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개혁주의 전 천년설의 주요 해석Major Interpretation of Reformism Pre-millenarianism(2)
6) 십사만사천과 두 증인A Hundred And Forty And Four Thousand & Two Witnesses
요한계시록 해석의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십사만사천을 전 3년 반 예언 사역기간에 활동할 사명자들인 두 증인으로 본다.1) 이 둘을 연결하지 못하면 요한계시록은 미궁에 빠지고, 필연적으로 상징적 해석과 영해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 등장한 십사만사천은 종적을 감추었다가 14장 시온산에 서 있다.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은 그 다음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각 각 다른 존재가 아니다. 7장에서 종말의 사명자로 택함 받은 십사만사천이, 11장의 두 증인으로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예언 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 당한 후 부활 승천하여, 14장 천상에 올라있는 것이다. 이렇게 십사만사천과 두 증인은 동인同人이다. 성도들이 주일에 교회에 모인 것은 전체이다. 예배 후에는 각 가정과 처소로 돌아갔을 때는 하나하나이지만 여전히 성도인 것과 같다. 두 증인은 수학적이 아닌 법률적 용어이다. 구약시대부터 이미 사용되었고 예수님도 인용하셨으며 사도와 칠십인 제자들을 파송할 때는 둘씩 보내셨다(신19:15;막6:7;눅10:1;요8:17). 십사만사천은 종말의 때 한 메시지로 ‘많은 백성과 나라’에 증거 할 두 증인인 것이다(계7:1-9,10:11,11:3,9,14:1).
(1) 십사만사천과 큰 무리의 관계
요한계시록 7장 1절부터 ‘십사만사천’을 설명하다가, 9절에서는 ‘큰 무리’를 서설하면서 서두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을 연속으로 보는가? 구별로 보는가? 이를 한 분류로 보고 십사만사천을 구원받은 모든 성도(큰 무리)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이를 구분한다. 전혀 다른 단락이기 때문이다. 큰 무리에 대해 14절에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이는 십사만사천(두 증인)이 전 3년 반 동안 종말의 예언사역을 통해 진리로 무장된 알곡 성도들을 말한다. 또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는 것은 핵전쟁과 후 3년 반 적그리스도의 폭정에서 건짐 받았음을 뜻한다. 바로 예비처에서 보호 받을 자들이요. 예수님 재림 때에는 휴거되고 이 세상에 조성될 천년왕국에 살아갈 거룩한 백성들인 것이다. 이렇게 십사만사천은 종말의 사명자들이고 큰 무리는 그들을 통해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흠 없는 신부로 단장된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살전5:23;벧후3:14).
7) 부활(변화)의 시점The Time of Resurrection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끌어올려’와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변화하리라’는 전통적으로 한 사건(휴거)으로 보았다. 전자가 예수님이 재림시까지 생존한 성도의 휴거 사건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때 성도는 변화체가 아니라 육을 입은 상태 그대로인 것이다. ‘끌어올려’는 헬라어 ‘하르파조’ἁρπράζω,Rapture,‘낚아채어 올리다’이다. 이 단어는 이외에도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마11:12,12:29;요6:15,10:12,28,29;행8:39,23:10;살전4:7;고후12:2;유1:23;계12:5). 그렇지만 어느 경우에도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는 변화를 뜻하는 곳은 없다. 용례 가운데 사도행전 3장 39절 ‘이끌어간지라’는 한 지역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끌어 올려’ 또한 이 땅에서 이끌려 가는 것을 나타낸다. 전자 빌립이 가사에서 아소도까지 장소 이동시 그 몸이 변화된 것이 아니다. 후자 휴거시에도 성도들이 하늘로 이동은 몸이 변화 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말씀 어디에도 변화되어 들림 받는다는 직접적인 표현이나 암시가 없다. 그럼에도 이 구절과 고린도전서 15장 51절을 동일한 사건으로서 휴거시 변화를 입증하는 말씀으로 본 것이 기존 해석이었다. 그렇지만 고린도전서 15장 51절은 성도의 휴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체를 입는 시점을 말한다. 50절에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 입성할 성도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들의 변화는 휴거시가 아니라 부활시점인 천년왕국 후 마지막 부활과 동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 구절은 전혀 다른 시점(휴거와 천년왕국 후)으로 무려 천년의 어간이 있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1) 부활 시점을 통한 천국과 천년왕국 성도의 관계
휴거의 대상자가 됨과 동시에 천년왕국의 거하게 백성들은 세 부류이다. 후 3년 반 예비처에서 보호함을 받은 성도들과 적그리스도의 압제 아래서 끝까지 육백육십육 표를 받지 않은 ‘여자의 남은 자손’(계12:17)과 이스라엘 중의 남은자인 유대인들이다. 이들이 첫째부활자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천년동안 모든 죄의 저주에서 회복된 온전한 몸으로 번성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재림 전 천국에 올라간 성도들은 천년왕국에서 살 수 없다. 그들은 천년왕국이 마쳐지고 그 나라를 하나님께 바친 다음 흰보좌 심판 때까지, 지금 그대로 천상에 거하는 것이다. 영혼만이 실존하는 천국의 백성들이 육체를 함께 갖고 있는 천년왕국의 백성들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함께 살 수 있는 날은 흰보좌 심판대에서 천상의 성도들은 부활체로 천년왕국의 성도들은 변화체를 입은 후,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이다(계21:1-2). 이를 통해 “어떻게 영생체인 성도들이 천년왕국에서 자손을 낳을 수 있는가?”라는 난제와 비판 두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8) 첫째부활Fist Resurrection
개혁주의 종말적 전 천년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해석 가운데 하나는 요한계시록 20장 5절 ‘첫째부활’이다.2) 여기에 해당되는 자들은 누구인가? 십사만사천인 두 증인은 전 3년 반 사명을 마친 다음 짐승(적그리스도)에게 죽임(순교)당한 후 부활 승천하였기에 사람 가운데는 첫 번째 부활자가 되는 것이다(슥14:5;고전15:23;유1:14;계6:9-11,14:2-5,17:14).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천상에 있는 이들은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4절에 말씀하고 있다. 이들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 군대로 강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 그리고 땅의 임금과 군대들을 섬멸하는 심판을 감당하게 된다(계19:11-21). 스가랴 14장 5절에 보면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고 하였다. 예수 재림시 함께 이 세상에 오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바로 첫째부활자인 것이다. 천년왕국에서는 왕이신 예수님 아래 왕권자로서 다스리게 된다(계20:6). 이를 보편적 구원론에 어긋나는 특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말라기 3장 16절에 이 땅에서 삶이 ‘기념 책에 기록된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조들을 열거하다가, 6절에 하나님께서는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일생을 평범하게 신앙 생활한 성도들과 사도 바울같이 참수조차도 마다하지 않은 순교자가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공의롭게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다. 구원은 다를 수 없지만 상급은 차이가 있다.
(1) 첫째부활에 대한 타 천년설의 해석
첫째부활에 관해 무천년설에서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중생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원문의 뜻과 배치된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살아서’는 헬라어로 에제산ἔζησαν 이다. 부활했다는 말이다. 이들이 ‘첫째부활’이라고 5절에 말씀하고 있다. 부활은 죽은 자들의 육체와 영이 결합되는 사건이고Lived Again, 중생은 영이 거듭나는 사건이다Born Again. 서로 엄연히 다르다 부활과 중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실제적인 부활이지 중생으로 볼 근거도 전혀 없다. 그런가하면 4절 ‘살아서’는 성도들의 죽은 영혼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왕 노릇하는 영적 부활로, 5절 ‘살다’는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전 인류의 육적 부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못하다. 4절의 살아서도 육체적인 부활로 보아야 마땅한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문맥적 표현과 원어의 사용이 그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전 천년설에서는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이라고 해석한다. 그로 인해 천년왕국에서 부활한 성도들이 생육한다는 난점과 모순에 빠지게 된다.
(2) 첫째부활자와 성도들의 부활 순서
성경은 부활의 차례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하였다(고전15:23-24). 부활의 ‘첫 열매’가 예수님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23). 그러므로 그를 믿는 모든 자는 그와 같이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들이 모두 한날한시에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들이 두 번째 부활이라고 말씀하고 있다(23). 이들은 예수님 다음으로 두 번째 이지만 사람가운데는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그 외 성도들은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즉 천년왕국 후에 라고 말씀하고 있다(24). 요한계시록 20장 5절에도 첫째부활자 외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에서, ‘천 년이 차기까지’라는 시점을 통해, 천년왕국 후 흰보좌 심판 때 부활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계20:5). 불신자들도 이 때 부활하게 된다.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라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요5:29), ‘마지막 부활’도 이 때임을 증명하고 있다(요11:24). 이렇게 성경의 자증이 명확하다. 부활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9) 적그리스도Antichrist
적그리스도를 논해야 할 중요성은 위대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마지막 날이 ‘그가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였다(살후2:3). 그의 등장이 종말의 최대 징조인 것이다. 다니엘 9장 27절에는 그에 의해 ‘한 이레 동안의 언약’ 즉 7년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그때부터 7년 환난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다니엘 8장 23절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라고 예언된 자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BC175-164(재위)로 장차 출현할 적그리스도로 예표된 인물이다. 그는 전 왕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Seleucus IV Philopator,BC187-175(재위)의 형제로 왕권 계승 자격이 없던 자였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4세가 일찍 죽고 아들인 5세Seleucus V Philopator가 다섯 살 나이로 등극하자 섭정을 하다가 기회를 틈타 살해하고 권자에 오른다. 이에 대하여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궤휼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단11:21). 다니엘 7장 8절에 ‘큰 말을 하였더라’고 했다(참고/살후2:4;계13:5). 적그리스도의 특성에 대한 예언으로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할 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매우 교활하고 화술에 능한 정치적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3) 다니엘 7장 8절, 8장 9절에 ‘작은 뿔’로 묘사되었는데 앞은 적그리스도 뒤는 그의 모형인 안티오쿠스 4세를 상징한다.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 17장 8절에는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하였다. 과거 이스라엘을 잔혹하게 핍박하고 성전을 이방 신전으로 삼아 더럽혔던 안티오쿠스 4세와 같은 자가 종말에 다시 출현할 것에 대해 구약과 동일하게 신약도 재 증언하고 있다. 다니엘이 8장 9절에 ‘작은 뿔’로 예언 한 안티오쿠스 4세가 등장한 것처럼, 7장 8절에 ‘작은 뿔’로 상징된 적그리스도 또한 인류 앞에 역사적인 시점으로 나타나 보이게 될 것이다.
(1) 적그리스도의 육적배경
적그리스도의 백그라운드Background는 앞 챕터Chapter ‘신상과 짐승’ 에서 네 짐승 중 세 짐승을 복종시킨 네 번째 짐승이다(단7:7,24). 그 머리에 먼저 ‘열 뿔’이 있고 나중에 나온 ‘작은 뿔’이 열 뿔 중 ‘세 뿔’을 뽑고 열 뿔의 지배자가 되면서 네 번째 짐승의 통치자가 된다(7:8). 작은 뿔과 열 뿔의 관계는 요한계시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3장 1절의 ‘짐승’은 작은 뿔을 17장 12절의 ‘열 왕’은 열 뿔을 가리킨다. 13절에서 열 왕은 짐승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힘을 집중해준다. 개혁주의 종말적 전 천년설에서는 이 작은 뿔 아래의 열 뿔과 네 번째 짐승을 EU로 본다. 그 이유는 다니엘 2장 신상에 나타난 제국 가운데 마지막 제국을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33). 지금 EU는 강대국과 약소국, 다양한 언어, 인종, 문화 등 쇠와 진흙의 혼합체와 같다. 2장 41절에는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라고 했다. 이것은 EU의 해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열 뿔 즉 10대 강대국들로 다시 재편될 것을 뜻한다. 7장 7절에 네 번째 짐승에 대해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보면 2장 41절에 진흙은 사라져 버리고, 쇠만 명시되어있다. 지금은 EU가 쇠와 진흙의 혼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무섭고 강한 쇠로된 큰 이’가 만들어져야 한다. 진흙을 제거한 쇠들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연합체 즉 열 뿔이 등장해야, 적그리스도의 육적배경인 적그리스도 제국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운데 한 국가의 왕이 주변국을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한 사실은 있지만, 세계의 왕들이 하나가 되고 그 왕들 가운데 대표 왕을 선출했던 시대가 있었던가? 이 초유의 대업을 완성해가고 있는 곳이 EU이다.
(2) 적그리스도의 영적배경
적그리스도는 헬라어로 안티크리스토스ἀντιχρτος, 영어로 안티크라이스트Antichrist이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성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다. 이때 마귀의 세 가지 시험Temptation이 있었다. 그 중 세 번째를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8). 이에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셨다(마4:10).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단호히 물리치셨지만 적그리스도는 받아들인 것이다. 그 증거를 요한계시록 13장 4-7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용(사탄)이 짐승(적그리스도)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이 말씀이 마태복음 4장 8절 ‘천하만국과 그 영광’의 구체적인 서술로 사탄에게 부여받은 적그리스도의 권세이다. 적그리스도의 영적배경인 것이다. 한 인간에 불과한 적그리스도는 사탄과 열 뿔을 백그라운드로 막강한 권력을 얻고 후 3년 반 동안 인류를 잔혹하게 핍박하게 된다(단7:7;계17:12-13).
10) 제3성전The Third Temple
제3성전은 과거 솔로몬성전 자리에 현재 세워져 있는 이슬람의 대사원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를 헐고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일컫는다.4) 에스겔 37장 26절에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고토 후 성전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말씀대로 스룹바벨성전이 건축된다. 그러나 두 번째 성전 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세 번째 성전까지로 해석한다.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마지막을 알리는 시작인 이스라엘 회복을 독립만이 아니라, 성전재건까지 보는 입장에서 취한 것이다. 제3성전이 건축되기 위해서는 오마르사원이나 맞은편 솔론왕궁의 터로 알려진 엘악사사원Mosque of Elaksa 또는 통곡의 벽이다. 어느 경우라도 팔레스타인뿐 만아니라 전 아랍권과 세계 모슬렘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오마르사원은 마호메트Mahomet,571?-632가 승천한 곳으로 믿고 있는 곳으로 사우디의 메카Mecca,메디나Medina와 함께 이슬람 3대 성지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을 ‘배꼽 전쟁’Navel War 이라고 부른다. 한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적자(이삭)와 서자(이스마엘) 간의 명분싸움이라는 점에서 탯줄 싸움, 즉 배꼽(중심) 전쟁이다. 그들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요, 지구의 중심은 중동, 중동의 중심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산, 성전산의 중심은 지성소Holy of Holies, 지성소의 중심은 언약궤Ark 놓인 곳이라고 믿고 있다. 즉 우주의 배꼽이 바로 지금 오마르사원이 서 있는 자리인데, 서로 이 소유권을 차지하려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사생결단하며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5) 이스라엘이 제3성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6)
(1) 제3성전과 적그리스도
제3성전이 연구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적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2023년 4월에 이스라엘이 테러범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엘악사사원에 난입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 2024년 5월 현재 누적 사망자가 36,000명 이상에 달한다. 이러한데 만약 오마르 사원이 헐린다는 것은 재앙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9월 28일 리쿠드 당수였던 샤론Ariel Sharon, 1928-2014은 1000여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엘악사사원을 방문하였다. “이 지역의 주권을 양보할 수 없으며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영토에 병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전 건축 의지까지 보였다.7) 이에 강력 반발하는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 군대가 무자비하게 진압을 하면서 제 2차 인디파다Intifada,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反)이스라엘 저항운동가 발생 이스라엘에서 약 1천명, 팔레스타인에서 약 4천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가 동예루살렘을 방문만하여도 전쟁선포로 간주할 정도이다. 제3성전은 두 세력 간 전쟁을 불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렇게 악화일로에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중재하고 7년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이스라엘이 꿈에 그리던 성전건축의 길을 열자가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세계에 영웅으로 유대인에게는 메시아로 추앙 받게 될 것이다. ‘한 왕’(적그리스도)이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란 어떤 형태로든 제3성전이 7년 환난 이전에 건축될 것을 밝히고 있다(단9:26-27). ‘불법의 사람’(적그리스도)이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와 ‘이방인(적그릐스도)에게 주었은즉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는 말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살후:2:3-4;계11:2.참고/눅21:24). 제3성전 건축 논지가 성립되는 성경적 근거이다.8)
(2) 제3성전과 마지막전쟁
제3성전은 마지막 전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7년 평화조약은 3년 반이 지난 후 파기되는데 이 원인 역시 성전문제 일 것으로 예측된다. ‘마지막 때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고 하였는데 남방 왕이면 현 중동아랍세력이다(단11:40). 오마르사원이 헐린 상황이라면 다시 세우려 할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파괴하여, 다시금 동예루살렘을 모슬렘의 성지로 만들려 할 것이다. 남방 왕이 이렇게 전쟁을 감행할 수 있는 데에는 호기가 찾아 왔기 때문이다. 7년 평화조약 후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의 비호 아래 성전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 3년 반이 끝나갈 무렵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신격화하고 제사를 간섭하기 시작한다(단8:11,12,9:27,11:36;살후2:4). 이에 이스라엘의 항거가 시작될 것이다. 안티오쿠스 4세에 맞서 더렵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했던 마카비혁명The Maccabean Revolt9) 같은 상황이 도출될 것으로 본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그동안 기회를 엿보던 남방 왕이 ‘그’로 지칭된 적그리스도를 공격하게 된다. 이로써 7년 평화조약은 파약된다. 국제정세로 볼 때 러시아로 상징되는 북방왕은 남방왕에 가세하게 될 것이고 정체를 아직 알 수 없는 다른 세력 또한 이에 합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세력들이 바로 다니엘 7장 3절의 네 짐승으로 상징된 종말에 등장할 4대 열강이다. 요한계시록 7장 1절에는 4대 열강이 ‘네 바람’으로 상징되고 있다. 네 짐승이 ‘네 바람’에서 출현하는 다니엘 7장 2절의 계시와 일치한다. 이 네 바람을 ‘네 천사’가 붙잡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정한 년 월 일 시’에 네 천사가 유브라데 강에 네 바람을 놓게 된다(계7:1,9:15). 이것이 4대 열강 간의 대전 곧 마지막전쟁 핵전쟁 유브라데전쟁인 제3차세계대전이다. 여기서 승자는 적그리스도로 마흔두 달 동안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마지막전쟁의 뇌관이 제3성전이다. 이렇게 제3성전은 종말을 알리는 중요한 징조이기에 그 추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10)
尾注>
1) ‘십사만사천과 두 증인’을 한 계시로 연결한 시도는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있어 왔다. 저자는 이 가운데 민병석 목사의 견해를 따른다. 민병석, 『요한계시록 심층설교집 재림의 메시지』, 서울:신생, 1993.2012.9.10., pp.243-244.
2) ‘첫째부활’은 민병석 목사에 의해 연구되었다. 민병석, 『첫째부활과 천년왕국』, 서울:신생, 1993.을 참조하라.
3) 역사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작은 모형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을 봐도 알 수 있다. 레닌(Vladimir Il'ich Lenin,1870-1924)의 열변은 러시아 혁명(Russian Revolution, 볼셰비키 혁명(1917.2))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는 당대의 가장 탁월한 웅변가였다. 그 웅변의 힘으로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정권 을 찬탈하고 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켰다.
4) 제3성전은 과거 솔로몬성전Temple of Solomon과 스룹바벨성전Temple of Zerubbabel 자리에 세워져있는 모슬렘 대사원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를 허물고 새로 건축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이스라엘 안에 유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반드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던 모리아산 자리만이 성전의 자리라고 보지 않는다. 성경에 성전의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성전이 아닌 장막 혹은 유대교의 대표적인 회당 형태 안의 성소와 같은 별도의 장소일 수도 있다고 본다(오마르 모스크,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 황금사원, AD 638년 이슬람교도들인 아랍 사람들이 무력으로 정복한 후, 691년에 완공되었다.).
5) 이일호, 『강소국 이스라엘과 땅의 전쟁』, 서울:삼성경제연구소, 2007.9.10. p.27.
6) 이재현, 『징조는 픽션보다 참혹했다』「7년 평화조약은 왜 파기되는가?」, 도서출판 좋은땅, 2013.2.8. pp196-216.를 참조하라.
7) http://www.ystopia.egloos.com.
8) 이재현, 『징조는 픽션보다 참혹했다』,「7년 평화조약은 왜 파기되는가?」 도서출판 좋은땅, 2013.2.8.pp.196-216.를 참조하라.
9) BC 167년 수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가 유대인에 대한 헬레니즘화(化) 정책을 강화하여 예루살렘 신전에 제우스상을 모셔 놓고 우상숭배를 강요하자, 모딘의 주교(主敎)였던 마타티아스(Mattathias, 마카베오가(家)의 시조)는 동지를 규합하여 시리아군에 대한 유격전을 벌였다. 이와 같은 항전은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 요나단, 시몬에게 계승되어 BC 142년 마침내 유대인의 종교적 ·정치적 독립을 성취하였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수전절(Feast of Dedication, 히, 하누카(Hanukkah))로 지키고 있다. 이후 유대의 왕과 대주교는 마카베오가(家)가 세습하게 되었고 이것이 하스몬왕조(Hasmoneans)이다.
10) 이재현, 『이어쓰는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 도서출판 헤이스, 2017.8.1.pp109-126.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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