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는 사람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5:10-12 2024.10.20. 主日禮拜
“복이 있는 사람(눅6:20-23)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소금이요 빛이라(막9:50;눅14:34-35)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와 율법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노하지 말라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간음하지 말라(마19:9;막10:11-12;눅 16:18)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맹세하지 말라 33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눅6:29-30)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눅6:27-28,32-36)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1-48)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일 10.21(월)-(22) 양일간 교회 부설 파루시아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 제8차 공개세미나에 뜻을 함께하는 목사님 성도님들이 오셔서 종말의 사명을 나누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아름다운 교제를 갖고자 합니다. 중보와 헌신과 수고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살부터 살기 시작하여 성년이 될 때까지 보냈던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 납달리, 거버나움 동네가 있는 갈릴리를 중심 무대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셨습니다(마4:13,23). 갈릴리호수의 북쪽 막달라에서 가버나움쪽으로 약 1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갈릴리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이 있습니다. 지금은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으로 불리는 이 ‘산에 올라가 앉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에게 ‘입을 열어 가르쳐’ 전하셨습니다(1-2). 이를 산상수훈山上垂訓,the Sermon on the Mount 또는 산상보훈山上寶訓 그리고 예수님이 산에서 하신 설교라고 해서 산상설교山上說敎라고도 부릅니다.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이 말씀은 ‘기독교의 대헌장’ 또는 ‘기독교 윤리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주옥같은 말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팔복Beatitudes: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은 팔복Beatitudes입니다. 말 그대로 여덟 가지의 복입니다. 이로 인해 주님이 말씀을 전하신 산을 팔복산이란 별칭으로 부릅니다.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3-12)
관심있게 보신 분들은 복이 8개가 아니라 9개인 것을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9번째 복도 ‘의를 위하여’로 시작되는 복과 연결되기에 통칭 팔복이라 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은 당시 유대인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복과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동안 율법에 명시된 복 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3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10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신28:3-13)
율법에 명시된 구약적 개념의 복이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이라면, 신약적인 주님의 복은 영적이고 내적이고 이상적理想的ideal 복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적으로 구약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얻고 싶지, 신약 마태복음의 복은 지금 당장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주시기 전에 전제하신 것이 있습니다.
“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13…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28:1-3,13-14.참고/레 26:3-13;신 7:12-24).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15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신28:15-19). 그러므로 하나님 명령과 규례를 떠난 물적 외적 현실적 복들은 저주가 되어,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화로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명령과 규례’는 율법입니다, 율법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선을 말씀합니다(롬7:12).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롬10:5.참고/레18:5).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롬3:20).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입니다. 율법 앞에 인간은 죄인임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는 율법입니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갈3:10.참고/신27:26). 그러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해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하였습니다(롬7:7).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지만, 율법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 진 것이라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3:19). 율법은 약속된 분이 오시까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하였습니다(롬3:21). 율법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율법과 동일한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2-24).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였습니다(갈3:1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마태복음 5장 21절 ‘옛 사람에게 말한 바’ 33절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38절 ‘너희가 들었으나’ 43절 ‘너희가 들었으나’.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들었으나’ 는 구약의 율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 앞에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으로 율법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들이 하나님이 선포하신 ‘모든 명령과 규례’ 율법을 준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모든 복을 받으려면, 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인 복과 관계 없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 내 안에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으로 내 마음이 하늘나라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가진 것이 여유롭지 못해 눈물을 삼킬 때도 있지만 주님의 위로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약삭빠르지 못해 뒤처지는 것 같지만 주님의 인도를 믿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 맛난 음식, 좋은 여행, 기쁜 나날이 아니어도 주님이면 만족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풍족하지 않아도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을 때 주님의 돌보심을 확신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욕심을 버리고 비워 주님의 일하심을 붙들게 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서로의 이해를 위해 노력할 때 주님의 자녀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0-12). 복음을 위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앞에서도, 하늘에서 면류관을 준비해 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인 복과 관계 없이 나를 믿는 너희는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이 있을 때는 좋지만 없을 때는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이 없을지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외적 자랑이 있을 때는 좋지만 없을 때는 마음이 허무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외적 자랑이 없을지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뜻대로 될 때는 좋지만 현실의 장벽에 막히면 마음에 자괴감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현실에서 뜻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 믿는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팔복입니다. 육체가 마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육체를 이끕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님께로 나가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예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막10:29-30.참고/마19:27-29;눅18:28-30). 산상수훈 첫 번째 가르침 팔복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입니다. 중심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반드시 주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전 : 마음을 위에 두는 것
예수님은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17-18). 이제는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요. 율법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리라’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면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19-20).
예수님은 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1-22). ‘엣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21). 구약의 율법에는 사람의 목숨을 해한자는 형벌을 받게 될 것리라고 하였지만, 신약의 복음은 ‘형제에게 노’를 발하고, ‘라가라’ 돌대가리야 비하하고, ‘미련한 놈이라’하여도 심판받고 공회에 잡혀가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22). 이러한 언사는 사람의 육체를 해하는 것이 아니기에 형사 처벌을 받지 않지만, 상대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자칫 그 사람이 격한 행동이나 극한 선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 또한 살인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우리는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23그러므로 예물(예배)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23-26).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먼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23). 또한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 노중에라도 빨리 화해해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주어서,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25-26). 이것은 사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있기 전 노를 발하지 말라, 원망살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19:9;막10:11-12;눅16:18.참고/출20:14;신 5:18).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7-28),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는 구약의 율법입니다(27).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28). 신약의 복음입니다. ‘음욕’을 품지 않는 또는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또한 주님은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간음’이 드러난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31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31-32)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31). 구약 율법에는 아내가 수치되는 일을 하면 이혼증서를 써주어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였습니다(신24:1-4). 그런데 ‘수치되는 일’을 가부장적 입장에서 적용 집에 살림만 잘못해도 쫓아 버렸습니다. 그것은 남자들이 마음껏 아내를 바꾸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32).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하였는데요(32), 이것은 이혼을 하고 난 후 재혼을 했다가 삼혼을 하고 다시 첫 번째 혼인했던 아내와 결혼은 간음이라고 하였는데, 첫 번째 혼인했던 아내가 자신과 이혼한 후,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는데 다시 결합하는 것은 간음이라는 것입니다(32). 이혼을 남용하는 것은 정욕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혼이 사유로 정한 간음에 대해서도, 율법에 ‘이혼 증서’를 써주도록 한 것은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다고 하였습니다(막10:4-5). ‘완악’한 인간이 정욕으로 이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간음을 이혼의 라인으로 한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 각이 하나님 앞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이 또한 정욕이 없는 또는 정욕을 품어 보지 못한 사람이 없기에 자신의 이혼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하고, 타인의 이혼에 대해서도, 돌을 던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허물이고 깨어지는 존재임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져 그가 실족하게 되었다면,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29-30).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있기 전 타인의 간음을 보지 말고 자신의 음욕을 보고 겸허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33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33-37).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인용하시면서(참고/레19:12;민 30:2;신 23:21),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3). 신약의 복음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면서,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34). 우리가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는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맹세가 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땅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까?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35). 이 지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5). 그 이유는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라고 하였습니다(35). 옛날에 우리나라는 한양에 누가 산다고 하였습니까? 상감마마가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처소로 믿었습니다. ‘큰 임금의 성’이 그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지구안 어느 곳에서 맹세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에게입니다(참고/출20:7;레19:12;민30:2).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맹세는 물론 인간 사이 맹세도 하나님이 듣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36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36-37).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라고 하십니다. 네가 알고 있는 것만 답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나친 것에 빠지지 말라, 유혹받아 넘어가 맹세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참고/눅6:29-30).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38-42).
구약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했지만(38), 신약 복음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39). 악한 자에게 대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9-42). 주님은 우리에게 내키지 않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는 강건한 속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엡3:16.참고/롬7:22;고후4:16).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참고/눅6:27-28,32-36).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3-47).
구약 율법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였지만(43), 신약의 복음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고 하십니다(43-47). 주님은 우리에게 이방인, 세리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가르침. 상대에게 노를 발하지 않아 격한 행동이나 극한 선택을 하지 않게 하고, 고소인과 화해하여 재판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 타인의 간음을 보지 말고 겸허히 자신의 음욕을 보는 것, 지나친 유혹에 빠져 맹세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 대적자가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가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는 강건한 속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 우리가 이방인, 세리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것. 그와 같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48). 산상수훈의 두 번째 말씀은 온전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온전은 마음을 위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서 온전한 선물을 내리워 주실 줄 믿습니다.
빛과 소금 :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
산상수훈 세 번째 가르침은 빛과 소금입니다. 예수님은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13-15.참고/막9:50;눅14:34-35).
소금은 맛을 내고 빛은 밝음을 냅니다. 맛은 향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하나님에게 올려드린 제물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고후2:5). 예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라(요일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행26:23). 우리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맛, 향기와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사43:2).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 찬송, 영광입니다. 창조자의 피조물인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영광이 있을 때, 누구 앞에서도 빛과 소금이 될 줄 믿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명은 받은 아브라함은 순종한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창12:1). 그런데 이 언약이라는 것이 굉장히 관념적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현실적이지 못하고, 다분히 추상적인 내용들입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과 아내 사래 그리고 조카 롯까지 달랑 세 명의 가족이 떠났는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어야 되는데, 전혀 접근성이 떨어지는 말씀 아닙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은 자신을 포함 세 명의 단출한 식구를 데리고 떠나면서도,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고향인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 즉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이 하나님이 그에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행7:2). 갈대아 우르, 메소보다미아는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이 번성하여 우상이 창궐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의 영화가 가득한 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고향 갈대 우르에서 68년 그리고 중간 기착지였던 하란에서 7년을 살면서, 화려한 세상의 영화를 보았지만, 아브라함이 본 하나님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단 세 명이서 출발했지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에 가진 아브라함이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창12:3). 이에 대해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갈3:8). ‘땅의 모든 족속’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뜻 “열국의 아버지” 모든 자들의 아버지입니다(창17:5).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창17:6). 아브라함은 한 사람인데 그를 조상으로 믿는 이들은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 언약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의 첫 번째 아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자신들이 적통이라고 합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입니다(롬4:16).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해 번성한 민족과 나라들이 세계에 가득합니다. 왕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향력이 빛과 소금입니다. 그럴 수 있는데에는 아브라함에게는 메소보다미아 찬란한 영광과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정리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으로 오늘날 불리고 있는 ‘산에 올라가 앉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에게 ‘입을 열어 가르쳐’ 전하셨습니다(1-2). 이를 산상수훈山上垂訓,the Sermon on the Mount 또는 산상보훈山上寶訓 그리고 산에서 하신 설교라고 해서 산상설교山上說敎라고도 부릅니다. ‘기독교교의 대헌장’ 또는 ‘기독교 윤리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주옥같은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팔복Beatitudes: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복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은 팔복Beatitudes입니다.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3-12)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은 당시 유대인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복과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동안 율법에 명시된 복 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3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3-6)
율법에 명시된 구약적 개념의 복이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이라면, 신약적인 주님의 복은 영적이고 내적이고 이상적理想的ideal 복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적으로 구약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얻고 싶지, 신약 마태복음의 복은 지금 당장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주시기 전에 전제하신 것이 있습니다.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신28:1-,13-14.참고/레 26:3-13;신 7:12-24).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28:15-19). 그러므로 하나님 명령과 규례를 떠난 물적 외적 현실적 복들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화로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명령과 규례’는 율법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과 의와 선을 말씀합니다(롬7:12).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롬10:5.참고/레18:5). 그러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인간은 없고, 율법은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롬3:20).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는 율법입니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갈3:10.참고/신27:26). 그러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해야 합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지만,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의와 선을 알 수 있습니다(롬7:7).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율법과 동일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롬3:21). 그 의는 예수님이고, 그 분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롬3:22-24).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였습니다(갈3:13). ‘예수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마태복음 5장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들었으나’ 는 구약의 율법을 말합니다(21,33,38,43).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17). 율법 앞에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으로 율법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명령과 규례’ 율법을 준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모든 복을 받으려면, 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인 복과 관계 없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 내 안에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으로 내 마음이 하늘나라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가진 것이 여유롭지 못해 눈물을 삼킬 때도 있지만 주님의 위로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약삭빠르지 못해 뒤처지는 것 같지만 주님의 인도를 믿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 맛난 음식, 좋은 여행, 기쁜 나날이 아니어도 주님이면 만족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을 때 주님의 돌보심을 확신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욕심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주님의 일하심을 붙들게 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서로의 이해를 위해 노력할 때 주님의 자녀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0-12). 복음을 위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앞에서 하늘에서 면류관을 준비해 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적이고 외적이고 현실적인 복과 관계 없이 나를 믿는 너희는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이 있을 때는 좋지만 없을 때는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이 없을지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외적 자랑이 있을 때는 좋지만 없을 때는 마음이 허무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외적 자랑이 없을지라도 마음이 빼앗기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뜻대로 될 때는 좋지만 현실의 장벽에 막히면 마음에 자괴감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현실에서 뜻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 믿는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팔복입니다. 산상수훈 첫 번째 가르침 팔복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입니다. 중심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2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막10:29-30.참고/마19:27-29;눅18:28-30).
온전:마음을 위에 두는 것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이제는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요. 율법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리라’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17-18). 만약 그렇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19-20).
예수님은 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사람의 목숨을 해한자는 형벌을 받게 될 것리라고 하였지만, 신약의 복음은 ‘형제에게 노’를 발하고, ‘라가라’ 돌대가리야 비하하고, ‘미련한 놈이라’하여도 심판받고 공회에 잡혀가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22). 이것은 사람의 육체를 해하지는 않아 형사 처벌을 대상은 아니지만,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자칫 그 사람이 격한 행동이나 극한 선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 또한 살인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먼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23). 또한 고소인과 함께 법정으로 향하는 노중에라도 화해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주어서,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25-26). 이것은 사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있기 전 노를 발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19:9;막10:11-12;눅16:18.참고/출20:14;신 5:18).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는 구약의 율법입니다(27). 신약의 복음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28). ‘음욕’을 품지 않는 또는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간음’이 드러난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31). 구약 율법을 인용하신 것인데요. 아내가 수치되는 일을 하면 이혼증서를 써주어 집으로 돌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신24:1-4). 그런데 ‘수치되는 일’을 과부장적 입장에서 적용 집에 살림만 잘못해도 쫓아 버렸습니다. 남자들이 마음껏 아내를 바꾸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에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32). 또 이혼을 하고 난 후 재혼을 했다가 삼혼을 하고 다시 첫 번째 혼인했던 아내와 결혼은 간음이라고 하였는데, 첫 번째 혼인했던 아내가 자신과 이혼한 후,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는데 다시 결합하는 것은 간음이라는 것입니다(32). 이혼 남용은 정욕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혼의 사유로 정한 간음에 대해서도, 율법에 ‘이혼 증서’를 써주도록 한 것은 ‘완악함’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하였습니다(막10:4-5). ‘완악’한 인간이 정욕으로 이혼 남발을 막기 위해 간음을 이혼의 라인으로 한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각 각이 하나님 앞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이 또한 정욕이 없는 또는 정욕을 품어 보지 못한 사람이 없기에 자신의 이혼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하고, 타인의 이혼에 대해서도, 돌을 던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허물이고 깨어지는 존재임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져 그가 실족하게 되었다면, 실족하게 한 것이 한 눈이면 빼어버리라, 네 오른손이면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29-30).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있기 전 타인의 간음을 보지 말고 자신의 음욕을 보고 겸허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33-37.참고/레19:12;민30:2;신23:21).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인용하시면서(참고/레19:12;민 30:2;신 23:21),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3). 신약의 복음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면서,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34). 하늘은 하나님,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 예루살렘 큰 임금성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35).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안 어느 곳에서든지 맹세는 하나님에게한 것입니다(참고/출20:7;레19:12;민30:2).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맹세는 물론 인간 사이 맹세도 하나님이 듣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36).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고 하십니다. 네가 알고 있는 것만 답하는 것입니다(37).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나친 것에 빠지지 말라 유혹받지 말라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참고/눅6:29-30). 구약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했지만(38), 신약 복음은 악한 자에게 대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9-42). 주님은 우리에게 내키지 않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는 강건한 속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엡3:16.참고/롬7:22;고후4:16).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참고/눅6:27-28,32-36). 구약 율법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였지만(43), 신약의 복음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고 하십니다(43-47). 주님은 우리에게 이방인, 세리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가르침. 상대에게 노를 발하지 않아 격한 행동이나 극한 선택을 하지 않게 하고, 고소인과 화해하여 재판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 타인의 간음을 보지 말고 겸허히 자신의 음욕을 보는 것, 지나친 유혹에 빠져 맹세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 대적자가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가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는 강건한 속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 우리가 이방인, 세리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것. 그와 같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48). 산상수훈의 두 번째 말씀은 온전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온전은 마음을 위 두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 :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
예수님은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13-15.참고/막9:50;눅14:34-35).
소금은 맛을 내고 빛은 밝음을 냅니다. 맛은 향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하나님에게 올려드린 제물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고후2:5). 예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라(요일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행26:23). 우리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맛, 향기와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사43:2).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 찬송, 영광입니다. 창조자의 피조물인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영광이 있을 때, 누구 앞에서도 빛과 소금이 될 줄 믿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명하셨습니다(창12:1). 그런데 아브라함과 아내 사래 그리고 조카 롯까지 달랑 세 명에 불과한데 ‘내가 너로 큰 민족’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12:2). 그런데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고향인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 즉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이 하나님이 그에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행7:2). 갈대아 우르가 문명이 발달하고 상업이 창대하고 우상이 범람했던 곳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영화가 가득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브라함은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에 가진 아브라함의 이름의 뜻이 “열국의 아버지” 모든 자들의 아버지입니다(창17:5).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창17:6). 아브라함은 한 사람인데 그를 조상으로 믿는 이들은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 언약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의 첫 번째 아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자신들이 적통이라고 합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입니다(롬4:16).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해 번성한 민족과 나라들이 세계에 가득합니다. 왕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향력이 빛과 소금입니다. 그럴 수 있는데에는 아브라함에게는 메소보다미아 찬란한 영광과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 역사, 응답, 능력, 복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가 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산상수훈 첫 번째 가르침 팔복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입니다. 중심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산상수훈의 두 번째 가르침은 온전입니다. 하나님이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온전은 마음을 위 두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세 번째 가르침은 빛과 소금입니다. 소금의 맛은 향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을 하나님에게 올려드린 제물의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빛이시고 그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 찬송, 영광입니다(사43:2).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 역사, 응답, 능력, 복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산상수훈의 첫 번째 말씀 팔복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입니다. 중심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물적 외적 현실의 복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내세에 영생과 현세에서도 약속하신 백 배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두 번째 말씀 온전은 마음을 위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가르침. 노를 발하지 않아 상대가 극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 겸허히 자신의 음욕을 보는 것, 지나친 유혹에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게하는 것, 대적자가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가는 대적에게라도 내어 줄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 세상의 따름을 따르지 말고, 소외를 당해도 하늘의 따름을 따르라는 것.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마음을 위에 두게 하옵시고,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내려온다고 하셨사오니, 우리에게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내리어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세 번째 말씀 빛과 소금은 마음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 찬송, 영광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에 영광이 있게 하시고,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 역사, 응답, 능력, 복을 나타내 주시옵소, 그것이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가 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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