를 여러 가지로 조명할 수 있으나, 그중 한 가지는 악인의 형통에 대한 간구입니다. 왜! 세상은 악인이 득세하는가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세상이 악인이 득세하는 것으로 보이세요. 그렇다면 악인의 득세는 곧 의인이 고난입니다. 의인이 무고한 피를 흘리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의인 피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거룩한 것이라면, 의인이 당하는 억울함과 애통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 득세하는 시대, 그와 함께 의인의 열매 실實이 아니라, 잃을 실失의 실세失勢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악인들만 번창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들의 승리도 있습니다. 의인들의 빛을 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악인들의 번창하기 유리하고, 의인들의 빛을 발하기는 제약이 있습니다. 설사 의인들이 세상에 빛을 본다고 하여도, 의인들의 진정 한 빛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와 같이 저 영원한 나라에서 인 줄 믿습니다(단12:3).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의인들이 빛을 본다고 하여도 진정한 빛이 아니요. 천국에서 누릴 것의 맛보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에서는 의인의 받는 빛을 악인의 득세와 비교하거나, 결과물로 대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의인들의 승리가 지금도 있으나, 세상에서는 악인들의 득세와 의인들의 잃을 실 실세가 여전합니다. 악인의 창궐과 의인의 고난은 같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창궐하고, 의인들은 고난을 받고, 악인들은 자신들의 잘 됨을 뽐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죄악을 쌓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하신 그날 진노를 내리실 것입니다. 그때 의인에게는 상급이요. 악인에게는 재앙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악인들은 왜 창궐하는가와 의인들은 왜 무고한 피를 흘려야 하는가에 대하여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인간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고’하였습니다(창11:4).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시고, 언어를 혼잡케하여, 대적을 그치게 하셨습니다(창11:8). 일명 ‘혼돈’을 뜻하는 ‘바벨’ 사건입니다. 인간들의 반역이 하늘에 닿자 하늘을 찔렀어요.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심으로 반역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반면 애굽의 압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 되었습니다(출2:23).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에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악이 하늘에 닿을 때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간절한 간구가 하늘에 상달될 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참고/계5:8,8:4).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간구는 지금도 함께 가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야 합니다(시1:1-2).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저와 여러분은 당연히 이 세상에서 득세하는 악인의 죄악이 관영함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인의 길에 서야 합니다.
하늘에 사무친 악인의 죄악
하늘에까지 닿은 악인의 죄악에 대하여, 좀 더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 유대를 침략한 바벨론에 대하여, 하나님은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렘51:6). 그러나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을 치료하여 하여도 낫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렘51:9). 그것은 바벨론의 패역함 때문입니다.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시온(남 유대)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하나님)이 갚으신다’고 하였습니다(렘51:24).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무너졌습니다. 역사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갇혔다 나온 요나 이야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때 북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등장하는데요. 니느웨의 ‘악독이 내(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습니다’(욘1:2). 하나님은 니느웨의 악을 보고 그들을 멸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바로 멸하신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외쳤습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길어야 세 마디 밖에 안 되는 이 짧은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왕부터 고관대작 그리고 백성들까지 모두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 하였습니다(욘3:7-8). 이를 본 하나님은 어떻게 하였나요.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10). 니느웨,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바벨론과 앗수르 똑같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악이 하늘에 상달되었지만, 하나님은 두 나라 모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끝까지 거부했고, 앗수르는 돌이켰습니다. 즉 하나님은 죄악을 쌓고 계시되 바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회개의 자리에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멸망 당해야 하나요.” 하나님을 원망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하여,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하였습니다(창19:13). 그러나 이 죄악의 도성을 멸하시기 전, 하나님은 그 도성 가운데 롯을 구하고자, 천사를 통해 고지하였습니다. 롯은 곧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아내와 두 딸은 롯의 손을 잡고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였지만, 두 사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사위들은 무엇으로 여겼어요. ‘Jesting’으로 여겼습니다. 중차대한 일,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긴 것이지요. 우리는 오늘도 주변에 복음을 전할 때, 이러한 ‘농담’ 정도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애굽 바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여러 재앙에도,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로는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재앙에까지 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출13:15). 끝내 돌아서지 않는 ‘완악’함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웃에게 전도를 할 때, 이러한 ‘완악’으로 마음을 문을 닫는 분들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9:18). 저와 여러분은 완악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악이 하늘에 닿았을 때, 하나님은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심판하시기 전,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요3:1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딤전2:4).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벧전3:9).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지금도 하늘에 죄악을 쌓고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지금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은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심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하였습니다(롬2:5). 지금도 죄악을 쌓고 계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그 정하신 죄악의 채움까지 쌓고 계신 것입니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2:6-8).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심판
그러나 바벨론, 앗수르와 같이 국가적이던, 롯의 두 사위와 바로왕과 같이 개인적이던, 이 심판이 좀 오늘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너무나 악인들의 번영하고 죄악이 창궐하니까 말입니다. 믿는 사람들로서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국가적 개인적인 심판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은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5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계18:5-6).
이 말씀에서 기록된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고,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는 노아홍수, 소돔과 고모라, 바벨론과 앗수르, 룻의 두 사위와 애굽 왕 바로에게 임했던 말씀과 같은 것이지만, 구별됨이 있습니다. 앞서 모든 사건들은 이전의 일들이었지만, 오늘 본문은 앞으로 일입니다(계18:5-6). 장차 마지막에 있을 일입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 바벨론, 앗수르와 같이 국가적이던, 롯의 두 사위와 바로왕과 같이 개인적이던, 이 심판이 오늘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죽은자와 산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딤후4:1). 하나님은 그 날에 이르러 최종적인 심판을 하시고자 쌓고 계시는 것입니다.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하였습니다(롬12:19-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날까지, 우리에게는 원수를 친히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의인들의 득세한다고, 물리적으로 그들을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심을 믿고, 우리는 의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가고, 악인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정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은 마지막에 심판하신다는 말을 들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 ‘남극의 눈물’을 시리즈로 방영했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염과 공해로 인한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2천 년 전에 지구의 눈물을 전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8:19-22)
이 말씀에서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초림의 예수님에 의한 구원 시작에 대한 소망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의 예수님을 통한 구원 완성에 대한 갈망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오셔서 죄악을 심판하시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통해, 죄악이 없는 나라를 오매불망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피조물을 상징적으로 들어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들조차도 6천 년 전 아담 범죄로 저주 받은 후, 회복되기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창3:17). 그런데 인간들은 이 증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완악한 심령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탄식을 메스미디어를 통해 지구의 눈물 시리즈로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증언만이 종말의 징조를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패역함과 완악함으로 듣지 않기에 이러한 대중매체를 들어서도 듣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2015년 6월 26일 동성결혼 합법화를 판결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오바마까지 나서서 이를 환영했고, 백악관을 비롯하여, 주요관공서는 자칭 성수자로 상징되는 무지개색으로 뒤덮였습니다(무지개색은 성수자로 불리는 LGBT들의 성적 다양성을 상징한다(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그 날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인 존 파이퍼John S Piper,1946- 목사님은 “로마서 1장 24-27절은 동성애를 죄라고 명백하게 설명하면서 동성애 승인과 제도화에 반대하고 있다. 오늘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이 말씀과 똑같이 행했다. 동성애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이를 행한 자를 옳다고 했다.”고 외쳤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른다’고 애통한 심정을 밝혔습니다(시119:136). 이것은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암흑의 대륙인 유럽과 달리 미국은 아직까지 건강한 가치와 보수적 교회가 현존해있는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의 보루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땅에 소돔과 고모라를 보듯이 동성애를 합법화 했다는 것은 임박한 종말을 알리는 징조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 교단 가운데 대한성공회 소속의 성도인 정 모씨가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 및 성소수자를 존종하는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가치관에 따라, 군대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며,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1심 유죄 2심 무죄에서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며 판결을 확정했습니다(2021.6.24.). 여호와증인외에 신앙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첫 사례입니다. 그런데 정 모씨는 기독교 신앙만이 아니라, 스스로 ‘퀴어 페미니스트’Queer Feminist라고 밝혔습니다. 본인이 성소자인지, 아니면 성소수자를 지지자인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소수자를 옹호는 퀴어 페미니스트가 성경적인 기독교인인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운 것을 보고, 두 천사를 보내어,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알아보기 위해 두 천사를 보냈습니다(창18:20-21).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하자 맞이한 것은, 두 천사를 외지에서 온 남자로 본 소돔의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몰려온 무리들이었습니다(창19:4-9). 소돔은 부끄럽게 숨겨야할 죄악이 공론되고 대중되었습니다. 소돔의 동성애는 죄악의 만연 가치의 상실과 신앙의 붕괴를 알게 합니다. 하나님이 소돔의 죄악을 알아보기 위해 보낸 두 천사가 목격한 것은 동성애입니다. 동성애가 만연했다는 것은 다른 모든 죄악은 다 찼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동성애가 공론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중의 지지를 받고, 이제는 법제하려고 합니다. 동성애가 공론화 대중화 합법화되었다는 것은, 그 외의 죄악들은 이미 가득찼음을 보여 줍니다. 동성애는 죄악의 프로나운Pronoun, 재앙의 리트머스Llitmus, 심판의 바로미터Barometer입니다. 그런데 동성애를 여러 죄악 중의 하나로 본다고 하는 성경인식이 결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2015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한 후, 이슬람 국가와 일부 사회주의 국가 외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성소수자라는 미명의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를 반대한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동성애는 죄입니다. 탐욕입니다. 우상숭배입니다. 동성애자는 태어날 때부터 성정체성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영적靈的, 정적情迹, 육적肉的으로 치유 받아야 할 불쌍한 대상인 것입니다.
타이타닉Titanic,1997으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1974-가, 2015년 레버넌트The Revenant:죽음에서 돌아온자에서, 열연으로 오스카Oscar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출중한 연기를 펼치고도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었습니다. 무려 20여년 만에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뜻 깊은 자리에 그의 수상 소감은 의외였습니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지구온난화가 정말 심했다. 기후 변화는 지금도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레버넌트’ 제작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었다. 2015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우리는 북아메리카에서 눈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찾아야 했다. 인류 모두가 다함께 행동에 나서야한다. 전 세계 지도자가 나서 환경오염을 크게 일으키는 사람과 맞서야한다. 인류 모두를 위해, 세계 곳곳의 원주민을 위해, 후손을 위해 나서야한다”며, 촬영현장에서 체감한 기상이변을 전했습니다. 이 또한 종말의 징조임을 숨길 수 없습니다.
지난 2월 6일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사망자만 4만 6천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사망자 순으로 열거한 지진을 보면,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 진도 9.1. 사망자 22만 명. 2010년 아이티 대지진. 규모 7.0. 사망자 16만 명.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 규모 8.0. 사망자 8만 7000명. 2005년 카슈미르 지진. 규모 7.6 사망자 7만 3000명. 2004년 스리랑카 지진 규모 9.1 사망자 3만 5000명. 2003년 이란 대지진 규모 6.6 사망자 3만 1000명.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규모 9.0 사망자 1만 8500명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들어서 대지진의 강도는 더 강력해지고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죠. 대형 산불, 대홍수, 최강 한파, 살인적 폭염, 쓰나미 등 기후 재앙이 해마다 더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임하심 (재림)과 세상 끝 (종말)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묻는 제자들에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대)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과(와)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3;눅21:10-11). 재림 곧 종말이 임박할수록 나타나는 여러 징조 가운데 대지진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대지진은 인간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음을 보게 하는 외적 빙거인 것입니다.
성경증언만이 종말의 징조를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 같이 목사의 눈물만이 종말의 징조를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의 고백을 통해서도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디카프리오는 종말과 성경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단 자신이 영화 촬영에서 느낀 것을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TV로 시청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동성애 합법화를 판결하는 법정을 통해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겁잡을 수 없는 대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마지막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과 목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대중매체, 세상법정과 기후재앙을 통해서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 주 재림의 임박을 경종하는 하나님의 메가폰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래저 저래도 긍휼함을 입지 못한 완악한 자들은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긍휼을 입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분들은 완악함이 아닌 긍휼함을 입는 은총을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음으로 그 날까지 쌓고 계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심판이 없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음을 경각하고 준비해야 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심판인 물水 심판이 왜! 노아 때였습니까? 그 당시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창6:5). 죄가 차고차서, 끝까지 찬 날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범한 죄는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숯불을 원수들의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하셨습니다(롬12:19-20)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날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지막 불火 심판까지 죄악은 쌓여만 갑니다(벧후3:7). 종국에 하늘에 사무칠 때, 주 재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계18:5,19:2).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사무친 의인의 간구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앞서 이 세상에서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간구는 함께 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의인으로서 간구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의를 쌓아 올려야 합니다. 악인은 죄가 하늘에 사무치게 하지만, 우리는 의가 하늘에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그 땅에 거하는 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을 배반하고 떠났지만,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룻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올 때부터, 조카가 아닌 친 자식과 같이 여겼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멸망을 알리러 가는 천사에게 아브라함은 간절히 간구 합니다.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3-25).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창18:26).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의인 오십 명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는 다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무리라고 생각되었던지, 점차 그 수를 줄여나갑니다.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그렇게 줄일 때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애원을 합니다. ‘내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이러한 간절한 간구에 조카 롯을 구하게 됩니다. 단 한명의 구원을 위해서도 드렸던 의인의 간구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 이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게 되었으니, 롯이 살아나올 수 없겠구나!”하고 단념한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 악인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친 시대 우리는 의인으로서 간구가 하늘에 사무치기를 원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말입니다.
부단 의인의 간구는 한 개인만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한 민족을 사망에서 건진 사실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도 보면 이스라엘은 참담한 현실에 놓여있었습니다. 대적 블레셋과 1차 전투에서 사천 명, 2차 전투에서 삼만 명이 사망하는 대패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마저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이 국가적 위기에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온 백성과 금식하고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고 먼저 회개 하였습니다(삼상5:6). 이 순간 블레셋은 두 차례 전쟁에서 대승한 여세를 몰아 미스바로 진격해왔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패퇴시킬 절호의 기회로 본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요청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삼상5:8).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삼상5:9). 결과는 이스라엘이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절 말씀입니다’(삼상5:10).
아브라함의 간구로 롯이 구원받은 것을 통해 의인의 간절한 간구가 한 영혼을 구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한 영혼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오십 명에서 시작하여 열 명까지 수를 줄이고 줄이면서 간구했습니다. 변개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변개를 나무라지 않으셨음도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날이 가깝습니다. 정말 주 오심이 성경을 통해서 목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경과 목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듣지 않으니, 하나님은 대중매체와 세상법정과 기후재앙을 통해서도 눈과 입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의인의 간구입니다. 악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이 시대, 우리는 의인의 간구로 하늘에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멸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사무엘의 간구로 이스라엘 국가가 위기에서 건짐받은 역사를 보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기도가 중요한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상황적 시대의 징조를 절대적 성경의 증언을 통해 보고, 영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성도의 신앙관입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일 잘 풀린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과 국가의 중차대한 일 앞에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 의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나라를 지키실 것이며, 마지막 날까지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보호함을 받게 됩니다. 긍휼을 입은 자들을 구원하고, 나라와 민족을 살라리는 의인의 간구가 하늘에 사무치는 역사를 있게 해야 합니다.
개인과 국가가 대 역사 앞에 있는데 기도하는 성도가 없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라면, 한 편에서는 이러한 국가의 중대사를 엎으려는 악인들의 죄악이 관영해 가고 있는 다는 경성을 가져야합니다. 이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의인들의 개인과 국가를 위한 기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한국교회는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은 악인의 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칠 때, 의인들의 간구가 하늘에 사무쳐야 합니다. 그래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의인들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수호가 있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항상 함께 간다면, 우리나라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가 되어야 합니다.
순교자들의 신원
의인들의 간구를 말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교자입니다. 모두가 예수 믿으면 의인이지만, 그 의인 가운데 최상은 순교자입니다. 현재에도 전 세계에서 한 해 동안 순교자가 얼마인지 아세요? 국제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 International가 밝힌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WL·World Watch List)를 보면, 2014.11.1.-2015.10.31까지 60개국 이상에서 7000여명이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때문에 살해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 이름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이 이렇게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로버트 토마스Robert J. Thomas,1840-1866 선교사 이래 가장 최근에는 배형규목사님이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순교 당했습니다(1866.9.2-2007.7.25). 예수님 보혈이 이 땅에 구원을 주시고, 순교자들의 피가 부흥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이 정절, 순교의 피가 혈관에 흐르는 곳이 한국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순교자들의 호소가 나옵니다. 빨리 우리의 피 값을 갚아달라는 순교자들의 간절한 신원입니다.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계6:9-10).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즉 예수이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이 순교자들이 ‘큰 소리 불러 이르뢰’ 간절히 호소합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성도들의 목숨을 취한 세상을 말합니다. 그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이렇게 의인으로 무고한 피를 흘린 순교자들이 신원을 요청합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6:11).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신원에 대하여, ‘아직 잠시 동안 쉬되’라고 말합니다. ‘잠시’라고 하셨습니다. ‘곧’이란 뜻입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에서 ‘그들’이란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순교자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 역시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란, 하나님이 정하신 순교자가 있는데,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가 다 채워지는 날에 가서, 순교자들의 피 값, 순교자들의 신원, 의인들의 간구가, 완전히 성취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악인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날, 동시에 순교자의 피가 하늘에 사무친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죄악도 다 찰 때까지 차고, 순교자의 피도 다 찰 때까지 찰 때, 하나님의 심판 즉 예수님 재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악은 오늘도 왜 번영하는가?’, ‘의인은 왜 무고한 피를 흘려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죄악의 채워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순교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날은 불신자 죄악의 관영함에 대한 보응이요(잠11:31;계16:21). 순교자 신원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잠13:21;계11:7). 이 두 가지가 충만充滿되었을 예수님의 재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악인은 멸망당하고 의인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딤후4:1). 세속사가 종결되고 구속사가 완결되는 것입니다.
지금 죄악이 하늘에 사무시치는 일들, 무고한 이들이 피를 흘리는 일들, 순교의 피까지 아니더라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당하면서 겪는 핍박과 고난은 바로 이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요.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시대 우리가 할 일은 의인의 간구로 하늘에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계18:4). 다같이 보겠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은 의인인 우리에게 ‘거기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서론에서 시편 기자는 악인 형통에 대해서 말했지 않습니까? 악인들 가운데는 모든 일마다 잘되고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이 없습니다. 의인이 보기에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시73:17). 우리 청아비전교회가 악인의 죄악의 하늘에 사무치는 이 시대, 분명한 의인들의 간구로 하늘에 사무치게 하는 역사를 이루는 성소, 제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의인으로서 간구를 하늘에 사무치게 하여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회개하고, 기도하는 의로운 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그 날의 영광. 예수님 재림 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 날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이 순간 불신자 죄악의 관영함에 대한 보응과 의인에 대한 응답을 분명히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는 은총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날까지 함께 승리하는 공동체 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정리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간구
대지진으로 많은 사망자를 낸 국가 중에는 튀르키예 말고도 시리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군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반군 거주지에 발생했습니다. 이 한 사례를 통해 보더라도 ‘악인은 오늘도 왜 번영하는가?’, ‘의인은 왜 무고한 피를 흘려야 하는가?’는 의문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악인들 가운데는 일생 동안 잘살다가 죽음 가운데도 고통이 없다고 말씀합니다(시73:5). 하나님이 죄악을 좌시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죄악도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다 차가 되면 죄악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노아의 시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창6:5). 죄가 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는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 첫 심판인 대홍수 같이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가 차감과 함께 의도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득세는 곧 의인이 고난입니다. 의인이 무고한 피를 흘리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의인 피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거룩한 것이라면, 의인이 당하는 억울함과 애통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 득세하는 시대, 그와 함께 의인의 열매 실實이 아니라, 잃을 실失의 실세失勢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의 창궐과 의인의 고난은 같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죄악을 쌓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벧전3:12). 하나님이 정하신 그날 의인에게는 상급이요. 악인에게는 진노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도 인간들은 힘을 모아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고’하였습니다(창11:4).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시고, 언어를 혼잡케하여, 대적을 그치게 하셨습니다(창11:8). 일명 ‘혼돈’을 뜻하는 ‘바벨’ 사건입니다. 인간들의 반역이 하늘에 닿자 하늘을 찔렀어요.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심으로 반역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반면 애굽의 압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 상달 되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출2:23). 하나님은 악인의 죄악이 하늘에 닿을 때,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가 하늘에 올려질 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십니다(참고/계5:8,8:4).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야 합니다(시1:1-2).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악인의 죄악이 관영함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인의 길에 서야 합니다.
하늘에 사무친 악인의 죄악
바벨론과 앗수르는 모두 이스라엘 침략했습니다. 두 나라에 죄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렘51:6;욘1:2). 그러나 바로 진노하지 않으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고, 바벨론은 거부하였지만, 앗수르는 회개하였습니다(렘51:9,24;욘3:4-10). “왜! 우리는 멸망 당해야 하나요.” 하나님을 원망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멸하시려고’ 하였습니다(창19:13). 그러나 롯을 구하고자, 천사를 보내어 고지하였습니다. 롯은 곧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아내와 두 딸은 롯의 손을 잡고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였지만, 두 사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창19: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전3:9).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지금도 하늘에 죄악을 쌓고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지금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은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심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하였습니다(롬2:5). 하나님이 정하신 죄악의 채움까지 쌓고 계신 것입니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2:6-8).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심판
그럼에도 심판이 오늘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적 개인적인 심판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고,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라고 하였습니다(계18:5-6). 이는 노아홍수, 소돔과 고모라, 바벨론과 앗수르, 룻의 두 사위에게 임했던 심판과 같지만, 구별됨이 있습니다. 전자는 이전의 일들이었지만, 본문은 장차 마지막에 있을 일입니다. 즉 심판이 오늘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죽은자와 산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딤후4:1). 하나님은 그 날에 이르러 최종적인 심판을 하시고자 쌓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은 마지막에 심판하신다는 말을 들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북극의 눈물’ 등을 시리즈로 오염과 공해로 인한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2천 년 전 성경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있다고, 지구의 눈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19-22). 이것은 초림의 예수님에 의한 구원 시작만 아니라, 재림의 예수님을 통한 구원 완성에 대한 갈망입니다. 그가 다시 오셔서 죄악을 심판하시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통해, 죄악이 없는 나라를 오매불망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2015년 6월 26일 동성결혼 합법화를 판결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오바마까지 나서서 이를 환영했습니다. 그날 존 파이퍼John S Piper,1946- 목사님은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명백하게 설명하면서 동성애 승인과 제도화에 반대하고 있다(롬1:24-27). 미국이 동성애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이를 행한 자를 옳다고 했다.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른다”고 밝혔습니다(시119:136). 미국은 영적으로 암흑의 대륙인 유럽과 달리 아직까지 건강한 가치와 보수적 교회가 현존해있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행악은 종말을 알리는 징조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의 죄악을 알아보고자 보낸 두 천사를 외지에서 온 남자로 보고,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무리들이 몰려왔습니다(창18:20-21,19:4-9). 소돔은 부끄럽게 숨겨야할 죄악이 공론되고 대중되었습니다. 오늘날은 동성애가 공론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중의 지지를 받고, 이제는 법제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외의 죄악들은 이미 가득찼음을 보여 줍니다. 동성애는 죄악의 프로나운Pronoun, 재앙의 리트머스Llitmus, 심판의 바로미터Barometer입니다. 이제 전 세계에서 이슬람 국가와 일부 사회주의 국가 외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성수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1974-가, 2015년 레버넌트로 오스카Oscar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러데 수상 소감에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지구온난화가 정말 심했다. 기후 변화는 지금도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레버넌트’ 제작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었다. 2015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우리는 북아메리카에서 눈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찾아야 했다. 인류 모두가 다함께 행동에 나서야한다”며, 촬영현장에서 체감한 기상이변을 전했습니다. 이 또한 종말의 징조임을 숨길 수 없습니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사망자만 4만 6천 명에 달합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들어서 대지진의 강도는 더 강력해지고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죠. 대형 산불, 대홍수, 최강 한파, 살인적 폭염, 쓰나미 등 기후 재앙이 해마다 더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임하심 (재림)과 세상 끝 (종말)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묻는 제자들에게, ‘곳곳에 큰(대)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과(와)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3;눅21:10-11). 재림 곧 종말이 임박할수록 나타나는 여러 징조 가운데 대지진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대지진은 인간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음을 보게 하는 외적 빙거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과 목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세상법정과 대중매체와 기후재앙을 통해서도 종말의 징조를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 주 재림의 임박을 경종하는 하나님의 메가폰인 것입니다. 본문은 이제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음으로 그 날까지 쌓고 계시다는 메시지입니다.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경성하고 준비해야 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심판인 물水 심판이 왜! 노아 때였습니까? 그 당시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창6:5). 죄가 차고차서, 끝까지 찬 날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범한 죄는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숯불을 원수들의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하셨습니다(롬12:19-20)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날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지막 불火 심판까지 죄악은 쌓여만 갑니다(벧후3:7). 종국에 하늘에 사무칠 때, 주 재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계18:5,19:2). 이것을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사무친 의인의 간구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앞서 이 세상에서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간구는 함께 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의인으로서 간구입니다. 악인은 죄가 하늘에 사무치게 하지만, 우리는 의가 하늘에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그 땅에 거하는 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을 배반하고 떠났지만,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룻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올 때부터, 조카가 아닌 친 자식과 같이 여겼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멸망을 알리러 가는 천사에게 아브라함은 간절히 간구 합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성 중에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3-25). 이에 하나님은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창18:26).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의인 50 명에서, 10명까지 줄이면서, 하나님께 ‘내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고 애원합니다. 이러한 간절한 간구에 조카 롯을 구하게 됩니다. 단 한명의 구원을 위해서도 드렸던 의인의 간구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시대 우리는 의인으로서 간구가 하늘에 사무치기를 원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인 수를 50명에서 10명까지 줄였을 때, 변개했다고 나무나리 않으셨습니다. 변개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이 가깝습니다. 상황적 시대의 징조를 절대적 성경의 증언을 통해 보고, 영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의인의 간구가 하늘에 사무치는 역사를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의인들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수호가 있기를 바랍니다.
순교자들의 신원
의인들의 간구를 말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교자입니다. 모두가 예수 믿으면 의인이지만, 그 의인 가운데 최상은 순교자입니다. 지금도 60개국 이상에서 7000여명이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때문에 살해를 당했습니다(2014.11.1.-2015.10.31.). 한국은 토마스Robert J. Thomas,1840-1866 선교사 이래 가장 최근 배형규목사님까지 순교 당했습니다(1866.9.2-2007.7.25). 예수님 보혈이 이 땅에 구원을 주시고, 순교자들의 피가 부흥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이 정절, 순교의 피가 혈관에 흐르는 곳이 한국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순교자들의 호소가 나옵니다. 빨리 우리의 피 값을 갚아달라는 순교자들의 간절한 신원입니다(계6:9-10). 이에 하나님은 ‘아직 잠시 동안 쉬되’라시며, 순교자들의 ‘동무들’인 순교자들이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나님이 정하신 순교자가 채워지는 날에 가서, 순교자들의 피 값, 순교자들의 신원, 의인들의 간구가, 완전히 성취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계6:11). 악인들의 죄악도 다 찰 때까지 차고, 순교자의 피도 다 찰 때까지 찰 때, 하나님의 심판 즉 예수님 재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악은 오늘도 왜 번영하는가?’, ‘의인은 왜 무고한 피를 흘려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죄악의 채워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순교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날은 불신자 죄악의 관영함에 대한 보응이요(잠11:31;계16:21). 순교자 신원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잠13:21;계11:7). 이 두 가지가 충만充滿되었을 예수님의 재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악인은 멸망당하고 의인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딤후4:1). 세속사가 종결되고 구속사가 완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당하면서 겪는 핍박과 고난은 바로 이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요.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시대 우리가 할 일은 의인의 간구로 하늘에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인 우리에게 ‘거기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계18:4). 악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계18:4). 시편 기자는 악인이 하는 일마다 잘되고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시73:17). 우리 청아비전교회가 악인의 죄악의 하늘에 사무치는 이 시대, 분명한 의인들의 간구로 하늘에 사무치게 하는 역사를 이루는 성소, 제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의인으로서 간구를 하늘에 사무치게 하여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의로운 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 날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이 순간 불신자 죄악의 관영함에 대한 보응과 의인에 대한 응답을 분명히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는 은총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금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날까지 함께 승리하는 공동체 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날까지,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고난이 쌓여갑니다. 우리가 죄악의 관영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인의 길에 서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지금 구원의 날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죄악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보하는 이들이 죄로 하늘을 찌르는 완악한 자가 되지 말고, 긍휼을 입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성경과 목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세상법정과 대중매체와 기후재앙을 통해서도 종말을 알리고 있습니다.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경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신앙과 헌신과 예배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이 단 한 명의 구원을 위해서도 드렸던 기도와 같이 우리가 이 시대 의인으로서 간구가 하늘에 사무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날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이 순간 불신자 죄악의 관영함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보응을 분명히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믿음이 절대 헛되지 않음을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함께 승리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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