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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눈물과 믿음"(딤후 1:3-5) 이재현목사(23.03.19)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3. 19. 15:55

양심과 눈물과 믿음

 

하나님말씀 : 디모데후서 1:3-5

 

갈라디아교회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이방인 성도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며 강요하였습니다(6:12-13). 그러나 실상은 자신들이 많은 이방인들을 할례받게 했다며,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언약의 표징입니다(17:10-11). 그러면 우리도 할례를 받아야 할까요?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 하였습니다(2:29.참고/16:10). 우리에게 언약은 예수님입니다(7:22,12:24,13:20). 마음에 할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참고/10:10). ‘육체의 모양 할례를 가지고, ‘육체의 자랑을 삼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고 하였습니다(2:29).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6:14). 예수님은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1:16). 십자가 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통적, 학문적, 종교적으로 최고였지만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3:8).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만 자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6:14). 세상은 나에 대해 나는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기대도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새로 지음 받은 자랑.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6:15) ‘그리스도 안’,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새로운 사람입니다(참고/고후5:17). 우리 지혜는 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복음, 전도입니다(고전1:21). 예수를 전할 때, 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성도들 세상의 약한 것(인 성도들)을 택하사 세상의 강한 것 들 세상에서 지혜있고 능력있다고 떠벌이는 자들을 부끄럽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1:27).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주님을 일을 하게 됨을 자랑해야 합니다(13:12-14).

예수의 흔적 자랑.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6:17). 사도 바울은 회심 이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삶을 드림으로 수많은 상처를 그의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고후11:23-27). 그러나 바울에게 예수의 흔적은 핍박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도 항상 교회를 염려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후11:28). 바울은 성도들이 약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약해지고, 성도들이 실족했다는 전갈을 받으면, 자신은 애가 탔다고 하였습니다(고후11:29-30.참고/고후12:9).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의 흔적이었습니다. 중보하는 분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있다면,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입니다(참고/9:36;4:15).

우리는 영적 아브라함 후손인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6:1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명령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되었습니다(12:2-3). 하나님이 택함 받은 선민이 사는 대한민국은 성민의 나라입니다(14::2).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우리가 십자가만, 새로지음 받음, 예수의 흔적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통하여, 마지막시대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감당하실 줄 믿습니다. 

 

 

1.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지만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유대인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참고/16:1.참고/2:8,6:20). 본문에 디모데 인품과 성정과 신 앙은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권과 평등과 존중이라는 미 명 아래 하나님을 대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하며, 구원자를 배척하는 사상이 교육되 고 있는 시대입니다. 본문은 부모로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며 본을 보여야 하는지, 자 녀는 부모의 가르침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고 서로 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디모데의 인품인 청결한 양심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섬겨 오는것이라고 하였습니다(3). ‘하나님을 섬기는 것 청결한 양심의 관계는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이들이 갖가지 문제로 세상에 비판을 받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결한 양심이라고 했을 때,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범주만이 아니라, 그 이상 이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리베이트Rebate를 받을 상황이 되어도, 믿는 사람이 받으면 욕을 먹게되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 청결한 양심’ ‘Clear Conscience' ‘깨끗함만으로 아니라, ‘Pure Conscience' ’순결함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KJV). 어떤 자리에서도 더렵혀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 가운데도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청결한 양심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이익만을 쫓는 이기주의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태생, 성격, 인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품을 천성으로만 여기지 말고 부단한 노력으로 고쳐질 수 있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에 관심을 두고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청결한 양심 순결한 자는 설사 내 것을 마땅히 취할 수 있는 몫이라도, 남을 위해 약간의 손실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2.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기억되는 양심. 위와 같이 살면 세상에서는 손해 볼 수 있습니다. 똑똑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제 봐 자기 것도 안 챙기고, 나에게 주내 바보같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 몫을 안 챙기고, 나에게 주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기에 지금 순간 나는 좋아요, 내 것 아닌데, 어떤 사람이 양보해서 내 것이 되었으니, 공짜로 얻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10년이 지났어요. 20-30년이 지났어요.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아 그때 그 사람 왜 나에게 자기 것을 그냥 주었을까라고 기억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어떤 사람에게 도움 아닌 도움을 받은 일들 말입니다. 예전에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지금 남을 대접을 하는 것이지요. 청결한 양심은 기억이 되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까지 합니다.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양심.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 “아 맞아 그 사람 예수 믿는다고 했지 교회 다니니까 그렇게 한 것이지라고 생각이 나는 사람이 된다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되니 말입니다. “양심을 지켜라 이것은 자칫 율법이 될 수 있어요. 당장 손해 보더라도, 상대를 배려할 때, 일반적인 양심에서,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양심, 그리고 그 양심이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양심으로까지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 가운데는 영악하고 교활하고 간계하기 까지 합니다. 이러한 세태에서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엄마 아빠 얻는 게 뭐가 있어! 그렇게 손해를 봐야 돼라는 말을 자녀들에게 듣더라도, ‘청결한 양심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내 태성이 이기주의라면 성령님께 청결한 양심이 되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통해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양심을 얻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양심. 내 태성이 청결한 양심이라면 더 더욱 좋을 일이지요. 거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더하면, 자신은 물론 자녀들이 디모데처럼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분들 가운데 나는 이제껏 나쁜 일 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 상대적일 뿐 하나님 아래 모두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3:10). 이것을 모른 것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벧전3:16,21). 정말 청결한 양심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길 때, 진정한 청결한 양심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육적 양심에 더해 영적 양심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양심을 갖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품인 청결한 양심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디모데의 성정은 의로운 눈물입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딤후1:4).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눈물은 한번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11:35). 그러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3, 그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33년 간, 단 한번만 우셨을까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느니라’(5:7).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 앞에 많은 눈물을 흘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우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하실 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23:28).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면서, 울고는 있지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모르는 자가 되지 않기를 위하여, 너희를 자신을 위하여 먼저 울어야 하고, 특히 너희 자녀들이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 후 부활을 알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울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종국은 영멸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울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참고/21:27). 그때 예수님도 울지 않으셨겠어요. 

디모데의 눈물은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는 자들을 위한 눈물입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영적 아버지 바울이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3:18). 그렇다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의 눈물 또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을 위한 눈물일 것입니다. 디모데의 영혼에 대한 눈물, 이 애타는 사역이 지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도 바울에게도 들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를 만나는 것이 내 기쁨의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영적인 아들이 한 영혼을 위해서 울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너무나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것이기에 기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는데, 울어야 할 때 울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을 위한 눈물이 기쁨입니다. 좋은 일에 기쁨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입니다. 그런데 이 눈물과 기쁨 가운데, 영적인 것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즉 하나님을 위한 눈물과 기쁨은 무엇을 들 수 있으세요.

21세기는 트랜스모더니즘’Transmodernism이라고 합니다. 그 특징이 비진리의 득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 진리가 상실되었습니다. 서구에서는 십자가의 부활, 천국과 지옥, 영생과 멸망, 심판과 구원, 재림과 종말 등이 신앙 없는 자들에게 위화감을 준다고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들이 바로 절대 진리가 상실되고, 비 진리의 득세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절대 진리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눈물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눈물은 사도 바울의 눈물과 같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의 영혼을 위한 눈물이었기 기쁨을 갖게 했습니다. 이 눈물이 예수님의 눈물이고, 사도 바울의 눈물이고, 디모데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의 어머니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눈물 말입니다. 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울 수 있다면, 부모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가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눈물이 우리의 성정이어야 합니다.

4.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디모데의 신앙은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가운데 믿음을 언급하면서, 그 믿음은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다보면, 목회를 정의하는 말들이 나올 때가 있는데요. 목양하는 목사들마다, 그 환경이나 여건이 각 각 다르기 때문에 목회에 대한 정의도 다양한데요. 일치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목회는 꾸준해야 된다. 인간의 수를 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실, 일관, 진실이란 뜻이 있고 , 쉽게 있는 그대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있는 그대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꾸미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꾸민다는 말은 각색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렇지만, 현실은 안 그래, 내 사는 형편에 맞게 살아야 돼, 하나님도 다 사정 아셔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현실이 어렵기에 우리가 그에 따라 변경시키고 있다는 것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왜 모르시겠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 그대로가 아니라, 현실에 각색을 하는 믿음에는 성경 그대로 역사는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꾸미지 말고, 각색하지 말고, 변경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일관되게, 진실하게, 믿는 거짓 없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부모와 자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5.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조상으로부터 신앙을 물려 받은 디모데의 인품은 청결한 양심. 어떤 자리에서도 더렵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약간의 손해가 되더라도 베풂으로 훗날 기억되는 양심입니다. 그가 예수 믿는 이였지라는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양심입니다. 일반 양심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양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품 청결한 양심이 되게 하옵소서. 

② 디모데의 성정은 눈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에 대한 눈물입니다. 바울의 눈물이고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또한 디모데의 어머니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울 수 있게 하옵소서. 내가 먼저 영혼을 위해 울 수 있게 하옵소서. 

③ 디모데의 신앙은 거짓없는 믿음입니다. 현실을 들어 꾸미는 각색이 습관되지 않게 하옵소서. 말씀 그대로 아멘하게 하옵소서. 부모로서 성경으로 자녀를 양육하게 하옵소서. 자녀로서 성경으로 부모의 훈계를 순종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