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8:18-22 2024.11.10. 主日禮拜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다(막1:40-45;눅5:12-16)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다(눅7:1-10;요4:43-54)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많은 사람들을 다 고치시다(막1:29-34;눅4:38-41) 14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나를 따르라(눅9:57-62) 18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막4:35-41;눅8:22-25) 23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막5:1-20;눅 8:26-39) 28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마8:23-27)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고를 지시고 : 예수님 만이 구원자 자격을 가지셨다
나병을 고치시다 : 못 고칠 병이 없음을 알게 하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들은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마7:28-29). 주님께서 천국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실 때 나타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큰 은혜를 받은 ‘수많은 무리가’ 돌아가지 않고, 주님을 ‘따르니라’고 말씀합니다(1). 그런데 그 무리 가운데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며, 고침 받기를 소원했습니다(2). 이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고 하였습니다(3.참고/막1:40-45;눅5:12-16).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시고teaching, 복음을 전파하시고preching, 이제 치유하시고healing 주님의 3대 사역을 행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마4:23).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첫 번째 치유로 ‘나병환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센병’Hansen's Disease 또는 나풍癩風으로도 불리는 나병癩病은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쉽지 않은 만성 전염성 질환입니다. 성경 당시에는 고칠 수도 치료제도 없는 ‘천형天刑으로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죄나, 조상의 죄가 많아 하늘에서 내린 형벌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병을 치유하셨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다른 병들을 고치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주님을 따르는 무리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병에서 치유받은 자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하셨습니다(4). 구약에 율법에는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제사장에게 찾아가도록 하였습니다(레13:1-2). 제사장이 진찰로 나병으로 확인되면 ‘부정하다’는 말과 함께 정한 곳에 가두었습니다(레13:3-4).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나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진영 밖에서 격리 조치를 한 것입니다(레13:46).
나병에서 정결하게 된 것 또한 제사장의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레14:2). 제사장이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진영’에서 나가, 외부와 격리된 나병 환자를 찾아가 진찰하고, 환부가 나았으면, 정결 제사와 예식을 거행한 후, 진영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레14:3-8). 예수님이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나병에서 고침 받은 자에게 하도록 명한 것은, 제사장으로부터 고침 받았음을 확인하고,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적으로 인정받기 위함이었고, 주님의 치유하심은 일시적이 아니라, 완전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심으로 못 고칠 질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한 것입니다. 이 시간 모든 질병이 예수님 이름으로 치유된 줄 믿습니다.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치시다 : 이방인도 믿으면 천국 백성임을 알게 하다
이후,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5-6). 백부장이 누구인가에 대해 수차례 설명을 드렸습니다. ‘백부장’百夫長,centurion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주둔하던 군대 ‘백인대’百人隊, 100명으로 구성된 부대의 지휘관입니다. 안보뿐만 아니라, 치안과 사법까지 담당하는 권세를 가진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 사람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자신의 병도 아닌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시기를 친히 찾아와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백부장의 하인은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배자로서 피지배자 신분의 종의 고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라고 하였습니다(눅7:2). 백부장의 두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믿음과 하인을 사랑했던 인격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기특하게 보셨던지 ‘내가 (친히)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였지만(7),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며, 이 노중에서 말씀만 하여도 하인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8-9). 그 자리에는 산상수훈을 듣고 따라온 무리 가운데 일부가 아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고백을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10).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후,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하시면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11). 구약적 개념의 천국은 히브리어 ‘גַּן עֵדֶן’ ‘갠 에덴’an eden으로 에덴동산입니다. 또 다른 히브리어로 ‘מַלְכוּת שָׁמַיִם’ ‘말'쿠트 샤마임’malkhut shamaim ‘מלכות’은 왕국 ‘שמים’은 하늘로 하늘 왕국입니다. 천국의 헬라어는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호 바실레이아 호 우라노스'로 ‘우라노스’ouranos는 영어 Heaven으로 하늘이고, ’바실레이아‘basileia는 영어 Kingdom왕국으로 하늘 왕국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 에덴동산과 같은 하늘 왕국이 세워진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 이방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하늘나라, 천국에 입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이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마4:17). 영어 성경 중엔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 뜻은 회개하라, 천국이 내 손에 있다는 말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너희 눈앞에 있는 예수를 믿어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바깥 어두운 데’ 즉 지옥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라고’고 하신 것입니다. 천국 하늘나라와 반대인 “죽은 자들의 나라”인 ‘지옥’hell은 히브리어 ‘스올’שאול=쉐올Sheol, 헬라어ᾅδῃ ‘하데스’Haidēs 또는 γέενναν ‘게헨나’Gehenna로 번역됩니다.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있음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13.참고/눅7:1-10;요4:43-54). 이 말씀은 하인의 병을 고치신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하인의 병을 고치신 주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본문의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에 대하여(11), “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눅13:29-3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창12:3). 또한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창18:18,22:8,26:4).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막16:15).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고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골1:23)’.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은 이렇게 구약 아브라함에게 ‘모든 족속’ ‘천하 만민’으로 신약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역사와 오늘 역사와 장차 역사 가운데, 동서남북 천하만민 유대인이 되었건 이방인이 되었건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입성이요. 불신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치다 : 주님을 따름이 옳음을 알게 하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 위대한 여정에 함께 할 제자들을 택하시기 위해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눅6:12-13). 이렇게 주님의 부름을 받은 ‘14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필두로) 빌립과 바돌로매와 15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가룟 유다’을 제자로 택하신 것입니다(눅6:14-16).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치신 후, 같은 동네에 사는 수제자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14). 그 이전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베드로는 어떤 일을 하였습니다.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4:19).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받은 베드로는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였습니다(마4:22). 이렇게 아버지와 아내를 두고 떠났던 베드로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 스승인 예수님을 모시고 고향 집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웠습니다(14). 그동안 집을 떠나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베드로가, 모처럼 큰마음을 먹고 집에 와보니, 장모님이 앓아누우신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었다고 하였습니다(15).
이 순간 베드로는 얼마나 감사겠어요. 자신이 믿고 따른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족들에게 보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뿐 아니죠. 베드로의 아버지와 장모 그리고 아내도, “주를 따르겠다”고, 집을 나선 베드로가, “정말 따를 분을 따르고 있구나”하는 안도와 기쁨을 갖지 않았겠습니까? 주님은 이를 통해 자신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합니다. 주님이 제자의 집을 찾으셨던 것처럼, 성도님들 가정에 찾아주셔서, 주님이 함께하심을 온 가족이 보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귀신을 물리치시고 : 어떤 것도 옭아맬 수 없음을 알게 하다.
예수님의 치유에는 질병만이 아니었습니다. 귀신들을 물리치셨습니다.
28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28-34.참고/막5:1-20;눅 8:26-39)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게 되는데, 이 둘이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였습니다(28).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귀신들린 자들이 갑자기 크게 ‘소리 질러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면서 예수님을 알아 보는 것입니다(29). 그때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라며 구하는 것입니다(30-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라 (명)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고 하였습니다(32-34).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였습니다(약2:19). 예수님을 만난 귀신들이 자신들을 쫓아내시려거든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돼지에게 들어갔는데 한 두 마리가 아니라 ‘온 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군대’라고 하였습니다(눅8:30). 군대는 헬라어 ‘레기온’인데 로마 군대의 여단 규모로 4000-6000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군대 귀신이 돼지 때에게로 들어가기를 간청한 것은 ‘무저갱’으로 들어가기를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눅8:31). ‘무저갱’無低坑,Abyss은 끝(밑)이 없이 깊은 구덩이로 “바닥이 없다”, “깊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마귀를 대장으로 따르는 귀신이 하늘에 1/3, 지상에 1/3, 무저갱에 1/3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벧후2:4.참고/마25:41;눅8:31;계9:11,20:1,3). 이 ‘어두운 구덩이’인 무저갱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았던 군대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큰 붉은 용’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4,9). ‘옛 뱀’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유혹하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사십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 시험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온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모두가 한 존재 마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가운데 마귀의 간계와 마귀의 졸개인 귀신의 술수를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주셨습니다(막3:15.참고/마10:1;눅6:17). 바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마귀와 마귀의 사자인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귀신은 본문과 같이 외적으로 흉악한 짓만 하는 것으로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기도회에 때에도 기도했습니다만, 귀신은 옭아맵니다. 우리를 옭아매려는 귀신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옭아매려 합니다. 열등감으로 옭아매려 합니다. 공항증으로 옭아매려 합니다.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옭아매려 합니다. 당당함을 무기력화해 옭아 매려합니다.
사도 바울을 여러 날 따라다니며, 괴롭힌 ‘귀신 들린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고 하였습니다(행16:18). 우리에게도 예수 믿는 자에게 선포할 수 있는 예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도 선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울증으로 열등감으로 공항증으로 옭아매려는 귀신들아 떠나갈지어다” 아멘!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당당함을 무력화해 옭아매려는 귀신들아 떠나갈지어다” 아멘!. 귀신을 물리치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누구도 옭아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16). 예수님은 산상에서 설교를 통해 천국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 각종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셨습니다(17). 이 말씀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예수님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실 때,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하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눅6:19.참고/막5:30;눅8:46).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능력에는 다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상대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고초와 아픔과 눈물이 있었겠습니까?
“40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2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40-43)
유대인들에게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 날 저녁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해 질 무렵’, ‘낡이 밝으매’가 말해주는 주님은 온종일 쉬지 않으시고, 찾아온 무리에게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셨습니다(눅4:40-43).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까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시고 슬픔을 체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참고/히4:15).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는 단순히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심으로 못 고칠 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하고. 이방인인 백부장 하인의 중풍 병을 고치시면서. 유대인이 되었건 이방인이 되었건 주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면서 자신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하고,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의 자격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풍랑을 잔잔히 : 예수님 만이 전능자이고 인도자이시다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시고 슬픔을 당하셨다고, 자칫 힘없는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23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23-27.참고/막4:35-41;눅8:22-25).
예수님이 가버나눔에서 맞은 편 가다라 마을로 가실 때 갈릴리 호수를 건너시기 위해 ‘배’에 오르셨습니다(24). 그런데 ‘바다에 큰 놀 (광풍)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24.참고/막4:37;눅8:23). 이때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 삼아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24.참고/막4:38). 이를 본 ‘제자들이 나아와 (황급하게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고 외쳤습니다(25).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히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호통을 치시고는)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26). 배에 탔던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고 하였습니다(27.참고/막4:35-41;눅8:22-25).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창조자이시기에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 사공은 주님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셨다고 자칫 힘없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도 말씀으로 잔잔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고, 길을 잃지 않게 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는 단순히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심으로 못 고칠 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하고. 이방인인 백부장 하인의 중풍 병을 고치시면서. 유대인이 되었건 이방인이 되었건 주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면서 자신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하고,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의 자격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며, 광풍 가운데도 길을 잃지 않게 하시는 인도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 : 예수님 부름에 지금 응답하는 것이 제자이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고 전능자가 되며 인도자가 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에게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나를 따르라’는 명령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18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18-20.참고/눅9:57-62)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고)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셨습니다(18). 그때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고 하였습니다(19). 서기관은 바리새인 등과 같은 유대종교지도자들로 예수님과 대척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과 이적을 보고 제자가 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20). 주님을 따르는 자는 전도 여행을 할 때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10:9). 전도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마10:10).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10:10). 제자는 주님이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지, 자신이 거할 처서와 입을 의복과 먹을 양식을 준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제자입니다.
“21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21-22)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기 고향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제자는 부고를 예수님께 말씀드렸고, 당연히 다녀오라고 하실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1-22). 제자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장례 풍습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릅니다. 그와 유사하게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장례 풍습이 석달 정도가 소요됩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이 제자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고, 집을 곁을 떠나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 아버지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제자의 삶에 자책할 가능성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또 아버지 장례식 3개월 동안 가족 친지와 시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복음을 전파하던 일념이, 다시 유대인의 풍습에 말려들게 되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으로 변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에게 단호하게 장례에 참석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해석에 대해서는 받을 만한 사람은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항상이 아니듯이,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제자가 되는 기회도, 항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3개월이 내 인생 30년 아니 영원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도록 세례를 받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한 성탄절에 다른 모임의 약속에 참석하느라, 교회에 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때 한 제자가 왜 그렇게 귀한 것을 허비하느냐,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며, 야단을 쳤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십자가 죽음을)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12:1-8.참고/마26:6-13;막14:3-9). 예수님이 가난한 자를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향유를 팔아 어려운 사람 300명을 돕는 것이 나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은 항상 있지만, 나는 이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항상과 한 번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 각 각에 맞게 적용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주님을 따르는 길에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1-62). 이 또한 주님의 제자로 떠나기 전 가족과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며, 집으로 돌아갔다가, 그 밤사이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인간의 연약함을 주님은 아십니다.
다니엘 기도회에서 정유라 자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고향에서 함경북도 희령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직책을 맡아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혁명적으로 부정부패를 쌓았습니다. 많은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국과 가까운 지역 위치상 남한의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교육받던 미제의 앞잡이고 깡통을 차고 구걸하는 남조선이 아니라, 세계 상위 5%에 드는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집에 있어도 학교에 있어도 친구들과 있어도, 온통 한국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탈북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감추어놓은 미화 1200달러를 들고 새벽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자신을 잡은 분이 있었습니다.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기차역까지 가는 길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고 기차에 올라타면서, “너는 어디에 가도 잘 살 거다. 신이 있다면, 우리 딸을 지켜 주겠지, 유라야 절대 뒤돌아보지 말아라”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차장 밖을 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북한 기차가 역을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다시 보니, 개찰구에서 엄마가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딸로서 매정하게 뒤돌아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했기에 아버지도 엄마도 오빠도 남한에 다 올 수 있었고, 가족 모두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약 뒤돌아섰다면, 북한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고,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룻밤이라는 시간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도 압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 순간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는 단순히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심으로 못 고칠 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하고. 이방인인 백부장 하인의 중풍 병을 고치시면서. 유대인이 되었건 이방인이 되었건 주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면서 자신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하고,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의 자격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며, 광풍 가운데도 길을 잃지 않게 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고 전능자가 되며 인도자가 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응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이 아닙니다. 한 번입니다. 지금입니다. 이 시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정리
질고를 지시고 : 예수님 만이 구원자 자격을 가지셨다
나병을 고치시다 : 못 고칠 병이 없음을 알게 하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산상수훈을 통해 큰 은혜를 받은 ‘수많은 무리가’ 주님을 ‘따르니라’고 하셨습니다(1). 그 무리 가운데 한 나병환자가 고침 받기를 소원했고, 예수님은 친히 ‘손을 내밀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깨끗하여진지라’고 하였습니다(2-3.참고/막1:40-45;눅5:12-16).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시고teaching, 복음을 전파하고preching, 이제 치유하셔서healing, 주님의 3대 사역을 행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첫 번째 치유로 ‘나병환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나병은 자신의 죄나 조상의 죄가 많아 하늘에서 내린 형벌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치셨다는 것은 무리에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에서 고침 받은 자에게 제사장에 보이도록 하였습니다(4.참고/레13:1-2,14:2-8). 예수님이 이렇게 절차를 밟도록 명한 것은, 깨끗하게 되었음을 확인하고,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적으로 인정받기 위함이었고, 주님의 치유하심은 일시적이 아니라, 완전함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심으로 그는 못 고칠 질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한 것입니다.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치시다 : 이방인도 믿으면 천국 백성임을 알게 하다. 이후,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百夫長,centurion이 나아와 가지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드렸습니다(5-6). 휘하에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백부장은 안보는 물론 치안과 사법까지 담당하는 권세가로 로마인으로 이방인이었지만, 피지배자인 유대인 출신의 종의 치유를 구했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믿음과 하인을 사랑하는 인격을 가졌습니다(눅7:2).
예수님도 이를 기특하게 보셨던지, 친히 가셔 고쳐 주리라고 하였지만, 백부장은 자신도 남의 수하에 있고 또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며, 노중에서 말씀만 하여도 낫겠다고 하였습니다(8-9). 예수님은 백부장의 고백을 놀랍게 여기며 무리에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10).
이어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11). 백부장, 이방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하늘나라 천국에 입성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본 자손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바깥 어두운 데’ 즉 지옥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라고’고 하셨습니다(12).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13.참고/눅7:1-10;요4:43-54). 이 말씀은 하인의 병을 고치신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하인의 병을 고치신 주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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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본문의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11)는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는 이미 구약 아브라함에게 ‘모든 족속’ ‘천하 만민’으로 신약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그와 같이 말씀합니다(참고/창12:3,18:18,22:8,26:4;막16:15;골1:23). 지난 역사와 오늘 역사와 장차 역사의 모든 인류가운데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입성이요. 불신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치다 : 주님을 따름이 옳음을 알게 하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 위대한 여정에 함께 할 제자들을 택하시기 위해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눅6:12-13). 제자들은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 영혼을 인도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마5;18-22;눅6:14-16).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치신 후, 같은 동네 수제자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4). 주님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와 아내를 두고 떠났던 베드로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 스승을 모시고 고향 집을 찾은 것입니다(마4:19-22). 그런데 모처럼 큰마음을 먹고 집에 와보니, 장모님이 앓아누우신 것입니다(14).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었습니다(마8:15).
이 순간 베드로는 얼마나 감사겠어요. 자신이 믿고 따른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족들에게 보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뿐 아니죠. 베드로의 아버지와 장모 그리고 아내도, “주를 따르겠다”고 집을 나선 베드로가, “정말 따를 분을 따르고 있구나”하는 안도와 기쁨을 갖지 않았겠습니까? 주님은 이를 통해 자신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합니다.
귀신을 물리치시고 : 어떤 것도 옭아맬 수 없음을 알게 하다. 예수님의 치유에는 병만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것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에서 나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들이 얼마나 사납던지 사람들이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28). 그런데 이 귀신들린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며, 예수님을 알아 보는 것입니다(29).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라며 구하였습니다(30-31). 예수님이 ‘가라 (명)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였스니다(32-34).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도 알고 믿고 떤다고 하였습니다(약2:19). 귀신 하나 둘이 아니라, 이름이 ‘군대’인 이 귀신들은 범죄한 천사를 가두는 끄티 없는 구덩이로 빠져나올 수 없는 ‘무저갱’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 돼지 떼에게로 달려든 것입니다(눅8:30-31.참고/마25:41;벧후2:4;계9:11,20:1,3).
‘큰 붉은 용'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계12:4,9).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한 ‘옛 뱀’, 예수님 사십일 금식 기도할 때 시험했던 ‘마귀’, 지금도 온 천하를 미혹하는 ‘사탄’은 모두 한 존재 마귀입니다(계12:8). 그러므로 성도 가운데 마귀의 간계와 마귀의 사자인 귀신의 술수를 당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는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3:8). 에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주셨습니다(막3:15.참고/마10:1;눅6:17).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마귀와 마귀의 사자인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귀신은 본문과 같이 흉악한 짓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은 갖가지 것들로 우리를 옭아맵니다. 사도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고 하였습니다(행16:18). 우리에게도 에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도 선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울증으로 열등감으로 공항증으로 옭아매려는 귀신들아 떠나갈 지어다” 아멘!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당당함을 무기력화해 옭아매려는 귀신들아 떠나갈 지어다” 아멘!. 귀신을 물리치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누구도 옭아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16). 예수님은 산상에서 설교를 통해 천국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 각종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셨습니다(17.참고/사53:4).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능력이 다함이 없으십니다.(눅6:19.참고/막5:30;눅8:46).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상대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고초와 아픔과 눈물이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까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시고 슬픔을 체휼하신 분입니다(참고/히4:15).
유대인들에게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 날 저녁까지입니다. 예수님은 ‘해 질 무렵’에까지 그리고 ‘낡이 밝으매’와 함께 온종일 쉬지 않으시고,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셨습니다(눅4:40-43).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시고 슬픔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는 단순히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심으로 못 고칠 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하고. 백부장 이방인의 하인의 중풍 병을 고치시면서. 유대인이 되었건 이방인이 되었건 주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면서 자신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하고,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의 자격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풍랑을 잔잔히 : 예수님 만이 전능자이고 인도자이시다
예수님이 가버나눔에서 맞은 편 가다라 마을로 가실 때 갈릴리 호수를 건너시기 위해 ‘배’에 오르셨는데 광풍에 배가 덮이게 되었습니다(24). 그런데 에수님은 뱃고물을 베개삼아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24.참고/막4:38). 이를 본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며 구원하소서 죽겠나이다’고 외치자, 오히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호통을 치며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25-26). 배에 탔던 사람들이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며 놀랍게 여겼습니다(27.참고/막4:35-41;눅8:22-25).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셨다고 자칫 힘없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며, 광풍 가운데도 길을 잃지 않게 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나를 따르라 : 예수님 부름에 지금 응답하는 것이 제자이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고 전능자가 되며 인도자가 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드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무리가 에워싸자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셨는데, 그때 ‘한 서기관이 예수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고 하였습니다(18-19). 그는 유대종교지도자로 주님과 대척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을 보고 제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20). 제자는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하였습니다(마10:9-10). 제자는 자신이 거할 처서와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을 준비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제자입니다.
또 한 제자는 주님을 ᄄᆞ르기로 결심하고, 고향을 떠나 복음을 전파하던 중 아버지 부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집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1-22). 제자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르는것돠 유사하게 이스라엘은 3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이 제자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고, 집을 떠난 후 아버지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책할 가능성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또 장례 기간 3개월 동안 가족 친지와 시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복음을 전파하던 일념이 세상을 향하는 마음으로 변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에게 단호하게 장례에 참석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해석에 대해서는 받을 만한 사람은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된 것이 항상이 아니듯,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기회가 항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3개월이 내 인생 30년 아니 영원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도록 세례를 받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성탄절에 다른 약속에 참석하느라, 교회에 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각 각에 맞게 적용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주님을 따르는 길에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떠나기 전 가족과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며, 집에 갔다가 오겠다는 것입니다(눅9:61-62). 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도 압니다. 그 밤 사이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인간의 연약함을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 순간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성경 당시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을 치유하심으로 못 고칠 질병이 없는 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어떤 병도 치유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고 중보하는 모든 이들의 영과 육의 질병을 깨끗하게 치유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이방인 백부장 하인의 병까지 치유를 통해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되고 유대인어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모든 택자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땅끝까이 이르러 주님 증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베드로 집에 들려 그의 장모를 치유하심으로 온 가족에게 주님을 따름이 옳았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우리 가정과 기업과 자녀위에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주셔서, 모든 가족이 주님을 따름이 옳았음을 인정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마귀와 마귀의 졸개인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우리에게 각가지 것들로 옭아매려는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 지어다” 선포했습니다. 악한 것들이 도망가고,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주옵소서.
예수님은 단순히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까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연약을 담당하시고 슬픔을 당하신 분으로, 예수님만이 구원자의 자격이 있음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며, 광풍 가운데도 길을 잃지 않게 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주님 간구하오니 제 앞에 있는 환난의 바람과 문제의 바다를 잔잔하게 해주시옵소서. 역경의 광풍 가운데도 길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구원자, 전능자, 인도자임을 믿는 자는 부름 받았을 때, 다른 것이 가로막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한 순간에도 달라질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부름에 지금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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