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4:17 2024.10.13. 主日禮拜
“시험을 받으시다(막1:12-13;눅4:1-13)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비로소 천국을 전파하시다(막1:14-15;눅4:14-15) 12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어부들을 부르시다(막1:16-20;눅5:1-11)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다(눅6:17-19)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마3:1-16)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월은 섬김의 달입니다. 10.21(월)-(22) 양일간 교회 부설 파루시아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 제8차 공개세미나에 뜻을 함께하는 목사님 성도님들이 오셔서 종말의 사명을 나누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아름다운 교제를 갖고자 합니다. 중보와 헌신과 수고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로소 천국을 전파하시다(막1:14-15;눅4:14-15)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12.참고/막1:14-15.). 세례 요한이 제수를 아내로 맞이한 행위를 지적한 것에 앙심을 품은 헤롯은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마14:3-4.참고/눅3:19-20).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시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13). 이후 예수님은 4살부터 살기 시작하여 성년이 될 때까지 보냈던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 납달리, 거버나움 동네가 있는 갈릴리에서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동네 중 납달리Naphtali는 지명이면서, 야곱의 여섯째 아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창30:7-8,35:25;대상 2:2). 야곱이 임종 전 열두 아들을 축복할 때 납달리에 대해서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창49:21). 성경은 암사슴을 ‘우아함’을 지닌 존재로 아내에 대한 각별한 애칭이나 사랑스러움을 나타내는 통상적인 표현으로 쓰고 있습니다(참고/잠5:19). 또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납달리가 많은 사랑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는데요. 가나안에서 최고의 땅으로 물이 넉넉한 갈릴리 호수 지방의 19개 성읍을 물려받았습니다(수19:32-39).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납달리 땅에서부터 구원의 여명이 밝아올 것을 예언했는데요(사9:1-2). 이는 곧 메시아의 구원의 복음이 갈릴리 지방에서부터 퍼져나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14-15). 이사야 선지자로 보면 약 700여 년 전, 창세기 야곱으로 보면 약 1,860년 전 납달리에서 사역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참고/창49:21;사9:1-2;13-14).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리라는 것도(미5:2), 예수님이 자라실 곳이 나사렛일 것이라는 것도(사53:2), 예수님의 사역 중심 무대가 갈릴 리가 될 것이라는 것도 정확히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이같은 사실은 인류 구원 역사에 사람이 개입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합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7) 이때부터 예수님이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첫 일성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증거 사역은 오늘 우리에게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시면서,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참고/막16:15-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감당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들도 하늘나라를 전파하기 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누구도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라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1-11)
예수님에게 마귀는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고 하였습니다(2). 사람에게 배고픔이라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지금과 같이 언제든지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에서, 배고픔이 와도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식량을 생산할 수도 없고, 조달할 수도 없고, 조리할 수도 없는 ‘광야’에서 배고픔이란 생명과 직결됩니다. 그러한 중에서도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며 물리치셨습니다(4.참고/신8:3).
말씀으로 이겨라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의 양식만이 아니라, 영의 양식도 잊지 말아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목사만 아니라 성도들도 영의 양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 사는 것이지, 세상 사람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을 밟고 있기에 땅의 소산을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나,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분이 하늘이고, 하늘 신분에 맞게 하늘 양식을 먹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빌4:12).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고 하였습니다(빌4:11).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난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자족’自足에 국어 정의는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국어 정의를 넘어 말씀 정의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지금 내게 배부름이 있다면 배부름은 나의 상태입니다. 지금 내게 배고픔이 있다면 배고픔도 나의 상태입니다. 배부름이 되었던 배고픔이 되었건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배부름은 나의 것이고, 배고픔은 남의 것이다. 아닙니다. 배고픔도 나의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 정의입니다. 왜 내 삶의 정의는 항상 배부름이어야 합니까? 이것은 부ㆍ물질ㆍ재산 등을 절대시하는 맘몬니즘mammonism, 돈이 신인 자본주의 사상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자본주의는 성경이 아닙니다.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낫고, 사회주의보다 민주주의 낫고, 전체주의보다 개인주의가 좋은 것이지,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하에 있기에 성소수차별금지법 등을 입법하자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아예 법으로 막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로 가야 합니까?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있지만, 신본주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물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이 중심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배부름은 너의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은 남의 것이다. 그러니 돌들로 빨리 떡덩이를 만들어라.” 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면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려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구하여도 돌들이 떡덩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어줘야 정말 하나님이 아닌가? 하나님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15:22-24). ‘엘림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15:27) 하나님은 마실 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출15:27). 그러자 이번에는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며 먹을 양식이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출16:3). 하나님은 ‘해 질 때에는 고기(메추라기)를 먹고 아침에는 (만나)로 배부르’하였습니다(출16:12-13,31). 이스라엘은 430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의 대역사를 체험하고도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자 원망했습니다.
이때 하신 말씀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신8:3).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어줘야 정말 하나님이 아닌가? 하나님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교회에 다니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것이 마귀의 계략입니다. 떡덩이로 하나님을 지우려는 마귀의 간계를 주님은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려 하심이라’며 물리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2-13). 하나님이 내게 능력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우리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떡덩이, 생계, 물질로 하나님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술책을 물리쳐야 합니다.
배부름은 나의 것이면 배고픔도 나의 것입니다. 이것이 자족의 말씀 정의입니다. 이 말씀 안에 있으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배부르다고 당당하고 배고프다고 당당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나를 통해 일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두 주 후 10.21(월)-22(화) 1박 2일 동안 교회의 부설 <파루시아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 주최 제8차 공개세미나가 개최됩니다. 귀한 목회자와 평신도를 모시는 만큼 강의는 물론이고, 주무시는 곳이 불편하지 않도록 식사 등 여러 준비에 최선을 다합니다. 소요되는 경비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는 것은 우리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필요한 물질이 없어서 못 한 적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채워주시는 주님의 역사를 보아왔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도 풍부와 궁핍, 배부름과 배고픔, 어느 순간에도 떳떳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떡덩이도 책임져 주지 못하는 하나님 무슨 필요가 있는가? 교회는 문제를 해결애주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 마귀의 궤휼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믿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오늘도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섬김으로 이겨라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첫 번째 마귀의 시험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라. 물질의 지배가 아닌 말씀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양식, 생계, 경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마귀의 계략을 물리쳐야 합니다. 배부름도 나의 것이고 배고픔도 나의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정의입니다. 이 말씀으로 자족할 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과신과 섬김을 혼동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는 것입니다(5-6).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시자, 마귀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11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91:11-12).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성전에서 뛰어내리도록 하여, 무리 앞에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과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답게 보여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과신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장 먼저 말한 것은 마귀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송하면서 실상은 섬기러 온 것을 잊고, 과신하러 온 것으로 혼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섬기기 위해 하나님 아들로서 온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며 물리치셨습니다(7.참고/신6:16).
우리는 불신자에게 “네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자라며, 한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라”라며, 비소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간혹 이지만 성숙하지 못한 성도에게도 “네가 기도하는 힘이 부족하나 보네 더 간절히 기도해봐”라며, 충고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내게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만, 부정적으로 내가 믿는 하나님을 격하시키고, 나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면, 마귀의 시험임을 알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내 믿음의 대상 하나님이 손상되거나, 내 자신의 믿음을 저울질하는 것은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능력을 구하여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고, 힘을 다해 기도해 보아도 열어지지 않을 때도, 여전히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십니다(히11:1). 우리는 과신하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체가 섬김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섬김과 사람 섬김을 달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위해 대속물이었기에 하나님 섬김이 곧 사람 섬김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빌2:8.참고/롬5:8-11;고전15:3).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입니다(히12:2).
그러나 마귀는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지 못하고 섬기기만 하면 실패자라고 속삭입니다. 사람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섬기기만 하면 우매자라고 속삭입니다. 사람에게 박수받지 못하고 섬기만 하면 우둔자라고 속삭입니다. 이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쳐야 합니다.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7-11.참고/마23:11-12). ‘청한 자’는 주님이시고, 저와 여러분은 ‘청함을 받은 자’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주님의 섬김으로 살아가면,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님이 높이실 줄 믿습니다. 과신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자에서 모든 피를 흘리신 주님을 보고, 끝까지 섬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일관一貫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마귀는 하나님 자녀의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섬김으로 이겨야 합니다.
경배로 이겨라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첫 번째 마귀의 시험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라. 물질의 지배가 아닌 말씀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양식, 생계, 물질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마귀의 계략을 물리쳐야 합니다. 배부름도 나의 것이고 배고픔도 나의 것 말씀의 정의입니다. 이 말씀으로 자족할 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두 번째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과신과 섬김을 혼동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것은 과신이 아니라 섬기려합입니다. 이 섬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마귀는 하나님 자녀의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신 주님의 섬김으로 살아가면, ‘무릇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님이 높이실 줄 믿습니다. 섬김으로 이겨야 합니다. 세 번째 시험 마귀에게 경배하라입니다.
예수님을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8-9). 지금 예수님은 광야에 계십니다. 두 주 전에도 말씀을 나누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여러 성읍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고을입니다(미5:2;마2:16;눅2:4). 예수님이 자라신 나사렛의 뜻 “싹, 순, 가지”는 연약하고 보잘것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사11:1;마2:23). 나사렛은 당시에도 빈촌이었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나사렛 사람을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요1:46;7:41,52;행24:5).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지나 성장지나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말들이 먹이통인 ‘구유’에 누이셨습니다(눅2:7).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금식하시는 곳도 아무것도 없는 광야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일생을 살아보았자 광야일진데, 마귀에게 경배만 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이 내 것이라면, 많은 갈등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갈등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 경배를 갈등하게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 경배, 전심, 영광에 갈등이 찾아오면, 마귀의 시험인 줄 알고 물리쳐야 합니다.
입시를 앞두고 관심이 성적입니다. 이때 “성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신앙이 두 번째가 되면 나의 경배가 하나님이 아니고, 성적일 수 있습니다. 진로를 앞두고 관심이 취업입니다. 이때 “취업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신앙이 두 번째가 되면 나의 경배가 하나님이 아니고, 취업일 수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관심이 능력있는 배우자입니다. 이때 “능력있는 배우자를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신앙이 두 번째가 되면 나의 경배가 하나님이 아니고, 능력있는 배우자일 수 있습니다. 사업을 앞두고 관심이 번창입니다. 이때 “번창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신앙이 두 번째가 되면 나의 경배가 하나님이 아니고, 번창일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관심이 번뜻하게 살아보자입니다. 이때 “번뜻하게 살기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신앙이 두 번째가 되면 나의 경배가 하나님이 아니고, 번뜻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몰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몰두가 우리의 경배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만이 계신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몰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10.참고/신6:13). 우리도 지금 내가 몰두하고 있는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고, 마귀라면 물리쳐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하나님께)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하셨습니다(시95:6). 하나님께만 경배하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4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시95:3-5).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만들어진 것에 몰두하지 말고, 만드신 분에게 몰두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시95:7).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경배할 때, 창조자 하나님이 주장하심을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천하 만국을 만드시고 섭리 운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천한 만국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이 경배, 전심, 영광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6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6-7). 하나님은 어떤 경배를 원하십니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배는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 만국의 영광은 천한 만국을 만드신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천하만국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배로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첫 번째 마귀의 시험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라. 물질의 지배가 아닌 말씀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양식, 생계, 물질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마귀의 계략을 물리쳐야 합니다. 배부름도 나의 것이고 배고픔도 나의 것 말씀의 정의입니다. 이 말씀으로 자족할 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두 번째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과신과 섬김을 혼동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것은 과신이 아니라 섬기려함입니다. 이 섬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마귀는 하나님 자녀의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신 주님의 섬김으로 살아가면, ‘무릇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님이 높이실 줄 믿습니다. 섬김으로 이겨야 합니다. 세 번째 시험 마귀에게 경배하라입니다. 하나님은 천하 만국을 만드시고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챕니다. 이 경배, 전심, 영광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천하 만국을 보여주는 마귀가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장해 주십니다. 경배로 이겨야 합니다.
동역자를 구하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들도 하늘나라를 전파하기 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누구도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려면 시험을 말씀으로 섬김으로 경배로 물리치는 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동역자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18-22)
예수님은 3년 동안 동고동락할 제자들을 택하시기 위해 ‘12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눅6:12-13).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 산에 올라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4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택하신 것입니다(눅6:14-16). 제자들은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 영혼을 인도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뜻에 함께할 성도, 동역자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열 두 제자에게 주님의 모든 권능을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능력으로 일할 동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해야 겠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안드레가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요한과 야고보가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고, 동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바랍니다(18-22). 부르심에 아멘하는자에게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동역자를 구하라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지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들도 하늘나라를 전파하기 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누구도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려면 시험을 말씀으로 섬김으로 경배로 물리치는 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동역자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복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자에게 복음을 가지는 것은 필수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23).
예수님은 가르치시고teaching, 전파하시며preching, 치유healing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가 복음을 증거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천국 복음을 들고,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 무장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 복음을 무장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8차 공개세미나도 주님의 명령인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리
세례 요한이 제수를 아내로 맞이한 행위를 지적한 것에 앙심을 품은 헤롯은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참고/마14:3-4;눅3:19-20). 이후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그동안 자라오셨던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로 옮기셨습니다(12). 이 또한 이사야 선지자로 보면 약 700여 년 전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탄생 베들레헴(미5:2), 예수님이 자라실 곳 나사렛(사53:2), 예수님의 사역 중심 무대 갈릴리까지 정확히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이같은 사실은 인류 구원 역사에 사람이 개입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첫 일성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증거 사역은 우리에게 이어집니다(7).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참고/막16:15-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들도 하늘나라를 전파하기 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누구도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입니다(3). 예수님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습니(2). 광야는 식량을 생산할 수도 없고, 조달할 수도 없고, 조리할 수도 없는 ‘광야’에서 배고픔이란 생명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며 물리치셨습니다(4.참고/신8:3).
예수님은 우리가 육의 양식만 아니라, 영의 양식도 잊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 이 세상에 사는 것이지, 세상 사람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밟고 있기에 땅의 소산을 양식으로 삼아야 하나,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분이 하늘이고 하늘 신분에 맞게 하늘 양식을 먹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름과 배고픔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였습니다(빌4:11-12).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자족’自足의 국어 정의를 넘어 말씀 정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배부름이 되었던 배고픔이 되었건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정의입니다. 배부름은 나의 것이고 배고픔은 남의 것이다. 이것은 부ㆍ물질ㆍ재산 등을 절대시하는 맘몬니즘mammonism, 돈이 신인 자본주의 사상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있지만, 신본주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물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마귀는 속삭입니다. “배부름은 너의 것이다. 배고픔은 남의 것이다. 그러니 돌들로 빨리 떡덩이를 만들어라.”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그러나 돌들이 떡덩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어줘야 정말 하나님이 아닌가? 교회는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거 아는가? 하나님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의 대역사를 체험하고도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자 원망했습니다(출15:22-23,27,16:3). 그때 하나님은 열두 샘과 만나와 메추라기를 준비시켜 주셨습니다(출15:27,16:12-13,31). 이때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신8:3). 떡덩이로 하나님을 지우려는 마귀의 간계를 주님은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려 하심이라’며 물리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능력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우리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빌4:12-13). 떡덩이, 생계, 경제로 하나님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술책을 물리쳐야 합니다. 자족의 말씀 정의는 배부름이 나의 것이면, 배고픔도 나의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 있으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배부르다고 당당하고 배고프다고 당당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나를 통해 일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설 <파루시아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 주최 제8차 공개세미나가 개최됩니다. 여러 준비에 최선을 다합니다. 경비가 적지 않게 소요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일 하심을 믿습니다. 풍부와 궁핍, 배부름과 배고픔 어느 순간에도 떳떳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떡덩이도 책임져 주지 못하는 하나님 무슨 필요가 있는가? 교회는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귀의 궤휼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믿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오늘도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시험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그가 너를 위하여 사자들을 명하여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입니다(5-6). 이 구절은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 말씀으로 시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높이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성전에서 뛰어내리도록 하여, 무리 앞에서 넘어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과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답게 보여보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맞지만 과신이 아니라 섬김기려 오신 것입니다(막10:45). 마귀는 하나님 아들로서 온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며 물리치셨습니다(7.참고/신6:16).
불신자에게 “네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자라며, 한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라”라며, 비소를 들을 때가 있고, 미성숙한 성도에게 “네가 기도하는 힘이 부족하나 보네 더 간절히 기도해봐”라며, 충고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긍정적이지 않고, 믿음의 대상 하나님이 손상되거나, 내 믿음을 저울질하는 마귀의 시험이면 물리쳐야 합니다. 능력을 구하여도 응답이 없고, 힘을 다 기도해도 열어지지 않을 때라도, 여전히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히11:1). 우리는 과신하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체가 섬김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섬김과 사람 섬김을 달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빌2:8./롬5:8-11;고전15:3).
그러나 마귀는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지 못하고 섬기기만 하면 실패자, 대접받지 못하고 섬기기만 하면 우매자, 박수받지 못하고 섬기기만 하면 우둔자라고 속삭입니다. 이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잔치 비유에서 ‘청한 자’는 주님이시고, 우리는 ‘청함을 받은 자’입니다(눅14:7-11.참고/마23:11-12).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10:45). 주님의 섬김으로 살아가면,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님이 높이실 줄 믿습니다. 과신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흘리신 주님을 보고, 끝까지 섬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섬김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마귀는 하나님 자녀의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세 번째 시험 내게 경배하라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리라. 예수님을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에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태어난 곳이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 자라신 곳이 나무 순 같이 빈촌인 나사렛, 태어난 곳도 말 먹이통이고,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일생을 살아보았자 광야일진데, 마귀에게 경배만 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이 내 것이라면 갈등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 경배를 갈등하게 합니다.
입시를 앞두고 관심이 성적, 진로를 앞두고 관심이 취업, 결혼을 앞두고 관심이 능력있는 배우자, 사업을 앞두고 관심이 번창, 인생을 살면서 관심이 번뜻하게 살아는 것이고, 신앙이 두 번째가 되면, 성적, 취업, 능력있는 배우자, 번창, 번뜻하게 사는 것이 경배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몰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몰두가 경배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몰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10.참고/신6:13). 예수님처럼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근원이 마귀라면 물리쳐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하나님께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하나님께만 경배하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시95:3-5). 만들어진 것에 몰두하지 말고, 만드신 분에게 몰두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시95:7).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경배할 때, 창조자 하나님이 주장하심을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천하 만국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한 만국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이 경배敬拜를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배는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미6:6-8). ‘오직 정의를 행하며’ 정의는 성경입니다. 말씀입니다. 사람의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우리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인자를 사랑하며’ ‘인자’는 “은덕에 보답하는 일”일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은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과신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대속물이 되신 섬김입니다. 우리는 섬김으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 만국의 영광은 천한 만국을 만드신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천하 만국 창조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배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천국 복음을 전파하려면, 시험을 말씀으로 섬김으로 경배로 물리치는 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동역자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3년 동고동락할 제자들을 택하시기 위해 밤을 지새우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들은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뜻에 함께할 성도, 동역자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에게 주님의 모든 권능을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마10:1). 우리에게도 주님의 능력으로 일할 동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안드레가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요한과 야고보가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고, 동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바랍니다(18-22). 부르심에 아멘하는자에게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천국 복음을 전파하려면 시험을 말씀으로 섬김으로 경배로 물리치는 것이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동역자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복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자에게 복음을 가지는 것은 필수입니다.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23-25). 예수님은 가르치시고teaching, 전파하시며preching, 치유healing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복음을 증거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복음을 들고,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 무장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 복음을 무장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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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1)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러 ‘성령에게 이끌리어’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왜! 시험을 받게 하도록 하실까요. 이기게 하려 하심인 줄 믿습니다. 시험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이겨라, 섬김으로 이겨라, 경배로 이겨라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자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라고 하였습니다(11).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시었습니다. 우리에게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함께하고, 주님의 능력으로 일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 할 수 있는 동역자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시자,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고 하였습니다(24-25). 우리가 회개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 복음으로 무장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면, 주님이 역사, 구원과 회개와 중생(거듭남)과 변화와 헌신의 결단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 능력의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첫 번째 마귀의 시험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라, 물질 지배가 아닌 말씀 지배를 받게 하옵소서. 양식, 생계, 물질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마귀의 계략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주님 배부름도 배고픔도 나의 것입니다. 자족하라시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말씀 안에서 당당히 나아갑니다. 내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두 번째 마귀의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무리 앞에 과신을 충동 하나님 아들로서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의 섬김을 망각하게 했지만, 물리쳤습니다. 주님의 섬김으로 살아가면, 정한 때, 주님이 높이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목적을 망각하게 하는 마귀를 물리치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보고, 끝까지 섬김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세 번째 마귀의 시험 내게 경배하라. 마귀는 천하 만국 영광을 보여주었지만, 하나님은 천하 만국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보여주는 마귀가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가로채게 하는 마귀를 물리치게 하옵소서. 하나님만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주님의 뜻에 함께할 동역자, 주님의 능력으로 일할 동역자, 주님의 부름에 아멘하는 동역자를 세워주시고 보내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천국 복음을 들고,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 무장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 믿고 구원 받아라, 천국 복음을 무장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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