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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말하는 사람"(호 3:1-5) 이재현목사(23.07.23)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7. 24. 02:00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

 

하나님말씀 : 호세아 3:1-5

 

 

1. 다음 원하지 않은 사람()을 맡기시는 하나님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호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하던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B.C.793-753 치하에서 번성하였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는 빈곤하고 혼탁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호세아 가정이나 삶이라도 평탄하여야 하는데 음란한 고멜을 아내를 맞이해야 했고, 누구 자녀인지도 모르는 사생아를 키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1:2). 어떤 경우 원하지 않은 사람이나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감동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Heart to Heart’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면 근심이 될 것이 될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고, 세상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하였습니다(고후7:10).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진 일이 근심스러운 것이라도. 정말 맡고 싶지 않은 사람 또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맡게 되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다음 죄인을 찾아가시는 하나님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간음한 이스라엘을 경고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호세아에게 육적으로 간음한 여인을 아내로 취할 것을 명했습니다. 호세아는 수많은 비웃음과 멸시를 감내 해며 감당해야 했습니다. 호세아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돌아보면 고멜은 어디론가 떠나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되었습니다(3:1). 집을 나기를 몇 번, 돌아온 고멜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음란한 자식을 배어 돌아오게 됩니다(1:2,2:4). 이러한 행위를 반복 할 때마다 호세아는 고멜 돌보기에 정성을 다합니다.

계속되는 음행으로 나중에는 돈에 팔려 다니는 노예로 전락한 고멜을 호세아는 당시 노예 한 사람 값에 해당하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포주에게 주고 사 왔습니다(3:2.참고/21:32;27:4). 30 세겔이 없어 절반은 곡식으로 지급했다는 것은 먹고살 것도 여의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하다가 노예로 전락한 아내를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요? 나아가 호세아는 고멜에게 조용히 몸과 마음을 정리하라며, ‘많은 날이라고 표현된 시간을 넉넉히 주고, 그 기간에는 자신도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3:3). 돈으로 사 왔기에 하인처럼 부릴 수도 있지만, 최상의 인격적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었지만, 율법을 넘어서 아내를 맞이한 것입니다(참고/24:1-4;3:1)

죄인을 찾아가시는 하나님입니다. 고멜을 통해 이스라엘을 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을 찾아가십니다.

3.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은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한 부끄러운 경력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지금 사는 남자와는 정식 혼인도 하지 못 한 채 건달 같은 자와 동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십 가구에 불과한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그 여인이 받은 수모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 하나 찾아갈 사람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했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여인들이 오지 않는 뜨거운 대낮에 우물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그 시간 물을 길으러 오실 것을 아시고,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한낮의 시간 유대에서 사마리아까지 비지땀을 흘리시며 걸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다 보면 독특한 개성을 가진 분들로 놀라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것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인 경우도 있습니다. 갖가지 문제들을 가득 안고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실 하루가 영적 전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로 인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사랑으로 돌보아 주며, 말씀을 가르쳐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우리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난 성격의 소유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 인격적 성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마치 회복 중인 중환자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뎌야 합니다.

수가성 여인을 만나기 위해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서 걸음을 재촉하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찾아간 사람을 우리도 찾아가야 합니다. 나 자신도 더러운데도 불구하고 내 모습 이대로 만나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는데 그의 제자 된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음란한 고멜을 통해 우상에 빠진 이스라엘을 보게 하시고, 그런데도 찾아가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과 내가 찾는 사람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죄인이라도 찾아갔다면 나도 찾아가야 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찾아가라고 한 고멜을 찾아가 대가를 주면서까지 찾아 왔습니다.

 

 

 

 

 

4. 다음 배반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라시는 하나님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실천할 선지자로 호세아를 세웠는데,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아픔과 사랑을 아내 고멜을 통해 절감하게 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 들에 대한 응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있습니까? 고난 앞에서 상처받는 것은 인간이지만, 성도는 그 고난을 없애시고 회복을 시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고멜이 사생아를 낳고 돈에 팔려 다니면서까지, 잊지 못한 사랑하는 자로 기록된 정부’情夫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2:5). 물질적인 풍요로도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2:7). 부푼을 기대를 갖고 찾아왔지만 배신만 있을 뿐입니다.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이 되고,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요. 나중에는 아무런 방어를 할 수 없는 적들의 희생물이 되고,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며, 결국 목말라 죽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2:3).

이제 후회하여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해보지만, 남편과 자녀를 버리고 떠난 길을 뒤 돌아보면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2:6-7). 가정으로 돌아갈 그 길을 찾을 수도, 갈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정부에 빠졌던 고멜은 온몸과 정신적 영적으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멜을 호세아는 찾아간 것을 넘어 사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념을 넘어서고, 법과 규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크기로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법보다 강합니다. 노예로까지 전락한 고멜을 사온 호세아를 통하여 사랑은 배반한 자까지 찾아 나선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헌신하여 잃은 자들을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하였습니다. ‘배반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라시는 하나님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배반자까지 사랑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배반자까지 사랑에 응답하는 성도가 데려면 어떻 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다음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성도의 과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깨닫게 될 만큼 응답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베풀어주신 사랑을 깨닫지 아니하면, 그 사랑을 다 알 수도 없고, 그 사랑에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사랑을 받은 백성이었음에도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1:2). 그들의 생각이 이러한데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서도 많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할 사람이 감사 대신 불평하게 됩니다. 응답이 요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허락하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 본질적인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리고 나면, 한순간 그가 베풀어주신 일상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감사한다고 하여도, 곧 다시 원망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인 은혜와 사랑 이것을 자신이 받은 사랑으로 깨닫게 될 때, 그 분량만큼 응답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자. 자녀들은 끝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만 자기가 자식을 낳아보기까지는 그 사랑을 다 깨닫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만이 받은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눈을 밝히사 깨닫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 말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면 시각이 좁아집니다. 시각이 좁아진다는 말은 영적인 일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적인 일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계획 자기 생각 자신의 좋은 것으로 울타리를 쳐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욕심이고 이기주의며 곧 죕니다.

주일예배에 오신 자체가 노력입니다. 목사의 설교가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듣고 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비정상입니다. 그 비정상이라는 말은 신앙의 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들은 허공에 대고 떠든 것 같이 실성해 보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매어 달려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자(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 배반자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자’, ‘배반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참고/요일4:20).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부된 아내를 데려다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배반자인 우리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반자에게 입을 열어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형제를 사랑합니까? 우리의 형제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전에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달아난 종 오네시모가 회심을 하고, 나의 동역자가 되었으니,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맞이할 때,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하였습니다(1;16). 이웃을 사랑합니까?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이웃이 원수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5:44-47). 그 원수에 배반자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배반자에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는 성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원하지 않은 사람()을 맡기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 근심스러운 것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짐을 보게 하옵소서.

죄인을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나중에는 팔려가기까지 한 고멜을 사서 데려오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수가 성 여인을 비지땀을 홀리시며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과 내가 찾는 사람이 다르지 않게 하옵소서. 대가까지 주고 찾아오라면 찾는 순종을 주옵소서.

③하나님을 떠난 배반자인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기 위한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크기만큼 응답한다는 사실을 알고, 본질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감사하게 하옵소서.

④하나님을 떠난 배반자인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기 위한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항상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 자리에서 예배하는 것, 필사적으로 기도한 것, 이 모든 것이 노력입니다. 끝까지 이 신앙의 경주를 계속하게 하옵소서.

⑤하나님을 떠난 배반자인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는 세 번째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자, 배반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형제가 피해자까지요. 이웃이 원수까지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배반자에게 마음으로만 아니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 고백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