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라도 주소서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15:27-28 2024.12.29. 主日禮拜
1. 다음 <장로의 전통>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과 안식일 논쟁에서 일 패를 당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자, ‘장로의 전통’傳統, Tradition of the Elders을 가지고 시비를 했습니다(1-2.참고/삼상21:1-6;출40:23;레24:5-9;마12:1-2;막2:23-28;눅6:1-5;행13:22). 유대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계명을 ‘기록된 말씀’으로 ‘성문 율법’成文律法,written law이고, 나머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르침은 입으로 전해진 율법으로 ‘구전 율법’口傳律法, oral law(or‘미쉬나’(Mishina))이라고 합니다. 구전 율법에는 에스라 이후 주후 5세기까지 약 천년 간에 걸쳐 집성된 현인들의 문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문 율법’을 학자들이 해석한 것이 ‘구전 율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유대교에서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상 다섯 권 모세 오경을 연구 분석 정리해서 만든 613가지의 계명이 ‘장로의 전통’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장로의 전통’을 중시한 데 반하여,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신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장로의 전통’은 인위적이고도 제도적인 요인들을 개입하면서, 그것은 점차로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 나아오고자 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속박하는 굴레의 역할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참고/마12:9-13;막3:1-6;눅6:6-11). 이렇게 ‘장로의 전통’ 명목은 율법,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이었지만, 내용은 자신들의 만든 전통, 유전, 관습으로 백성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 심지어는 ‘기록된 말씀’을 해석한 ‘장로의 전통’을 우선하여, 하나님의 명하신 본래 의미와 전혀 다른 규례를 행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것을 보고, 맹렬히 비난했는데, 그 근거가 ‘장로의 전통’이다(참고/출30:19-21).
2. 다음 <고르반의 위선>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공격에 그들이 자랑처럼 내세우는 ‘장로의 전통’ 가운데 대표적인 ‘고르반’이란 제도를 꼬집어 그 안에 숨겨진 위선과 극단적인 이기심을 폭로했습니다(3-6). ‘고르반’Corban는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거룩하게 구별하여 따로 떼어 둔 헌물”을 뜻합니다(참고/레1:2-3;2:1;3:1;민7:12-17). 그런데 구약 시대 후기로 오면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드려지면, 사람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의 금지를 위한 맹세의 문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고르반’이라는 맹세를 악용하여, 고르반을 선언한 사람은 재물을 실제로 드리지도 않고, 앞으로 드리겠다고 말로만 해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고르반 같은 장로의 전통은 겉으로는 율법을 더욱 잘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이라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앞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수를 쓰는 편법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외식하는’ 위선자라고, 크게 꾸짖으시고, ‘장로의 전통’을 내세우며, 떡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청결을 강조하였지만,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즉 예수님은 ‘장로의 전통’을 빗대어, 하나님의 율법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권세와 자리와 유익을 탐하는 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야말로 더러운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6-11.참고/막7:11).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이 분개할 것을 모르시냐고 여쭙자,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심지 않으신 식물은 모두 뽑아 버리실 것이라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말씀을 따른다고 하나,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들로 뽑힘을 당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12-13).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과 무관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표면적으로는 성문 율법인 모세의 율법을 내세우나, 실제적으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장로의 전통을 앞세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3. 다음 <디모데의 할례>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우리도 간혹 전통을 앞세우다가,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교회마다 전통이 있습니다. 전통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전통은 그릇입니다. 본질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담는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고, 성경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해하지 않는 것이라면, 전통은 유도리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회심한 디모데를 만나 동역을 하게 됩니다 (행16:1.참고/행14:1-18,21).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행16:3.참고/행15:1,20:31).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겠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님이 그 부족의 음식을 먹고, 장식했다고, 미신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문화를 따라 한 것입니다. 할례의 본질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신10:16). 마음의 할례는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롬3:29-30;갈3:7,29,6:16).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헬라인 디모데를 유대인으로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행16:1-3).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20). 바울이 디모데와 동역하여, ‘여러 교회가 믿음이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고 하였습니다(행16:5). 이것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한 목적입니다.
우리는 항상 본질이 첫 번째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통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는 헬라 사람으로 이방인입니다. 자기 전통으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유대인을 전도하고자 자기 전통을 버리고 유대인의 전통인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전통을 주장하다가 본질인 성경과 관계 없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큰 노를 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며, 그들과 상대하지 말 것을 권고하셨다(14).
4. 다음 <본성의 죄인>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비유를 풀어달라는 제자들에게,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음식을 먹건, 조금 청결하지 못한 손으로 음식을 먹건, 뒤로 버려질 뿐이라며, “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15-20.참고/막7:1-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롬3:10). 인간은 실존이 죄인입니다. 죄인의 본성에서 선이 나올 수 없습니다(롬3:11-17.참고/시5:9,10:7,14:1,53:1,140:3;사59:7).
바리새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말씀을 적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담은 통인 ‘경문의 띠’를 일부러 ‘넓게 하며’, 근엄하게 보이고자 치렁치렁하게 끌릴 정도로 ‘옷 술을 길게’하고,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성전’에 올라가 ‘서서 기도’하며, 자신들의 선생을 떠벌였고,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 문안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마23:5;눅11:43,18:10-11). 그러나 그렇게 외식을 해보았자, 죄인의 본성으로 타인을 비판하고 경멸하고 격하할 뿐입니다. - 그러므로 인간의 죄인인 실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길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그 순간 주님의 의를 입고 의인이 되는 것이다(롬3:22-26).
5. 다음 <칠병이어 기적>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데가볼리로 가셨습니다(29.참고/막7:31). 데가볼리는 헬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식민지화된 갈릴리 바다 동편에 위치한 도시들로, 헬라와 로마의 신들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우상의 도시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자 하는 자들의 모든 질병을 고치셨습니다(30-31.참고/막7:24-30). 또한 오병이어와 같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32-39.참고/막8:1-10). 표적의 장소가 오병이어는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갈릴리 호수 북동쪽 벳새다 들판에서 일어났고, 칠병이어는 갈릴리 호수 남동쪽에 있는 우상의 도시 데가볼리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장로의 전통을 중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우상의 도시 사람들은 개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장로의 전통을 붙잡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한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의 도시라도 주님을 믿고자 하는 곳에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그 대상이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참고/행18:4;롬1:16). 주님을 믿고자 하는 자에게 성은이 임한다. 이것이 기록된 말씀이다. 장로의 전통은 아무런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전통, 주장, 이익을 앞세우면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
6. 다음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뿐만 아니, 바리새인이 비판하고 경멸하고 격하하는 부류 가운데 하나인 ‘가나안 여인’이 등장합니다. 가나안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이방 도시입니다(21.참고/왕상16:31). 이곳에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가나안 여자가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며, 고쳐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22). 그러나 예수님 외면하며, 나는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러 왔지, 이방의 땅인 가나안 여인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23-24). 그러나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재차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25).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그들의 떡을 가나안 여인과 같은 개에게 던져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26). 그럼에도 여인은 개라고 해도 상관없으니,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며,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달라고 하셨습니다(27). ‘이에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 아멘!
예수님은 그 자리에 모인 이방인들은 물론 유대인들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이 자신들의 만든 장로의 전통을 가지고, 겉으로만 근엄과 경건과 선행을 한다는 자들이 의인으로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 도시의 가나안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장로의 전통을 중시하는 자들에게 부스러기란 어림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손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고, 정결한 짐승으로 요리한 음식을 깨끗한 식기에 담아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이방의 땅 가나안 여인이나, 우상의 도시 데가볼리나, 세리와 죄인들을 묶어서, 비소하며, 자신들의 우위를 드러내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만 깨끗할 뿐, 안에서 나오는 다른 이들을 비방하고 조소하며 역겨워하는 것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 따라, 부스러기라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나의 전통, 유전, 관습은 버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나의 체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살리는 것입니다. -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본질보다 앞서는 모든 전통을 뒤로하여,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으로부터 소원인 딸도 고침 받고, 네 믿음이 크도다 칭함도 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7.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장로의 전통과 같이 나의 전통을 가지고 기록된 말씀을 변개하고, 소멸하고, 자익(自益)하는 자게 되지 않게 하옵소서. 2024년 말씀 앞에서 마무리하고, 2025년 말씀 앞에서 시작하게 하옵소서.
② 사도권을 계승했다는 천주교 교황이 전통을 배격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사도들이 증거한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성을 계승합니다. 오늘로 사도들의 증거한 복음을 증거할 때, 겅력한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③ 바리새인과 같이 모든 행위를 자랑하고자 경문의 띠를 넓게 하고, 근엄하게 보이고자 옷 술을 길게 하고, 다른 사람이 듣도록 서서 기도하는 외식을 버려버리게 하옵소서. 죄인인 실존에서 벗어나는 길을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안에 선한 것만 나오게 하옵소서.
④ 예수님은 우상의 도시에 거하는 자들도 믿고자 하면,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이 자기의 전통인 자기의 경계를 버리고, 기록된 말씀대로 주님을 믿는 자가 되어 성은을 입게 하옵소서.
⑤ 기록된 말씀에 따라 부스러기라도 간절히 구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나의 전통을 버리게 하옵소서.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으로부터 소원도 응답되고, 네 믿음이 크도다. 칭함 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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