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혁주의 전 천년설의 위치
역사적 전 천년설에서 역사적이란 말의 의미는 전술한 봐와 같이 너무나도 방대하고 그 해석의 방향이 너무나도 다양함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 해석이란? “요한계시록을 역사적 사건의 예언으로 인정하고 해석하는 견해”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한다면 세대주의적 종말론도 역사적 전 천년설로 볼 수 있다. 또 역사적 전 천년설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무천년설과 다를 바가 없는 입장에서 상징적 해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다 명확하게 역사적 전 천년설의 범주를 ‘상징적 전 천년설’Symbolic Pre-millenarianism, ‘세대주의 전 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arianism, ‘종말적 전 천년설’Eschatological Pre-millenarianism1)로 분류하고 이 중 세 번째를 가장 성경적인 천년설로 따른다.
종말적 전 천년설은 한국교회 종말론 대가이신 민병석 목사2)께서 일찍이 사용하신 용어이다. 민 목사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재림으로 보고 그 기조에서 해석한다.3) 이 관점을 종말적 전 천년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종말적 전 천년설은 평화를 만드는 신학교를 설립한 이재하 박사도 자신의 천년설을 종말적 전 천년설이라고 밝히고 있다.4) 또 종말적 전 천년설은 ‘미래적 전 천년설’Futuristic Pre-millenarianism과도 동의 적인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미래적 전 천년설이라고 했을 때, “7년 대환란을 기점으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7년 환난 이전 아니면 중간에, 또는 그 이후에 오신다는 세 가지 견해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5)
전 천년설 카테고리Kategorie 가운데는 ‘개혁주의 전 천년설’도 있다.6) 그 이전에 종말적 전 천년설로 종말론 저서와 논문 발표 그리고 강의를 해오고 계신 민병석 목사에 의해 정립 발표되었다. 다음은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 대한 민 목사의 설명이다.
요한계시록은 옳고 그름에 대한 신학적 논쟁거리로 주신 계시가 아니다. 종말의 성도들이 주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의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은 읽고 듣고 지킬 수 있는 말씀으로 모든 성도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읽고 듣고 지키는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읽고 듣고 지키는 이들에게 계시 가운데 약속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각도에서 종말에 관한 제반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요한계시록을 좀 더 깊이 있게 살피고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신학의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 천년설은 개혁주의 신학의 종말론이 아니다. 역사적 전 천년설 역시 그렇다. 종말론에서 신학은 무 천년설, 세대주의 전 천년설, 역사적 전 천년설의 철옹성같이 쌓아 올린 편향적인 신학적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경에 의해 증명되고 순조롭고 평이하게 증거될 수 있는 해석,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개혁주의 신학에 뿌리를 내린 그런 해석에 기초한 종말 관이어야 한다. 여기서 저자는 성경에서 개혁주의 종말론을 정립하는 가운데 ‘개혁주의 전 천년설’을 세우게 되었다.7)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종말적 관점인 종말적 전 천년설과 환난 후 재림 입장에서의 미래적 전 천년설을 통합 개혁주의 전 천년설로 칭하게 되었다.
근래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무 천년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8)의 교단 신학은 아직까지 역사적 전 천년설이다(수적으로는 다수의 목회자들이 무천년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역사적 전 천년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데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1897-1978의 공로가 크다 하겠다. 그는 구 프린스턴 신학Old Princeton Theology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천John Gresham Machen,1881-1937 박사에게 정통개혁주의신학을 전수받고 “내가 지금까지 가르친 동양의 학생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학생이었다.”9)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제자였다. 그런데 천년설에 관해서 만큼은 무 천년주의자였던 은사와는 달리 전 천년주의를 끝까지 사수 후대에 남겼다.10) 이런 배경에 대해 정성욱박사11)는 실천신학자인 찰스 어드만Charles Erdman,1866-1960을 주목하고 있다. 어드만은 주저主著12)에서 역사적 전 천년주의적 종말론의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하였는데, 그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을 때 박 박사가 수학했다는 것이다(1905-1936). 정 박사는 “이는 의미심장한 일이라가고 평가하면서 박 박사가 어드만에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13) 충분히 근거가 있는 진단이다.
박형룡 박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신학적 전통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이다. 구 평양신학교에서 오랜 세월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친 이율서W. D. Reynolod 박사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강의했다. 8.15 광복 후 남한의 장로회 신학교와 총회 신학교에서 여러 해에 걸쳐 조직신학을 강의한 필자도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전하였다.”14) 그의 제자이자 교수로도 동역했던 정암 박윤선 박사1905-1988 또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메이천에게 사사받았고, 네덜란드로 유학하기 이전부터도 바빙크Herman Bavinck,1854-1921, 흐레이다너스S. Greijdanus,1871-1948, 호로쉐이드Frederik W. Grosheide,1881-1972, 리델보스Herman N. Ridderbos,1909-2007 등과 같은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무 천년설을 따르지 않고 역사적 전 천년설에 입각한 종말론을 견지했다.
최홍석 박사는 “우리 총신에서는 박형룡 박사 이래 역사적 전 천년설이 가르쳐지고 있다.”15)고 증언하고 있다.16) 조봉근 박사도 이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박형룡은 미국 풀러신학교의 조지 라드 교수와 깊은 교분을 가지고 그의 ‘역사적 전 천년설’을 지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박형룡 교수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미국 켄터키 주의 남침례교 신학교의 입장은 ‘무 천년설’을 주장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아들 박아론 박사를 비롯하여 총신대학교의 교의학(종말론을 강의한) 교수들은 ‘역사적 전 천년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김길성 교수와 김석환 박사는 모두 ‘역사적 전 천년설’을 주장한다.”17) 이한수 박사는 “그가 교의신학 전집을 저술할 때 가장 많이 의존했던 사람들은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구미 학자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박형룡이 내세론에서 그들이 주장했던 무천년설을 따르지 않고 역사적 전 천년설을 주장한 것 때문에 역사적 전 천년설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다수가 받아들인 주류 종말론 신앙의 전통이 되었다.”18)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 뿌리를 둔 역사적 전 천년설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에 전해 내려온 너무나도 값진 보배이다. 그러나 재차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적 전 천년설은 그 용어적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다. 세대주의 전 천년설도 결국 역사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포함되며, 인류 역사의 순차적인 전개로 보는 역사주의도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간다. 또한 무 천년설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에서 상징적 해석을 취하는 예도 있다. 어떤 사론邪論은 세대주의 종말론과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신학적 배경도 불확실하여 과연 개혁주의 신학에 부합되는지 사실 여부조차도 난해하다. 이로 인해 역사적 전 천년설은 복잡하게 세분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혼선을 피하고 선명한 구분을 위해, 다니엘서 9장 27절 ‘한 이레’를 요한계시록 6장 이후 ‘장자 될 일’과 연결, 철저히 종말(7년 환난)에 될 사건에 대한 계시인 점을 개혁신학으로 정립,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라는 신학용어가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요한계시록을 로마의 혹독한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 시대로 보는 ‘과거주의’Preterist, 사도 요한 이후에 전개되는 역사의 청사진Blueprint으로 보는 ‘역사주의’Historicist, 상징적 해석으로 전 교회시대에 주신 것으로 보는 ‘상징주의’Idealist에 반反해, ‘미래주의’Futurist19)로 보는 것을 가장 성경적인 것으로 취한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연결하여 종말론을 정립한 이유는 다니엘서가 유대인들에게 주신 종말계시라면, 교회시대에 주신 종말계시가 요한계시록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종말론의 광의적 종말론이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개혁주의의 역사적 전 천년설에 대하여 정성욱 박사는 “개혁주의자라고 다 무천년주의자는 아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작성에 참여했던 토머스 굿윈Thomas Goodwin,1600-16800 같은 사람도 역사적 전 천년주의를 지지했고, 신대륙으로 넘어온 청교도들 상당수도 그러했다. 역사적 전 천년주의는 언약사적 해석이면서 개혁파적 해석과 일관성이 유지된다. 그래서 역사적 전 천년주의는 개혁주의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고 하였다.20) 외에도 존 데이븐포트John Davenport,1597-1670, 사무엘 메더Samuel Mather,1626-1671, 인크리스 메더Increase Mather,1639-1723, 코튼 메더Cotton Mather,1663-1728, 사무엘 시워Samuel Sewall,1652-1730, 티모시 드와이트Timothy Dwight,1752-1817 등을 소개했다.21)
이 사실은 마치 모든 청교도 신학자들이 무천년주의를 지지했다고 믿고 있는 오늘날의 개혁신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좋은 실례입니다. 개혁주의 전통 내에서 무천년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상당수의 영향력 있는 개혁신학자들이 역사적 전 천년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22)
이렇게 역사적 전 천년설의 포괄적 의미를 수용하고 있는 개혁주의 전 천년설은 계약신학Covenant Theology,契約神學으로 볼 때도, 그리고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으로도 타당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라는 신학용어로만이 아닌 개혁주의에 기초한 연구가 본서이다.
尾注>
1) 민병석, 『첫째부활과 천년왕국』, 제1장 종말론과 첫째 부활, 2.종말론과 부활과의 관계, 서울:신생, 1993.
2) 민병석 목사는 한국교회 종말론 권위자로 1987년부터 종말론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해왔다. 요한계시록 해석의 결정적 Key Point인 첫째부활에 관한 연구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성경적 부활론을 정립 종말 계시를 여는 획기적인 길을 개척했다. 또한 기존 해석 방법의 한계점을 뛰어넘은 문장적 해석을 체계화하여 일관된 원칙과 기조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였었다. 2001년 6월 1일부터는 밤중소리 사이트(bamjoongsori.org) 개설 동영상 강의와 질의응답을 통해 난제들이 가득한 종말계시에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2024년 5월 현재 방문자수가 66만 명을 넘었다. 수십 권 분량의 저서와 교재 등을 회원 가입과 관계없이 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개방해 놓았다. 2006년 5월 16일에는 밤중소리사역회를 창립하여 매월 셋째주 화요일 종말론 단기대학 공개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정성욱 박사는 논문 ‘세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 천년주의의 현황’(The Current State of Historic Premillennialism in Global Evangelical Theology)*에서, 민병석 목사를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의 박형룡, 박윤선, 박수암, 한정건, 김형태 박사 등과 함께 역사적 전 천년설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평가했다. 이중 현존하는 목회자로는 민 목사가 유일하다(*이광복,「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서울:도서출판흰돌, 2012.5.30. p.53.).
3) 민병석, 『개혁주의 전 천년설』, 도서출판 신생, 2016. 9. 2. p.240.
4) 이재하 박사는 고 김형태목사(1930-2006)로부터 요한계시록을 사사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평화를만드는신학 교’ 이재하 목사 ‘요한계시록 특화된 신학교 설립했어요’”. 신상목. 2014.3.14. http://news.kmib.co.kr).
5) 성결대학교 교수인 정성운 박사의 논지이다. 정 박사는 “미래적 전 천년설이 세 가지로 나뉘어져 환란전 휴거 설, 환란중 휴거설, 환란후 휴거설로 구분된다.”고 밝히고 있다(정성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성결교회 재림 론”(연구논문) 2015.8.9.https://blog.naver.com/mgm621106/220445906883). 성결대학교 전 총장인 성기호박사 도 “100년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이해와 전망”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성결교회의 종말론적 신학은 19세기 후 반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이 부흥을 이룰 때 가졌던 미래적 전 천년설(Futuristic Pre-millennialism)의 입장 에 선다.”고 밝히면서 미래적 전 천년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성기호. “100년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이해와 전망”, 2007.10.26. http://blog.daum.net/=20071026165319).
6) 민병석, 『개혁주의 전 천년설』, 도서출판 신생, 2016. 9. 2. p.17.
7) Ibid. pp.16-17.
8)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GAPCK: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합동.
9) 박용규,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총신대학교출판부, 1996.3.1.
10) 메이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음과 같이 믿는다. 세상에서 악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주 예수께서 몸으로 이 세상에 다시 와서 의의 통치를 이루며, 그것이 천 년 동안 지속된 후에 비로소 세상의 종말이 임하는 것이다. 본 저자의 생각에 그 신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 의해서 초래된 오류다. 우리는 성경의 예언이 미래 사건에 그런 분명한 청사진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께서는 다시 오실 것이며, 그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영적’사건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성령의 현 세대에 성취되는 것이 참으로 미약하여, 주께서 몸으로 오실 때까지 많은 것이 미완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견해는 성경 말씀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무천년주의자이었다(John Gresham Machen, 『기독교와 자유주의』, 황영철역, 도서출판 복있는 사람, 2016.1.27. p88).
11) 정성욱 박사는 계명대학교(B.A.)를 나와, 미국의 Whitworth University(B.A.)과 University of Texas(UT Austin)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Harvard Divinity School에서 수학하고(M. Div.), 영국 University of Oxford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1953-)에게 조직신학을 지도를 받았으며(D.Phil), 현재는 미국 덴버신학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로 세계적 복음주의 신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12) Charles Erdman, 『요한계시록강해』The Revelation of John An Exposition, 1936
13) 정성욱, 「정성욱교수의 밝고 행복한 종말론」, (주)눈출판그룹, 2016.3.7., p.66.
14)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Ⅶ 교의신학 내세론』, 서울: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77. p.278.
15) 최홍석, 『계시록 20장에 나타난 천년왕국에 대한 소논문』, 서울:해피캠퍼스, 2012.9.14
16) 이마저도 무늬만 남아 있는 것이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의 현실이다.
17) 조봉근, “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파별 종말론에 관한 비교연구-부활과 천년왕국을 중심으로-”. 2009. 한국개혁신학회
18) 이한수,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학술대회 논문집』,「박형룡과 이광복의 종말론 신학의 비교 평가」, 서울:도서출판흰돌, 2012.5.30. p.62. 재인용. 정일웅, “한국교회 종말신앙과 윤리”「천년왕국과 종말론」(한국교회연구시리즈7:정일웅편집:총신대학교부설한국교회문제연구소,1993), p192.
19) 이한수 박사는 “미래주의 해석의 또 다른 형태는 수정된 미래주의 해석방법이다. 이런 해석을 취하는 학자들 중에는 세대주의자들처럼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지도 않고, 계시록의 사건들이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 엄격히 진행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성도들조차 마지막 환란시기를 통과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7년 대환란 전 휴거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8:2-22:5이 마지막 대환란과 그 이후 사건들을 묘사한다고 본다(마운스R.H. Mounce,1921-). 또 다른 미래주의 학자들은 인, 나팔, 대접 심판들 모두가 같은 시기에 발생할 사건들만 나타내지만, 그것들은 재림 직전 대환란 시기에 발생할 사건들만 가리킨다고 주장한다(비슬리-머레이G. R. Beasley-Murray,1916-2000).” 개혁주의 전 천년설은 이 박사의 해석 방법 분류에 의하면 수정된 미래주의에 속한다.
20) “계시록, ‘두려움’ 아닌 ‘승리 확신’ 주려고 작성된 것”. 이대웅. 2012.6.21. www.christiantoday.co.kr
21) 「정성욱교수의 밝고 행복한 종말론」, 정성욱, (주)눈출판그룹, 2016.3.7., p.62.
22)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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