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나님말씀 : 마태복음 12:8
1. 다음 <안식의 주인, 예수>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을 사이로 지나다,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어찌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냐며,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윗의 이야기를 근거로 깨우쳐 주셨습니다(1-4.참고/삼상21:1-6;막2:23-28;눅6:1-5).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피 중 너무 시장한 나머지, 하나님 전에 들어가서, ‘아비아달 대제사장’에게 부탁하여, 안식일에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떡)을 먹고,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에게도 주었습니다(참고/레24:5-9;막2:26). 다윗과 일행은 제사장들에게만 허용된 규례를 ‘안식일’에 침범했습니다(참고/출40:23;레24:5-9).
다윗은 장차 왕이자, 선지자로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상황에서, 배고픔의 문제에는 탄력성 있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참고/행13:22).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다윗보다 훨씬 높은 권위로 안식일을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윗 일행처럼 허기진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장을 면하게 하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참고/막3:4;눅6:9,13:16,14:3).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막2:27). 안식일은 사람을 속박하는 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날, 사람을 살리는 날입니다(참고/눅4:18-19,21).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제자들의 행위가 안식일 규례를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8). 안식은 천지 창조의 가장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 모든 피조물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 안식했다고 알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이날 ‘안식’을 창조함으로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해석합니다(창2:1-3).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이 안식도 만드신 것입니다(창1:26;요1:1-3). 안식일의 시조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주일날을 우리는 성수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인 주일은 복 받는 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충만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 우리의 안식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2. 다음 <안식의 날, 오늘>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안식일 논쟁 이후, 회당에 들어가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오른손 마른 사람을 놓고, 안식일에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고, 만약 그렇다 말하면, 이것으로 안식일을 범한 자로, 고발할 증거를 찾고, 종교재판에 넘기려고 했습니다(9-10.참고/눅6:6-7). 그들의 의도를 모르실리 없는 예수님은 ‘11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11-12).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시각에서 치유는 안식일에도 일어나야 하고, 생명이 살리는 선이 본래 의미며, 이 선을 행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이 악입니다.
예수님은 병자에게 손을 내밀라 하시고, 그가 손을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게 되었습니다(1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가 아닌 경우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들의 판단에는 병자의 치유보다 안식일 법보다 우선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문제를 해결 받는 날에서, 안식일이 제외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갇히고 눌린 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복음입니다. 빈궁한 인생에게 풍성한 안식을 얻게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입니다. 오늘이 안식일이라고 해서, 생명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을 내일로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분노하면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합니다(14).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로막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자기가 오신 이유에 합당하게 그의 길을 가셨습니다.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7-21.참고/막3:1-6;눅6:6-11.참고/사42:1-3). 구약의 예언 그대로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안 미치는 날이 없습니다. - 우리에게 모든 날이 안식일이다.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자에게, 주님의 일하심이 오늘도, 이후 매일 매일도, 우리 삶에 나타난다.
3. 다음 <안식의 증거, 성령>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님은 안식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신 후, 성령 모독 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전 바리새인과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있은 후,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도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귀신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돌리며 오욕했습니다(22-29.참고/막3:20-30;눅6:43-45;11:14-23;12:10). 이때 주님은 무슨 죄를 짓든지, 무슨 신성 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다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를 받지 못하리라는 것이며,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겠으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0-31). 성령님의 분명한 역사와 증거를 보고도, 지속해서 왜곡하고 고의적으로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은 성령을 모독하는 바리새인과 같이 악한 말을 하는 나쁜 나무 나쁜 열매가 아니라, 좋은 나무 좋은 열매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증거가 선한 말, 선을 쌓고, 선한 말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33-37.참고/요10:10,32;엡4:29).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선한 말은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로움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으면, 정죄.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36). 시인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이름이 있는 곳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요일5:5-8.참고/마3:13-17;막1:9-11;눅3:21-22;요15:26).
선한 말, 모든 말에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귀신 왕 바알세불까지 물리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로 바리새인과 같이 주님의 나타나심을 보고도 고의로 거부하는 자들이 주님이 내 삶에 개입하심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가득 맺는 좋은 나무 좋은 열매가 될 것입니다(갈5:22-23). - 성령의 역사, 성령의 감화, 성령의 열매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믿는 안식의 증거이다.
4. 다음 <안식의 통로, 십자가>를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기로 유명한 자들입니다(38.참고/고전1:22). 그러나 진정 마음 문을 열고 있었다면, 지금까지 예수의 능력 있는 가르침이나, 많은 병자가 치유되고, 광풍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보고, 예수가 메시아 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있었다고 하셨습니니다(40.참고/욘1:17).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삼일 후 부활로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인 인류 대속을 위한 표적이 될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니느웨가 요나의 메시를 듣고 회개하고,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말씀을 받아들인 남방 여왕을 대조하면서, 바리새인들이 심각한 것은 요나와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셨는데도 믿지 않았기에 더욱 죄라고 하셨습니다(41-42).
결국 바리새인과 같이 불신으로 가득찬 사람들은 표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곱 귀신이 들어간 자와 같이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처럼, 더욱 흉악해 질 뿐입니다(43-45.참고/막8:11-12;눅11:24-26,29-32). 니느웨는 성벽에 마차 3대가 달릴 수 있는 ‘큰 성’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의 도성이었습니다(욘1:1-2). 그러나 니느웨는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왕부터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욘3:5-6).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던 남방의 스바 여왕도 솔로몬에게 찾아와 지혜를 듣고, 니느웨와 같이 하였습니다(왕상10:1-12).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은 바리새인 같이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느웨와 같이 메시지를, 남방 여왕 같이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메시지와 지혜는 ‘요나의 표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하나님 믿으면 돈도 많이 주신다며, 그럼 잘 살겠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표적을 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22-23).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18). ‘세상의 표적’을 구할 때, 우리는 ‘요나의 표적’, 십자가를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안식을 얻게하는 통로입니다. 중심에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히12:2). -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바라보면, 그분의 안식이 임한다.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않자 계신, 주님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것만큼 큰 안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5. 다음 <안식의 나눔, 동참>을 읽고 가르침을 나누어 보시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육신의 아버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들이 (모처럼) 예수께 (찾아와) 말하려고 밖에’서서 기다렸습니다(46). 이를 본 ‘한 사람이 예수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고 아뢰었습니다(47).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면서,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48-49). 주님은 참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들이 찾아 왔는데 이렇게 매정한 말을 하신 것은 가족을 무시해서일까요? 그러실 리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50.참고/막3:31-35;눅8:19-21).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혈육의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라, 믿음의 성도도 가족입니다. 교회는 또 하나의 가족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형제 자매입니다. 이 관계를 주님은 가족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가족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도 요한은 ‘형제’, 가족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동참’입니다. 또 하나의 가족인 교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동참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함께 세워가야 합니다(참고/엡2:22). 동참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는 함께 주님의 안식을 누리는 자로서, 동참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행20:35). - 내가 받은 주님의 안식을 형제에게 자매에게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동참하게 된다. 지금, 이 시간 성령께서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받은 안식이 무엇이고, 그것을 나누라고 하신 인도에 따르기를 소망한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받은 안식의 첫 번째는 구원이다. 그러면 구원을 나누고,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나누고, 위로를 받았으면 위로를 나누고, 감사를 받았으면 감사를 나누고, 섬김을 받았으면 섬김을 나누고...
6. 다음 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① 안식의 주인, 예수. 예수님을 믿을 때 참된 안식이 찾아옵니다. 안식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수님께서 인생의 어려움과 눈물에 있는 영혼들을 회복시켜주시고, 성도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나라에서도 지금 이 세상에서도. 주님의 구원, 긍휼, 위로를 받게 하옵소서.
② 안식의 날, 오늘. 예수 믿는 성도에게 날마다 안실일입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안 믿치 날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예수님의 일하심이 오늘도, 이후 매일 매일도, 우리 삶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③ 안식의 증거, 성령. 선한 말, 모든 말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높이고, 드러내고, 인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성령의 역사, 성령의 감화, 성령의 열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믿는 안식의 증거가 가득하게 하옵소서.
④ 안식의 통로, 십자가. 나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우편을 보셨던 것과 같이, 십자가를 새기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게 하옵소서. 그곳에서 주시는 안식을 얻게 하옵소서.
⑤ 안식의 나눔, 동참. 내가 받은 주님의 안식을 형제에게 자매에게 나누는 동참에 참예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받은 안식이 무엇이고, 그것을 나누라고 하신, 인도에 따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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