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호세아 6:1-3 2025.01.05. 新年感謝主日禮拜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6:1-3)
2025년 을사년 첫주일 신년감사주일예배에 오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구영신예배에 주셨던 말씀과 같이 백 배의 복을 받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상 숭배와 불 신앙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한 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반란으로 남유대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됩니다. 남유대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대와 베냐민 두 지파만이 남았지만, 영토 안에 예루살렘이 있어 성전을 갖게 되었고, 예배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으로 정통성을 이어 갔습니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반역자 여로보암이 속한 에브라임 지파를 필두로 10지파가 가세하였고, 경제적으로도 강대했지만, 남유대가 갖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영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숭배하게 하고, 월급을 주고 세운 어용 제사장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는 등 북이스라엘 전역은 우상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로 여호아스 왕의 아들 여로보암 2세B.C. 793-753년경 통치 말기에 활동을 시작하여, 북이스라엘 마지막 임금인 호세아 왕 때B.C. 732-722년경까지 활동하였습니다(참고/호1:1)B.C.753-722년경. 특히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했던 ‘여로보암 2세’Jeroboam Ⅱ는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로서 10여 년 간 아버지 함께 통치하다가, 그를 계승하여 제13대 왕이자 예후 왕조의 네 번째 왕B.C. 793-753년이 되었습니다(참고/왕하13:13,14:16,23). 특히 여로보암 2세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북이스라엘 최고의 황금기를 가져온 왕이었습니다(참고/왕하14:23-29). 아버지 요아스 때부터 북이스라엘은 수리아와의 싸움에서 이겨 잃었던 북방의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또 남유다를 눌러 남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주변국 앗수르와 아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배경하에서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하맛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솔로몬 때의 영토와 흡사한 넓이의 광대한 땅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참고/신3:17;왕하14:25-28).
이렇게 북이스라엘은 외적으로 화려하고 풍요로웠던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상,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외면하는 백성들의 사회적 무관심, 특히 중근동 지역에 성행하던 각종 우상과 타락한 문화가 급격히 유입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영적 부패를 심화시켰습니다. 우상숭배와 불신앙이 만연한 북이스라엘에서 호세아는 신랄한 꾸지람과 심판을 선언하며, 회개치 않을 경우 당할 멸망을 경고하였습니다(호4:15,5:8,10:5,8.참고/암3:14,5:5-6,7:10-13). 호세아는 금송아지 신상이 있던 ‘벧엘’의 원래 뜻인 하나님의 집을 사악한 집, 우상 숭배의 집인 ‘벧아웬’이라 고쳐 불러 그 죄악상을 엄중하게 고발하기도 했습니다(호4:15). 동시대 활동했던 아모스 선지자도 사회 전반의 부패와 극심한 빈부의 차이, 헛된 종교적 행위, 허물어져 버릴 거짓된 평안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고(참고/암2:6-7,5:21-24,6:1-8,7:7-17), 호세아 선지자도 같은 맥락에서 여로보암 때의 죄악을 비유적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호1-3장). 그러나 본서에는 북이스라엘 멸망(B.C. 722년)에 관한 예언은 있으나 실제 멸망 기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남유다에서는 웃시야(B.C. 791-739년), 요담(B.C. 750-731년), 아하스(B.C. 735-716년), 히스기야(B.C. 728-687년) 왕이 계속해서 통치하였습니다(겹쳐지는 연대는 섭정). 이렇게 볼 때 본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 호세아 선지자 말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장의 범죄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호5:1). ‘제사장들아’, 북이스라엘에도 제사장들이 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왕에게 월급을 받고 고용된 어용제사장이었습니다(대하11:15).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들을 마땅히 가르치고 준수하도록 훈계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렸습니다(참고/왕상22:19-29;암7:10-17). 한 예로 북이스라엘의 어용 제사장 400여 명이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를 ‘길한 일은 예어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는 ‘흉凶예언자’로 몰아붙이며 미워하고 뺨을 때리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왕상22:8,24-27). 결국 ‘거짓말한 영’에 사로잡힌 400여 명의 어용 제사장의 말을 듣고 전장에 나간 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전사하였습니다(왕상22:22,33-37). 이렇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거짓 제사장들에 먼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참고/고전4:1;계10:7).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출3:13-14).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서 나왔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지존하시고, 영존하시며, 완전하신 본질을 의미합니다. 무조건적이고도 독립적인 존재의 근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속성상 변함 없으시며, 타인의 힘을 필요치 않으시고, 자신이 뜻하신 바를 성취하시며, 모든 피조 세계 존재의 근원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참고/계1:4,8).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외에 다른 왕, 다른 주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딤전6:15).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권자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이것을 주의 종들은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을 용납하지 말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멋대로 상상하여, 새긴 신상을 만드는 행위조차 불용해야 합니다(출20:3-5,23).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왕에 고용되어 왕이 주는 월급을 받고 왕이 좋아하는 말을 했지 하나님 말씀을 대변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타파하하는 것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국란에서 첫 번째로 주의 종들 목회자들이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사람의 말을 전하고 있는가? 정말 각성하고 통회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주의 종들이 먼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목사님을 위해 많은 기도롤 드려야 하겠습니다.
지도자의 범죄
제사장들에 이어 ‘왕족들아’의 범죄를 경종하고 있습니다(호5:1). ‘왕족들’은 왕의 가족들 외에 그 가문에 속한 자들과 왕의 주변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에의 왕족들 모두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의 깊고 세심하게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향하여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사28:14,23;렘13:15).
우리가 새해 첫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신년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있는데요. 하나님이 이방 왕 페르시아의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벨론에서 70년 포로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1차 귀환을 이끌던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초토화되었던 솔로몬 성전 자리에 두 번째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2차 귀환을 이끈 에스라는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물과 보화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속 옷과 겉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기 막혀 (주저) 앉’았습니다(스9:3). ‘1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스9:1-2). 이스라엘은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에서도 깨닫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이제 숨통이 트이자, 가나안 족속의 우상을 섬기고, 그들과 통혼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지도자인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스9:2). 그 범죄가 얼마나 큰지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스9:6).
대통령께서 공조본의 세 차례에 출석에 불응하고, 1차 체포에는 군과 경호원을 동원하여 극렬히 저항하셨습니다. 지금 탄핵 심리가 진행 중인데요. 우리가 대통령을 지지하든 인정하지 않든 대한민국에 탄식 소리 ‘오’嗚, 부를 ‘호’呼, 아플 ‘통’痛, 재난 ‘재’哉, 큰 슬픔, 참담하고, 비통한 ‘오호통재’嗚呼痛哉올시다. 대통령께서 무죄가 밝혀지고 탄핵이 기각되어 직무에 복귀하시던, 유죄가 선고되고 탄핵이 인용되어 다른 분이 대통령에 선출되던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오만의 죄악을 버리고, 귀를 기울여, 귀를 기울여,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축복합니다. 지도자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백성들의 범죄
‘이스라엘 족속들아’, 북이스라엘을 구성하고 있는 에브라임, 므낫세, 르우벤, 시므온,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등 열 지파를 말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말합니다. 제사장과 지도자의 범죄에 백성들이 범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온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와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제사장과 지도자와 백성의 총체적 범죄에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호5:1),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 위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을 선고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왕족과 제사장들을 향한 것인데, 여로보암 2세 이후, 왕이 된 므나헴 왕가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자, 자기 정권을 위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은 1,000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기도 하였습니다(왕하15:13-22). 살고자 바친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 북 이스라엘에는 앗수르의 우상과 그들과 통혼이 횡행했습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왕하17:24).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호5:1), 여기서 미스바는 요단 동편 길르앗 미스바를 가리킵니다(참고/삿10:17,11:29). 이곳은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세웠던 곳이고 합니다다(참고/창31:48,49). 그리고 ‘다볼’은 요단 서편에 있는 다볼산을 가리킵니다. 이 두 곳은 숲이 우거져 새와 짐승들을 잡기에 적합한 장소였기에 북이스라엘의 만연한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새를 잡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우상의 올무와 그물을 놓고 있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기는 커녕 도리어 도덕적 부패와 우상 숭배에 빠져 멸망의 길에서 허덕이며 백성까지도 미혹했던 것입니다.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호5:2). ‘살육죄’는 짐승들의 살육, 곧 우상숭배를 위하여 고의적으로 짐승을 살육하고 희생 제물을 바친 죄악을 말합니다.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길로 인도하고, 그에 따른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죄악을 경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방 신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깊이 빠졌으매’,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 우상 숭배와 학살이라는 패악한 죄악 가운데 스스로 빠져들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좀더 정확한 표현은 “나는 저희 모두에게 징책이 되노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징계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징계는 완전한 파멸이라기보다는 회복을 위한 징벌로서 언약 백성을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참고/잠3:11;15:5).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호5:3). 쿠데타를 일으켜 통일왕국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시킨 장본인인 여로보암은 에브라임지파입니다. 그 이후 남유다는 다윗 왕가로 왕들이 계승되었는데요.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조를 포함 9번의 왕조가 등장했습니다. 그것은 초대왕 여로보암이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쿠데타로 집권한 것과 같이 9차례의 쿠데타가 발발 그때마다 왕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홉 번의 쿠데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겠습니까? 고 박정희 소장께서는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후, 5-9대 18년 동안 대통령을 역임했지만, 자신의 만주 일본육사 동기이자, 신복의 흉탄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또 한 사람은 쿠데타에 실패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쿠데타는 성공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 것입니다. 11-12대 대통령을 지낸 고 전두환 대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못한다는 모 검사의 발언이 있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전두환에게 가장 큰 피해를 본 당시 김대중 총재가 사면을 김영삼 대통령에 건의하여 석방되었으나, 명예에 사형을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분은 작고하신 이후, 아직도 매장지를 구하지 못해 자택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쿠데타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될 수 없습니다.
반란을 주도하고 나라를 쪼개어 북이스라엘을 차지한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다른 열 지파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언급됩니다(참고/호4:17;7:11). 그 후 ‘에브라임’이 등장하는 곳에는 항상 좋지 못한 말들이 따라붙습니다. 호세아 5장에 만에도 ‘행음’(3), ‘넘어지리라’(5), ‘황폐’(9),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11) 등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의 둘째 아들로 에브라임이 시초인데 할아버지 야곱에 의해 장자권의 축복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가나안땅의 배분 때에도 요단으로부터 지중해까지 사마리아의 대부분 땅을 분 깃으로 받고, 시간이 갈수록 세력이 더욱 커졌으며, 훌륭한 인물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여호수아, 드보라, 압돈 사사, 선지자 사무엘등이 바로 이 지파 출신입니다. 이렇게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에브라임 지파가, 통일왕국을 분열시키면서 악한 일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왕 이후 르호보암왕 때 나라가 나뉘게 되었는데 10지파를 이끌고 북 이스라엘을 건국한 여로보암이 이 에브라임 출신이었습니다(왕상11:26). 자신의 번성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의 정권을 잡는데 썼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펼쳐 하나님 보다 앞서려는 인간의 간교한 계획이요. 하나님의 역사를 뒤바꾸려는 교만의 출발이요. 깨어있지 못한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사울왕이 후 헤브론에서 타 지파들은 하나님의 명대로 다윗왕을 추대하였는데 이 에브라임 지파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후계자로 세웠습니다(삼하2:9-10). 12지파중 다윗의 형통인 유다 지파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 국가에서도 국민의 뜻 정통성이 없는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고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질서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파괴한 것이요.
에브라임지파는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 바알등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호4:17,13:1,14:8).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모르게 하니 백성들은 신을 섬기려는 욕망이 타오르고 이에 다른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뜻을 바알등 우상을 통해 펼치려 했던 것입니다. 이 일련의 역사적 과정에서 지난날 영광과 영화를 누렸던 이 에브라임 지파가 나중에는 악의 대명사로 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호5:13).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병 즉 잘못을 깨달았는데 심령이 어두워졌음으로 그 문제의 해결을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야렙왕과 화친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보다 정치적으로 세상의 방법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야렙왕도 고치지 못하고 상처를 낫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호10:6). 오히려 도움을 구한 앗수르에게 수치를 당할 뿐인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호5:3). 에브라임은 자신들의 죄를 은밀하게 행함으로써 숨기려고 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의 죄악은 결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참고/히4:13).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을 뜻합니다. 이는 에브라임의 행음과 죄악된 상태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앞에 명백히 드러났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더러워졌느니라’, 영적 행음 우상숭배로 부정하게 된 죄악의 결과를 나타냅니다(참고/민5:27,28).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왕족들과 모든 백성을 지칭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호5:4). 이스라엘의 죄악된 행위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회개의 마음이 있지만, 악행이 너무 커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회개를 거부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말쓰처럼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음란한 영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노예가 되었음을 시사합니다(참고/롬6:12,16). 게다가 음란한 영은 여호와에 대한 지식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여호와의 지식을 얻기 위하여 마음속에 있는 음란한 정신을 버려야 했지만,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호5:5). ‘이스라엘의 교만’, 물질적인 풍요와 번영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거만함을 말합니다. 교만으로 인하여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에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는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들의 부귀와 권세를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교만이 곧 그들의 얼굴에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얼굴에 있는 교만함을 증거로 삼아 그들을 애굽과 앗수르와 같이 멸망시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참고/겔32:12;슥10:11).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헛된 교만은 여호와께 돌아오는 길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소였습니다(참고/호7:10).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이스라엘의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그들의 죄악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참고/14:7).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실족하여 멸망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참고/호4:5). 교만은 필연적으로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다(참고/잠16:18;렘13:9). 한편 남유다 역시 이스라엘의 범죄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파멸적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참고/렘3:6-10).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호5:6).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회개하는 마음과 신실함이 없는 이스라엘의 제사 행위와 풍부한 제물에 대한 언급입니다(참고/호6:6;8:11-13;사 1:11-13).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이는 값진 제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헛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제사 의식과 순종이 없는 제물은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십니다(참고/사1:11-13;미6:7). 하나님은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을 떠나셨고, 약속된 복을 철회하셨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호5: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반역의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불충실한 이스라엘의 배반을 언급합니다(참고/렘3:20;말2:14-16). ‘사생자를 낳았으니’, 이는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킴으로써 그의 자녀가 되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음행하였던 이스라엘은 더 이상 언약의 자손이 아닌 것입니다(참고/출19:5,6;신25:5). 따라서 북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우상 숭배는 결국 언약과 상관없는 음행의 자손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불경건한 사생자들은 타락한 부모들의 제의적 행음으로 인하여 출생하였다고 보여집니다(참고/호4:13-15).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새 달’은 단순히 월력상의 한 달을 가리킨다면, 짧은 시간 내에 종말의 심판이 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희생제를 드렸던 ‘이스라엘의 절기’New Moon festivals, NIV;월삭, 한글 개역를 의미합니다(참고/삼상20:6;사1:13,14). 따라서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쳤던 희생 제사가 도리어 그들을 파멸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제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장된 우상 숭배에 불과함을 반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새 달’은 오히려 파멸을 가져오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기업’은 이스라엘이 소유했던 땅과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소산을 가리킵니다(참고/호2:8,9). 하나님을 떠난 영적 행음이 육적 기근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국가의 몰락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호5:14). ‘내가’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말합니다(참고/호13:7;사5:29). ‘바로 내가’는 심판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강조합니다. 특히 원문에는 ‘나’가 여섯 번이나 사용되어 앗스루 이방 민족을 통해서라도, 심판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사자가 먹이를 움켜가는 것처럼, 심판의 도구인 앗수르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를 잡아갔다(참고/왕하17:4,5;사31:4). 유다 역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침략을 당하였습니다(참고/왕하25:1-12). 북이스라엘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 돌아가자 1 - 회개
이러한 때 살 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5: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이스라엘로 부터 완전히 거두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구하기까지’란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간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입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그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참/신4:29).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나라와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구국의 기도를 드리지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살육하도록 명령한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손자입니다(마2:1-18). 헤롯 가문은 삼대에 걸쳐 117년 간 팔레스타인과 인접 지역을 통치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다(BC47-AD70.참고/마2:21-23,14:1-12,막6:14;눅3:1,19,13:32,23:7-11). 헤롯 가문은 에돔 출신 신분의 약점을 만회하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는데 헤롯 왕도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고, 사도 야고보를 참수했습니다(행12:1-2). 헤롯은 유대인들이 야고보 죽임을 기뻐하자, 그들의 마음을 확실히 얻고자, 베드로까지 죽이고자 감금했습니다(행12:3). 그러나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끌어내자 격노한 ‘헤롯(은) 파수꾼들을 죽이라 명하’고,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떠났습니다(행12:19). 가이사랴 위쪽에 위치한 ‘두로와 시돈’ 사람들 앞에 서서, 화려하고 근엄한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였습니다(행12:21). 두로와 시돈 ‘백성들이’ 헤롯의 연설에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라’며 칭송하였습니다(행12:2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차지했던 헤롯을, 주의 사자가 내려쳤고, 헤롯은 온몸에 벌레가 먹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행12:23). 10여 년전에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해서는 안됩니다(참고/단2:28).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나 정작 자기를 위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출20:7;신5:11).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갈6:7). 한국교회는 이 나라와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구국의 기도를 드리지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고난 받을 때’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 생활을 암시합니다. 이방 민족에 의한 압제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다시 찾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심판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호14:2-4). 그러므로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 ‘우리를 찢으셨으나’, 사자가 먹이를 찢는 것처럼 심판이 가혹함을 암시합니다(참고/호5:14;시 50:22). ‘낫게 하실 것이요’, 앞서 예언된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형벌은 성취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있을 경우 심판의 자리에서 고침을 받게 될 것임이 선언합니다. 이는 백성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적인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참고/신32:39). 한편 이것은 여호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된 회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빠르고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이 숫자들은 매우 짧거나 적은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장 중요하거나 확실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참고/왕상17:12;왕하9:32;잠30:15;사17:6;암4:8). 그런데 유대인 학자들은 이를 연대기적으로 해석하여 ‘이틀’을 애굽과 바벨론 포로기로 ‘삼일’을 로마의 속박과 관련시키거나, 또는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메시아에 의해 세워질 성전의 ‘세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많은 교부와 주석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적용시킵니다. 즉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은 3일 만에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회복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다시 소생시키고, 살릴 것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참고/사26:19;겔37:1-14). ‘우리가 그 앞에 살리라’, 여호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참고/창17:18;렘 30:20). 그러므로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2 – 지식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1,6). 여호와께 돌아가는 두 번째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6: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배교로부터 돌아서려는 강한 열밍을 말합니다(참고/호4:1,6). 이것은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힘써’의 원문 뜻은 “추적하다”, “뒤따르다”란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참고/신30:2,3).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하나님 임재가 새벽처럼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참고/창19:23;시19:5;사58:8;60:2).
‘비와 같이’, ‘비’는 퍼붓거나 흡족하게 내리는 비로서 이스라라엘에 10월 초부터 2월 말 사이에 오는 겨울비를 가리킵니다(참고/스10:9.13).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늦은 비’는 추수하기 전 3-4월 중에 내리는 봄비로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입니다. 이와같이 만물을 소성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들에게 풍성한 은총과 큰 복을 내리십니다(참고/레26:4;신11:14).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힘써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3 – 인애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 땅에는 인애도 없고’라고 하였습니다(호4:1).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 ‘인애’는 하나님의 사랑, 확고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애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지만,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4). 이스라엘의 ‘인애’는 아침 구름, 아침 안개와 이슬 같이 쉬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인애’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6). 제사, 번제는 소, 양, 새를 잡아 피를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른 순서로 번제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원하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가치 기준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참된 ‘인애’는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패역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했는데 그 원인이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7). ‘언약’을 어긴 데서 기인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불순종은 신앙을 패역하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에게 상처를 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게 하는 것입니다. 참된 ‘인애’는 모든 약조 가운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우선입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9). 북이스라엘의 거짓 제사장들은 어용 짓만 아니라, 강도질까지 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기 위해 벧엘로 떠나는 백성들을 세겜의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강도로 변하여 살인과 온갖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10).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행위에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하나님의 인애를 얻어야 합니다.
에스라 선지자가 나라의 지도자인 방백과 고관들이 앞장서서, 이방의 우상과 통혼의 배교 앞에서, ‘1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그럼에도 아직도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며,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스10:1-3).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거두실 것입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에 소망’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소망이 있는 것은 주의 교훈을 따르며,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인애’는 소망 가운데 하나님과의 소망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확고한 사랑 ‘인애’는,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언약 가운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모든 소망 가운데 하나님과의 소망이 첫 번째인 인애로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정리
우상숭배와 불신앙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로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Jeroboam Ⅱ가 통치하던 때이었습니다(참고/왕하13:13,14:16,23). 그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북이스라엘 최고의 황금기를 가져온 왕이었습니다(참고/왕하14:23-29). 아버지 요아스 때부터 북이스라엘은 수리아와의 싸움에서 이겨 잃었던 북방의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또 남유다를 눌러 남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하맛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솔로몬 때의 영토와 흡사한 넓이의 광대한 땅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참고/신3:17;왕하14:25-28).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외적으로 화려하고 풍요로웠던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상,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외면하는 백성들의 사회적 무관심, 특히 중근동 지역에 성행하던 각종 우상과 타락한 문화가 급격히 유입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영적 부패를 심화시켰습니다. 우상숭배와 불신앙이 만연한 북이스라엘에서 호세아는 신랄한 꾸지람과 심판을 선언하며, 회개치 않을 경우 당할 멸망을 경고하였습니다(호4:15,5:8,10:5,8.참고/암3:14,5:5-6,7:10-13). 호세아는 금송아지 신상이 있던 ‘벧엘’의 원래 뜻인 하나님의 집을 ‘벧아웬’ 사악한 집, 우상 숭배의 집인 ‘벧아웬’이라 고쳐 불러 그 죄악상을 엄중하게 고발하기도 했습니다(호4:15).
제사장의 범죄.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호5:1),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왕에게 월급을 받고 고용된 어용제사장이었습니다(대하11:15).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들을 마땅히 가르치고 준수하도록 훈계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렸습니다(참고/왕상22:8,19-37;암7:10-17).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거짓 제사장들에 먼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 그 분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암3:7.참고/고전4:1;계10:7)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출3:13-14). 하나님의 지존하시고, 영존하시며, 완전하신 본질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그 뜻하신 바를 성취하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참고/계1:4,8). 하나님외에 다른 왕, 다른 주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딤전6:15). 주의 종들은 유일하신 주권자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주의 종들은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을 용납하지 말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비겨’ 신상을 만드는 행위조차 불용해야 합니다(출20:3-5,23).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왕에 고용되어 왕이 주는 월급을 받고 왕이 좋아하는 말을 했지 하나님 말씀을 대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국란에서 첫 번째로 주의 종들 목회자들이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사람의 말을 전하고 있는가? 정말 각성하고 통회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주의 종들이 먼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도자의 범죄. 제사장들에 이어 ‘왕족들아’의 범죄를 경종하고 있습니다(호5:1). 북이스라에의 왕족들 모두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에게 ‘들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향하여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사28:14,23;렘13:15).
하나님이 이방 왕 페르시아의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벨론에서 70년 포로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1차 귀환을 이끌던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두번째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2차 귀환을 이끈 에스라는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물과 보화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찾아왔을 때, ‘속 옷과 겉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기 막혀 (주저) 앉’았습니다(스9:3). 이스라엘은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에서도 깨닫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이제 숨통이 트이자, 가나안 족속의 우상을 섬기고, 그들과 통혼했습니다(스9:1-2).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도자들가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습니다(스9:2). 그 범죄가 얼마나 큰지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스9:6).
우리가 대통령을 지지하든 인정하지 않든 대한민국에 탄식 소리 ‘오’嗚, 부를 ‘호’呼, 아플 ‘통’痛, 재난 ‘재’哉, 큰 슬픔, 참담하고, 비통한 ‘오호통재’嗚呼痛哉올시다. 대통령께서 무죄가 밝혀지고 탄핵이 기각되어 직무와 복귀하시던, 유죄가 선고되고 탄핵이 인용되어 다른 분이 대통령에 선출되던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오만의 죄악을 버리고, 귀를 기울여, 귀를 기울여,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축복합니다. 지도자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백성의 범죄. ‘이스라엘 족속들아’(호5:1),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북이스라엘을 구성하고 있는 에브라임, 므낫세, 르우벤, 시므온,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등 열 지파를 말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말합니다. 제사장과 지도자의 범죄에 백성들이 범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온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와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제사장과 지도자와 백성의 총체적 범죄에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호5:1),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 위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을 선고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왕족과 제사장들을 향한 것인데, 여로보암 2세 왕 이후, 왕이 된 므나헴 왕가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자, 자기 정권을 위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은 1,000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기도 하였습니다(왕하15:13-22). 살고자 바친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 북 이스라엘에는 앗수르의 우상과 그들과 통혼이 횡행했습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왕하17:24). ‘깊이 빠졌으매’(호5:2),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 우상 숭배와 학살이라는 패악한 죄악 가운데 스스로 빠져들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호5:2), “나는 저희 모두에게 징책徵責이 되노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징계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호5: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쿠데타를 일으켜 통일왕국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시킨 장본인인 여로보암은 에브라임지파입니다. 이후 반란을 주도하고 나라를 쪼개어 북이스라엘을 차지한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다른 열 지파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언급됩니다(참고/호4:17;7:11).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의 둘째 아들로 에브라임이 시초인데 할아버지 야곱에 의해 장자권의 축복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가나안땅의 배분 때에도 요단으로부터 지중해까지 사마리아의 대부분 땅을 분 깃으로 받고, 시간이 갈수록 세력이 더욱 커졌으며, 훌륭한 인물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여호수아, 드보라, 압돈 사사, 선지자 사무엘등이 바로 이 지파 출신입니다. 이렇게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에브라임 지파가, 통일왕국을 분열시키면서 악한 일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에브라임은 자신들의 죄를 은밀하게 행함으로써 숨기려고 했지만,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호5:3).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의 죄악은 결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참고/히4:13).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호5:3), ‘이제’는 지금 이 순간 에브라임의 행음과 죄악된 상태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앞에 명백히 드러났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더러워졌느니라’, 행음으로 부정하게 된 죄악의 결과를 나타냅니다(참고/민5:27,28).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왕족들과 모든 백성을 지칭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호5:4). 이스라엘의 죄악된 행위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회개의 마음이 있지만, 악행이 너무 커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회개를 거부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음란한 영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노예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참고/롬6:12,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얼굴에 있는 교만함을 증거로 삼아 그들을 애굽과 앗수르와 같이 멸망시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호5:5.참고/겔32:12;슥10:11).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헛된 교만은 여호와께 돌아오는 길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소였습니다(참고/호7:10). 이스라엘의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그들의 죄악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참고/14:7).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실족하여 멸망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참고/호4:5). 교만은 필연적으로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다(참고/잠16:18;렘13:9).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회개하는 마음과 신실함이 없는 이스라엘의 제사 행위와 풍부한 제물에 대한 언급입니다(호5:6.참고/호6:6;8:11-13;사 1:11-13).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호5:6)’, 이는 값진 제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헛된 것임을 보여줍니다(참고/사1:11-13;미6: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셨고, 약속된 복을 철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에게는 ‘사자 같고’라고 하신 것은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말씀합니다(호5:14.참고/호13:7;사5:29). ‘바로 내가’는 심판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강조합니다. 이방 앗수르를 통해서라도,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먹이를 움켜가는 것처럼, 심판의 도구인 앗수르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를 잡아갔다(호5:14.참고/왕하17:4,5;사31:4). 북이스라엘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 돌아가자 1 – 회개. 이러한 때 살 길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이스라엘로 부터 완전히 거두신다는 것을 뜻합니다(호5:15). 그러나 간절하게 죄를 뉘우치고 그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면 삽니다(참/신4:29). ‘헤롯 왕’은 사도 야고보를 참수한 후, ‘두로와 시돈’에 가서, 근엄한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였습니다(행12:21.참고/행12:1-2). 이에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라’며 칭송하였습니다(행12:2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차지했던 헤롯을, 주의 사자가 내려쳤고, 헤롯은 온몸에 벌레가 먹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행12:23).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해서는 안됩니다(참고/단2:28).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나 정작 자기를 위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출20:7;신5:11).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갈6:7). 한국교회는 이 나라와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구국의 기도를 드리지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5:15), ‘고난 받을 때’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 생활을 암시합니다. 이방 민족에 의한 압제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다시 찾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심판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호14:2-4).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를 찢으셨으나’(1), 사자가 먹이를 찢는 것처럼 심판이 가혹함을 암시합니다(참고/호5:14;시 50:22). 그러나 ‘낫게 하실 것이요’(1), 진정한 회개가 있을 경우 심판의 자리에서 고침을 받게 될 것임이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빠르고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표현합니다. 회개할 때 속한 회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 살리라’, 직역하면 “그의 얼굴 앞에서”입니다. 회개하고 여호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참고/창17:18;렘 30:20). 그러므로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2 – 지식.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1,6). 여호와께 돌아가는 두 번째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3)’, 여호와를 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배교로 부터 돌아서려는 강한 열성을 내포합니다(참고/호4:1,6). 이것은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참고/신30:2,3).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3)’,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해가 떠오르는 것을 나타냅니다(참고/창19:23;시19:5). 하나님 임재가 새벽처럼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참고/사58:8;60:2). ‘비와 같이’(3), ‘비’는 퍼붓거나 흡족하게 내리는 비로서 이스라엘에 10월 초부터 2월 말 사이에 오는 겨울비를 가리킵니다(참고/스10:9.13).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3)’, ‘늦은 비’는 추수하기 전 3-4월 중에 내리는 봄비로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입니다. 이와 같이 만물을 소성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내리십니다(참고/레26:4;신11:14).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3 – 인애.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 땅에는 인애도’고 하였습니다(호4:1).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 ‘인애’는 하나님의 사랑, 확고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애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지만,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4). 이스라엘의 ‘인애’는 아침 구름, 아침 안개와 이슬 같이 쉬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아침 안개나 이슬은 해가 뜸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열매는 맺었으나, 더 탐스럽게 자라나지 못하고, 비바람에 다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는 항상 풍성한 은혜에 합당하게 풍성한 열매로 자라야 하는데, 금방 시들고 시험에 빠지면, 영글지 못한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매 맺는 ‘인애’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다(6). 제사, 번제는 소, 양, 새를 잡아 피를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른 순서로 번제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원하고 계십니다. 열매 맺는 ‘인애’,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첫 번째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패역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했는데 그 원인이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7). ‘언약’을 어긴 데서 기인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불순종은 신앙을 패역하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에게 상처를 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게 하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인애’, 모든 약조 가운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첫 번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거짓 제사장들은 어용 짓만 아니라, 강도질까지 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기 위해 벧엘로 떠나는 백성들을 세겜의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강도로 변하여 살인과 온갖 죄를 범했습니다(9). 하나님께서는 이 가증한 행위에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10). 하나님의 진노에서 하나님의 인애를 얻어야 합니다. 에스라 선지자가 나라의 지도자인 방백과 고관들이 앞장서서, 이방의 우상과 통혼의 배교를 보고,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하자 많은 백성이 통곡하고 남녀와 어린 아이까지 모여들였습니다. 그때 스가냐가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다며,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방 여자를 다 내보내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스10:1-3).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거두실 것입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에 소망’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소망이 있는 것은 주의 교훈을 따르며,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는 ‘인애’ 소망 가운데 하나님과의 소망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확고한 사랑 ‘인애’는,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언약 가운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모든 소망 가운데 하나님과의 소망이 첫 번째인 ‘인애’로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결론
① 북이스라엘의 어용 제사장들은 왕이 월급을 받고 왕이 좋아하는 말을 했지 하나님 말씀을 대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국란에서 목회자들이 회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사람의 말을 전하고 있는가? 주의 종들이 각성하고 통회하고 엎드려, 여호와께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② 대통령의 탄핵과 수사는 그를 지지하던 인정하지 않던 ‘오호통재’嗚呼痛哉입니다. 다시 복귀하시던 새로운 분이 선출되던 국가 최고 지도자가 오만을 버리고, 귀를 기울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③ 북이스라엘 제사장과 지도자의 범죄에 백성도 범죄에 빠졌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도움의 도움을 구하게 하옵소서. 온 국민이,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④ 하나님은 이방 앗수르를 통해서라도,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오늘 청아비전교회와 이 땅의 5만여 교회의 구국 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⑤ 우리의 살길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입니다. 첫 번째 회개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나라와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구국의 기도를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주권을 인정하고, 보호 아래서, 나라와 민족이 살게 하옵소서.
⑥ 두 번째 지식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아는 것, 우상과 배교로부터 돌아서서, 겨울비와 봄비로, 나라와 민족에 크신 은총과 복을 내리어 주옵소서.
⑦ 세 번째 인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 확고한 사랑 ‘인애’를 원하십니다.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언약 가운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모든 소망 가운데 하나님과의 소망이 첫 번째인 ‘인애’의. 나라와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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