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라이즘Hebraism과 헬레니즘Hellenism
하나님말씀 : 갈라디아서 1:6-12
1.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서양 문화를 형성하는 2대 조류 ‘헤브라이즘’Hebraism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택했다는 선민의식, 유대인 민족의 사상을 일컫습니다. 이 고대 유대인의 사상을 서구가 받아들였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서구가 발전시킨 기독교는 헤브라이즘을 계승 순화한 사조입니다. ‘신본주의사상’The God-Oriented을 가집니다. ‘헬레니즘’Hellenism은 알렉산더대왕Alexandros the Great,BC336-BC323이 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 고유의 문화가, 오리엔트Orient 문화와 만나면서, 이룬 새롭고 세계적 성격을 띤 문화를 가리킵니다.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사상’Humanism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다신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신본주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요.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인본주의’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원하는 데로, 하나님이 일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인간의 목적대로 신을 만든 그리스도 신화와 같은, ‘인본주의’ 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 때문에 고민해 보신 적은 없는지요.
‘신본주의’ 하나님 기쁨과 ‘인본주의’ 사람의 기쁨의 기준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갈1:7,10.참고/갈2:4). ‘신본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 본문에서는 ‘거짓 형제’들이 교회에 침투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다른 복음을 주장하여 성도들을 교란시켰습니다(갈1:7,2:4,6:12-17).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다른 복음’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단들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증거되고 수용되고 있는 것들 가운데에도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인본주의’를 전하는 것입니다.
2. ‘다른 복음’(1) ‘기복주의’Prosperityism=Prosperity Gospel를 읽고 의견을 나누시오.
기복주의는 복을 받기를 바라는 신앙을 말합니다. 복중의 가장 큰 복이자, 첫 번째 복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 받은 자에게, 삶에서도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기복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구원보다 물질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폴라 화이트Paula M. White,1966-목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개회사를 맡는 등 유명인사이지만, 예수님 십자가를 인류의 대속이 아닌 재정적 어려움에서 구출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크게 잘못된 번영신학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창립기념예배에 설교자로 초청되었습니다. 가난하면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한 것인가요?
예수님은 자신의 몸 하나 누울 거처조차 없었습니다(마8:20).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은 십자가이었습니다(마27:32-44;막15:21-32;눅23:26-43;요 19:17-27). 사도 바울은 어떠했나요. 그는 회심 이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삶을 드림으로 수많은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참고/고후11:23-27). 그리고 마지막은 참수였습니다(참고/행19:21,20:22-24,21:13;딤후4:6-8).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을 잘못 믿었기에,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예수 믿으면 잘 살아야지”가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다면, 기복주의 물든 것입니다. 예수가 가장 큰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뜻 가운데 이 땅의 ‘분복’도 받기를 축복합니다(전5:18-19). 기복주의의 또 다른 형태인 인본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3. ‘다른 복음’(2) 율법주의Legalism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참고/롬3:17,21-22,5:1;갈2:16,3:11;빌3:9). 그런데 예수 믿음보다 율법을 강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율법주의는 무엇입니까? 예배에 참예한 것을 전부로 아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함정에 제일 빠지기 쉬운 것이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입니다. 천주교에서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들려진 것이 1960년대 후반입니다. 그 이전에는 사제가 라틴어 성경을 읽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사제가 베푸는 떡과 포도주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예식에 참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합니다. 신도의 죄에 따라 사제들이 명을 실행하면 해벌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죄의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1986에서 우발적으로 동생을 살해한 ‘멘도자’가 ‘가브리엘’ 신부의 권유로 선교에 동참하면서, 그동안 노예상으로 원주민을 사냥하던 각종 무기와 장비를 큰 그물에 담고, 힘겹게 폭포를 오릅니다. 그러면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까? 로마가톨릭의 율법주의의 한 단면을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신교 안에서도 자유주의 권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들은 단지 형식과 규범에 따른 예배의식에 참예 한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혹 우리에게 그런 것이 없나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드립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립니다. 참여를 전부로 아는 예배는 율법주의는 또한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입니다.
4. ‘다른 복음’(3) 방종주의Self-Indulgentism에 대한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율법주의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율법이 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마5:17).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시119: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로 시작되는 십계명이 율법이기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출20:3)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지금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2:8). 방종주의가 아닌 순종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방종주의는 도덕적 방종도 부추깁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망의 왕 노릇을 이기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고 했습니다(롬5:21;갈5:1;히2:14). 그러므로 사탄의 죽음 위협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자유’입니다. 반도덕주의자들과 같이 육체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방종주의도 또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입니다.
5. ‘다른 복음’(4) 신비주의Mysticism에 대한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신앙은 영적이기에 신비를 전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극단적 신비주의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내면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꿈이나 환상 어떤 경우는 비상한 방법의 계시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도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모 집단 교주에게 피해받은 이유 중에는 통시, 예언, 신유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나 해몽가들도 ‘이적과 기사’를 보인다고 했습니다(신13:1). 무속인들도 점괘로 과거와 현재는 잘 알아맞힙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 교주가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재수감될 줄 알았을까요? 그런데 메시아입니까? 어떤 기적에서도 우상과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신다고 했습니다(신13:2-3.참고/계13:4,13). 하나님의 ‘Test’를 통과하지 못하면, 마귀의 권세를 받은 집단 교주의 ‘Temptation’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일은 종말이 가까울수록 심화深化되어집니다. 마지막때 추수의 시대를 넘어 타작의 시대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입니다(마3:12.참고/마13:36-43). 우리는 신비를 조장하는 사람을 따르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만을 경외하는 신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신13:4-5). 그가 알곡 성도로 신랑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맞이하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았다고 다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일곱 우레’를 듣고 기록하려고 하자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계10:4). 하나님 계시를 직접 받았어도 하나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극단적 신비주의자에게 좋은 방법은 성경을 꾸준히 읽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의 개인, 우리 가정, 이 사회와 나라, 나아가 세계의 움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비주의는 내가 응답받은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 발동의 주체가 ‘나’임으로 이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6. ‘다른 복음’(5)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에 대한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영혼과 정신은 선하고, 육체와 물질은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이 더러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수 없다며, 육체를 가지신 것처럼 보였다는 ‘가현설’Doketismus을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죽음도 부활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신성’deity과 완전한 인간으로서 ‘인성’hamanity을 모두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요1:14). 인성을 갖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은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강조하며 공동체에서 부모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고, 부부도 다른 공간에서 기거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남자 교주도 여자 교주도 원하는 이성을 차지합니다. 신앙을 위해 과식과 정욕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이해하고, 영혼을 가두고 있는 육체를 제어하고, 영혼을 육체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으로 과도한 금욕주의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성결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이지, 인간의 금욕이 아닙니다(롬1:4). 영지주의의 영향에 따른 신앙도 또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날짜를 기억해야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영지주의 헬라어인 ‘그노시스’gnosis의 뜻은 ‘지식’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믿는 일시를 알아야 구원받은 것이라며, “깨달음과 거듭남의 비밀”을 주장하는 자들은 변형된 영지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바람같이 불어오듯이 구원은 인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믿게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다른 복음은 이단들만이 아니라, 교회 강단에서 그리고 간증에서, 그럴듯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위장해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7.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전쟁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영적 전쟁. 헤브라이즘의 신본주의와 헬라니즘의 인본주의는 지금도 계속해서 대립되고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와 대결이 아니라, 성도 사이에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도 심화되고 있는 것이 마지막 시대 교회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사람처럼 보여도,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가 아니면 미혹당하지 말아야 합니다(갈1:8). 사도 바울이 수없이 말했지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다른 복음으로 속히 떠났다고 합니다(갈1:9,2:6).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다른 복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즉 신본주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살전2:2,4).
‘휴머니스트’Humanist. 모 연예인 동성애자의 커밍아웃Comingout이 용기있고 진실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고, 보란 듯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사업에도 크게 성공하였고, 조카를 입양한 가족애가 남다르고, ‘휴머니스트’Humanist 사례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가정이 관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늘에까지 죄가 차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간을 좋게하고, 사람들을 기쁘게하는 인본주의, 휴머니스트가, 신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교회에 가만히 잠입하여, 성도들을 교란시키는 일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갈1:7).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요,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거부하는 ‘배교’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을 말씀합니다(살후2:3.참고/요14:6). 그래서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을 가르치고, 또한 구원과 진리에 이르는 동등한 길이라는 종교다원주의가 큰 세력을 이룰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라는 간판은 달았지만 이러한 것을 설파하는 자들이 많아질 것을 의미합니다. 놀랍게도 바로 이런 일이 오늘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8.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저명한 복음주의자께서 “20세기 들어와서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는 세계의 명문대학을 중심한 학문계에서 그 자리를 굳히게 되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식인으로 휴머니스트로 포장된 인본주의와 영적전쟁에서,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신본주의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로 포장된 인본주의와 영적전쟁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 오직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신본주의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① ‘헤브라이즘’ ‘신본주의’와 ‘헬레니즘’ ‘인본주의’는 불신자와 신자만이 아닙니다. 신자이지만,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복주의 율법주의 방종주의 신비주의 영지주의의 형태로 침투하는 다른 복음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하게 하옵소서.
②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을 기쁘게하는 인본주의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신본주의자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한 분으로만 기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기쁘하게 하옵소서, 구원의 기쁨이 항상 내 안에 넘치게 하옵소서.
③ 오직 예수를 유일한 구원자로 영접하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함께 상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신본주의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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