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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프라이데이"Good Friday(히 13:11-14) 이재현목사(23.04.02)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4. 2. 16:40

굿 프라이데이Good Friday

 

하나님말씀 : 히브리서 13:11-14

 

1.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참고/21:1-11;11:7-11;19:28-40;12:12-19).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알고도 스스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날을 성금요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Holy Friday’‘Precious Blood Friday’가 아니라, ‘Good Friday’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찔림우리의 허물때문이요. ‘상함우리의 죄악때문입니다(53:5).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 (구원)을 받았도다’(53:5). 이것만큼 인류에게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날을 굿 프라이데이’, ‘좋은 금요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2. 다음 단번에 이루신 십자가에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

 

구약의 제사는 대제사장이 11차 성소 안에 있는 지성소’Most Holy Place에 들어갑니다(16,23).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Atonement Cover에 짐승의 피를 쏟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년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짐승의 피는 유효 기간이 1년입니다. 짐승의 피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년 마다 반복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가 일 년간 유효는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일 뿐 사실 1년간 인간의 죄를 대속할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매년 짐승의 피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는 구약 제사의 마침표를 찍고. 한 번에 피 흘림으로 인간을 대속하기 위해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아들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13:11-12). 구약시대에는 반복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그가예수님은 단번에 자기를 (십자가에)드려 (대속을)이루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7:27.참고/9:12,26,10:10). ‘단번에 이루셨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금요일은 굿 프라이데이가 되는 것입니다.

 

 

 

 

 

3. 다음 예수님의 영문 밖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영문 밖은 예루살렘 성문 밖을 말합니다(13:11-13). 구약에서는 대속죄일에 짐승을 제물로 잡고, 피를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갖고 들어간 후, 나머지 짐승의 육체는 영문 밖에 있는 흰놈의 골짜기에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 때 짐승의 육체를 갖다 버릴 때, 이용하는 문이 분문’糞門,Ha'Ashpathot Gate입니다. 별칭으로 ‘Dung Gate’으로 불립니다.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12).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고 분문을 통해 영문 밖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이 분문을 통해 영문 밖으로 가셨기에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확증이 됩니다. 구약 제사 마침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속죄제물을 영어로 ‘Sin Offering’이라고 합니다(4:3-35,5:7-13). 어떻게 죄가 가장 거룩한 예물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지만, 죄 덩어리인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2:6-8). 예수님만이 ‘Sin Offering’ 속죄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더러운 것을 내보내는 분문을 통해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영문 밖으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두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워지시고, 허리는 창으로 찔리신, 그 모진 고통을 받으시기 전, 이미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모진 고통과 수치는 누가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이신 날인 성금요일이 우리에게는 굿 프라이데이가 되는 것입니다.

 

 

 

 

 

4. 다음 성도의 영문 밖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금요일이 되게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 고난 이전 본문으로 반출당한 오물 같이 여김을 받으신 예수님의 수치를 우리는 외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 오늘 종려주일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간 우리는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고 모든 예우를 박탈당한 분이 계십니다. 1964년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시위 6.3사태로 수감되어 6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그분은 복학 후 대학을 졸업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업이 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정면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어렵게 ○○건설에 입사해 5년째이던 30살 때 이사가 됐고, 12년 만인 37세 나이로 사장이 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으로 변신 서울시장으로 거쳐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입니다.

그 분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떠나서, 한 성도로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로 보았을 때 하는 말입니다. 정말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고 있는 가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그 분 만을 지칭해서는 안 되고요. 오늘 우리들의 인식과 믿음에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 길을 얼마만큼이나 생각하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분에 비난할 자격이 어쩌면 없을지 모를 일입니다. 나도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려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5. 다음 장차 올 것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성도가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여기에는이 세상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장차 올 것’, 즉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3:4). 그런데 영문 밖이 아닌 영문 안인 이 세상에서 쌓으려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인생이 찾으려고 하는 진정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전직 대통령도 중형을 선고받고,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세 분 가운데 두 분이 전직 대통령으로 받아야 할 대우를 받는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모습니다. 지금 눈앞에 이런 일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도, 아직도 이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장차 올 것을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찾은 가치, 이룬 성공, 쌓은 업적이 다 무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찾은 가치, 이룬 성공, 쌓은 업적이 있다면, 그것을 장차 올 것, 즉 영원한 가치와 성공과 업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일은 한 생명을 살리는 일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문 밖으로 가셔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그의 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13:12). 우리에게 거룩함을 이루신 날이 바로 성금요일 굿 프라이데이입니다.

한 영혼을 살리는 일 일차적으로는 전도입니다. 두 번째로는 은사로 섬기는 것입니다. 은사는 ‘Gift’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10:8). 저는 치아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이를 알고 수 개월간 일체의 진료비며 의치까지 다 무료로 해주신 의사가 있습니다. 이유는 제가 주의 종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은 목사님을 섬기는 것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예이고요.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조금만 생각을 하면 남들을 섬길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방금 전 말씀 드린 그 의사 분은 자신을 직업을 통해 섬길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병원 이름이 헵시바’Hephzibah인데요. 그 뜻이 기쁨, 즐거움입니다(62:4). 자신의 의술을 통해서, 기형적으로 틀어진 치아나 턱을 수술로 바로 잡아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분들이 치료이전에 콤플렉스를 해결해 줌으로써,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직업을 넘어 한 영혼을 섬기는 것이지요. 복음과 함께요.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 영혼을 살리는 직접 전도와 함께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 하나의 삶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십자가의 치욕을 지심으로 나가셨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내가 세상에서 찾은 가치와 세상에서 이룬 성공과 세상에서 쌓은 업적을 통해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쓴다면, 그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바쁘고 쫓기다보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구하면서 기도하세요.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내가 어떻게 쓰임 받을 수 있을까를 말이죠. 내가 세상에서 찾은 가치, 이룬 성공, 쌓은 업적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쓰여진다면, 그것이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일에 우리도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6. 다음 치욕을 개의치 않는 자에 대한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길 망설이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부끄러움은 고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 앞에 있는 기쁨십자가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기에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12:2). 그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표현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치욕을 개의치 말고,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있으세요. 그러한 성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개의치 않고 감당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저 영원한 나라, 오늘 본문의 영구한 도성에 함께하는 영광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자신의 그 높은 지위로 십자가게 죽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영문 밖으로 가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찾은 가치가 있고, 이 세상에서 이룬 성공이 있고, 이 세상에서 쌓은 업적이 있다면, 바로 한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일부터 감당하여, 영구한 도성에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결단하는 고난주간, 특별히 성금요일 굿 프라이데이를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 다음 글을 읽고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오늘 종려주일부터 금요일까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을 준비하신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간을 우리는 고난주간이라고 부릅니다. 그 고난주간 가운데 특별히 성금요일 굿 프라이데이는 클라이맥스Climax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이루신 굿 프라이데를 우리도 따라갈 수 있도록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데 개의치 않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늘 영광이 약속 된 줄 믿습니다. 특별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귀한 은혜와 결단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분문을 통해 영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기에 그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영문 안, 세상에서 이루려는 것을 버리게 하옵소서.

② 우리에게 치욕에 대한 정의는 한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일을 위해 첫째 직접적인 복음 전도를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둘째 내 은사로 타인을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내가 세상에 쌓은 업적이 있다면, 그것을 내 치부, 내 유익, 내 자랑으로 삼는 것이 아니요.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쓰여 진다면, 그것이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일에 우리도 쓰임을 받게 하옵소서.

 

③ 우리는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가는데,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어떤 미련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비소한다고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 길을 먼저 가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