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 천년설

칠십이레(2) | 개혁주의 전 천년설 핵심주제(1-2) | 이재현목사 | 파루시아 아카데미 | 개혁주의 전 천년설(09)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4. 3. 28. 10:45

칠십이레(2)

 

Ⅲ 다니엘 924-27절의 단락段落과 연심硏尋

 

1. 다니엘 924-27절의 단락

 

칠십이레에 대한 개혁주의 전 천년설의 해석에서는 다니엘 724절부터 27절까지에 걸쳐 전개되고 있는 말씀을 3단락으로 나눈다. 24, 25, 26-27절 등, 이처럼 짧은 예언의 문장 가운데서 단락을 나누지 않으면,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1) 단락1(9:24)-총론:70이레가 채워졌을 때 유대인에게 이루어질 사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

 

24절은 사건의 개요이자 70이레의 총론이자 결론이기도 하다. 다니엘 2장의 신상에서 마지막에 보여주신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2:44). 이 기간을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내린 시점으로부터, 70이레가 찼을 때에 이를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24절은 이와 함께 칠십이레가 마쳤을 때 유대인들이 천년왕국에서 받을 지복에 대한 예언이다.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유대인의 남은 자들의 구원으로 이 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되는 사실을 말씀해 준다. 그때 그들(유대인)의 죄가 완전히 사함 받게 된다(“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11:27)).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율법의 의를 좇던 그들에게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의가 주어진다.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메시아로 말미암은 메시아왕국(천년왕국)의 도래를 예언했던 선지자들의 환상과 예언이 성취하게 된다.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그리스도께서 메시아왕국의 왕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시게 된다.

 

그런데 다니엘 924절을 초림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2000여 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 된다. 그러면 지금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무천년설의 답변은 영적인 것이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 재림 후 이 세상이 심판 받아 멸망한 후 새롭게 조성된 천년왕국에서 있을 말씀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결하는 에덴의 회복이다. 또 함께 이루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완성이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완전히 회복된 성도들의 삶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 이전 아담이 영위한 것과 동일한 말씀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아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지금 영적으로는 범죄 이전의 아담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 924절은 초림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완성에 대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은 영혼만이 아니요 육체도 구원하시는 전인적인구원에 대하여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단락2(9:25)-초림:69이레까지 이르렀을 때 유대인에게 이루어질 사건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9:25)

 

25절은 70이레 사건의 2대지이다. 2대지는 메시아의 초림사건을 예언해 주고 있다.

 

25절은 메시아의 초림에 관한 예언으로 69이레까지의 과정을 예언해 준다.

 

② 그리고 종말을 예고하는 70이레까지 이르는 그 출발점으로 예루살렘의 중건 영을 내린 시점부터 계산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고 했다. 여기서 먼저 말씀한 7이레는 중건의 완성 시점을 가리킨다. 그로부터 62이레가 지난 후, 69이레에 이를 때에 장차 왕이 되실 초림의 메시아가 끊어질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계시는 유대인들에게는 아직까지도 비밀로 인봉되어 있다(‘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12:4)).

 

(3) 단락3(9:26-27)-재림:1이레의 시작과 70이레의 끝에 관한 계시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9:26-27)

 

26, 27절은 장차 예루살렘에 등장할 한 왕이 나타난다. 이 왕이 인류의 마지막 제국인 5제국1)의 왕인 짐승(적그리스도)과 열 뿔(적그리스도제국)을 가리킨다. 이 왕은 종말에 등장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의해 심판을 받으므로 뜨인 돌로 무너지게 된다.

② 이 왕에 의해 한 이레의 언약이 맺어지게 된다.

 

③ 이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고 우상을 세우고 유대인들로 그 앞에 경배하게 하며 종교적 핍박을 가하게 된다.

④ 이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며 이 땅엔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왕국이 세워지게 된다.

⑤ 한 이레의 언약이 이루어지려면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한다. 열 뿔(현재 EU10대 강대국으로 재편)이 등장해야 한다.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을 한 왕(적그리스도)이 출현해야 한다.

 

칠십이레와 한 이레는 종말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계시이다. 다니엘서의 계시를 상징적으로 해석할 경우는 다니엘 2장의 신상을 무너뜨린 돌이 초림의 예수가 된다. 뜨인 돌이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는 신약시대의 교회가 된다. 따라서 한 이레는 종말적인 기간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전 역사의 과정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계시를 실제적 사건의 계시로 해석할 경우는 신상을 무너뜨린 돌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된다. 한 이레 기간은 종말을 나타내는 일정한 기간의 계시로 해석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상징적 해석이나 실제적 해석이냐의 문제부터 신중히 생각하여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의 해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2. 다니엘 924-27절의 연심

 

(1) 이 계시는 누구에게 준 것인가?

 

먼저 24절에 나온 말씀에서 이 계시의 대상자는 누구이고 어느 국가에 주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한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

 

이 말씀을 보면 이 계시는 분명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한 약속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네 백성이라고 지적하셨다. 여기서 네 백성이란 대상은 교회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네 거룩한 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예언과 성취의 대상은 다니엘과 혈통을 같이하는 유대인들이며 다니엘의 고향인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70이레로 기한을 정했다는 것은 유대인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이룰 시기를 말하며, 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 왕국이 세워지는 그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은 유대인들의 구원이 이루어질 때, 그들에게 돌아갈 축복을 의미하고 있다. 결코 교회 시대의 구원에서 오는 성취가 아니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다니엘에 기록된 70이레 유대인의 구원 시기 즉, 종말에 있을 교회의 구원계획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

 

한 이레는 왜 7년인가? 그러면 여기서 한 이레의 개념이다. 한 이레는 기간으로 얼마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한 이레가 7일인가? 아니면 7년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한 이레가 7일인 경우, 70이레는 490일에 불과하다. 이런 날짜는 이 사건의 해석에 해당이 될 수 없다.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한다면 70 이레는 49만 년에 해당 된다. 69 이레는 483.000년으로 초림의 메시야가 끊어지려면 아직도 48만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하루를 1년으로 볼 경우는 어떤가? 69이레는 483년으로 성전건축령이 내려진 BC 445년으로부터 계산하면 초림의 메시야의 끊어짐이 AD 38년이 된다. 이렇게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민수기 1434절 등 성경의 실례가 있기 때문이다.

 

(2) 칠십 이레의 역사적 성취과정(25-27)

 

다니엘이 70 이레의 계시를 받은 때는 다리오가 갈대아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이다. 그 해가 BC 538 년쯤 된다.

 

1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9:1,2)

 

다니엘이 이 계시를 받은 후, 곧 유대인들의 1차 귀환령이 내려졌다. 이때가 BC 536년경이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1:1)

 

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1:2-4)

 

그 후 BC 457년경에 2차 귀환령이 있었다.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7:7)

 

12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14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15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16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17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18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19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7:12-20)

 

그리고 얼마 후 또 한 차례의 귀환령이 있었다. 이 귀환령이 BC 445년 아닥다스다 왕 20년에 있었던 3차 귀환령이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2:1)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2:5)

 

여기서 과연 어느 왕이 내린 귀환령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으로 보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9:25-26)

 

1차 귀환령의 경우,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성전 건축령이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중건령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귀환이다. 2차 귀환령의 경우, 유대인들이 건축된 하나님의 전에 예물을 가져다가 드리라는 명령의 귀환령이었다. 이 또한 예루살렘성 중건령이 아니다. 3차 귀한령의 경우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라고 왕에게 아뢴 느혜미야의 간청에 왕이 허락하는 령을 내렸다(2:5-6). 본문을 그대로 보면 성전 건축으로 보이지만 이미 1차 귀환을 통해 BC 516년에 건축된 스룹바벨 성전을 다시 건축할 이유가 없다. 유다 형제들을 통해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느혜미야가 고국으로 돌아가 성벽을 중건하기 원했던 것이다(1:2-3).

 

*번역본 비교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2:5)

개역-‘성을 중건(重建)하게 하옵소서현대인-‘성을 재건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표준새번역-‘성읍을 다시 세우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킹제임스흠정역-‘도시를 건축하게 하옵소서

NIV-‘I Can Rebuild It’ NSAB-‘That I May Rebuild It’

KJV-‘That I May Build It’ NWTHS-‘That I May Build It’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9:25)

개역-‘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현대인-‘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내릴 때부터

표준새번역-‘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킹제임스흠정역-‘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

NIV-‘Decree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NASB-‘Decree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KJV-‘The Commandment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NTHS-‘Word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5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2:5-6)

 

2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1:2-3)

 

중건重建은 왕궁 등을 보수하거나 고쳐 지을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재건再建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느헤미야 25절은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허락하는 령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고 명시된 70이레의 시작의 시발점은 BC 445년 경이라야 올바른 기한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70이레의 시작 후 7이레 49년 동안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라고 했는데, 느헤미야에 의해 중건된 성벽의 역사는 52일로 마쳐졌다(9:25;6:15). 이 간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김병훈 목사는 본문을 보면 이 건축이 그 곤란한 동안에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은 확실히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자들이 당한 반대와 억압에 관한 언급인 것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읽어보면 고레스의 칙령후 유대인들이 시작한 이 성역에 대한 반대의 성격을 알 수 있다(1:1-2;4:1이하,6:1이하참조). 도시의 완전한 복구를 광장과 거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이 부분을 개역성경에는 거리와 해자로 기록되었다.). 일반적인 관용법에서 거리라는 용어는 가끔 도시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말이다, ‘해자란 말은 참호를 의미하는데 도시의 외벽 방위선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거리는 도시의 내부를 가리키고 해자는 외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완전한 복구를 말하고 있다.”고 해석한다.2) ‘광장과 거리를 도시 전체의 복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권혁승 박사는 “70이레 가운데 첫 번째 7이레인 49년은 예루살렘 재건 명령이 내려진 주전 445년으로부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활동했던 주전 397년까지이다.”고 해석한다.3) 그런가하면 이강은 목사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는 단순히 건축하라는 법령과는 달리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법을 집행할 행정관과 재판관들에 대한 임명권까지 부여했다(7:12-26). 관리들의 주택과 재판소, 거리와 성벽 등의 건축을 허가했다.…성경에는 7이레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성전을 완공하고 길거리가 복구되어 예루살렘성이 복원되는 데는 꼭 49년이 걸렸다.”고 해석하고 있다.4)

 

전자는 구약 선지자 활동 종료 기간으로 상징적의미가 있고, 후자는 예루살렘 전체의 도심과 행정 기능 회복이라는 실제적의미가 있다. 김 목사도 이 해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절대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둘 다 타당성이 있는 견해이다. 저자는 후자에 동의적이다. 중요한 것은 둘 다 49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3) 메시아 탄생과 끊어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70이레에 성취될 일에 대한 예언에서 69이레가 이르렀을 때, 이루어질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것이 둘 다 메시아의 예언이며 한 메시아에 관한 것인데, 69이레에 끊어지고 또 70이레에 다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9:25)

 

7이레가 지나고 62이레의 도래는 곧 69이레가 온 것을 의미한다. 69이레는 햇수로 483년이다.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했을 때의 일이다(69×7=483). 그러면 이 수효에서 중건령이 내린 445년을 제하면 38년이 된다. 38년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으로 산출된 연대지만 이 연대는 정확히 계산된 연대가 아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그들대로의 율법에 나타난 달력 계산법으로 기원전 연대를 계산하고 있는데 아담이후 3761으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현재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달력은 창세기기원 BC 3761107일을 인류의 최초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 서기력은 BC 4000년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연대 계산법을 따르면, 2018년은 유대력으로는 5779년이 되며, 유대인들과 서기력의 연대의 차이는 무려 239년이나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연도도 530년경 로마 신학자 디오니시우스가 서력기원을 정할 때, 4년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이 발견되어 서기 원년에 4년을 소급해 BC 4년이란 견해를 발표하였다. 오늘날 그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따르고 있는데, 헤롯 대왕의 사망 시기 등 다른 문제가 발생 추가로 2-6년까지 차이를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계산상으로 38년이 나왔다고 하여, 33년과 5년의 차이가 난다고 배격할 일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확한 년대에 맞추어 역순으로 계산을 하게 되면, 다른 시점을 중건령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尾註>

 

1) 인류의 제국이 다니엘서에는 5제국(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 마지막제국)으로 요한계시록에는 7제국으로 기록되어 있다(2:38-43;17:9-10). 그 이유는 다니엘서에서는 바벨론을 신상의 머리로 하여 신상의 제국의 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바벨론 왕에게 신상의 제국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제국이 7제국으로 확대 등장하고 있다. 다니엘서의 제국 역사는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요한계시록의 경우 애굽에서 부터 역사상 출현한 첫 번째 제국부터 기록되어 있다. 교회에 주신 종말 계시인 요한계시록은 전 인류에게 주신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애굽과 그 후에 등장한 앗수르가 추가된 것이다.

 

2) 이재현, 『이어쓰는 다시 예연하여야 하리라』「다니엘서에 나타나는 장차 한 왕과 유대인들의 종말적 환난에 관한 연구」, 도서출판 헤이스, 2017.8.1.p169.

 

3) “이방인의 때에 관한 예언과 성취”, 권혁승(서울신학대학교명예교수),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과 성취』, 5회 이스라엘신학포럼:이스라엘독립 70주년 기념포럼, 이스라엘신학포럼위원회, 2018.1.31. p.139.

 

4) 이강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말씀하신다』, 도서출판 종려가지, 2017.10.20.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