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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요 13:34-35) 이재현목사(23.07.09)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7. 9. 16:59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하나님말씀 : 요한복음 13:34-35

 

 

1. 다음 구약에 기록된 두 가지 사랑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구약에 나타난 말씀을 크게 두 가지로 묶어 말한다면 첫 번째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사랑하라입니다(6:4-5). 예수님께서도 여러번 강조하여 인생의 첫 번째 하여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22:37-38;12:2,30). 두 번째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였음을 기억하고 압제, 학대. 해롭게 하지말여,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22:21-24;19:9-10,18;16:11.14). 예수님께서도 강도 만난 유대인들을 도와 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통해 이와 같이 하라명하시며 이웃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10:37). 이렇게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지킬 것을 명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도 이 두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20:1-17).

 

 

 

 

 

2. 다음 신약에 더해진 서로 사랑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행하여야 할 한 가지의 사랑이 더 있는데 이것을 행하지, 아니하면, 사실상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행하는 자라고 말할 수 없으며, 더 엄밀히 말하면 제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let us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은 이웃 사랑과 구별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중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고별 담화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13:34). 이 말씀을 가룟 유다가 스승을 팔기 위해 나간 후에 하셨습니다(13:31). 서로 사랑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한 명령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대중들에에게 구약의 율법에서도, 예수님께서도 많이 하셨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마지막까지 남은 11명 사도들에 명하셨다는 것에 대하여, 주목할 말씀입니다. 교회 공동체 우리를 향한 말씀인 것입니다.

 

 

 

 

 

3. 다음 서로 사랑을 역설力說하신 예수님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니다(13:35). 이를 행하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유대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각종 핍박을 감수하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15:20). 관리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있었지만, ‘출교자신들의 지위와 생업과 안정을 잃을까 봐 두려워 드러내어 말하지 못했습니다(12:36-43). 유대 사회에서 추방은 세상의 이권과 유익을 포기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직접 죽음의 위협을 받아야 했습니다(7:1,25,8:57-59).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이름 때문에 미움과 핍박과 죽음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1:12,16).

이러한 현실에서 믿는 사람들끼리 한 공동체를 만들어서 모여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생명과 같이 여긴 자들의 모임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 그것은 목숨을 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힘입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습니다(4:44-45). 핍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직장과 장사를 할 수 없었던 성도들을 위해 자기 물건을 교회공동체에 드림으로써, 서로 통용하여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성도들의 사회적인 상실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유무상통有無相通, 서로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서로 사랑 안에서 행할 수 있었 것이고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15:9). 그러므로 서로 사랑은 예수의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요일4:10.참고/27:33;15:22;19:17).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일4:10).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무조건無條件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싳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일4:10).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주신 사랑입니다. 전적으로 남을 위한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사’(요일4:10). 이것은 최대의 희생을 치렀다는 말입니다. ‘희생적’犧牲的인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전부를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따라갈 수 없는 무조건적인 이타적인 희생적인 사랑,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의 행위는 한 인간의 고상한 인격의 모습은 될 수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것을 혼동하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참 사랑은 그 자체가 하나님에게로 말미암은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에 거한 자만이 진정한 사랑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입니다.

 

 

 

 

 

4. 다음 하나님을 아는자, 서로 사랑하는 자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까지 말씀합니다(요일4:7-10). 요한복음에 기록된 서로 사랑 하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과 일맥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심각히 생각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참고/3:9,7:50,19:3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온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와 초대교회 때 성도들은 핍박과 위험에도 서로 사랑으로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서로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세상의 사람들을 명확히 구분 시켜 주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확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9:30).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기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완전한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가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명심하여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 당시는 유대인들과 제자들 오늘날에는 세상과 제자를 구별하는 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13:35).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과 그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제직이 되고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신앙의 훈련을 받는 것 무엇 때문이에요 구원받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4). ‘나의 명한 것은 곧 서로 사랑 하라입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뚜렷한 특색이 있는데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만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사명 중 하나는 디아스포라적 기능’mission of diaspora(διασπορά)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변화시키는 것입니다(5:13-26,10:16;9:50;10:3,14:34).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교회의 또 다른 사명은 에클레시아적 기능’Mission of Ecclesia(ἐκκλησία)입니다(18:19;3:2;1:22-23;2:12). 그 뜻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부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세상의 삶과 다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확실한 기준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상대를 바꾸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서 기관과 소그룹 그리고 여러 모임들이 이러한 관계의 형성은 되지 못한 체 다른 일들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실천해 가고 있다고 한다고 생각한다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가 열려 있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외형의 모습은 어떠할지 모르나 안으로 서로 용서하고 감싸주는 모습이 부족함으로 바로 여기에 우리가 힘을 쏟아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일 때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사이가 좋고, 항상 웃고, 무슨 일만 일어나면 내일 같이 찾아가고, 친하게 교제를 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일까 부러움과 기대의 눈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복음 생명을 함께한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다음 서로 사랑의 위력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시오.

서로 사랑의 전형적인 모습을 초대교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2:42). 유무상통하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2:43-47). 서로 사랑의 실행으로 예수님의 새 계명을 그대로 실천한 곳입니다.

이렇게 감당해야 할 리더가 필요합니다. 집사 등 제직들이 서로 사랑하라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13:5,15). 사도 바울도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5:13) ‘서로 용납하고’(4:2) ‘서로 돌아보아 사라과 선행을 격려’(10:24)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예수 믿고 난 후 두 번째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성도의 가장 중심적인 삶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분열과 상처와 혼란을 조장하는 사람이 헌신과 봉사 활동에 열심이라고 해서,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하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들 분열과 상처와 혼란을 우리 안에서 과감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매년 교회 슬로건 설교를 새해 첫 주와 6개월 후에 한번 더 합니다. 2023년 청아비전교회 슬로건은 서로사랑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깨어진 자들이 찾아와 쉼을 얻고 위로를 얻으는 곳입니다. 사랑을 전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을 전하는 성도란 오늘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주일 예배에 나와 계신 여러분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성숙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과 많은 시간을 뭇 영혼들에게 쏟아 붇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좇아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요. 예수님이 가장 편하게 대하는 참 친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는 사랑이 없었나요. 그러나 이전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고 온전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이타적 희생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서로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여, 우리 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행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예수님은 가룟 유다도 떠난 11명의 제자들을 향해 새 계명이라고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은 교회 공동체의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의 기원은 십자자의 무조건 적이고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 완전한 사랑으로 심령을 채우고 행할 수 있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② 예수님 당시와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을 믿으면 사회에서 출교 당하고 박해와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직장과 장사 생업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안에서 유무상통으로 상실감을 갖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 소외와 열등과 안식이 필요한 분들을 서로 사랑으로 세워줄 수 있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③ 예수님은 세상도 행하는 이웃 사랑만 아니라 구별되는 서로 사랑으로 세상도 인정하는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볼 때 무엇 때문에 저렇게 사이가 좋고, 항상 웃고, 무슨 일만 일어나면 내일 같이 찾아가고, 친하게 교제를 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일까 부러움과 기대의 눈으로 보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