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1:18-25 2024.09.22. 主日禮拜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1:1-25)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주간 추석 명절 연휴 잘 보내셨어요. 온 가족이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다시 한 번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신약 성경 첫권 마태복음의 서언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단지 아브라함과 다윗, 유대 한 지파, 이스라엘 한 민족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계보는 지구 역사의 분기점입니다. 금년 2024년은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서기력西紀曆에서 시작합니다. 서기력은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준말로 예수님이 탄생을 추정한 이전과 이후를 나눈 연호입니다. Before Christ 예수님 탄생 이전 BC, ‘주의 해’를 의미하는 라틴어 Anno Domini AD로 약칭됩니다. 이렇게 세계 역사의 중심이 예수님입니다. 역사 History 그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역사가 집약된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구약 예수님 오시기 이전 대망과 신약 예수님 오심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한 지파 한 민족의 구원자이신 왕이 아니라, 지난 역사 지금의 역사 장차의 역사의 구원자이신 만왕의 왕의 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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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系譜or族譜,genealogy 조상 때부터의 혈통과 집안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인류의 조상은 아담입니다. 계보를 기록하는 방법으로는 선조에서부터 자손에게로 기록하는 하강식下降式(마 1:1-16)과 후대에서부터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상향식上向式(스 7:1-5;눅 3:23-38)이 있습니다. 족보는 일종의 간추린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성경에 제시된 족보는 주로, 구속 역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기에 앞서, 그 중심되는 인물의 역사성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구약이 마감되고 신약을 시작하면서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창5:1-32;10:1-32,11:10-32,35:22-39,36:1-43,46:8-27;대상1-9장;스2:1-3,8:1-20;느7:7-63;마1:1-16;눅3:23-38).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Genealogies of Jesus Christ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1:1-16)과 누가복음(3:23-3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내려오면서 41명의 이름을, 누가는 예수로부터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77명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습니다. 마태 누가 두 권의 공통점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요. 약속된 자손임을 강조한 것이며, 아브라함과 다윗이 중요한 이름임을 나타낸 점입니다. 두 복음서 간의 차이는 마태는 유대인을, 누가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중시하는 그리스도의 왕적王的 신분을 강조함으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왕이 예수님이다는 것을 나타내려 하였고, 누가는 그리스도의 대사제적大司祭的 신분을 강조함으로 이방인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실 분이 예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신 것은 유대인으로서는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것이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신 것은 이방인으로서는 자신들도 택함받았다는 것입니다(창12:1-3). 유대인의 족보는 과거 우리나라와 같이 남자들만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다말에게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는 룻에게서’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3,5,6). 이들은 각기 깊은 사연을 갖고 있는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 다말, 라합, 룻은 가나안, 여리고, 보압 출신의 이방인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구속사는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포함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롬10:12).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셨습니다(삼하7:8-16).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사16:5).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예수)에게 주시리니”(눅1:32).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셔서,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다윗은 영원한 메시아이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모형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다윗의 후손으로 두 가지 언약을 모두 성취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만이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 참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신 사람의 이름입니다. 예수는 히브리어 ‘예슈아’ יֵשׁוּעַ, 헬라어 ‘이에수스’Ἰησοῦς로 영어 Jesus로 그의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하나님의 독생자로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인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는 죽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란 참 사람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일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신성神性을 그대로 지닌 채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요1:14;롬8:3;딤전3:16).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18-20.참고/눅1:31,2:1-7).
예수님은 구약 창세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예언에 따라, 신약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창3:15;갈4:4). 결혼 전이었던 마리아, 동정녀 탄생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기적이자, 성육신 사건의 실재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잉태되셨기에 부정모혈父精母血 아버지의 정수精髓와 어머니의 피血로 태어난 사람과 같이 아담의 후손으로 필연인 원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출생이란 한 인간의 시작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면서 존재하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천지창조 이전 영원부터 계신 분입니다(창1:26.요1:1-3). 단지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족보를 지니셨고, 예수, 인간의 이름을 예수를 가지신 것입니다(마1:1-16,21,23;히7:14). 즉 그의 영원하신 신성에 원죄가 없는 순수한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동정녀 탄생이며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1항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일한 구속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서 사람이 되셔서 한 인격과 뚜렷한 두 본성 속에 하나님과 인간으로 영원히 지속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자人子로서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참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시22:22;마8:20;요1:14;빌2:7-8;딤전2:5;히2:9-10,14-18;요일4:2).
참 사람이셨기에 태어나서 자라나셨고, 목수 직업에 종사하셨으며, 시험받기까지 하셨습니다(눅2:40,52;막 6:3;마4:1;히2:18,4:15). 또한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을 지니셔서 목마르고 시장하셨으며 피곤하여 주무시기도 하셨고, 노하기도 하셨으며, 애통해 하시기도 하셨습니다(마21:18;요19:28;마8:24;요4:6;막3:5). 또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같이 죽어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히5:7;막10:21;요11:33;마27:59-60;히2:17). 모든 점에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참 사람이 되심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휼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히4:15).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마26:12;히2:14;요일 4:2).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체인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 왕을 뜻하는 히브리어 메시아מָשִׁיחַ,meshicha의 헬라어 음역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christos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왕인 신성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함께 신성神性,deity을 가지신 분입니다. 신성이란 ‘신의 성격’, ‘신의 성품’을 뜻합니다. 영원하여 시작과 끝이 없고 전지, 전능, 무소부재, 완전한 분로서 인격적인 유일신 하나님의 성품을 일컫는 말입니다(마9:3;롬1:20). 그러나 하나님의 모양으로 은이나 금으로 신을 새기고 조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성을 더럽히고 모독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칩니다(출20:23;행17:29).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 곧, 신성은 대대로 영원 불변하며, 이 성품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시33:11;히1:12;골2:9;약1:17;계1:8,21:6,13).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입니다(창1:26;요1:1-2,1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으며,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선언하셨다(마26:63-64;롬8:32;히1:2-3;마4:17,마26:39;요 10:18, 25).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사함의 권세를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장로, 서기관 등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죄사함의 권세는 하나님에게만 있다며,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십자가에 죽게 한 것입니다(눅5:20-21).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역사하십니다(빌2:6;고후4:4,6;골1:15,19;요20:17;행2:22,23,36). 또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일하셨습니다(사42:1;61:1;행10:38).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고, 또한 하늘로 올리우셨으며, 지금은 하나님 보좌에 우편에 앉히셨습니다(요16:5;행1:9-11;7:56;계3:21;행13:37;롬1:4;엡1:17,20-22;벧전1:21).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성자 예수님은 성부 아버지께로서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고, 지금도 세상 만물을 보존하고 계시며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십니다(요14:16,15:26;골1:17;히1:3;요1:15). 그리고 마지막 날 심판자로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고전4:5;고후 5:10;딤후 4:1). 예수님이 이 권능은 참 하나님이시기 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14:14).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임마누엘Immanuel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렇게 참 사람과 참 하나님이 되신 예수님은 임마누엘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를 인용한 것입니다(사7:14). 이사야 선자자는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다고 예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나도 고귀하셔서 저 하늘 위 높은 곳에만 계신다면,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그 예수님이 계신 하늘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영으로만 거하신다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육을 입은 인간이 영이신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오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육을 입고 오심으로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골1:15;히1:3).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그 어떤 종교에 신이 인간을 찾아온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요14:6;행4:12). 예수님 만이 우리의 모범자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요13:15). 예수님 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딤전2:5).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은 2천년 전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대속을 이루신 후,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영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 임마누엘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에 되기 위해서는 재림하셔야 합니다. 지구 역사 안으로 재림 주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실 때,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의 예수를 소망하는 신앙에 맞춰져야 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미완이 된 창조의 영광을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지금 개신교 안에서 큰 이유슈가 되고 있는 로잔대회입니다. 로잔대회는 현세의 국제, 정치, 경제, 종교, 기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정의를 복음, 선교라고 부릅니다. 어찌 되었건 좋은 것이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복음주의이고, 결국 인간의 힘으로 평화를 도모하자는 것이기에 자유주의입니다. 이 복음주의와 자유주의가 합해진 것이 신복음주의입니다. 이 운동이 로잔대회입니다.
이처럼 로잔대회의 가장 큰 주제 가운데 하나가 평화입니다. 평화는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순교를 잊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인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순교자들의 흘린 피가 교회에 거룩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순교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계20:4). 예수를 증거, 복음을 전하다가, 대적에게 목숨을 해함 받은 것이 순교입니다. 그렇다면 평화는 순교를 잊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 모든 민족, 모든 국가의 평화를 내세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를 증거하다가, 죽음을 당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모두가 평화요 모두가 구원이요 모두가 지복至福입니다. 예수도 다른 종교의 구원자 가운데 하나인데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증거할 필요가 없고, 예수 증거하다가 순교할 명분도 없어집니다. 종교대회 뒤에 숨겨진 마귀의 계략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고 말씀하셨습니다(요21:18-19.참고/행12:2). 이 예언 그대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하여, 12사도 모두 순교했습니다. 그러한데 모든 종교가 구원이고 평화라고 한다면, 2천년 교회시대에서 예수 이름 때문에 목숨을 희생당한 분들의 순교는 무엇입니까?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신학교 19회 졸업생으로 목사안수 후, 부산초량교회(1926-1931)에 부임하셔서. 거룩한 성장을 이루시고, 마산 문창교회로 이임하신 후. 경남노회장(1931-1936)을 역임하시면서, 금강산 온정리 장로교 목회자 수양관 250명 하기수련회에서 “예언자의 권위” 제하로 설교하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조국 유다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외쳤건만, 오늘의 목사님들이 현세의 권력에 아부라고 일본의 태평성대를 찬양하며 눈물은커녕 오히려 이 사악한 시대의 어두운 현실에 아첨만 하는가? 왜 벙어리만 되는가? 일사각오” 그러나 일제 경찰에 의해 설교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1936년 7월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인 평양산정현교회에 청빙받아 첫 설교가 “신사참배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범죄요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다가, 1938년 10년 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의성 경찰서에 7개월간 죽음과도 같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잠시 풀려난 1939년 2월 첫째 주일 임박한 당신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나의 5종묵의 기원”이라는 제하로 설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 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간 그 기도내용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 “5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저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이올시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이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얻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의 두 번째 기원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가지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고문이 끈질긴 만큼 나는 더욱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웬만한 믿음 가지고는 오래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을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단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하는 고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제 받는 고난, 길어야 70 년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천 년 만 년 영원무궁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은 어차피 한 번 죽어 썩을 몸이 죽는 것 뿐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생불사의 몸이며 영원 영화의 몸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세 번째 기원은 “노모老母와 처자妻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지중하고 남의 가장, 아비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재차 요한에게 부탁하실 때의 심정 어떠하셨을까요?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셨을까요?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 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대목자장이신 예수님 손에 이들을 맡기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재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떨리는 목소리, 깊은 흐느낌, 흐르는 눈물, 흐느끼는 회중. 감시하던 일본 형사들도 슬금슬금 교회당 밖으로 나가버림)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께 짐 지울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목메어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우리 주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네 번째 기원은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정조가 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나라를 위해서 선죽교에다 피를 뿌리니 대竹야 났으랴마는 그 절개 대보다 청청창창 시푸르도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건 없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예수를 사랑하니 용광로 같은 풀무불이 두려우랴! 예수를 사랑하니 굶주린 사자굴도 두렵지 않도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못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 구구도생이 어찌 말이 됩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 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나의 다섯 번째 기원은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혹여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가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시옵고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주여, 영광 받으옵소서!!! 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기쁨을 주신 주님께 모두 감사의 박수로 영광 돌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리고 다같이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를 합창했습니다.
이후 주기철 목사님은 다시 투옥되었고. 1939년 12월 19일 평양노회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사님을 파면하는 중벌을 내렸습니다. 영어의 몸이 된지 6년째인 1944년 감방에서 옥사했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에 순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평화로 순교를 지운다는 것은 교회의 생명인 순결, 그리스도의 신부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순교의 거룩한 피 위에 전 세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 증거하다가 당하는 순교가 없고, 여러 종교와 단체와 권력이 힘을 모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총체적 선교로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진리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림 주께서 오셔야 인류의 평화가 도래되는 것입니다. 로잔대회는 재림의 예수가 하실 모방하는 것이며, 재림예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이교 등과도 손을 잡고, 정치, 국가, 전쟁, 기후, 종교의 문제를 해결하여 세계의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거짓 그리스도들, 거짓 선지자들, 거짓 사도들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고후11:13.참고/마24:24;막13:22;갈2:4;딤후3:6;벧후2:1;유1:4). 저는 비판과 판단과 정죄가 아니라, 경성과 분별과 기도를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평화로 순교를 잊게 하는 행위는 교회의 생명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순결입니다. 순결은 예수입니다. 예수를 위해 순교하는 것입니다. 순교가 교회의 생명인 순결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진정한 임마누엘입니다. 왜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합니까? 하나님은 악인의 불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악이 차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의 고난을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교가 차가고 있습니다. 악인의 죄악과 의인의 순교가 차는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의 회복인 천년왕국을 조성하셔서, 아담의 범죄로 이루지 못한 천지창조의 영광을 올려드리고, 이 나라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한 주님으로서,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세상의 모든 징조는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있고, 우리는 그날 의인으로 재림 예수를 영접하며, 임마누엘 그분과 함께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인 천년왕국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그 나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 후, 영원한 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롬1:8;룻1:8;잠13:21;계6:9-11;사65:17-25;고전15:24;계1:15;엡2:15-18;계20:6,21:10).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교회의 순교를 망각게 하고, 평화를 주제로 종교를 하나로 묶으려는 움직임은 종말에 평화의 왕으로 위장할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예수님을 흉내를 내고 인류를 사망, 영원한 죽음, 지옥으로 몰아넣을 자입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짐승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계13:8).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 누가 능히 서리요’(계6:16-17). 재림 예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하였습니다(계6:8). 바로 이 자를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계14:10-11). 지옥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평화를 외치면서, 타종교, 반성경적 단체, 비신앙적집단과 연합하는 이들은 장차 평화의 왕으로 위장할 적그리스도를 따르다 사망, 영멸에 이르고, 다시 오실 주님의 심판에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인생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the One and Only시며, 우리 인생들의 유일한 구원자Jesus the Only Savior로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으며, 십자가에 돌아가시어 우리 죄와 허물을 속량하셨고, 또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영생의 은혜와 천국의 소망을 보장해 주셨다. 그리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는 마지막 날 심판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의인들로 하여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복락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 임마누엘을 막는 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로잔대회는 재림 주께서 하실 일을 모방하는 것이며, 성도들에게 재림 예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혼돈과 혼란과 혼미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셔야 해결됩니다.
요셉은 약혼은 했지만 동기 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한 것이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마리아가 율법에 정한 형벌인 투석 당하지 않도록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레20:10;신22:22;요8:5). 그러나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0-23). 이렇게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24).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25).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대세가 아닙니다.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우리의 기준은 의인이 아닙니다.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전7:20;롬3:9-10). 우리의 기준은 인기가 아닙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우리의 기준은 말씀입니다. 요셉은 약속의 메시아 탄생하기까지 말씀에 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 전체에서,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로잔대회 총체적 선교로 대세를 형성하고, 유력한 신학자와 목회자 등 명망가가 선도하고,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집회로 발전해도, 말씀을 벗어난 것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고전4:6).
결론
2천 여 년 전 요셉과 마리아에게만 아니라, 양 떼를 치는 목자들에게도, 예수님 탄생의 복된 소식이 선포되었습니다.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눅2:13-14). 이 세상에 평화는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종교대회를 통해 추구하는 평화는 평화의 왕으로 위장할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다실 오실 예수님이 통치만이 평화가 도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오늘 영으로만 아니라, 종말에 육으로도 임마누엘 하실 주님을 맞이할 성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 임마누엘을 막는 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로잔대회는 재림 주께서 하실 일을 모방하는 것이며, 성도들에게 재림 예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에 참예치 못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모든 혼돈과 혼란과 혼미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셔야 해결됩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계20:4). 순교는 예수 증언과 하나님 말씀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정확무오한 말씀이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휼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체인 인간의 몸을 입고 참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심령 안에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날마다 뜨겁게 넘치게 살아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은 참 하나님이시기에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여!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과 다윗에게 하신 언약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것을 예수님이 성취하셨습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예수 믿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 임마누엘입니다. 지금 영으로만 아니라, 지구 역사 안으로 재림 주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실 때, 인류에 평화가 도래되는 임마누엘입니다. 그러나 종교대회로 이교와 손을 잡고, 정치, 국가, 전쟁, 기후, 종교의 문제를 해결하여, 세계의 평화를 이루자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경성하며 분별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모든 종교에도 구원있다는 주장은 순교를 잊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순결입니다. 순결은 예수입니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를 증거하다가 순교하는 것입니다. 순교가 교회의 생명인 순결인 것입니다. 그때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예수만을 구원자로 증거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 말씀에 따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인생이 말씀이어야 합니다. 로잔대회 총체적 선교로 대세를 형성하고, 유력한 신학자와 목회자 등 명망가가 선도하고,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집회로 발전해도, 말씀을 벗어난 것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주님이 오셔서, 온 인류에 평화를 이루실 때까지, 성경 66권 정확무오한 말씀이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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