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주일 설교

"추수에 감춰진 비밀"(마 3:12, 3:24-30) 이재현목사(23.09.03)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3. 9. 3. 18:38

추수에 감춰진 비밀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3:12,13:2430 2023.09.03. 主日禮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참고/3:17)

 

And His winnowing fork is in His hand, and He will thoroughly clear His threshing floor and He will gather His wheat into the barn, but He will burn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Matthew 3:12)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리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2430)

 

But while men were sleeping his enemy came and sowed tares also among the wheat and went away(Matthew 13:25)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때는 순교하기 5, 6년 전쯤으로, 이미 60대의 나이에 접어든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30여 년 동안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혀서, 기독교가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되도록 자리매김하는 데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힘껏 달려가고 있다라고 합니다(3:13-14).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된 푯대를 향한 한 가지 일이 인생의 목표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처럼 굶주리고, 매 맞고, 멸시를 받는 것을 자청했고, 살등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했습니다(참고/1:20,3:10-11).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목표는 피니스’finis인데, 종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진짜 목표는 마지막에 가서 후회하지 않는 목표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It is finished”,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인생 목표를 바르게 정하고 달려왔다는 증거입니다(19:30).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참고/고후5:10). 목표를 정했다면 마지막에 가서 큰 소리로 찬양할 수 있는 목표여야지, 중간에 사라지고 마는 목표를 가지고는 인생을 걸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세운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난 세 차레의 전도여행으로 쇠잔하여지고 몸에는 여전히 괴롭히는 가시가 남아 있었습니다(참고/고후12:7). 그런데도 육상선수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듯이 인생을 살겠다.”라고 토해낸 말을 우리는 결코 가볍게 들어선 안 됩니다. 주저앉을 만도 한 처지인데 끝까지 달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찾았던 것입니다. 시간만 나면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성도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 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앉혀 놓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은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같은 것입니다(40:31). 신앙생활의 목표가 예수님이라면, 달려가야 합니다. 올라가야 합니다. 안일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들을 다 극복하고, 큰 목표를 향해 주야로 마음을 집중해서 달려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생활, 온전한 십의일조와 헌금생활, 적극적 복음전도와 증거생활, 분명한 사명의식과 헌신생활, 간절한 재림신앙과 신부생활. 청아비전교회 5大 생활을 놓고 전심을 다 하는 경주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분명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듯 이런 일들을 놓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달려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자기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세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첫째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3:12-13). 바울은 이미 어느 경지까지 올라간 사람입니다(참고/4:6,16). 그런데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신앙이 얼마나 성숙했던지, 교회에서 인정받았던지,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든지 간에 현재에 안주하면 적당히 타협하거나, 안일함에 빠져 달음질을 못합니다. 둘째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 과거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과거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딤전1:13).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돌아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다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과거와 결별해야 합니다. 과거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 봉사를 열심히 했다. 헌금을 힘껏 했다. 그리고 실패, 상처, 원한 등도 잊어야 합니다. 그러한 과거는 현재를 무력화시키고, 미래로 달려가는 일을 방해합니다. 셋째 미래에 기대하지 말라. 세상의 미래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믿을 수가 없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말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이 불신의 장벽을 높이 쌓아가며, 내부적으로는 모든 것이 붕괴하여 가고 있습니다. 밝은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답답한 환경뿐, 한 자락 희망을 걸만한 것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상은 좋아집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미래에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4). 영원한 나라에 기대입니다. 현세의 미래 기대를 버리고, 내세의 기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 좋은 부부가 선교사로 헌신하고, 훈련을 받던 중 아내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지울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 미국 탈봇신학교 실천학부 교수인 닐 앤더슨’Neil T. Anderson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은 대화를 이어가던 중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평생 나는 성폭행 희생자.’라고 생각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그것을 아예 잊어버리고 나는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고백하면서 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래야만 당신은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삶의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8:35-39).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는 우리를 누가 넘어뜨립니까? 누가 주저앉힙니까? 누가 포기하게 만듭니까? 푯대만 분명하다면, 그리고 달려가는 일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질 세력이나 권세나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이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와 이스라엘의 가라지

제가 어릴 때 자랐던 고향의 주된 생업은 여느 시골들과 마찬가지로 농업이었습니다. 저의 집은 그렇게 여유 있는 가정이 아니어서 부모님이 도지賭地, sharecrop land를 받아 경작했습니다. 1년에 80kg 쌀가마니로 10 가마니를 소출하게 되면, 그중 절반 혹은 64로 지주와 나눕니다. 당시 논이 있던 곳이 집에서 10리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리어카를 끌고 집과 논을 오가며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참 힘들었을 때도 많았었죠! 일도 어려웠지만, 농번기가 되면 새벽밥을 먹고 6시쯤 집을 떠나서 새참에 점심에 또 참에 막걸리에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저녁까지 얼마나 많이들 드시는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을 10리 길을 오가야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해되는 것이 그때는 순 밥심으로 술 힘으로, 말 그대로 뼛골 빠지는 고된 농사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드실 수밖에 없었지요. 또 잘 대접하지 않으면 일해 주는 분들이 다음에 와주지 않았죠.

 

그때 막걸리 하나 심부름하려 해도 얼마나 번거로운 수고 해야 했는지 아세요. 집 근처에 송방이 있어 사 오면 되었지만 비싸지 않습니까? 송방이 무엇인지 모르세요. 충남에서는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를 송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을 아끼기 위해 1시간여 읍내에 있는 양조장에 갑니다. 큰 물통 두 개에 막걸리를 담고 양손에 들고는 먼저 집에 옵니다. 그리고 먹기 좋게 황색의 양철로 된 큰 주전자에 옮겨 담고는 10리 떨어진 논까지 걸어가는 거예요. 물론 걷다가 지친 저도 갈증 해갈과 원기 회복을 위해 주전자에 입을 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왜 이렇게 양이 적냐!” 물으시면 딱 좋은 답변이 있죠! “오다가 넘어졌어요.”

 

우리의 주식인 쌀을 얻기 위해서는 3, 4월에 논을 갈고 볍씨를 뿌려 못자리를 만들고, 5, 6월에 모내기하고 김을 매주고, 10월 추수까지, 무려 여든여덟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수고로 우리가 먹고살았고, 자녀들 대학 보내고 뒷바라지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 대국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벼농사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피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피가 무엇인지 아세요. 피도 작물은 작물이지만 쓸모가 없어요. 씨앗은 깨알만 해서 먹을 수도 없어 농부에게는 아주 성가신 존재입니다. 자랄 때 보면 벼보다도 더 멋있어요. 키도 크고 가지도 잘 뻗어 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곡식으로 쓸 수가 없어 꼭 뽑아야 하는데 자라는 과정에서는 벼인지 피 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벼와 다른 점은 중간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데 그것으로는 구별하기가 어려워요. 애들한테 피 뽑아라시켰다간 태반은 벼를 뽑아 놓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이 거의 추수할 시점에 가서 뽑는 것입니다. 그때는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피와 유사한 존재가 이스라엘에서는 가라지입니다(13:25). ‘가라지는 밀밭에서 자라는 독보리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구토와 현기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독성이 아주 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라지도 피와 같이 자랄 때는 밀과 흡사해서 구별하기가 어려워요.

 

그렇기에 종들이 이것을 뽑아버릴 것을 건의하자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29-30). 그런데 가라지가 피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가라지는 농부가 잘 때 원수들이 곡식 가운데 몰래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3:25). 좋은 씨를 뿌린 밭의 농사를 마치기 위해 악한 자가 고의로 뿌린 것입니다. 곡식을 가라지가 덮어버리기를 바라고 또 가라지를 곡식인 줄 알고 추수하게 하여, 그 열매의 독으로 해함 받기를 바라는 것이 원수의 악한 마음인 것입니다.

 

종말의 비유

 

예수님은 곡식과 가라지비유천국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십니다(13:24). 그리고 무리에게 한 비유를 제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줍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이요󰊕󰊛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 꾼은 천사들이니󰊖󰊒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3643)

예수님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자신이요(13:37). ‘밭은 세상이다고 하셨습니다(13:38). 그런데 이 세상은 천국의 아들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 ‘악한자의 아들들도 산다고 말씀합니다(13:38). 그러므로 좋은 씨’ ‘곡식천국하나님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것이고요. ‘가라지악한자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좋은 씨로 자라 열매 맺은 곡식천국’ ‘하나님의 아들들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3:39).

주인의 명에 의해 가라지는 곡식과 함께 잘 자라는 것 같지만, 이 둘이 갈리는 것은 추수 때입니다(13:39). 이제 주인은 종들에게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단을 묶고 곡식은 곡식대로 단을 묶으라고 명합니다(13:30). 그리고 가라지는 가차 없이 불살라 버리고 곡식은 곳간에 들이게 됩니다(13:30). 그런데 이 비유의 해석을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13:39-40).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것은 세상 끝 종말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믿으세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요. 종말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개인의 종말입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되어있어요. 이것이 개인의 종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류의 종말이라고도 말하는 지구의 종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으세요. 본문은 개인의 종말이 아니라, 지구의 종말에 있을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때 좋은 씨’, ‘곡식내 곳간천국에 들어가지만 가라지풀무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풀무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까?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까?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종말에 관해서 말씀을 전파하면, 천박한 목회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좋은 이야기 고상한 말을 전하면, 지적인 목회자로 여깁니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추수 때 또 다른 추수

 

상도 여러분! 그런데요. 그리고 여기서 더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추수 때는 곡식가라지만을 갈라내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 곡식을 묶은 단은 어떻게 해요. 타작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한 탈곡기는 롤 형태의 드라이용 빗 있죠. 그와 비슷한 모양인데요. 삼각의 굵은 철들이 수십 개가 원형에 둘려 있어서, 코드를 꼽아 전기에 연결하면 탈곡기가 돌아갑니다. 그곳에 곡식 단을 넣으면 곡식만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곡식 단을 잘못 잡으면 손까지 따라 들어가 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아진 곡식도 탈곡용 대형 선풍기를 틀고 다시 한번 까불러요. 그러면 곡식 중에도 알곡은 아래로 모이고 쭉정이는 다 날아가게 됩니다. 곡식도 다 같은 곡식이 아니라 알곡이 있고 쭉정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합독한 첫 번째 본문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 많은데요. 그중의 하나가 성경 번역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 그리고 예전에 사용했던 개역 한글을 미흡한 것으로 보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참 잘 된 번역입니다. 한글 곡식알곡은 영어에 ‘whea’t, ‘로 헬라어 시투σιτον로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영어와 헬라어에는 곡식과 알곡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영어로 잡초를 뜻하는 ‘weed’‘tares’, 헬라어로 독보리 지자니온ζιζνιον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쭉정이는 영어로 겉껍질, 왕겨를 뜻하는 ‘chaff’로 헬라어로는 쓸모없는 곡식을 뜻하는 아퀴론’ἄΧρον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곡식과 가라지그리고 알곡과 쭉정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추수 때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고, 곡식은 타작후에 알곡과 쭉정이로 나뉘는 것입니다.

 

만약 개역 개정에서 곡식과 가라지, 곡식과 쭉정이라고 번역했으면, 두 가지를 한 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곡식과 가라지그리고 알곡과 쭉정이로 정확히 구분 성경의 말하고 있는 본뜻을 너무나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번역하시는 분이 농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고, 성령께서 그것을 깨닫게 해서 번역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가라지와 쭉정이는 그 씨부터 다르다

 

저는 논농사뿐 아니라 밭농사도 많이 지었습니다. 고구마, 감자, 수수, , 콩 등을 재배했었어요. 고구마와 감자는 캐내면 되고 수수는 뽑아내고 깨는 털면 되지만, 콩은 추수한 다음 단으로 묶어 집에까지 리어카로 싣고 옵니다. 집 마당이나 길가에 멍석이나 대형을 포장을 깝니다. 그리고 그 위에 콩 단을 쌓아 놓고 도리께로 사정없이 두들겨 타작합니다. 이와 같은 탈곡 방법을 본문에 타작마당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3:12). 이스라엘은 가리지 단을 먼저 거두어 불에 태운 다음 밀 단을 탈곡하기 위해 땅을 평평하게 골라요. 그것을 타작마당이라고 합니다. 이때 손에 키를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2). 키는 곡식 따위를 담고 까불러서 쭉정이 ·검부러기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구를 말합니다. 여기 연세가 있으신 성도님들은 많이 해보셨을 거예요. 키질하면 할수록 알곡은 안쪽으로 쭉정이는 바깥쪽으로 갈려지고 나중에 쭉정이는 훅 털어 날려버리고 모아서 태워버립니다. 삽을 이용하기도 하는데요. 곡식을 머리 위까지 힘껏 퍼 올리면, 알곡은 그대로 떨어지고 쭉정이는 바람에 날아갑니다. 깨같이 열매가 작은 것은 큰 바구니를 쓰기도 합니다. 곡식을 담아 머리 위에서 바닥으로 쏟아서 알곡과 가라지를 골라내기도 합니다. 바구니던 삽으로 하건 키질로 하건 이것은 이미 거두어들인 곡식 중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작업이 타작입니다. 추수 때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고 끝이 아니라, 타작 때 곡식 중에서도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작업까지 해야 마치는 것입니다. 본문에 타작마당을 정하게하사는 다른 번역본에는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고’, ‘타작마당에서 모든 곡식을 키질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고등으로 되어있습니다. 엄밀히 구분하여 말한다면 추수는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는 것이고 타작은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수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나눈 다음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입니다(참고/“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13:3)).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라지는 아예 시작 자체가 곡식과 다른 씨지만, 쭉정이는 알곡과 같은 좋은 씨라는 사실입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성도와 불신자의 비유라면 알곡과 쭉정이는 성도 성도 간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가라지가 곡식인지, 쭉정이가 알곡인지 몰라요. 언제 가봐야 해요. ‘가라지는 분명히 추수 때’(13:30)라고 말씀했고, ‘쭉정이타작마당’(3:12)이라는 말씀을 통해 둘 다 추수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은 종말을 일컫습니다. 종말이 되면 곡식과 가라지 성도와 불신자는 물론, 알곡과 쭉정이 성도와 성도도 확연하게 나뉜다는 것입니다.

 

선민과 성도

 

세례요한의 외침입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한 자로서 본문에 메시아 예수님이 오시면 알곡과 쭉정이를 나뉠 것이라고 했습니다(3:12). 이 말씀은 예수님이 2,000여 년 전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당시에 있을 일을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로 살아왔습니다. 자신들이 곡식이라면 이방인은 가라지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곡식인 유대인들 가운데는 예수가 메시아를 받아들인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도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는데 이렇게 완전히 나뉜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같은 밭에 뿌린 똑같은 씨인데도 알곡과 쭉정이로 나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종말론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추수는 세상 끝이라고,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13:40). 그렇다면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 선 것도, 세상 끝 종말입니다(3:12). 예수님 당시의 일을 세상 끝 종말로 적용하여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2,000여 년 전 이 세상에 오신 그 순간이 바로 말세입니다. 지금은 그 말세 중의 말세인 말세지말이고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사는 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마지막 시대입니다. 정말 지구의 종말이 임박한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가라지 불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정말 알곡 성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들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파종을 넘어섰어요. 여러분 인정하시죠. 못자리도 넘어섰어요. 여러분 인정하세요. 모내기하고 이삭이 맺히고 영글어 벼가 허리를 숙였어요. 이 시점도 지났어요. 예수님께서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고 하셨습니다(4:35). 우리도 마지막 때가 가까웠다고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 있지 않은가?”가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종말의 때에 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이, 추수 꾼이 벼 허리를 잡고 낫을 벼 끝에 갖다 댄 시점이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3:10).

 

파종 때라면, 싹이 나서 자랄 때라면, 이삭이 막 피어났을 때라면, 상관없지만 추수 때, 타작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합니다. 두들깁니다. 때리는 것입니다. 종말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성도의 신앙을 더욱 세차게 흔든다는 말입니다.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악한 원수 마귀는 알곡 성도 한 명이라도, 쭉정이로 떨어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올무에 걸려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입니다.

 

마귀가 흔드는 대배교Great Apostasy

 

종말의 시대 마귀가 성도를 흔드는 방법 중 가장 경각해야 할 것이 배교입니다. 종말에 있을 일들 중 가장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후2:3). 배교라는 것은 안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이 떠나는 것을 배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배교자들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는 1-2% 정도의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는 소수의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들과는 달리 80%는 유대교를 신봉합니다. 2,000여 년 전부터 오늘까지 배교자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버린 예수를 구원자로 영접한 것이 이방인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교회시대, 성령시대, 은혜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전되는 시기가 옵니다.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인 우리들은 구원의 충만한 수가 차면 꺾이게 됩니다(11:17,21,25). 저와 여러분 이방인이 구원받는 교회시대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시한이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시대요 성령시대 은혜시대이기에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지만, 이 시기는 끝이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말씀했습니다(고후 6:2). ‘지금이란 말은 이후에는 끝이 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 돌감람나무는 잘라버려 지고, 원래 잘렸던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 가지가 붙여집니다(11:17-26). 바로 종말의 시대에 있을 일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서서히 민족적 회심 운동이 일어나고, 자신들이 못 박은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인 것을 깨닫게 되지만, 반대로 교회시대는 끝나가고 이방인인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들에는 배교가 일어나게 됩니다. 배교도 그냥 배교가 아니라 대배교Great Apostasy입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는 이 대배교 세력들을 말합니다(17:1).

 

지금 UN에는 각 국가의 종교 문제 때문에 통제할 수 없자, 자구책으로 산하에 세계단일종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도 종교일치국이 있습니다. 해마다 각 종교 대표들을 불러 함께 미사를 드립니다. 교회라는 명칭만 있을 뿐 우리의 신앙과 다른 WCC 세계교회협의회, NCCK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에도 모든 종교를 통합 목표로 하는 위원회가 있습니다. 미국에는 갯니교와 천주교, 불교, 유대교, 흰두교, 유교, 무슬림 증 주요 6대 종교를 상징하는 6날개를 중앙 홀에 설치한 통합종교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문선명 사후 그의 아내 한학자가 이끄는 통일교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펼치고 있는 운동 중의 하나가 초종교ㆍ초국가 평화일치 운동입니다. 신○지 이○희는 하늘○화세○○화○복 대표라고 떠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종교를 잡아야 국가를 잡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로마 가톨릭이 종교 일치를 주장하고,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 통합을 추친하고, 국가연합인 유엔에 세계단일종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교와 이단과 무속까지 모든 종교는 하나다라는 운동을, 한국교회 중 일부이지만 벌이고 있는 이들이 NCCK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WCC 세계교회협의회입니다. 10년 전인 2013년 제10WCC 총회 부산 유치로 인해 한국교회는 혼란과 분열을 낳았습니다. 그 이유는 WCC는 무늬만 기독교일 뿐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독교 교리인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믿지 않습니다. 종교 다원주의·혼합 주의적, 심지어 신성모독적 표현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들은 북한산에 등정하는 길은 여러 곳이 있지만, 결국에 오르다 보면 북한산에서 함께 만나는 것처럼, 종교는 달라도 결국에는 한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올해 202363<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1918-2018은 로마 가톨릭, WCC 수용, 불신자 천국, 미전도종족 타 종교 구원 발언과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입니다. 집회 강사인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Franklin Graham,1952-은 영적 지도자이기보다, 정치적 발언 등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이후로 제가 실명을 거론하게 되는데요. 저는 그 분들의 인격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하시는 일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 대회에 50년 전 빌리 그래함의 통역자였던 김장환 목사, 대표대회장 오정현 목사, 준비위원장 박동찬 목사, 통역을 맡은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그 외 이영훈 김삼환 소강석 장종현 목사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들 가운데는 미국 복음주의연맹 위원장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개회사를 하면서 큰 명성을 얻었고,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재정의 어려움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설파하는 잘못된 번영신학자로, 통일교 대회에서 초종교 합수식 퍼포먼스에 참석한 폴라 화이트’Paula M. White-Cain,1966- 목사를 교회창립기념기도회 강사로 초청하고, 한 달 전 통일교 한반도 평화 서밋에 참석 연설한 마이크 펜스’Mike Pence,1959-를 포럼과 간증자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들의 행적을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요?

 

빌리 그래함이 종교다원주의 대배교 행보를 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이름을 타이틀로 집회 50주년 기념대회에, 초대형교회들이 많은 인원 동원과 자금 투입으로 외형적으로 성공한 집회로 보입니다. 상기 한 분의 자녀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했는데 방배동에 있는 건물에 사역자 12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설립감사예배에 상기에 열거된 목사님들 대부분이 축사 등 순서를 맡았습니다. 또 그 전날에는 한 개신교 방송에 출연 개척 소감을 밝혔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개척 스토리지만 그렇게 할 있으니 한다고 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그러나 천주교 신자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불교도인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축사했습니다. 그들이 광역단체장이고 여당의 중진이기 때문인가요? 언제부터 교회 설립에 이교에 속한 분들이 와서, 축사했는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에게 성령의 능력을 팔라고 하였습니다(8:18-20). 어쩌면 물질 물력과 세력 권력으로 영적인 것까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없지 않나 우려됩니다.

 

내년에는 <로잔대회 50주년 제4회 대회>가 한국에서 열립니다. 준비 책임자 이재훈 유기성 이규현 이동원 최성은 목사님 등 참 내로라하는 분들을 봅니다. 1974년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John Stott,1921-2011와 빌리 그래함이 만남으로 이슈가 되었던 1회 로잔대회부터 어젠다Agend 가운데 하나는 총체적인 복음입니다. 자칫 이교와 무속과 미신 등 우상을 수용하고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위험성은 가지고 있지 않은지. 변질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시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중보와 말씀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에 주신 지상 명령과 성민의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배교가 될 수 있는 일에 앞장서 감당하는 분 중에는 소수이지만 극히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목사님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크게 성장을 시킨 지도자들입니다. 그렇다고 그분들과 그 교회들이 다 심판받는다그런 극단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하나를 보면 엉터리지만 전체를 보고 나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한 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지난 50여 년 동안 황국주․문선명․유효원․정명석 등이 주장한 피 가름 원리를 설파하고 교육한 인물을 이단이 아니라고 풀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에 너무나도 훌륭한 분들이 책임을 맡고 있으니까 많은 성도가 흔들립니다. 여기에서 돌아서지 않고 더욱 빠져들어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상기하십시오.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 사실 말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이러한 배교 세력에 휩싸이게 됩니다. 조금만 정신을 팔면 넘어갈 수 있는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이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추수 타작 종말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시기입니다.

 

재림을 맞이하는 영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종말인 추수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흔들어 버립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나눈 것만 아니라, 곡식 중에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기 위해 사정없이 타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억울해할 수도 있어요. 왜 하필이면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살아서 알곡이 되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그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재림의 영광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섬긴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1). 그 수많은 성도 가운데 이 생명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아 휴거된 성도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은 놀라운 영광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우리 살아남은 자들생존한 그대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이런 성도들이 있다는 말이에요. 없다는 말이에요.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볼 수 있는 최고의 영광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니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일지는 단언할 수 없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종말이 임박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생존한 상태에서 재림을 맞이한 성도들에게는 또 다른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대표로 아담을 만드시고 통치하게 하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그대로 마쳐진다면 하나님의 속성상 인정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완전하게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여년 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오, 아담의 범죄로 찾아온 인류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모든 죄악을 심판하시고, 아담의 죄로 저주받은 땅에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시고 왕으로 통치하시어서,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천지창조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1:1,28,2:6,14,17,19;2:44,7:26-26;1:25;1:1-2,14,19,19:30;고전15:24;11:15,16:19,18:2-3,21).

 

이러한 대역사에 참예할 성도들이 바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생존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서게 될 성도들을 준비하기 위해, 마지막 시대에는 탈곡 작업같이 흔들고 두들겨, 즉 대배교로 성도들 가운데도 추려내는 것입니다. 알곡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혹독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큰 영광이 준비된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 시험을 이기고 나아가야 겠습니다. 지난주 설교와 같이 오직 예수,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종말의 징조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종말의 시대인지 추수 때가 가까웠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종말에 대해 예수님은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4:36). 종말, 재림 그날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알려고 해서도 안 돼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5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12:54-58). 우리가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시대적 징조를 통해 알고 예비토록 하신 것입니다. 배교가 종말의 영적 경각이라면, 징조는 종말의 육적 경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에 관하여 난리와 난리 소문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24:6;21:11).

 

202326일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규모 7.7 대지진으로 사망자 최소 59,259. 부상자 최소 129,803. 이재민 약 2,300만 명. 건물 264,000채 이상 파괴. 피해총액 840억 달러 환화로 1111,740억 원입니다. 어제 202391일은 192391일 관동대지진이 있은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규모 9.1에 사망자만 106천 여명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들이 테러와 약탈을 하고, 심지어 우물에 독극물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자경단을 구성 6천 여명의 조선인들을 살해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백년전에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2004년 인도네시아 9.1. 사망자 22만 명. 2010년 아이티 7.0. 사망자 16만 명. 2008년 중국 쓰촨성 8.0. 사망자 87000. 2005년 카슈미르 7.6 사망자 73000. 2004년 스리랑카 9.1 사망자 35000. 2003년 이란 6.6 사망자 31000. 2011년 동일본 9.0 사망자 18500명 등 21세기에 들어 더욱 강력한 대지진이 계속 경신되고 있습니다. 주 재림의 임박을 경종 하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대지진은 인간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음을 보게 하는 외적 빙거인 것입니다. 예전에는 특정 지역에서 전 세계로 그리고 1005020년 간격이 지금은 105년 매년 수개월로 좁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이러한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즉 지진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자진그랬는데 이제는 지진이 정말 지진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위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그 강도가 더 강력해지고 빈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말이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시대적 징조를 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아프리카 동북부 국가 중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는 가뭄으로 2,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심각한 굶주림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소말리아 같은 경우에는 40년 만에 최악이라고 일컬어지는 재앙적인 가뭄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인 740만 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구 1만 명 중 2명 이상이 매일 목숨을 잃는 등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이자, 4위 곡물 수출국입니다. 경작지가 남한 전체 면적의 약 3배에 해당하는 30만㎢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전쟁으로 75000㎢가량을 못 쓰게 되어 경작지 25%가량을 잃었고, 생산량은 20% 감소하고, 수출도 막히면서, 식량 가격이 치솟자m 아프리카·중동의 저소득 국가들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소말리아는 전쟁 전 밀 수입의 90% 이상, 이집트는 80% 이상을 우크라이나·러시아에서 들여왔고, 에티오피아는 내전을 치르면서 수십만 명이 기아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자금 여력이 부족해 남수단 주민 170만 명에 대한 식량 원조를 중단해 버렸습니다. 우크라 러시아 이 두 국가의 전쟁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이 4700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됩니다.

 

시리아는 2005년부터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2010년 밀가루의 가격이 극심하게 솟구치자, 더 버티지 못하고, 촉발된 폭동이 내전으로 확대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망자 60만 명, 부랑인 1100만 명, 난민 550만 명, 내전 발발 직전 2200만 명에 달하던 시리아 인구는 170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시리아 경제는 초토화됐습니다. 피해액을 4000억 달러약446조원로 추산합니다. 자연재해 곡물 소출 감소 식량 가격 상승 폭동 전쟁까지 톱니바퀴처럼 엮여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징조입니다.

 

후진국만이 이런 재해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잘산다는 유럽의 선진국들이 폭염으로 올해 수천여명이 사망했고. 작년에는 48.8 도 폭염으로 61,600명 사망했고, 20년 전 2003년에는 최대 7만 명 이상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 하와이는 산불로 115명이 숨졌고, 실종자가 1,100-1,300명입니다. 10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인명 피해입니다. 캐나다에서는 5월에 시작 현재까지 대형산불이 전역을 휩쓸고 있습니다. 산불이 진행 중인 지역이 무려 1천여 곳으로, 그중 660여 곳이 통제 불능상태입니다. 14만 ㎢를 태웠고, 지난 석 달 동안 총 피해 지역이 1370ha로 그리스 한 국가 면적에 달하고, 대피해 나선 주민만 168천 명에 이릅니다. 중국은 역대급 폭우가 쏟아져 허베이성은 2백만 명 지린성 134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태풍으로 최대 곡창지대인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랴오닝성이 홍수에 잠겨 중국 곡물 생산의 25%를 차지하는 이들 지역의 농경지가 침수되면서 식량안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3년간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694,503,330, 사망자가 6,910,973명입니다. 웬만한 규모의 국가 전체 인구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대책은 무엇입니까? 자연을 보호하자고 합니다. 배기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배출하는 경유차를 수소차 전기차로 바꾸자고 합니다. 미세먼지를 줄이자고 합니다. 플라스틱과 일회용 사용을 금지하고자 합니다. 소고기 등 육식을 줄이자고 합니다. 현재의 기온에서 2도가 오르면 생물 다양성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구의 기온을 상승을 2도 미만으로 잡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환경보호를 하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대책입니다.

 

이러한 자연재해와 전쟁과 전염병과 대형 참사를 보고도 종말의 임박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종말의 준비하는 것보다 다른데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 중에 내일 예수님 오시면 뛸 듯이 기뻐할 성도가 얼마나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직은 아닌 데 조금 더 있다 오세요.”가 태반을 넘을 것입니다. 그 말은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에요. 그것 중에는 나의 육적인 평안과 안락을 위한 것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마음에는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쭉정이로 빠질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는데요. 이것은 깨어 준비한 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맞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그러나 배교와 물질에 돈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다가, 전혀 생각지 못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16:15). 예수님께서는 도둑처럼 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날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준비하지 못한자에게 도적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깨어 자기 옷을 지켜라고 하십니다. 그 뜻은 깨어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으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깨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신앙과 헌신과 예배에 저해되는 일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됩니다.

 

알곡으로 준비될 최적기

 

예수님은 이런 재난들이 있으되 끝은 아니니라라고 하셨습니다(24:6). 종말 7년환난은 아직 아닙니다. 지금 깨어 준비할 최적기에 쭉정이가 되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라는 가라지와 같은 최후를 맞이합니다(13:42). 그러므로 알곡이 될 최적기에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여 속히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의 신원을 갚아주옵소서!”라고 항상 갈망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참고/6:10).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3). 이것은 깨어 준비한 알곡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입니다. 종말의 임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쭉정이가 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알곡이 될 최적기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라고 하셨습니다(24:45).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인가 분별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지금은 곡식이 희어져 낫을 벼 끝에 갔다 댄 때입니다. 곧 있을 추수, 임박한 종말의 때입니다. ‘양식을 나눠줄 자그 시대에 맞는 말씀을 성도들이 먹도록 해야 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의 몫입니다. 바로 종말의 메시지를 오늘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종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24:48).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 빠진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 항상 좋은 것만을 말했던 구약의 길(吉) 선지자들과 같습니다(왕상22:8).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말을 전하는 자들을 흉(凶) 선지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왕상22:8). 그러나 길 선지자들에게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입넣었습니다(왕상24:23).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모욕하고 심지어 뺨을 때리기까지 하였으며 감옥에 가두어 입을 막아 버리는 데도 일조했습니다(왕상22:24,27).

 

이같이 종말의 때에도 평안만을 외치는 악한 종들은 대각성을 촉구하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을 때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5:49). 그러나 이들의 말로는 비참 그 자체입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24:51-52). 본문의 불신자들을 상징하는 가라지들이 떨어진 곳에 똑같이 처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악한 종이라고 칭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지 못한 자,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하지 못한 자 아닙니다. 잠자는 성도들을 깨워 재림을 준비시키지 못한 자들입니다.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13차 부산 총회 후 2014년 교황이 방한 광화문에 100만 인파가 모였습니다. 10년 지난 2023년 천주교와 하나라고 한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 50주년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2027년 로마 가톨릭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세계청년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제 노골화되고 있는 교회 내 쑥물 침투에 맞서,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를 배격하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라고 외칠 수 있는 오직 예수만 유일한 구원자라는 완전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고후6:15).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이 신인 맘몬니즘에 맞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는 확고한 신조로 미혹을 물리쳐야 합니다(6:24). 오히려 재물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 재림을 교리적으로만 고백할 뿐 우리 세대에라는 안일함에 맞서, 초대교인들과 같이 마라나타’,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갈망할 수 있는 분명한 신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고전16:22). 이러한 사실을 증거할 수 있는 목회자 듣고 따를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하신다면 깨어 준비된 알곡 성도로 재림을 맞이하여 휴거되는 영광, 에덴동산이 회복된 나라 예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에서 사는 영광, 이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나라’,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 영원한 나라천국에 입성하는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든 교회 공동체 가족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21:3,4).

 

 

정리

 

우리나라 피와 이스라엘의 가라지

 

우리의 주식인 쌀을 얻기 위해서는 3월에 못자리부터 88번의 손길을 거쳐야 됩니다. 벼 농사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피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이 거의 추수할 시점에 가서 뽑는 것입니다. 그때는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피와 유사한 것이 이스라엘의 가라지입니다(13:25). 밀밭에서 자라는 독보리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구토와 현기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가라지는 밀과 흡사해서 구별하기가 어려워요. 그렇기에 종들이 이것을 뽑아버릴 것을 건의하자 주인이 곡식까지 뽑을 까 염려하여 추수 때까지 두라고 한 것입니다(13:29-30). 가라지는 농부가 잘 때 원수들이 곡식 가운데 몰래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13:25). 좋은 씨를 뿌린 밭의 농사를 마치기 위해 악한 자가 고의로 뿌린 것입니다. 곡식을 가라지가 덮어버리기를 바라고 또 가라지를 곡식인 줄 알고 추수하게 하여, 그 열매의 독으로 해함 받기를 바라는 것이 원수의 사악한 마음인 것입니다.

 

종말의 비유

 

예수님은 곡식과 가라지비유천국에 관해 말씀해주셨습니다(13:24).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 ‘밭은 세상이고, 세상은 천국의 아들들만 아니라, ‘악한자의 아들들도 산다고 말씀합니다(13:37-38). ‘좋은 씨’ ‘곡식천국하나님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것이고요. ‘가라지는 마귀 악한자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13:39). 주인의 명에 의해 둘은 함께 잘 자라지만, 추수 때 나뉩니다(13:39). 주인은 종들에게 가라지와 곡식를 각 각 묶고 가라지는 가차 없이 불살라 버리고 곡식은 곳간에 들이게 됩니다(13:30).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의 해석을 세상 끝종말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13:39-40). 지구의 종말 곡식은 내 곳간천국에 들어가지만 가라지는 풀무 불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추수 때 또 다른 추수 타작. 그런데 추수 때는 곡식과 가라지만을 갈라내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곡식은 타작으로 알곡과 쭉정이로 나뉩니다(3:12). 우리 말 곡식알곡은 영어에 wheat, 밀로 헬라어 시투σιτον로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영어와 헬라어에는 곡식과 알곡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영어로 잡초인 weedtares, 헬라어 독보리인 지자니온ζιζνιον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쭉정이는 영어로 겉껍질, 왕겨를 뜻하는 chaff로 헬라어로는 쓸모없는 곡식을 뜻하는 아퀴론’ἄΧρον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곡식과 가라지그리고 알곡과 쭉정이는 다른 것입니다. 가라지와 쭉정이는 그 씨부터 다르다. 콩 같은 곡물은 추수 후, 도리께로 사정없이 두들겨 타작합니다. 이스라엘은 밀 단을 탈곡하기 위해 땅을 평평하게 골라요. 그것을 타작마당이라고 합니다(3:12). 이때 손에 키를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2). 키질을 해서 타작된 곡식까불리면 알곡과 쭉정이로 가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추수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나눈 다음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입니다(참고/13:3). ‘곡식과 가라지는 성도와 불신자 간의 비유라면, ‘알곡과 쭉정이는 성도 간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가라지식인지, ‘쭉정이알곡인지 몰라요. 언제 가봐야 해요. ‘가라지는 분명히 추수 때’(13:30)라고 말씀했고, ‘쭉정이타작마당’(3:12)이라는 말씀을 통해 둘 다 추수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은 종말을 일컫습니다. 종말이 되면 곡식과 가라지 신자와 불신자는 물론 알곡과 쭉정이 성도와 성도도 확연하게 나뉜다는 것입니다.

 

선민과 성도.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오시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눌 것이라고 했습니다(3:12). 이스라엘에 예수님이 2,000여 년 전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선민 곡식이라 자부했고, 이방인은 가라지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밖았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같은 밭에 뿌린 똑같은 씨 곡식인데도 알곡과 쭉정이로 나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론적으로 추수는 세상 끝이라고 하습니다(13:40). 그렇다면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 선 것도 세상 끝 종말입니다(3:12). 예수님이 이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신 그 순간이 바로 말세입니다. 지금은 그 말세 중의 말세인 말세지말이고,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사는 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종말이 임박한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라지 불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정말 알곡 성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이 어쩌면 이삭이 맺히고 영글어 벼가 허리를 숙이는 시점이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그러나 이르노니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종말의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이, 추수꾼이 벼 끝에 낫을 갖다 댄 시점이 우리의 시대입니다(3:10). 추수 때 타작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합니다. 두들깁니다. 타작은 때리는 것입니다. 종말에 가까울수록 성도를 세차게 흔든다는 말입니다. 원수 마귀가 알곡 성도 한 명이라도, 쭉정이로 떨어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걸려 넘어뜨리려 합니다.

 

마귀가 흔드는 대배교Great Apostasy

 

종말의 시대 마귀가 성도를 흔드는 일 중 가장 경각해야 할 것이 배교입니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살후2:3). 배교라는 것은 안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이 떠나는 것을 배교라고 합니다. 2천 여 년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고 이방인들이 지금까지 믿고 있습니다. 이를 교회시대, 성령시대, 은혜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전 시기가 옵니다.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인 우리들은 구원의 충만한 수가 차면 꺾이게 됩니다(11:17,21,25). 교회시대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시한이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말씀했습니다(고후 6:2). ‘지금이란 말은 이 후에는 끝이 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 돌감람나무는 잘라버려지고, 원래 잘려졌던 유대인을 상징하는 참감람나무 가지가 붙여집니다(11:17-26). 바로 종말의 시대에 있을 일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인 것을 깨닫게 되고, 교회시대는 끝나가고 이방인인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대배교Great Apostasy가 일어납니다(참고/17:1).

 

종교를 잡아야 국가를 잡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교인 로마 가톨릭이 종교 일치를 주장하고,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 통합을 추진하고, 유엔에 세계단일종교회가 생기고, 심지어 이단인 통일교도 초종교 초국가 평화, 신지○지 하늘○화세○평화○복을 떠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교, 이단, 무속과도 손을 잡고, “모든 종교는 하나다라는 운동을, 한국교회 중 일부이지만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인 WCC입니다. 특히 10년 전 인 2013년 제10WCC 총회 부산 유치로 인해 한국교회는 혼란의 양상을 보입니다. WCC는 무늬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 교리인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믿지 않습니다. 종교 다원주의·혼합주의적, 심지어 신성모독적 표현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2363<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래함Billy Graham,1918-2018은 로마 가톨릭과 WCC 수용, 불신자 천국, 미전도종족 타 종교 구원 발언과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입니다. 집회 강사인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Franklin Graham,1952-은 영적 지도자이기보다, 정치적 발언 등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들 가운데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재정의 어려움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설파하는 잘못된 번영신학자로, 통일교 대회에서 초종교 합수식 퍼포먼스에 개신교 대표로 참석한 폴라 화이트’Paula M. White-Cain,1966- 목사를 교회 창립기념기도회 강사로 초청하고, 한 달 전 통일교 한반도 평화 서밋에 참석 연설한 마이크 펜스’Mike Pence,1959-를 포럼과 간증자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들의 행적을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요? 그래함이 종교다원주의, 대배교 행보를 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집회 50주년 기념대회에, 초대형교회들이 많은 인원 동원과 자금 투입으로 외형적으로 성공한 집회로 보입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에게 성령의 능력을 팔라고 하였습니다(8:18-20). 어쩌면 물질과 세력으로 영적인 것까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없지 않나 우려됩니다.

 

이렇게 대배교가 될 수 있는 일에 앞장서 감당하는 분 중에는 소수이지만 극히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목사님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크게 성장을 시킨 지도자들입니다. 그렇다고 그분들과 그 교회들이 다 심판받는다그런 극단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하나를 보면 엉터리지만 전체를 보고 나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이러한 배교 세력에 휩싸이게 됩니다. 조금만 정신을 팔면 넘어갈 수 있는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이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추수 타작 종말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시기입니다.

 

재림을 맞이하는 영광

 

왜 하필이면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살아서 알곡이 되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그 이유는 재림의 영광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섬긴 성도들이 구름같이 많습니다(참고/12:1). ‘우리 살아남은 자들생존한 그대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 성도들이 있다고 하십니다(살전4:16-17). 이것은 성도에게 최고의 영광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그날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단언할 수 없어요. 우리는 종말이 임박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생존한 상태에서 재림을 맞이한 성도들에게는 또 다른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대표로 아담을 만드시고 통치하게 하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그대로 마쳐진다면 하나님의 속성상 인정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완전히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여년 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오, 아담의 범죄로 찾아온 인류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아담의 죄로 저주받은 땅에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시고 왕으로 통치하시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천지창조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1:1,28,2:6,14,17,19;2:44,7:26-26;1:25;1:1-2,14,19,19:30;고전15:24;11:15,16:19,18:2-3,21).

 

이 대역사에 참예할 성도들이 바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생존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될 성도들을 준비하기 위해, 마지막 시대에는 타작 같이 흔들고 두들겨, 즉 대배교로 성도들 가운데도 추려내는 것입니다. 알곡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혹독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큰 영광이 준비된 것입니다.

 

종말의 징조들

 

종말에 대해 예수님은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4:36). 종말, 재림이 날을 알 수가 없어요. 알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징조를 통해 예비토록 하셨습니다(참고/12:54-58). 배교가 종말의 영적인 경각이라면 징조는 종말의 육적 경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에 관하여 난리와 난리 소문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24:6;21:11). 202326일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사망자 최소 59,259명에 달합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 22만 명. 2010년 아이티 16만 명. 2008년 중국 87000. 2005년 카슈미르 73000. 2004년 스리랑카 35000. 2003년 이란 31000. 2011년 동일본 18500명이 대지진으로 사망했습니다. 21세기 들어 더욱 강력한 대지진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지진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 강도가 더 강력해지고 빈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말이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시대적 징조를 보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 주 재림의 임박을 경종 하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대지진은 인간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음을 보게 하는 외적 빙거인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뿔’(동북부)로 불리는 국가 가운데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에서 만 2,300만 명 이상이 심각한 굶주림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는 40년 만의 재앙적인 가뭄으로 인구의 절반인 740만 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지구의 3대 곡창지대로 전 세계 4위의 곡물 수출국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와 전쟁으로 경작지 25%를 잃고, 생산량 20% 감소하고, 수출도 막히면서, 식량 가격이 치솟자 아프리카·중동의 저소득 국가들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우크라 러시아 이 두 국가의 전쟁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이 4700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됩니다.

 

시리아는 2005년부터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2010년 밀가루의 가격이 극심하게 치솟자, 더 버티지 못하고, 촉발된 폭동이 내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망자 60만 명, 부랑인 1100만 명, 난민 550만 명, 내전 발발 직전 2200만 명에 달하던 시리아 인구는 170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시리아 경제는 초토화되었습니다. 식량·전기 부족, 물가 폭등, 의료 체계 붕괴를 겪고 있습니다. 전체 국민의 80% 이상이 빈곤층입니다. 유엔은 전체 내전 피해를 4000억 달러약446조원로 추산합니다. 자연재해 곡물 소출 감소 식량 가격 상승 폭동 전쟁까지 톱니바퀴처럼 엮여 있습니다.

 

후진국만이 이런 재해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작년 폭염으로 61,600명 사망했고, 2003년에는 최대 7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 하와이는 산불로 115명이 숨졌고, 실종자가 1,100-1,300명입니다. 캐나다에서는 5월에 발생한 대형산불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지난 석 달 동안 총 피해 지역이 1370ha로 그리스 한 국가 면적에 달하고, 대피해 나선 주민만 총 168천 명에 이릅니다. 중국은 역대급 폭우로 허베이성에서만 2백만 명 이재민이 발생했고, 태풍으로 최대 곡창지대 헤이룽장성등이 홍수에 잠겨 곡물 생산의 25%를 차지하는 농경지가 침수되면서 식량안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3년간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694,503,330, 사망자가 6,910,973명입니다. 한 국가의 전체 인구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대책은 무엇입니까? 환경보호를 하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대책입니다. 이러한 자연재해와 전쟁과 전염병과 대형 참사를 보고도 종말의 임박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종말의 준비하는 것보다 다른데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마음에는 육적인 평안과 안락을 위한 것이 많다는 방증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쭉정이로 빠질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16:15). 그러면 우리가 깨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신앙과 헌신과 예배에 저해되는 일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됩니다.

 

 

결론

 

우리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추수는 곡식과 가라지 성도와 불신자를 가르는 것이고, 타작은 곡식 가운데 알곡과 쭉정이 성도와 성도를 가르는 것입니다. 추수 때 바로 종말에 있을 일입니다. 아직 종말의 시작인 7년환난은 아닙니다. 신앙과 헌신과 예배의 옷을 지켜 알곡 성도로 준비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마지막 시대가 타작인 것은 흔들고, 두들기고, 때리는 것입니다. 대배교로 성도들 가운데도 추려내는 것입니다. 알곡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혹독한 것이 아니라, 재림을 맞이할 영광에 참여할 자를 선별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우리와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분이 참여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13차 부산 총회 후, 2014년 교황이 방한했습니다. 2023년 로마 가톨릭과 하나라고 주장한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 50주년 대회 후, 2027년 로마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노골화되고 있는 교회 내 배교 침투에 맞서,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예수만 유일한 구원자라는 <완전한 신앙>을 지키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물질 만능인 맘몬니즘에 맞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는 <확고한 신조>로 미혹을 물리치고 재물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역사적 재림을 교리적으로만 고백할 뿐 우리 세대에라는 안일함에 맞서, 초대교인들과 같이 마라나타’,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갈망하며 믿음을 지키는 <분명한 신념>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