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이레(1)
Ⅰ 서론
칠십이레는 지구역사 종점에 대한 타임테이블Timetable이다. 그 기간 동안의 전개과정에 대한 비밀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시간으로 보는 7년, 유대인들이 마지막에 당할 종교적 핍박에 대한 예언, 그 기간의 도래에 관한 비밀까지도 말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때 교회시대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는지에 관한 암시도 주고 있다. 이렇게 중대한 종말계시가 칠십이레이다.
칠십이레를 바로 알기위해서는 달력Calendar이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넷째 날에 궁창에 광명을 만드시면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 ‘계절’Seasons과 ‘날’Days과 ‘해’Years가 인류의 역사 연대의 틀이 되었고, 이를 달력이라고 부르고 있다(창1:14). 그런데 달력에 대해 하나님은 기본 규정은 주시지 않았다. 세계의 문화문명의 발전과 함께 제작되고 진보되었다. 각 나라별로 다양하면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 사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기원전과 같은 경우는 연대 측정이 정확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계승된 달력은 세 가지이다. 가장 먼저는 태음력1)으로 달력이 계절과 연한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다. 다음 태양력2)도 정확한 연도의 계산은 어렵지만, BC 47년 로마에서 제정한 율리우스역Julian Calender3)을 현대식 태양력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리고 태양태음력4)이 있는데, 이 달력은 태음력의 1년의 길이를 태양력에 맞추어 태음력의 새로운 틀을 짠 것으로 그 특색은 3년마다 모자라는 30일의 날짜를 채우기 위해 한 달을 윤달로 보충하고 있다.
율리우스역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1502-1585에 의해 1년의 길이가 365일이 아니라, 365.2422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10월 4일의 다음날을 10월 14일로 개정하므로, BC 47년부터 1582년까지의 착오된 날을 바로잡으면서, 이 달력을 세계의 공통달력으로 선포하게 되었는데 이 달력이 현재 사용되는 그레고리역Gregorian calendar이다.
그리고 기원전Before Christ과 기원후Anno Domini를 나누는 서기 연대의 기원은 AD 525년 교항 요한 1세JoannesI,?-526가 수도승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500?-560?에게 서방교회를 위한 연도를 만들 것을 명하였다. 디오니시우스는 당시 사용하던 로마달력5)의 연호 754년을 헤롯대왕Herod the Great,BC73-AD4 사망연도로 보고 예수의 탄생해로 계산 AD 1년으로 정하여 서기력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는 많은 오류6)로 학자들마다 4년 혹은 8년의 차이가 연구되었다. 그렇기에 AD 1년부터 추적해서 역사적으로 거슬려 올라가는 역사적 연도계산은 적어도 4년 이상의 착오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사용되는 것은 그 차이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수 탄생을 BC 4년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연대로 칠십이레를 해석하는데, 그 출발점이 되는 다니엘 9장 25절 ‘성 중건령’의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년 수 계산에는 차이가 있지만 주로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맨 오른쪽은 서기력 착오를 6년으로 계산한 년도이다.).
① 1차 귀환령(스 1: 2) BC536(-483(69이레)=BC53) 예수십자가 연도 BC 59
② 2차 〃 (스 7: 7) BC457( 〃 =AD26) 〃 AD 20
③ 3차 〃 (느 2: 1) BC445( 〃 =AD38) 〃 AD 32
이 중에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3차 귀한령을 칠십이레의 시발점을 삼는다. 다니엘 9장 25절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예수)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고 하였고, 26절에는 그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예수)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라고 했다. 이 말씀을 예수 십자가 연도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제 본론에서 그에 대한 자세한 사항과 본서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려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마지막 한 이레에 관하여 논하도록 하겠다.
Ⅱ 칠십이레에 대한 견해의 유형
칠십이레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인데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 여부에 따라 다니엘서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까지 나아가 성경전체 종말론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70이레는 69이레와 1이레의 합산 기간이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한 이레의 기간을 7년과 연관시킬 때, 종말적인 입장에서 ‘7년 환난’과 연결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구분 없이 전 교회시대로 해석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만큼 칠십이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한 점에서 개혁주의 종말적 전 천년설로 해석하기 이전, 그 외 다양한 견해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 전통적 견해
이 견해는 성 어거스틴St. Augustine,354-430이 주장한 견해인데 오늘날 보수주의적 견해로 취한다. 이 견해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맞추고 있으며, 초림의 중심점은 그의 죽음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B.C.70년에 로마 티투스Titus Flavius Vespasianus39-81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된 사건까지, 칠십이레의 예언에 포함시킨다.
2. 자유주의적 견해
이 견해는 24절부터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먼 미래에 관한 예언이 아니란 전제 아래 전개시킨다. 칠십이레의 내용을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IV Epiphanes,BC175-164(재위)가 예루살렘에서 성취할 사건으로 본다. 본문의 내용을 셋으로 구분하여 각기 의미 있는 해석을 가한다. 70이레의 진행이 처음에 7이레로 시작되고 다음에 62이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이레가 등장하여 모두 70이레를 이룬다. 처음의 7이레는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으로부터 49년(7이레=49년) 후인 538년까지의 기간으로, 고레스 왕Cyrus the Great,BC559-529(재위)에 의해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는 명을 받은 그 시기까지로 계산한다. 두 번째로 62이레는 B.C. 538년부터 BC 171년까지의 기간, 세 번째로 한 이레는 안티오쿠스 4세가 이스라엘에 행할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한다. 칠십이레의 계시를 다니엘서 8장 9절의 작은 뿔로서의 안티오쿠스 4세와 연결시키고 있다.
3. 상징적 견해
이 견해는 칠십이레의 기간을 숫자적이 아닌 상징적 의미를 두고 해석한다. 7이레는 고레스 때부터 초림의 그리스도까지이며 62이레는 신약교회시대요. 나머지 한 이레는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활동 기간으로 본다. 그런데 이 상징적 견해는 그 말이 의미해 주는 대로 다양한 해석이 취해진다. 어떤 해석에는 7주를 제 1기간으로 삼고 이 기간은 예루살렘의 중건부터 발전 시기까지이며, 제 2기간인 62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까지, 남은 1주간은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의 기간으로 보기도 한다.
4. 종말론적 견해
70이레를 역사적 진행 사건으로 인정하고 마지막 한 이레의 기간을 인류의 종말적인 기간인 7년에 결부시킨다. 다니엘 7장 7절의 작은 뿔을 마지막 시대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로, 그 자가 예루살렘에서 종교적 핍박을 감행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을 한 이레의 후반기로 본다(단7:25). 그리고 9장 27절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할 한 왕의 등장’을 7장 7절의 작은 뿔, 곧 적그리스도로 연결한다. 그런데 이같은 종말론적 견해도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견해를 취하는 해석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는 하나의 신학적 종파가 ‘세대주의 신학’에서 나온 종말론 추종자들로 이들을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라고 부른다. 요즘 종말론을 연구하는 신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한 이레를 7년의 종말 기간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그것을 모두 ‘세대주의적 해석’이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이는 단천短淺에서 오는 일편지견一偏之見이다. 개혁주의 종말적 전 천년설에서 해석하는 칠십이레 견해를 세대주의자들의 주장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5. 개혁주의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 전 천년설 해석의 차이점
칠십이레에 관한 개혁주의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 전 천년설의 해석은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동일시하기 쉬우나 사실인즉 엄격한 구별이 따른다.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다니엘서를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건과 연결시켜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많은 공헌을 한 사실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교회를 위한 종말 계시로 주신 요한계시록까지 유대인들의 종말 계시로 다니엘서와 동일 선상에서 해석하는 일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이다.
세대주의에서는 70이레의 70을 숫자적인 연대로 계산한다. 이 중 마지막 부분의 한 이레에 대해서는 69이레와 역사적으로 연결 된 선상에서 해석을 취하지 않는다. ‘장차’라는 미래의 역사적 미지의 시간을 둔다. 그 기간을 인류의 종말과 연결시켜 7년으로 해석한다. 이를 7년 환난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두 입장의 견해가 별로 상충되는 점이 없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이 한 이레 기간을 유대인들을 위한 기간으로 해석한다. 여기에서부터 큰 차이를 갖게 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여섯 번째 세대가 되는 교회 시대에서 7년을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7년 환난 전 교회 휴거설을 절대적 주장으로 내놓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7년 환난 기간은 유대인들의 기간이 된다. 유대인들의 회복을 위한 회개 시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교회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세대주의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결국 적그리스도는 7년 환난 중에 등장하므로 교회는 아무런 핍박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된다. 그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교회는 공중으로 휴거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공중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7년간의 공중 혼인 잔치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견해가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혁주의적 견해는 그렇지 않다. 물론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에 의해 한 이레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교회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신앙적인 핍박을 받게 되며 영적 투쟁을 하는 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기간이 전 3년 반을 이루는 한 이레의 전반부가 된다. 이 기간 동안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을 통하여 무장된 교회는 후 3년 반 예비처의 보호를 입게 된다. 그러나 거짓선지자의 책동에 휘말려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따르는 음녀화 된 교회는 후 3년 반 핵전쟁인 유브라데전쟁과 잔혹한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러한 종말계시를 정립한 것이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다. 하나 세대주의에서 교회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배워야할 필요도 증거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교회는 그 모든 사건 이전에 휴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중 휴거에 대해서도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예수님 지상 재림 때 거의 동시적으로 공중으로 휴거 된다는 성경적 증거를 확신한다. 7년 환난 직전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니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장래에 관한 종말적 계시이지만,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위해 주신 종말적 계시임을 믿는다.
이같은 견해 차이는 어느 면으로 보면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나 세대주의 전 천년설이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 환난으로 같이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할 수 있다. 또 그렇게 7년 환난을 인정하면, 환난 전 휴거나 환난 후 휴거나 무슨 차이가 대단한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둘 사이에 신학적 갭Gap은 엄청난 것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 날이 언제인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 재림 때에 골몰하는 시한부 종말론과 같은 소동을 야기하게 된다. 비밀휴거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지상 재림시에 따르는 성도들의 처신 문제와 천년왕국에 있어서의 제반 문제에도 비 성경적인 문제들이 대두된다. 종말론을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7년 환난과 함께 등장하여 7년 평화조약을 체결할 자 적그리스도임을 성경적으로 입증했다. 이제 전 3년 반 동안 교회는 철저히 깨어 준비하게 된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절대적 진리를 수호한다. 후 3년 반 동안에는 예비처에서 보호받고 예수님 재림시에는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혁주의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칠십이레의 종결인 마지막 한 이레에 해석에서 전혀 상이한 견해를 취하고 있다.7)
尾註>
1) 태음력(Lunar Calendar,太陰曆) : 초생달이 뜨고 지는 기간. 1년 12달 : 한 달 29일 : 다음 달 30일 : 1년의 날 수 354일
2) 태양력(Solar Calendar,太陽曆) :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주위를 도는 기간. 1년 12달 : 한 달 30일 : 다음달 31일 : 1년의 날 수 365일(1년마다 11일간의 차이가 난다. 3년이면 한 달의 차이)
3) 태양력의 시발지는 로마가 아니라 애굽이다. 그러나 애굽의 태양력은 천문학이나 수학의 발달에서 온 것이 아니다. 애굽의 젖줄인 라인강이 매년 홍수로 창일이 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오는 것을 발견한 애굽 사람들 은 그 주기의 기간이 365일이란 사실을 계산해 냈다. 그리고 그 날짜를 일 년의 주기로 하여 12 달로 나누어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태양력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런 것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BC100-44)가 애굽에 원정을 갔다가 이 놀라운 달력의 계산법을 알게 되어 로마에 들여와 태양력을 완성하여 율리우스 역으로 선포한 것이 태양력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하게 된 시초가 되었다.
4)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太陰太陽曆) : 태음력의 1년의 길이를 태양력에 맞춘 달력(3년마다 윤달로 보충하여 맞춘다.)
5) 로마에서는 건국 BC 753년 4월 21일을 기념하는 로마 건국 기원이 사용된 바 있었다.
6) 서기력의 오류
① 헤롯왕의 사망 연도가 로마달력 754년이 아니라 750년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기원 년도가 BC 4년으로 나 타나 4년간의 계산 착오가 발견되었다.
② 다른 또 하나의 모순이 발견되었다. 예수님은 헤롯왕 사망이 아니라 생존 시에 탄생하셨다. 헤롯이 두 살 및 어린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하였고 그 후로도 얼마간 더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BC 4년 + 2년 + 얼마 간의 생존기간(예수님 애굽 피난 기간) = 적어도 6년 기간 착오가 있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③ 이처럼 디오니시우스의 연도계산의 차이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서기력 사용이 보편화되었던 시기였기 때문 에 그냥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외도 예수님의 탄생연도가 BC 8년 혹은 AD 6년 이후란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④ 정확히는 예수님은 최소한 BC 6년 이전에 탄생하신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⑤ 이런 사실은 적어도 서기력 AD 1년부터 추적해서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연도계산은 적어도 6년 이상의 착오를 내포하고 있다.
⑥ BC 47년 율리우스역 이전까지의 달력은 나라마다 다르고 변화가 많아 역사적인 계승이 부정확하기 때문에 그 연대를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성경적 연도 추적 계산에는 애굽력, 바벨론력, 로마력 등이 들어가야 하는데 성경에는 고레스왕 몇 년이란 식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 추적이 불가능하다. 현대의 연도나 달력으로는 그러한 성경적 연대를 산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율리우스역 이전의 연대는 ‘경’ 또는 ‘대략’이란 전치사를 반드시 달아야 한다.
7) 칠십이레에 대하여 구자수 박사는 바벨론 70년 유수에 대한 가중(加重) 처벌로 해석한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한 것으로 모든 것을 마친 것으로 알았지,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70년의 7배에 해당하는 형벌이 칠십이레 490년이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가서야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된다는 주장이다(“17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18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레26:17-18), 구자수 박사는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큰빛교회 담임자이며, 메가포스원어연구소를 통해 성경 원어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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