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 천년설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3) | 개혁주의 전 천년설 핵심주제(5-3) | 이재현목사 | 파루시아 아카데미 | 개혁주의 전 천년설(22)

파루시아 아카데미 2024. 3. 29. 19:41

3. 7년평화조약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7년평화조약은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에서 출발한다(9:27).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라고 하셨다(24:15). 이는 이레의 절반에 있을 일이다(9:27). 이 앞에 한 이레7년이라는 말씀이 나온다(9:27). ‘한 이레에 다음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이어지고 있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인 것이다. 이 계약의 전 3년 반이 지난 시점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때이다. 그렇다면 이레의 절 반이전 이레의 시작 때에는 자유롭게 제사와 예물을 드릴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평화조약이라는 단서이다. 이에 대해 어빈 백스터Irvin Baxter,1945-목사는 중동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아마겟돈 전투와 예수님의 재림으로 향하는 마지막 7년의 시간을 알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1)

 

이때 전 세계적으로는 평화조약에 의한 데땅트’détente 시대임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교회가 겪어야 할 7년간의 일들의 기록인 요한계시록이다. 반면 유대인들의 종말계시인 다니엘서에는 그들이 가장 중시하는 성전 예배 제사와 예물을 명시하고 것이다. 물론 이 성전은 제3성전을 가리킨다.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다. 이스라엘 독립이후 아랍권과 수차례 전쟁이 있었다. 만약 제3성전 건축이 시도된다면 중동은 전쟁의 불길에 다시 한번 휩싸이게 될 것이다. 나아가 세계 각 국은 이해에 따라 이스라엘과 아랍권 편에 서게 될 것이다. 3성전이 세계대전까지 발발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제3성전이 세위지고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보장된다면, 이스라엘만 이아니라 세계가 평화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유대 근본주의자들은 현재 예루살렘에 세워져 있는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를 헐고 제3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던 모리아산으로 제1성전인 솔로몬성전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성전은 언급하고 있지만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3성전이 건축될 장소로는 오마르 모스크이외에도 솔론왕궁의 터로 알려진 엘악사사원Mosque of Elaksa 또는 제2성전 파괴 후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일 수도 있다. 성전산을 분할하여 오마르 모스크 맞은편에 세워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성전이 아닌 장막 혹은 유대교의 대표적인 회당 형태 안의 성소와 같은 처소도 해당될 수 있다. 성전이 건축되는 것은 분명하다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 방안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열어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가 되었건 팔레스타인뿐 만아니라 전 아랍권과 세계 무슬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오마르사원은 마호메트Mahomet,571?-632가 승천한 곳으로 믿고 있는 곳으로 사우디의 메카Mecca, 메디나Medina와 함께 모슬렘 3대 성지이다. 여기에 세워진다는 것은 팔레스타인뿐 만아니라 전 아랍권과 이슬람국가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엘악사사원자리도 오마르사원과 넓지 않은 그 공간에 위치해있다. 통곡의 벽도 그들이 보기에 바로 아래쪽에 으리으리한 위용을 뽐내며, 온통 금으로 덧입힌 성전이 마주보고 서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세력 간 충돌은 불 보듯 한 일이다. 이 세 곳이 아닌 다른 위치에 건축된다고 하여도, 성전과 사원이 공존할 수 없는 땅이 팔레스타인이다. 극심한 테러Terror의 온상으로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제3성전으로 인한 충돌은 양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술한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비호하는 미국, 유럽연합 서구권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온 러시아, 이슬람국가연합의 대결이 된다. 이는 곧 세계대전의 위기이다. 물론 이시기가 되면 이 제3성전만 아니라 석유전쟁, 식량전쟁, 자원전쟁, 영토분쟁 등이 극으로 치닫게 된다.2)

 

이러한 전쟁과 분쟁은 지금도 심각하다. 이 모든 복합적인 요인에 대해 제3성전이 뇌관 같이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 때 이 모든 것을 중재할 자가 적그리스도이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라고 하였다(9:27). 그는 일약 세계의 영웅이 된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가 된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제3성전을 그자의 중재 하에 평화롭게 건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차 종말에 이스라엘에 있을 일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세계대전 등 난세亂世를 타개打開하고, 체결된 7년 평화조약의 체제로 들어설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는 제1성전의 예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다윗은 왕으로 등극한 후 수많은 전쟁에서 대적을 물리치고, 왕궁에서 평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며 탄식했다(삼하7:2). 성전건축을 소원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하셨다(대상22:8).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는 다윗에게 대신 너의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는 약속을 받게 된다(대상22:10). 하나님은 솔로몬에 대하여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고 하셨다(대상22:9). 솔로몬은 히브리어로 שְׁלֹמֹה쉴로모,영어:Solomon혹은Shlomo이다. 그 뜻이 평화롭다이다. 솔로몬이 평화의 왕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이다.

 

이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전쟁의 시대에 성전은 건축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평화의 시대에야 가능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3성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두 나라를 옹호하고 있는 국가 간의 이해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3차세계대전의 촉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3성전은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는 대 사건이다. 이러한 충돌을 화합의 장으로 이끌 인물이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는 평화의 사도로 칭송받게 될 것이다. 세계는 평화의 시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은 세계의 중심 사건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3) 예루살렘이 지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3성전은 그 중심의 핵이다.

 

7년 평화조약 체결 이후 3년 반이 지난 후 평화조약은 파기되는데, 이 원인 역시 성전문제 일 것으로 예측된다. 성경에 마지막 때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고 하였다(11:40). 남방 왕이면 중동아랍권 세력을 가리킨다. 지금은 이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그 때는 보유국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려면, 이스라엘과 대등한 혹은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원이 헐린 상황이라면 다시 세우려 할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파괴하여, 다시금 동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성지로 만들려 할 것이다.

 

남방 왕이 이렇게 전쟁을 감행할 수 있는 데에는 호기好機가 찾아 왔기 때문이다. 7년 평화조약 후,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의 비호 아래 성전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 3년 반이 끝나갈 무렵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신격화하고 제사를 간섭하기 시작한다(8:11,12,9:27,11:36;살후2:4). 이에 이스라엘의 항거가 시작될 것이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os IV Epiphanes,215?-BC163에 맞서 더렵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했던 마카비Makkabaioi 혁명 같은 상황이 도출挑出될 것으로 본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그동안 기회를 엿보던 남방 왕이 로 지칭된 적그리스도를 공격하게 되고 여기에 북방왕이 개입하여 전 세계로 확전될 것이다. 이 사건은 평화조약이 파기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국제정세로 볼 때 러시아로 상징되는 북방왕은 남방왕의 세력인 이란을 중심으로 한 아랍권에 가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세력도 종말에 다다르면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세력들이 바로 다니엘 73절의 네 짐승으로 상징된 종말에 등장할 4대 열강이다. 요한계시록 71절에는 4대 열강이 네 바람으로 상징되고 있다. 네 짐승이 네 바람에서 출현하는 다니엘 72절의 계시와 일치한다. 이 네 바람을 네 천사가 붙잡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정한 년 월 일 시에 네 천사가 유브라데 강에 네 바람을 놓게 된다(7:1,9:15). 이것이 4대 열강 간의 대전 곧 마지막전쟁 핵전쟁 유브라데전쟁인 제3차세계대전이다. 여기서 승자는 적그리스도로 마흔두 달 동안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7년평화조약은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음이 만방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았을 때에는 모든 권세가 적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간 상황이다.

 

이사야 338절에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The Treaty is Broken라는 말씀이 나온다. 히스기야가 두 차례 파견된 화친 사신들과 맺은 언약이 파기됐다는 뜻이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보낸 예물을 받고는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어기고 다시 예루살렘을 공략할 것이라고 위협했다(왕하18:14-19).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대적이 조약을 파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 하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이스라엘과 기브온이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이 여호수아에 의해 함락된 것을 지켜 본 기브온 주민은 묘책을 강구하게 된다. 먼 나라에서 온 사신들로 가장하여 화친을 맺자고 청한다.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 그들의 계략에 속은 여호수아는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었다’(9:15). 이에 대하여 NIV‘Treaty of Peace’, 평화조약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사흘이 지나서 이들이 가나안족속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지만 맹세를 저버릴 수 없었다. 이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의 올무와 가시가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23:13).

 

인간에 의해 체결된 그 어떤 평화조약도 인간을 지켜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베르사유조약Treaty of Versailles,1919.6.28이다. 프랑스 등 제1차세계대전 승전국들은 패전국이자 전범인 독일에게 막대한 재제를 가했다. 독일은 영토 15%와 국민 10%를 잃었다. 대포 5,000문과 비행기 25,000, 몇몇 장갑차와 모든 함선을 양도해야 했다. 군사력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1,320억 마르크를 전생보상금으로 1918-1988년까지 70년 동안 지불하도 명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독일인들에게 무자비한 보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오히려 군국주의가 태동하고 결국 나치의 대외팽창주의를 부추기는 계기로 작용했다. 1933년 권력을 잡은 나치는 조약의 모든 내용을 거부했다. 급기야는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프랑스를 침공 외무부의 문서 보존실에 있던 베르사유 조약 원본을 빼앗아 없애버렸다. 이와 같이 성경과 역사의 예에서도 보듯이 평화조약은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창시자 고 문선명을 홍보하는 사이트 메인화면의 소개 글이다.4) 무엇을 위해 살았다고 말하고 있는가? 인류 평화 일념이 그의 일생이었다는 말이다. 이 자 뿐인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교주 이만희 그리고 WCC세계교회협의회까지 종교단체의 중심 주제는 평화이다. UN등 정치단체의 제일추구 또한 평화이다. 인류의 관심이 평화이다. 그 평화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본고는 그에 대한 답변이다. 인간에 의해 체결된 그 어떤 평화조약도 온전할 수 없다. 장차 그 허구성을 여실히 보게 될 것이 7년평화조약인 것이다. 인류 역사이래 인간들은 끝까지 자기들을 지켜줄 찾다가 최종에 적그리스도를 선택하기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하였다(9:26). 그렇다면 그 자를 따른 자들의 결과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의 주도하의 7년 평화조약에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이 본고를 연구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Ⅲ 결론

한국교회에서는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이들이 많다.”라고 본 연구를 시작했다. 이러한 데는 성경을 도식화하거나 수학화 하는데에 대한 거부감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런 식의 성경 연구는 단천한 것으로 혹은 이단사이비들의 주장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영적인 주해를 해야 바른 연구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준이 재림(종말)에 관한 부분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초림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인간의 눈과 때로 그 분을 보고 깨닫게 하셨다. 그렇다고 영원하신 분이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으신 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1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라고 하였다(요일1:1-2).

 

예수님은 세상에서 삼십 세쯤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사십일 간 금식하셨으며, 삼 년의 시간 동안 가르치셨다. 십자가에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사십 여일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이 모든 초림의 사역을 이렇게 숫자로 표기했다고 불경건한 것이고 영적이지 못한 것인가? 아무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장차 어느 날에 오실 것이다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일시는 알 수 가 없다. 그렇다면 교회로 하여금 아무런 방비 없이 오시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그 날은 알 수 없지만, 그 날의 다가옴을 징조를 통해 알게 하셨다. 그 최대의 징조가 적그리스도의 등장인 것이다. 그리고 더 분명한 것은 그에 의해 이레의 조약이 체결될 때이다. 여기에서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을 도출해 낸 것이다.

 

이를 인정 할 것인가 불인정하실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후자는 결국 상징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차 적그리스도가 등장해도 그에 의해 평화조약이 체결되도 아무런 대응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들의 바람이 있다면 그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일 것이다. 이러한 데에는 무천년주의 입장이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역사적인 천년왕국을 현재 천상에서 성도들의 영적인 왕노릇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이 한 영역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나아가 성경 전체의 종말론을 영적 또는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마흔 두 달등을 전 3년 반 후 3년 반으로 보는 것을 결사코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로인해 종말계시들을 공중 분해시켜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과연 이것이 바른 종말론을 갖게 하는 입장인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초림의 예수님이 세상으로 내려 오셨다면, 재림도 그와 같이 임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다. 신약은 초림과 재림의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 이는 이미 구약에 예언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상이하게 취한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구약에서 초림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은 실제로 보고 재림의 예언은 상징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 예로 베들레헴은 초림의 장소로 분명히 인정하면서 감람산은 재림의 상징으로 본다(5:1).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인류가 보게 오시지만 그 발은 감람산에 서신다고 했다(14:4). 그 이유는 초림의 예수님을 거부한 선민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보이심으로써 구원의 완결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간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후 삼일만의 부활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1:17). 그러나 한 이레의 언약을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으로 연결하는데는 제동을 건다(9:27). 분명한 예증이 있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에 거부 반응을 갖는다면 초림과 재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차이를 돌아보기를 당부한다. 재림을 교리적으로만 말한 뿐 진정으로 갈망하고 그 분을 맞이할 신부로 단장하는데 소홀하다면 심각한 일이다(19:7). 직무유기라는 부분에서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 등 성경적 근거와 그 사실성이 수긍되는데도, 다른 이들이 증거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한국교회의 대세가 열지 않고 있기에 굳이 할 필요성이 없다는 생각 또한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만약 우리 세대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이레의 언약이 체결 되어도,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의 시대가 전개 되도,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극단적 종말론자들 견해라고 치부해 버리면 나도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가? 본고를 통해 이렇게 잠들고 있는 종말론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尾註>

 

1) http://www.bradtv.co.kr/end_time/177458

 

2)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이재현, 『징조는 픽션보다 참혹했다』, 「리비아전쟁 그리고 EU와 적그리스도」, 도서출판 좋은땅, 2013.2.8. pp127-154.를 참조하라.

 

3) 이재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선포를 통해본 종말시계(終末視界), 2018.8.1, pp.343-351를 참조하라.

 

4) “문선명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서문 중”. http://sunghwa.ffwp.org/life/life_kr.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