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 천년설

개혁주의 전 천년설 결론 | 이재현목사 | 파루시아 아카데미 | 개혁주의 전 천년설(07)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4. 3. 26. 22:00

5. 결론 : 성경적 종말론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ns of Biblical Eschatology

 

천년설을 전술하면서 조명한바와 같이, 무천년설의 가장 큰 문제는 문자적 천년왕국 부인하는데 있고, 역사적 전 천년설은 부활론에 있으며, 세대주의는 환난 전 휴거에 있다. 이 맹점을 극복하고 성경적인 종말론을 제시한 것이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다. 그렇다고 이 해석만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만Dogmatic의 해석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결코 바른 태도가 아니다. 다만 기록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철저히 연구 검증했다(고전4:6). 지극히 성경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해석의 결정적 키포인트Key Point인 첫째부활에 관한 연구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종말 계시를 정립하는 획기적인 길을 개척하였다. 이러한 데는 민병석 목사의 공로가 크다 하겠다. 민 목사는 요한계시록을 기존 해석 방법의 한계점을 뛰어넘은 문장적해석으로 체계화했고 일관된 원칙과 기조로 주해했다. 정성욱 박사는 민병석 목사에 대해 개혁주의적 조직신학과 일관성을 가진 전 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전개하고 있다.”1)라고 평가했다. 개혁주의 전 천년설은 그 선상에 있다.

 

성경적인 인류사는 구원사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시작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창조의 책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마지막까지 구원하시기 위한 종말의 책이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역사를 이끈다는 사관을 믿는다. 이 섭리사관의 최종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즉 구원의 완성은 종말인 것이다. 믿지 않는 이들도 마지막 때라고 말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 아래 개혁주의 전 천년설을 초대교회와 같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증거하고 있다(2:4).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고 해서 개혁파Reformed 교회에 속한 목사와 성도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개혁주의Reformismp는 장로교뿐 만아니라, 대부분의 교단들이 신학적 견해와 정도의 차이일 뿐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튤립TULIP으로 불리는 5대 교리Dogma를 들 수 있다. 전적 타락(전적 무능)Total Depravity,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인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 다섯 가지 신앙 교리를 가리켜 칼빈주의Calvinism라고도 한다. 하나님 말씀을 이처럼 신학적으로 체계를 세워 정리하였던 인물이 칼빈John Calvin이기 때문이다.2)

 

이 중요한 구원의 교의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서도 수 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이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에게로 그리고 칼빈 그 후로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처럼 들어서 사용하셨던, 쯔빙글리Ulrich Zwingli, 스펄젼C. H. Spurgeon,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그리고 박형룡, 박윤선박사 같은 분들을 통해서 변함없이 가르쳐 내려온 진리이다. 이 놀라운 은혜를 특별히 장로교가 고백하는 신앙이라고 해서 장로교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혁 교단을 비롯하여 침례교, 회중교, 오순절, 감리교 그리고 성공회 안에도 이 교리를 그대로 고백하고 믿는 지도자들이 많고, 또 교단별로 그 교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데도 많다. 다만 이것을 장로교의 중심 교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장로교가 이 교리를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로 알고 감격스럽게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면에 있어서 다른 교단보다 한발 앞섰기 때문이다.3) 이렇게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은 한국개혁파장로교 나아가 한국개신교 신학의 뿌리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학적 배경위에 정립된 개혁주의 전 천년설은 장로교만이 아니라 모든 교단이 함께 할 수 있다.

 

개혁주의 전 천년설을 논하면서 변을 하나 더 추가하고자 한다. 저자는 본 저서 발간 기준으로 십오 년 동안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에 나타난 종말 계시를 연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관련된 많은 저서를 탐독하였고,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자료들도 수렴하였다. 이 분야의 실력 있는 분들의 세미나에도 참석했었다. 그런데 개중에는 정규 신학 과정을 수학하지 않고 교회를 설립하거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강의하면서, 온갖 사상들이 혼합된 이상한 기독론과 종말론을 설파하고 있다.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세대가 추종하는 것을 본다. 너무나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종말론을 연구하고 싶다면 꼭 당부하고 싶다. 정통신학은 바른 종말론을 정립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잣대로도 흠잡을 수 없는 성경적인 것이 된다. 그렇다고 신학이 성경을 앞선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깊이 보고 그 기반 위에 세워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학으로 검증하여도 이탈되지 말아야 한다. 그 신학은 저자 관점에서 말할 때 성경의 신앙적이요, 신학적 최대 표현인 개혁주의 신학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전 천년설은 동의 적으로 개혁신학 전 천년설’Reformed Theology Reformism Pre-mille-narianism로 부를 수도 있으며, 저자의 견지에서 성경적 전 천년설’Biblical Pre-millenarianism로 믿는다.

 

 

尾注>

1) 정성욱, 「정성욱교수의 밝고 행복한 종말론」, ()눈출판그룹, 2016.3.7, p.83.

2) 옥한흠, 『요한이 전한 복음』, 도서출판 두란노, 2000.12.6. pp.336-337. 요약.

3)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